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 네모 자서전 

굳게 믿는 힘(思い込む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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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15회의 해외 대회, 한편 담당 게임은 서비스 종료

프로게이머로서 팀 리퀴드에 가입하게 되는 한편, 스퀘어 에닉스에서는 '서번트 오브 스론즈'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대회 운영이나 인터넷 방송용 프로그램 제작, 배틀 밸런스 조정 플래닝 등, 게임 내외와 관계없이 다양한 업무를 담당했죠.

이전 직장에서는 클라이언트가 업무 상대였던 데 비해 스퀘어 에닉스는 불특정한 다수의 게임 유저가 상대여서 사업 영역이 크게 차이 나긴 했지만, 업무상으로는 의외로 이전 직장의 경험을 응용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스탭 간에 공유하는 자료의 작성 같은 것들 말이죠.

당시 제가 담당한 업무는 기존 유저의 이탈 방지책을 고안하는 것. 액티브 유저가 이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이탈할 것 같은 유저를 붙잡아 두기 위해서는 어떤 매력적인 제안이 필요할까 등을 생각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게임을 막 시작한 유저가 게임의 매력을 느끼기 전에 그만두지 않도록, 초심자에게 게임 강의나 팁을 알려주는 방송을 제작, 방송하는 것이었습니다. 방송 대상은 대회에 나올 정도의 코어 유저층이 아닌 라이트 유저층. 따라서 알기 쉽게, 친근하게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했죠.

그래서 TOPANGA를 통해 격투 게임 프로게이머인 마고 선수에게 도움을 받아, 게임 방송도 하고 있던 탤런트 미우라 유나(三浦優菜)씨와 세 명이 함께 '마고×네모! 서버스론 아카데미(マゴ×ネモ!サヴァスロアカデミー)'라는 프로그램의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엔 프로게이머로서 활동 기반이 안정되고, 스퀘어 에닉스에서의 일에도 익숙해진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전에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던 실업팀 형식의 업무 방식과는 다르지만, 프로게이머로서 회사에 소속된 상태에서도 업무도 보는, 겸업 게이머 생활이 나름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무척이나 충실한 나날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즈음부터 프로게이머와 회사 업무, 양자의 밸런스를 조절하기 위한 고생도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주된 이유는 팀 리퀴드에게서 받는 급여와 별개로 활동비용이 나오게 되었기 때문에, 해외 원정의 기회가 비약적으로 늘게 된 것이었죠.

스퀘어 에닉스에 입사한 당초에, 제가 계획하고 있던 해외대회 출전은 연간 6회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2018년 3월에 팀 리퀴드와 계약한 이후 1년간 실제로 출전한 대회 수는 15회. 기존에 상정했던 것보다 1.5배나 되는 횟수였죠. 그만큼 해외에 나가는 기회가 늘어나게 된 겁니다. '서번트 오브 스론즈' 프로그램 제작과 방송, 그리고 원래 담당하던 업무는 충실히 완수하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본래 하고 싶었던 다양한 기획에는 제대로 손을 댈 수 없어 답답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회사에서의 제 입장을 다시금 돌아봐야 할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서번트 오브 스론즈'의 서비스 종료가 결정되고 만 겁니다. 저도 운영 팀 소속이었기 때문에 열성 유저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한편으로 기세가 꺾이고 있다는 분위기 역시 느끼고 있었습니다. 멤버 전원이 다양한 부흥책을 내놓고 실행해 봤지만, 좀처럼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죠.

저는 게임 자체에 대한 호감을 계기로 이 게임의 운영에 참가했으니 "서비스를 종료하긴 하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마무리 짓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작업에 임했습니다. 서비스 종료가 결정된 것은 무척이나 슬픈 일이었지만, 게임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팀 전원이 한마음이 되어 일에 열중했던 건 즐거운 기억이었습니다. 그때까지의 회사원 인생에서 담당하던 업무와는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이었죠.


