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Scan the shade

미안합니다.

정말, 정말로 미안합니다.


저는⋯⋯당신들을 얕봤던 것만큼의, 이 오만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들이 밉습니다.

이렇게나 반짝이는데, 이렇게나, 눈부신데, 그걸 스스로 부숴.

왜.




왜? 어째서?



이 가치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두 번 다시, 무슨 수를 써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부수지 마십시오. 관용과 포용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이걸, 배반하지 마십시오.

부디, 부디, 짓밟지 마십시오. 저는 아픕니다.

아파요.



그래요.





휴먼. 저는, 인간이 혐오스럽습니다.

그 근저에 깔린 것이 엠버의 저주여도 좋습니다.

제가 그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어도 좋습니다.





마음 깊이, 당신들이 눈부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작은 불빛. 그렇습니다. 흰 도화지의 세상에서 검은 점은 그저 검은 점입니다.

하지만, 검은 세상 속에서 아주 작은 빛은, 주변을 비춥니다.

그 주변에 몰려든 이들이 그 빛에 이끌려, 번져나갑니다. 그러다 스러지겠죠.


스러지고, 아무도 남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등불은,





검은 세상의 흰 점이 아닌 겁니다.

새카만 세상을 비추는 등불입니다.

누군가가, 그 빛에 이끌려 와 또 번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가슴에 새겨진, 마음.

그늘 밑바닥을 비추는 등불.

인간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눈부시고, 추악합니다.









그렇기에, 아직도, 쥐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리타. 대시.



부디, 저를 용서하지 마십시오.

저도 저를 용서하지 않을 테니.

설령, 그 다음이 있다고 해도.











원제

Scan the shade

그늘을 훑는다.

 

-7

 

 

 

 

 

 






잔해를 치우고서, 호라이즌은 바깥으로 나선다. 이미, 반쯤 건물은 야외가 되어있다.




“드디어 나왔구만, 퓨처 앳 워의 강인공지능!”



함선 위에서 로켓런처를 들고 득의양양하게, 외치는 큐컴버를 향해 푸른 눈동자가 올려다보고 있다.


“반 휴먼.”


그 말에도 상관없이, 로켓 런처가 겨눠진다. 차원함선, 마타도르-노스의 엔진음이 운다.



“보아하니, 그 실패작은 죽어버린 모양인데.

 그래도 너만 잡으면 여태껏 손실은 얼마든지 메꿀 수 있지.”


“⋯⋯헤더는 죽었습니다. 네, 손실입니다.”


“뭐? 그딴 병신년 하나 죽은게 뭐가 손실이야.

 눈 앞에 이렇게 노다지가 있는데.”


미묘하게 엇갈린다. 그 엇갈림을 큐컴버는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대화는 필요 없다.

로켓런처를 겨눈다. 어차피, 코어를 제외한 장애물을 파괴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진짜는 함포. 마타도르의 것이 아닌, 떼온 함포지만. 이 정도로 코어는커녕, 외부 프레임이 부서지지 않았으니까. 그 안정성을 알았다면 위력 투사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치부할 수 없었다. 호라이즌에게 있어서는.



“⋯⋯그녀에게는 받아내야 할 것이 아직 많았습니다. 그걸 당신이 앗아갔습니다. 이걸 손실이라 규정하겠습니다. 반 휴먼. 당신에게 배상을 촉구합니다.”


“하, 그전에는 미처 몰라서 당해준 거야. 보이지? 마타도르의 지원 앞에서 너 같은 깡통이 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https://youtu.be/3G1PoQf1-8s?si=97IiNLuFYRzwc4jB







