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1933년 도입된 자국의 소총 개런드의 여러 구조상 한계점을 깨닫고 일찍이 경량 소총 도입사업이라는 프로젝트 아래 많은 총기들을 시험해보았지만 외낙 미국 육군성에서 만족할수 있는 총기가 나오지 않아 일본이 항복한후 12년동안이나 프로젝트가 지속되어져 왔다.

왜 이 지랄을 했는지는 정확한 문서 기록이나 관련 증거들이 없어 그냥 육군성 높으신 양반들의 꼬장으로 이해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일단 개런드의 비화부터 자세히 들어가보아야하는데

미국은 1차 대전을 경험한 1919년부 자동장전 소총 즉 반자동 소총이 앞으로 전장에 대세가 될거라고 판단 1920년부터 위원회를 조직하여 반자동 소총에 효용성에대 연구하고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A self-loading shoulder rifle capable of a high rate of fire for short periods of time, together with the increased accuracy due to the fact that aim will not be disturbed by hand manipulation of the bolt, would add greatly to the firepower of front line troops, and probably meet all requirements as to firepower now supposed to be solved by the inclusion of a Browning automatic rifle in each squad of infantry.

(전장 병력의 화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는 자동 장전 어깨형 소총은 단기간 동안 높은 사격 속도를 유지할 수 있으며, 볼트의 손 조작으로 인한 조준의 불안정성이 없어진 증가된 정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브라우 자동 소총이 보병 부대의 각 그룹에 포함되어 있는 현재의 화력 요구 사항을 아마도 충족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미 병기부는 "아따 시발 반자동 소총이면 스프링플드고 브라우닝이고 그 병신같은 소총 안써도 된당께요" 판단하였고 그렇게 우리 개런드가 1933년에 선정되게 된것이다(그중에 많은 경쟁자가 있었지만 그만 다음에 설명하겠다)

(당시 육군의 분대화기 구성)

그렇게 미군은 각 분대당 개런드와 브라우닝 경기관총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였다.

2차 세계대전 기간동안 여러 전투를 격으면서 미군은 "이 씨발 개런드랑 브라우닝 그리고 스프링필드도 간간히 쓰는데 보급관 생각안함 씨발년들아?"

라는 일침으로인해 다시한번 모든걸 하나의 확일화된 화기로 무장할 필요성을 느끼었고....

그대로 1942년 상반기까지 모든총을 하나의 확일화된 화기로 대체하는 프로젝트로 삽질을 하고 있었다.

결국 미국 국방성은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마! 개런드 자동사격으로 개조해가 브라우닝도 대체하고 카빈도 대체하고 좃같은 톰슨도 대체하믄 니덜도 만족 안하긋나!"라는 생각으로 개런드의 자동화를 계획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개런드를 자동화 하는데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고 미국 국방성은

스프링필드 조병창(개런드의 개발자가 직접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회사였다)

레밍턴 암즈

가 미국한테 의로받아 개런드의 자동화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번번히 미국한테 자사 무기 퇴짜맞고 관심이 무지하게 필요했던 윈체스터는 이번에야말로 관심을 받기위해 의뢰는 안받았지만 자체적으로 개발에 참여하게 되면서

총 3개의 프로젝트 팀이 창설 여러 개런드의 전자동총기를 내놓게 된다.


스프링필드 계열

1942년 5월까지 개런드의 개발자 존 개런드는 "아따 씨방 내가 만든건데 개조는 껌이랑께요"를 외치며 개조에 착수

공식적인 명칭은 없지만 일단 개런드 베이스에 30구경에 bar탄창을 사용하고 총 18발 사격이 가능한 급조 시제품을 내놓게 된다

(참고로 이총의 사진은 존재하지않아 넣지 못하였다)

하지만 탄약 자체가 너무 느리게 올라와서 잼이 자주 걸리는 결함이 발견되었고 3가지 해결책이 제안 되었는데

1.총기 자체에 설계를 변경 하던지

2. 탄약을 바꾸던지

3. 걍 탄창을 좀 수정 하던지

병기국은 "아니 씨발 개런드 개조해서 만드는 사업인데 구조를 변경하면 개런드가 아니지와 아니 씨발 30구경탄이 창고에 씨발 산처럼 쌓여있는데 이거 다 몬쓴다는 얘기잔아 씨발아 돈 생각안함?" 이라면서 3번째 선택지를 선택,,,,, 하지만 알수없는 이유로 1944년까지 프로젝트가 무기한 연기된다

일단 1944년까지 연기된 이유중하나는 미 육군의 무리한 요구로 볼수 있는데 다음과 같았다

개런드 보다 더 짧고 가겹게 그리고 반자동,자동 선택 모드로 할수 있고 원래 가용하는 개런드 탄에 있는것도 써먹어야지? bar 탄창 쓰도록해 쉽게쉽게 알지? 그리고 개런드랑 부품 호완율 85%는 되야함

이라는 참으로 좃같은 요구를 스프링필드 조병창에 요구하였고 이런 개좃같은 요구사항을 수정하느라 1944년 까지 지속된거 아니냐란 의견이 있다.

