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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요? 응...!"


와장창 우당탕탕콰르르르우르으쾅쾅쿠과과와와광-


뽀미가 지우개를 주우려고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 가려다가 넘어졌고.


그렇게 지구 내핵까지 뚫리면서 세상이 멸망했다.






"아니아니! 그렇게 끝나면 어떻게 해요!!"


뽀미가 화를 냈다.


"왜?"

"왜냐고 물으시는 그 뻔뻔함이 존경스럽네요!"

"존경해줘서 고마워."

"그 소리가 아니잖아요!"


뽀미가 화를 냈다.


"왜?"

"크아아아아!"

"와 공룡!"

"닥ㅊ.. 아니, 시끄러워요!"

"둘 다 결국 욕 아니야?"

"윽....."


뽀미가 화를 내다가 말고 멈칫했다


"크, 크흠.... 실례했어요. 아무튼, 지휘관님. 방금 내용은 절대 용납 못해요. 절대."

"왜?"

"그야...!"


뽀미가 화를 내다가 팔짱을 껴고 흥칫뿡을 시전했다.


"그렇게 저를 놀리셔야 성이 차시겠어요?"

"놀리는 거 아닌데..."

"놀리는 게 아니면 대체 뭔가요!"

"음....."


성을 내는 뽀미를 보며, 지휘관은 깊은 사색에 잠겼다.


"지금, 뽀미는 굉장히 자유롭고 편한 상태 아니야?"

"뭐라고요?"

"말투도 남들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화내고, 마음껏 나를 쏘아보고 있잖아."

".......?"


뽀미의 표정이 차츰 풀린다.


"그러니까.... 예전에 제가 했던 말을 듣고 이러시는 거라고요?"

"응."

"......"


뽀미가 한때 말했다.


-저, 사실은 로열레이디답게 행동하기보다는 좀 편하게 살고 싶답니다?


"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면 미안해. 하지만 뽀미. 겉치레로 마음을 숨기는 것보단, 마음껏 표출하는 걸 원했잖아."

"그건 맞지만....."


뽀미가 미간을 살짝 오므렸다가 다시 눈을 번쩍 떴다.


"그거랑 놀리는 거랑 대체 무슨 연관인가요!? 은근슬쩍 궤변으로 넘어가려고 하지 마세요!"

"쳇, 이 음탕한 젖탱이년 쓸데없이 눈치만 빨라가지고."

"뭐, 뭐, 뭐라고요!?"

"로열레이디답게 행동하지 않는 가장 빠른 방법! 그건 천박한 교미뿐이다!"


지휘관이 급발진해서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이 경박한..!"

"크악!"


뽀미가 지휘관의 관절을 잡고 제압했다.

특수부대나 할 법한 절도 있는 동작이었다.


"후하하하! 어떠신가요, 지휘관님? 꼼짝도 못 하시겠죠? 아무것도 못 하죠? 그렇죠? 개털렸죠?"

"큭...!!"


지휘관은 바닥에 엎어진 채 발버둥을 쳤다.


"이 못뚱공! 네 무릎으로 날 누르면 척추 빠개진다고! 내장이 파열돼서 피토하며 죽는 꼴 보고 싶어?!"

"그럴 일은 없어요. 고어한 건 별로거든요."

"큭....! 놔, 놔라, 계집!!"


지휘관이 뽀미의 무릎 아래서 꿈틀거렸다.

그러자 뽀미는 묘한 희열이 차올랐다.


"후후후후, 아무것도 못하는 지휘관님을 보고 있자니, 지난 날의 설움이 떠오르네요. 자지만 믿고 우쭐하는 나약한 닌겐 주제에 저를 못뚱공이라 부르셨죠. 못생기고, 뚱뚱한 공룡이라고."

"아야야야! 아파! 아파요! 아파아아앗!"

"엄살 떨지 마세욧!"


뽀미가 살짝 딱콩을 때렸다.

지휘관은 온갖 괴성을 지르며 호들갑을 떨었다.


"끼야아아아악 머리가 터졌어!!"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보다, 취소하세요. 전 못뚱공이 아니라구요."

"알았어! 못생기지 않았어! 사실 예전부터 뽀미가 존나 예쁘다고 생각했다고!"

"호... 웬일로 순순히-"

"하지만 뚱뚱한 공룡은 맞잖아."