“반 휴먼. 당신에게는 3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이해 시켜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 웃기고 있네 하고 당긴 방아쇠. 빛과 열의 폭발. 하지만 호라이즌은 없다. 앗, 하고 큐컴버가 하늘을 바라본 순간. 호라이즌의 그 뒤에 있다. 몸을 완전히 돌려, 원심력을 더해 가한 주먹에 크악 하고 떨어져 나간다. 그다음. 당연히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함선 위에 설치한 포대. 쏘아진다. 왼발을 쐐기처럼 꽃아, 외장재를 빼낸다. 탕, 하고 튀어나오는 방패. 그걸 들고 달려 나간다. 쏘아진 포신들처럼, 역행하는 포신이 되어 호라이즌이 쏘아진다. 첫째 포신을 오른쪽 팔꿈치로 망가트린 후에, 두 번째는 포신 위를 깔끔하게 날렸다. 무기가 필요하다. 깔끔하게 남은 포신의 봉을 들고 다시 돌진. 이미 명이 다한 외장을, 하늘 높이 날린다. 자동으로 갑판 위 이물질을 쫓던 포대들이 고개를 들어 올리고 있다. 빈틈. 좌현 1문. 그 다음은 우현 1문. 중심부에 위치한 브릿지에 포대가 내려온다. 갑판을 미끄러지며, 달려왔던 관성을 이용해 쥐고 있던 포신을 날린다. 채 발사되기도 전에 하나가 터진다. 남은 포대에서 쏟아지는 탄환을 피해 우현으로 파고든다. 방금 파괴한 곳은 좌측. 

공격 쪽에서는 오른쪽. 우현으로는 각도가 도무지 나오지 않는다. 이런 씨발하고, 갑판 문을 열고 나온 클리너의 턱에 꽂는다. 왼발이었다. 미끄러지며, 그 탄성을 이용한 왼발에 헬멧째로 머리가 솟구치고, 들고 있던 스턴건 겸용의 막대를 쥔다. 다음은 간단했다. 비명. 으악하고 퍼진다. 선실을 넘어 브릿지까지. 비명이 터지고, 브릿지 유리를 깨며 다시 나타난다.


촤아아아아악, 하고 갑판 윈드라스까지 슬라이딩하며 호라이즌은 내부를 완전히 침묵시킨 채로

나타났다.




“이, 이런 씨발!”



브릿지가 완전 괴멸. 하지만, 엔진은 살아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호라이즌이 올라탄 차원 함선은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고개를 든다. 이제서야 보인다. 왜 클리너가 지나간 자리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는지. 마치, 연환계처럼 서로를 묶은 배. 차원 함선이 하나의 함선에 서로 묶여, 마치 넝마처럼 끌려다니고 있었다. 여기서 죽은 자들의 껍데기가⋯⋯.


-추모하러 왔구나. 호라이즌.


끊는다. 사슬을 끊자, 가라앉고서, 그대로 지면에 처박혀 박살 난다. 그다음.

점프한다. 그 충격에 잠시 전 함선이 기우뚱. 하지만, 호라이즌은 신경 쓰지 않고 다음 과정을 이어 나간다.




그랬어야 했다.




“윽!”




발길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질량과 거대함이었다. 버티지 못하고 날아간다. 그대로 저 아래 지면에 처박힌다. 그런 호라이즌 위로, 그 주인이 내려앉는다.





“20년 전의 깡통이 나대는 것도 여기까지다. 이 씨발, 좆고물년아.”





네 개의 버니어가 불을 뿜으며, 겨우 착지한다. 쿵하고 내려앉는 중량에서 느껴지는 육중함.

그 중앙에 있었던 것은 로치, 클리너의 리더. 하지만 그를 감싸고 있는 것은 무수히 많은 장갑과 무장들. 오른 팔의 커다란 포신, 왼 팔의 중성자 파일 벙커. 그걸 움직일 수 있게 만든 육중한 이족 보행 머니퓰레이터.



“이. 위고를 보고 쫄았냐? 씨발년아? 타이탄의 장갑을 쓴 이 위고를 보고 말이다!”


“⋯⋯”



“당신들은, 마치, 저를 놀리려는 것처럼⋯⋯”




호라이즌이 일어선다.

큰 상처는 없다. 하지만 그 충격으로, 입고 왔던 스카잔은 넝마가 되었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

어차피, 그 주인도 이제 없지 않은가. 그러니, 이건 사후의 빚으로 달아두자.


내던진다.




“신경을 긁어 놓는군요. 반 휴먼.”