아무튼 저무튼 여러 요구사항을 수정하고 총기를 개선할 결과 첫번째 프로토타입인 우리가 입에 마르고 다르고 개발진에게 달라고 앙망하는 T20 자동소총이 개발되었다

일단 어떻게든 수정하면서 20발들이 bar탄창을 사용할수있고 반자동 전자동 선택 모드도 탑재 파라솔 모양의 총구 브레이크도 장착하면서 반동을 잡도록 하였다 그리고 열을 잘 발산할수 있도록 총열에도 구멍을 몇개 파두었다.

1944년 10월 스프링필드 조병창에서 이총은 자체적인 테스트를 거쳤으나

총의 오픈볼트 기능에서 여러 문제점이 발생 말 그대로 개판이였고 스프링필드는 눈물을 머금고 다시한번 수정을 거치게 된다

그래도 아직은 국방성이 이총에 대해 "아따 그래도 만들어졌으니 된거 아니긋소 차차 개선하면 되지" 라면서 호의적인 반응과 함께 존 개런드는 밤을 지세워가며 T20 개량에 열중하였고 전에 있던 개방형 패쇄형 볼트 기능을 삭제 걍 패쇄형 볼트로 변경하였고 리시버와 트리버 부분을 개선하고

양각대를 설치 하는등 개선 사항이 있었는데 주목해 볼만한 개선 사항으로는 M81,M82 망원 조준경과 총류탄 조군경,총검 밑 총류탄 장착이 가능하도록 총기를 개조한 것이다.

(스프링 필드에 장착한 m81스코프)

마지막으론 계속 말썽을 부리는 bar 탄창을 시원하게 삭제 때렸다는 부분이 있겠다

t20e1

1945년 1월 말, T20E1은 애버딘에서 테스트를 시작했고 큰 호응과 함께 다른 개선 사항들도 지적 되었다

1.이거 총열 문제가 조금 있는듯 쓰기 불편행

2.양각대 길이좀 늘려줘

3.이거 분해좀 쉽도록 가스실린더 수정좀 해줘

4. 이거 핸드가드 좀 수정해주면 안됨? 좀 불안한디?

이란 사항이 지적 되었고 어쨋든 시험 자체는 성공적이었고 추가 테스트를 위해 t20e1 모델링 자체는 9개로 추가 생산되었다

그렇게 저 수정사항도 반영하고 자체적으로 다른 개선점도 넣기 위해 스프링필드 조병창은 최종적으로 t20e2를 개발하여 여기서 끝내겠다는 다짐과 함께 다시 한번 개발에 들어간다

(t20e2의 개선점이었던 반동 감소를 해결하기 위해 제안 되었던 여러 총구 브레이크 모형)

이후 위 개선점 말고 추가적인 개선점은

1. 미육군의 똥꼬집으로 결국 다시 bar탄창 탑재

2.탄창 사용을 위한 총기 구조 변경

3.작동 슬라이드의 위치수정

이라는 걍 첨부터 하면 될것을 마지막에 해야되었던 미육군의 똥꼬집이라고 할수 있다

이러한 변경 사항등으로 1945년 4월 말-5월초 사이에 100정의 생산허가가 떨어졌고 1945년 5월 17일에는 T20e2를 제식으로하여 몰락작전때 사용할 총기로 발탁 총 100,000대 양산 계획까진 잡았지만 2머전이 끝나면서 흐지부지 되었고 예산 문제와 걍 개런드 잘쓰는거 아깝게 돈써서 뽑아야함? 등의 문제로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T20e2

t20e2용 총류탄 발사기


그래도 마냥 뻘짓은 아닌게 이총의 이후 미군 차기 제식소총 M14의 중간 발판이 된총이였고 실제로 이총에 사용한 기술이 후일 M14에 여러 반영되었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윈체스터와 레밍턴의 개조형은 2부에서 씀 긴글 읽어져서 고맙ㅅㅅㅅㅅ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