"이새끼가."


뽀미가 관절을 꺾는다.


"끼야아아아악!"

"뽀미는 예쁘고 가벼운 처녀 같다고 말해! 이제부터는 예가처라고 줄여 부르라고!!"

"예...! 예....! 예쁘고 뚱뚱한 공룡 맞잖아!"

"이 자지새끼가."


뽀미가 지휘관을 고문할 때였다.


드르륵-


"아, 주인님. 여기 계셨군요. 오늘 회의는....."


벨파스트가 들어오다가 두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핫...."

"......"

"......"


길고도 험한 침묵.

그 끝에 벨파스트가 곱게 웃으며 예를 갖춰 꾸벅 인사했다.


"좋은 분위기를 망칠 뻔했군요, 죄송합니다. 오늘의 회의는 각 진영 지휘관 분들이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드르륵, 쿵.


벨파스트가 사라지면서 문이 닫혔다.


"끼야아아아악!"


뽀미가 절규했다.


"역시 공룡...! 보아라..! 이것이 바로 고대에 존재했던 공룡의 포효-"

"지금 그딴 말을 할 때가 아니라구요!"


뽀미가 버럭 외쳤다.


"자랑스러운 로열레이디였어야 했는데....! 그것도 하필이면....!"


메이드장에게 들켰다.

게다가 지휘관을 제압하고 억압하면서 그걸 즐기듯 실실 웃는 표정까지....


"저 어떻게 해요...? 지휘관님... 저 함생 망했다구요.. 웃지만 말고 제발 뭐라도 말을 해주세요!!"

"알았어."


지휘관이 대뜸 진지하게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결혼하자."

"....결혼?"

"결혼."

"...갑자기 무슨 소리세요?"

"결혼하기 전까지는 얌전하고 조숙하다가 결혼한 다음부터 태도가 확 바뀌는 여자들이 있다고 들었어. 너도 그러면 네 변화를 자연스럽-"


퍼억!


"그딴 말 할 때가 아니라니까요!!"


포미의 정권이 지휘관의 아랫배에 작렬했다.


"커헉...!!"

"이런 위급시에도 그러실 거예요!? 정말 너무하세요!!"


뽀미가 벌떡 일어나 떠나려고 했다.

지휘관은 간신히 팔을 들어 그녀의 옷깃을 붙잡았다.

그리고 작렬한 일격을 맞아 숨 넘어가기 직전에 유언을 던지는 병사처럼 말한다.


"미안해... 마이 스위트 허니..."

"......?"


뽀미가 멈칫했다.

거지 같은 멘트가 화가 난 건가 싶었다.

하지만 뽀미의 양쪽 뺨이 붉어졌다.


"너무 노골적이지 않나요? .....뭐, 이제 됐어요."


그녀는 은근슬쩍 화가 풀어진 듯, 지휘관의 옆에 와 쪼그리고 앉았다.


"많이 아팠어요?"

"인간이 견딜 수 있는 한계에서 나노센티미터 정도 직전이었어."

"....죄송해요. 흥분해서 세게 때리고 말았네요."


뽀미가 그의 허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두 사람은 아무도 없는 교실 바닥에 앉아 창밖을 보았다.


"벌써 석양이 지네요."

"그러게."

"진짜 학생이라면 이제 하교해야 할 때일 텐데요."

"그렇겠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저는, 불량 학생일까요?"

"흐음,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 당번이라고 해도 이미 갈 시간이 지났으니까."


지휘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뽀미가 살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로열레이디가 아닌, 나쁜 학생이네요?"

"그러네. 이 나쁜년아."

"아니, 좀. 좋은 분위기 망치지 좀 마세요."

"지가 말해놓고는."

"....다른 분들이랑 있을 때는 무드도 있고, 애틋함도 느끼시는 분 같은데, 왜 제 앞에서는 이렇게 철 없으실까요."

"그야, 내가 너의 마음을 투영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 말에 뽀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미래에서 온 홀로그램 같은 소리를 하고 계세요?"

"사람의 성격과 마음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법이야. 그 순간의 기분과 건강 상태에 따라서."

"......?"

"또, 상대에 따라서 변하기도 하지."


지휘관이 몸을 일으켰다.

뽀미는 쪼그리고 앉은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사람이 항상 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어."

"......."