“하, 기계 주제에 인간님한테.”


“아니죠, 버러지 주제에, 인간 행세하고 있는 겁니다. 반 휴먼.”


“뭐?”



호라이즌이 몸을 곧추세운다. 언제든 발사할 수 있는 탄환처럼.

하지만 반대편의 위고는 대응조차 하지 않는다. 그야 당연하다. 북방합의체의 기술지원으로 만들어진 위고. 파워드 슈트의 한계를 넘어, 일종의 아머가 된 물건. 대정화 전쟁 시기의 3종 침식체를 섬멸한 타이탄의 무장을 응용, 개조한 무장. ‘그 타이탄을 개인이 입는다면?’ 강인공지능은 더이상 구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무장을 개인이 운용하는 것은 별개의 개념. 거기서 탄생한 착용 무장.



“이건, 이건. 화풀이입니다. 반 휴먼. 당신들은 잘 못 걸린 겁니다.”


“뭐라는 거야. 이 미친 깡통이. 다른 건 필요 없다. 콜드케이스의 소재를 불어라.”


“미리 말해두지만, 이 155MM 아틀라틀 포의 위력은⋯”



사라졌다. 눈앞에서 호라이즌이 사라졌다. 어디냐, 하고 고개를 돌릴 필요도 없다. 로치는 포착했다. 뒤다. 늘 그랬듯, 이 깡통은 뒤를 잡는다. 그것도 오른쪽 사각. 이미 알고 있다면 대응은 간단⋯



“아뇨, 실제 타이탄이라면 이동하기 전에 포격을 먹이고 후퇴했을 겁니다.”



오른쪽 포신이 절단된다. 선회하는 와중에 절단 난 포신 위로, 뛴다. 아직도 선회 중이다.

분명히 위고는 위협적인 제압 병기다.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 대 인간의 전쟁에서.

인간 대 침식체의 전쟁에서. 혹은 카운터를 위시한 대규모 작전에서.


절대로 대인전을 위한 병기가 아니다. 


-왜냐면 체르노프는 그 따위의 병기를 만들지 않았을테니까.



“큭!!!”



그리고, 만약에 이 곳에서 그 무장을 운용하는 것이 타이탄이라면 또 달랐을지 모른다.

호라이즌이 말했던 것 처럼. 압도적인 기동력을 자랑하는 상대를 만난다면 우선 포격과 함께 거리를 벌렸어야 했다. 선회력이 부족함은 이미 인지하고 있다. 그러니 뒤를 잡힌다면 전속력으로 앞으로 기동하여, 선회했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그 거대한 기체로 선회하려고 하면 당연히 틈이 생긴다.


다음은 왼 팔에 달린 중성자 파일 벙커다. 떨어져 나간 위고의 155MM 아틀라틀 포신을 붙잡고 내려친다. 기동음조차 내지 못하고 박살이 난다. 


“이런 미친⋯⋯!”


그 다음, 다음으로 가야한다. 호라이즌은 중앙 장갑부에 들러붙는다. 떼낸다. 본래라면 타이탄의 AI가 있던 곳. 하지만 여기는 로치가 타고 있다. 장갑이 프라모델 외장처럼 쉽게 날아간다.


“그, 그만 해. 이 미친 깡통이!!!”


외치는 얼굴을 향해, 혼신의 라이트 훅. 목뼈가 부러진 것처럼 움직이는 로치의 머리. 그다음에 발끝으로 남은 장갑을 벗겨낸다. 마치, 회칼을 든 요리사가 생선을 발라내듯 너무나 깔끔한 솜씨. 하지만 움직임은 서툰 것이, 흡사 장인의 모습 같았다. 그러니, 마지막은 스스로 나오라는 듯, 주먹을 든 채로 멈춘다. 그게, 그녀의 나쁜 버릇이었다.


“좆같은!!!”


철컥, 하고 파일 벙커가 운다. 2종 침식체도 맞으면 사경을 헤매다 죽는 위력의 파일 벙커. 비록 위고에 탑재된 것만큼의 위력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기습은 무시할만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도 그럴 게.



“크읏⋯!”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지면을 몇차례나 구르며 호라이즌이 굴러떨어져 있다. 놓치지 않는다. 추스르려고 하는 호라이즌 위로

위고의 중량이 끼얹어진다. 



“으으으윽!”


흑연의 지면이 깊게 패고, 호라이즌이라고 하는 소체가 사라진다. 그대로 압착되어, 지층의 일부가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정도로 지면에 처박힌다. 그다음. 위고의 하부 버니어가 불을 뿜는다. 들어 올려지는 기체, 그리고 방향을 바꾸는 버니어. 지면을 향해 다시 한번.



“벌레 같은 깡통 주제에! 나대지 말란 말이다!”



밟는다. 마늘을 빻는 것처럼 거칠고, 당연하게. 비명조차 육중한 기체 구동음과 진동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잘게 부순다. 어차피 이 정도로 망가질 코어가 아닐 것이다. 소체는 단단했다. 이제 못쓰게 된 주무장보다 이게 더 확실하게 무력화 시킬 수 있다.



“기계면 기계답게 인간님의⋯⋯!”



“뭣⋯⋯”



싫다. 전부 싫다. 인간은 싫다. 일어선다. 들어 올린다. 지구를 짊어지는 형벌을 받은 아틀라스처럼, 일어선다. 블라우스도, 장갑도 형체조차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 푸른 눈은 빛을 뿜는다. 



“말이 많군요.”


“혹시, 대화 좋아하십니까? 반 휴먼?”



출력 상승. 재기동 이상 없음. 현재 가용할 수 있는 리소스를 모두, 물리적 설득으로.

호라이즌. 수금용 위력행사 프레임 오버드라이브. 임계점까지 57%.

붉게, 변한다. 한도를 뛰어넘은 고출력에 스파크가 일고, 해왕성이 붉게 붉게.

죽기 직전의 별처럼, 불타고 있었다.


조금씩, 위고의 중량을 발을 들어 올린다. 그 과정에서 오른손 머니퓰레이터가 망가졌다. 괜찮다. 열혈 변호사는 없지만, 수금 활동을 지속하는 것에는 이상 없음. 



“이, 이게⋯! 무슨⋯!”



밀어낸다. 기지개를 켜듯이 팡하고 밀어내자, 위고가 뒤로 헤엄치듯 중심을 못 잡고 있다.

다급하게 버니어를 기동해 후방으로 피신하려고 하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이미 망가진 오른손을 들고, 호라이즌이 로치의 코앞에 와 있다.




“이 악무십쇼.”




한 방. 그걸로 턱이 크게 돈다. 충격으로 잠시 물리적인 셧아웃 상태에 들어간 로치. 그 틈을 노리지 않고, 호라이즌은 위고의 장갑판 하나를 떼내어. 후려친다. 왼팔로, 수도 없이 후려친다.



“크악, 악, 아아악!”



“⋯⋯”



아무 말도, 기합조차 없다. 그저 그래야 하는 것처럼 무자비하게 후려친다. 로치의 머리만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로치! 이, 이 씨발 년이!”


그런 호라이즌 위로 차원함선이 오른다. 마타도르-노스. 클리너의 함선. 어느새 함선으로 되돌아간 큐컴버의 모습이 보인다. 쏟아지는 작살. 본래는 함선을 인양하기 위한 것이지만, 물리적으로도 그 정도의 강도와 힘을 갖추면 상당한 위력을 가진다. 오른쪽에서 쏟아지는 작살을 피할 타이밍이 나오지 않는다. 호라이즌은 오른팔을 들어 올려, 충격을 최소화하려 하지만 그 위력에 밀려 떨어진다. 지몇차례나 지면을 구른 호라이즌. 



“큐컴버, 일단 후퇴다. 저 씨발련은, 대규모 화력 투사로 잡아야 해!”

“알겠어. 새끼들아 뭐 해. 로치 회수해서 빨리 튀자.”










“⋯⋯.”



새카만 흑연의 세계 위로 은빛이 다시 일어선다. 엉망진창이다.