"대하는 사람에 따라 내 태도가 달라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 물론, 강약약강처럼 행동하는 거 말고, 그 상대를 이해하고 맞춰서 행동한다는 전제 하에."


지휘관은 뽀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너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아?"

".....저도요?"

"모항에는 가지각색의 사람이 있어. 수백 명이나 되는 함순이들이랑 매일 부대끼면서 살잖아?"

"...그렇죠."

"그렇게 많은 이들을 만날 때마다 일일이 가면을 쓰고 대하는 건 힘든 일이야."


당연한 말이다.

본성을 억제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게 얼마나 갑갑한 일인지는 네가 가장 잘 알잖아?"


뽀미가 놀란 눈으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남들이 보고 싶어하는 너를 만들어가는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너를 보여주는 게 훨씬 편하고 자연스러워."

"......하지만 위치에 맞는 언행이라는 게 있는 거잖아요."

"그럼 난 항상 근엄한 표정으로 있어야 하겠네?"

".....!"


모두를 이끄는 지휘관.

사실, 그 자리는 결코 가볍지 않아.


"하지만 그러면 모두가 편하게 지낼 수가 없잖아. 내가 원하는 건 단순한 군대가 아니니까."

"......."

"위치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지만, 우리 모항은 예외야."


지휘관이 뽀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뽀미는 처음에는 눈을 감으며 싫어했지만, 의외로 그 손길은 싫지 않았다.


"위치랑 격식에 얽매이지 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지휘관님....."

"마이 스위트 허니."

"두 번은 좀 그러네요."

"하하."


지휘관은 뽀미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보니, 이 위치 펠라하기 딱이네."


지휘관의 고간이 뽀미의 얼굴 앞에 있다.


"어쩔래? 짜요짜요 함 먹을래?"

"정말....."


뽀미는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묘하게 뺨을 붉히며 고간을 쳐다본다.


".....먹고 싶어서 먹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주세요."

"그러면?"

".....당신이 싸준 도시락이니까. 그래서 먹는 거예요."


지익-


뽀미가 지퍼를 내린다.

지휘관은 싸온 도시락을 건넸다.


"나쁜 학생이네."

"...누구 때문인데요."

"그런데 입으로 마시는 것만으로 끝낼 거야? 진짜 먹고 싶어 하는 입은 따로 있는 거 같은데."


지휘관은 바닥을 보았다.

뽀미는 다리를 오므린 채 도시락을 빨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다리 아래 바닥에 투명하고 끈적한 액체가 늘어지고 있었다.


"정말..... 학교에서 이러면 안 되는데....."

"자유롭고 좋잖아."


지휘관은 그녀를 책상으로 이끌었다.


"다리 벌리고 보지 살짝 가린 채 누워줘."

"부, 부끄러운데...."

"그러면 엎드리는 것도 좋아."

"......"


뽀미는 책상에 엎어지고 엉덩이를 쭉 내밀었다.

그리고 엉덩이를 씰룩씰룩 흔들거리며 말한다.


"지휘관님에게 드릴 도시락이 준비되어 있답니다... 드실래요....?"




그날, 모든 학생이 하교한 직후.


학교에서는 규모 7.0에 필적하는 지진이 발생했다는 속보가 발표됐다.


훗날, 지진의 발생지를 찾던 함순이의 말에 따르길.


진원에서는 정체불명의 끈적하고 뜨거운 액체와 짙은 밤꽃 냄새가 풍겼다고 전해진다.


"지진이라니....."


뽀미가 축 처졌다.


"괜찮아?"

"....안 괜찮아요."

"흐음..... 뽀미."

"말씀하세요오......"


뽀미는 세상을 포기할 것처럼 시무룩해져 있었다.


"나랑 같이 살 잘 빠지는 운동 할래?"

"그런 운동이 있나요?"


뽀미가 묘한 기대를 가지고 그를 보았다.

하지만 지휘관의 미소를 본 그녀는 윽, 하며 신음을 뱉었다.


"할래?"

"하아......"


뽀미는 자포자기하듯 한숨을 뱉었다.


"또 어디서 지진 났다는 속보가 나와도 몰라요, 지휘관님."


그렇게 지진은 쉬지 않고 이어졌고.


어느 순간부터 모항의 함순이들은 지진이 나든 말든 ㅈ도 신경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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