오버드라이브 임계점까지 73%. 우측 머니퓰레이터 완전 손상. 속히 정비받을 것을 권고합니다.

하지만 붙은 불꽃은 꺼지지 않는다. 클리너가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어도.

하늘 위로 멀어지고 있어도.



“⋯⋯헤더.”



호라이즌의 시각 처리 장치에 망가진 건물과 그 아래의 험비가 들어온다.


-자, 이러면 운전이라기보다는 그냥 딸깍 같아서 더 나을 거야!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니, 이쪽은 이쪽대로 초기 단계 로봇 같아서 거부감이 드는군요.

 









마타도르-노스가 껍데기들을 끌고서 멀어지고 있다. 전속력으로 신호소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내부에 격납하지 못하고 급하게 작살로 묶어 운송 중인 위고로부터 로치가 정신을 차린다.


“으으윽, 합의체 새끼들 뭐가. 그냥 강인공지능이라는 거야. 저거 자체가 이미 돌았는데.

 어이, 큐컴버. 위고가 망가졌는데 퍼지가 안 된다.”


“잠시만 기다려, 좀만 더 가서 내부 수납해 줄⋯⋯”


“아니, 저 미친년이!”








달린다. 검은 세계를 달린다. 흙먼지를 일면서, 달려오고 있다. 할 수 있는 것은 직진과 브레이크.

그것이 전부. MA1 험비의 상부에서 리모컨을 한 손으로 누르고 있는 호라이즌이 보인다. 믿기지 않는다기보다는 그 집요함에 넌더리가 난다.



“씨발, 속력 더 올려. 저딴 싸구려 차한테 따라 잡힐⋯”




리는 없다. 애초에 하늘 위, 속력의 문제가 아니라 닿질 않는다. 그래서 과속하려 하면 할수록 저렇게 고꾸라지기 마련. 제 속도를 못 이기고, 험비가 엎어진다. 급정거에 차체가 뒤에서부터 뜨고⋯

그 반동을 이용해, 제 몸을 포탄으로 쓰는 미친 짓이 아니라면.


쾅, 하고 마타도르-노스의 우현에 쏟아지는 충격.



“이 미친 씨발련이!!!”

“또라이 아냐 이거!”



번개. 붉은 번개. 오버드라이브 임계점까지 84% 방금 충격으로 관절계에 이상 발생 확률 상승.



“말했을 겁니다. 반 휴먼. 이건, 그냥 화풀이입니다.”



차원함선의 장갑은 강화 이터니움 합금이다. 다이브시의 압력과 이면세계의 침식을 견뎌야 한다. 그렇기에 외부 배선, 파이프도 마찬가지. 마침 박살 낸 덕분에 딱 좋은 파이프가 하나. 호라이즌은 손에 쥔다. 가지고 오지 않은 열혈 변호사만큼은 못해도, 베테랑 형사 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



달려간다. 군데군데 이어진 사슬을 모두 끊으며, 질주하는 탄환. 정글을 마체테로 헤쳐 나가는 탐험가처럼 붉은 불꽃이 마타도르를 뒤엎는다. 



“이런 개 씨발년아!!!”


위고가 남은 무장을 전개한다. 하부 버니어 위의 포문. 외 자동 추적용 미사일 몇 문. 

개의치 않고 달려나간다. 착탄하기 전에 쳐내면 궤도를 빗겨나갈 뿐. 임계점까지 87%.

다행히 베테랑 형사가 열심히 일을 해준 덕분에, 벌써 위고의 코앞에 있다.


“뭣.”


그런 위고를 지나친다. 어차피 사슬에 걸려있는 상태일 뿐.


브릿지를 향해 투창하는 것처럼 전력 투사. 쏘아지는 베테랑 형사는 그것 자체로 미사일이 되어 착탄지점을 초토화한다.


“으아아악!”


브릿지에 있던 큐컴버 외 승무원의 비명이 들려오고, 함선은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한다.

그 불꽃을 뒤로한 채 푸른 눈이 돌아본다.



“⋯⋯이제 당신들이 도망칠 수단은 사라졌습니다. 손실에 대한 배상 이야기를 해보죠.”


“⋯⋯지랄하고 있네. 이 미친 기계가.”


“여기에 올 때 절 태워준 밀수선 휴먼들이 말하더군요. 이 이면세계는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위고가 들어올린 대인용 파일 벙커를 걷어찬다. 그런 뒤에 들어 올리는 왼손. 안면을 강하게 타격한다. 


“당신들이 들고 있던 그 카메라는 어디서 얻은 거죠?”


“윽!”



한 번 더. 한 번 더. 



“윌버라는 자를 찾고 있습니다. 아는 걸 모두 말씀하십쇼.”



“으악!”



내려친다. 무자비하게 내려친다. 마치 고기를 두들겨 연육작용을 하는 것처럼 수도 없이 내려친다. 로치의 머리를 감싼 헬멧이 뭉개지고, 그 안의 연약한 속살. 전부가 피곤죽이 될 때까지 주먹을 휘두른다.



“모, 몰라! 모른다고! 그냥, 간간히 실험이 필요할 때 쓰라고 건네 준, 으악!”

“그만 때려, 이 씨발!”


멈추지 않는다. 이것은 그녀가 처음 말했던 것처럼. 그냥 화풀이에 지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로치가 저항할 수 있는 수단도 없다. 팔을 제외한 사지는 위고에 묶여있다. 이미 거대한 짐덩어리가 된 위고에.


팔을 들어 올려 호라이즌의 주먹을 막아내려고 하지만, 소용 없다. 그 가드를 아래에서 걷어찬 후에 다시 주먹질이 이어진다.


“으악, 악! 그만!”


임계점까지 91% 종료를 제안합니다. 속히 발열제어 중점모드로 전환할 것 을 제안합니다.


“그만, 악, 억! 쿠억!”



임계점까지 93%


“억, 악! 으으윽! 흐흐흐으으윽!”



“그만! 하라잖아 씨발년아!!!”






등 뒤에 날아오는 욕설과 런처. 반응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호라이즌. 임계점에 다다른 것이 신경제어 시스템의 저속화를 불러일으켰다. 흔한 스로틀링. 하지만 이미 함선은 가라앉고 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어차피 저들은 도망칠 수 없다. 그런 호라이즌을 비웃기라도 하듯 벌써 위고에서 벗어난 로치와 큐컴버 다른 함선으로 건너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미 먹을 것을 다 먹은 껍데기같은 차원함선. 노획한 함선이지만, 개중 몇 개는 기능이 살아있다는 가능성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뒤늦게 후회해봐야 무의미. 호라이즌은 그렇다면 그 함선째로 걷어차기 위해 자세를 잡는다.



“윽⋯⋯!”



임계점 돌파. 강제 휴식모드로 전환 합니다.

하늘을 올려다 본다. 벌써 다이브로 차원이동을 개시하는 함선. 이렇게 되면 쫓을 수가 없다.

겨우 찾은 단서다. 이걸⋯⋯.



그리고 그 위로, 엇갈리듯 차원균열이 생겨나며 다이브 해오는 함선이 하나 더.



“구조 신호를 받았습니다. 여기는 블루 나이츠 시프트. SOS 신호를 받고 왔습니다.”


호라이즌은 하, 하고 흑연의 세계를 밝게 비추는 함선을 보며 그늘에 젖는다.

그 함선이 만들어낸 그늘에 젖는다.










.

.

.






“신분은 이걸로 확인했습니다. 호라이즌 파이낸스의 대표라구요?”


“네, 수금활동을 하러 왔다가, 선원들에게 버려졌습니다.”


“그래서 이런 금지구역까지. 알겠습니다. 저 부서진 함선들은요?”


“⋯⋯.”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야, 이 곳은 그 사건 때 다수의 차원함선들이 구조하러 왔다 LOST 된 곳이며, 관리국 다이브 금지 구역이니까요. 하지만, 구조 신호를 받고 달려왔습니다.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



“그나저나, 여기에 있던 그림자 침식체가 토벌 되어서 망정이네요.”


“⋯⋯토벌 되었다구요?”


“네, 모르셨습니까? 그 3종 침식체는 무려 차원이동이 가능한 개체라서”


그건 알고 있다. 그래서 찾지 못 했다.


“코핀 컴퍼니라는 곳에서 정식으로 토벌했다는 관리국 공문이 나왔⋯”



“⋯⋯.”



토벌.



“저기 괜찮으세요? 가이노이드라도 부상이 심하면 우선 정비라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휴먼. 현실 부상을 부탁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늘을 훑었다. 그녀들의 흔적을. 한차례 헤집고 나서야 겨우 알았다.

이제, 없음음.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헤더. 당신의 말대로입니다.

차라리, 욕이라도 시원하게 했다면.



아, 하지만. 괜찮습니다.

아직 할 일이 남았습니다.

손해는 반드시 보상 받아야만 합니다.

빌려줬던 돈은 반드시 받아낼 것 입니다.

이자는 톡톡히 받아내도록 하겠습니다.



















/






비가 내리고 있다.

추적추적, 이런 날에는 얼른 들어가서 쉬고 싶어진다. 제습기를 튼 후에 샤워를 끝내고, 바디 로션을 바른다. 그런 후에 긴 머리칼을 시간을 들여 말리고서,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술 한 잔을 기울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면, 살짝 달아오른 알몸이 이불에 잘 감겨들테니. 어제 세탁을 맡긴 침구. 분명히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하이힐이 똑하고, 혼자만의 소리를 내야하는데 미묘한 기척이 느껴진 탓일까.

여성은 고개를 돌린다.


“코핀 컴퍼니의 이수연 부사장 맞습니까?”


돌린 곳에는 푸른 눈. 깊고, 어둡고, 바라보면 빠져들 것 같지만 색조는 밝은. 해왕성같은 눈이 있다.

이수연이 입술이 살짝 열린다. 어떤 존재인지 그녀의 경험이 일러주고 있다. 인간이 아니다. 침식체도 아니다.


“네. 맞습니다만, 무슨 일이시죠?”


우산을 쓰고 있는 가이노이드라니. 


“저는 호라이즌 파이낸스의 대표. 호라이즌입니다.”


“네. 아아, 아아⋯그렇군요.”



명함을 주고 받을 만한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둘은 골목에서 2m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사이를 채우는 것은 쏟아지는 비. 스커트를 적시고, 신발을 젖게하는 비.

이수연은 호라이즌의 소속과 이름을 듣고서 그녀가 찾아온 이유를 찾아낸다.



“안타깝게 되었습니다만, 저희를 공격해 온 것도 사실이기에⋯.”


“아뇨. 그 점은 괜찮습니다.”


“그러면, 무슨 일로?”


호라이즌이 우산을 들어 올린다. 그런 뒤에 몸을 살짝 돌린다.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윌버라는 자를 찾고 있습니다.”





“윌버란 인간의 행방을 알게 되면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이면세계에 돌아온 후 행방이 묘연한 상태입니다.”




그렇게 말을 남기고서, 멀어진다. 이수연도 꺼림측한 기분에 ‘네, 그러죠’하고 가던 길을 재촉한다.

그리고 그 예측은 적중했다. 어제 산 스타킹이 젖은 탓일까, 벌써 튿어져 있다. 그리고 이제보니 우산이 망가져있다. 언제 찣어진 것인지, 하아. 하고 한숨과 함께 골목의 그늘. 쓰레기통 위로 우산을 던진다. 어차피 차까지 그렇게 멀지 않으니까. 조금 모양새가 빠지지만 달려서 갈까.

그늘의 쓰레기통에 꽃힌 우산살이 덜렁, 하고 어린아이가 메롱이라도 하듯 혀를 내밀고 있다.


























원제

Scan the shade

그늘을 훑는다.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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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후일담과 에필로그로 찾아올게욧.

일단 이야기 자체는 여기서 끝입니다.


좆노잼 똥글 어그로 끌어서 죄송한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