사내에서 자신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서번트 오브 스론즈'가 서비스를 종료하고, 사원으로서 자신의 입장을 다시금 돌아보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다음에 해야만 할 일'은 무엇인가. 상사의 제안을 받고 참여하게 된 것이 QA(Quality Assurance : 품질 관리) 업무였습니다.

앞에서도 적었듯이 제 부서는 사내에서도 유독 특이해서, 아케이드 게임부터 콘솔 게임, 게다가 모바일 게임 등 다양한 제품을 관리하고 있었죠. 게임 개발은 작업을 몇 개의 파트로 나누어 분업해서 진행합니다. 품질을 관리하기 위해 각 파트, 각 공정마다 디버그를 실행하는데, 그 내용이나 공정에 따라 필요한 인원은 크게 변동하게 되죠. 제가 담당했던 것은 부서 내 제품의 개발 스케줄이나 태스크를 전체적으로 관리하고, 인원 배치를 최적화하여 코스트를 억제하고 스무스한 작업이 가능하게 하는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같은 업무였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프로게이머로서 제가 가진 강점을 발휘할 수 없었기에, 원래 업무와 병행하여 사내 탤런트 같은 활동도 진행했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는 스퀘어 에닉스의 자회사가 된 타이토의 이벤트 서포트를 맡았죠. 타이토는 2015년부터 '투신제'라는 전국 규모의 게임 대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KOF' 시리즈나 '길티기어' 시리즈 부문에서 출전했던 투극의 후신 격인 대회죠. 개최년도에 따라 상세 내용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전국의 게임 센터에서 예선을 치르고, 결승 대회에서 최강의 플레이어를 판가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스퀘어 에닉스와 타이토에서는 제가 '스트리트 파이터' 대회에 출전하는 프로게이머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타이토 담당자에게 직접 "부디 협력 부탁드립니다"라는 요청을 받아 참가하게 되었죠. 그렇게 투신제 결승 대회에서 해설도 하고,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예선 현장에 나가 현지 리포터 활동도 했습니다.

스퀘어 에닉스에 입사한 날부터 늘 고민한 것은 회사에서의 제 가치였습니다. QA 업무는 물론 중요하고 이전 직장의 경험도 살릴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뿐이라면 사내의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수월할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저는 한 해에 15번이나 해외 대회에 나가 회사 일에만 전념할 수 없으니까요. 프로게이머라는 제 특징을 살리면서 회사에 어필할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계속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회사가 하나의 조직인 이상, 개인이 원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된 현실 속에서 "무언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라며 계속해서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죠.

'서번트 오브 스론즈'가 서비스 종료되자 제가 어필할 수 있는 가치를 찾아내기가  한층 더 어려워지고 말았습니다. '서번트 오브 스론즈'는 e스포츠 이벤트도 개최하는 등, '대전' 요소가 강한 게임이었습니다. 격투 게임과는 근본적인 사고방식이나 전략성, 시스템이 전혀 다르긴 하지만, 대전이라는 요소에서는 제 경험을 살릴 수 있어 보람이 있었죠.

그런데 바로 그 '서번트 오브 스론즈'가 없어지고 만 겁니다. 앞으로 스퀘어 에닉스에서 이것과 같은 대전 요소가 강한 게임이 나올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이 질문에 회의적이었습니다. '디시디아 파이널 판타지'라는 대전형 액션 게임이 있었지만, 이 역시 나중에 서비스가 종료되었으니 말이죠.1) 게다가 프로게이머로서의 활동은 호조고, 입사한 때보다도 훨씬 더 바빠지게 되었으니…. 회사원으로서의 제 책임과 프로게이머로서의 활동 사이에 적절한 길을 찾지 못하게 된 상태였죠.

그 방황은 다른 사람들 눈에도 띄었던 모양입니다. 신뢰하는 상사에게서 "프로게이머로서의 활동에 전념할지, 스퀘어 에닉스에 남을지…. 언젠가는 한 쪽을 선택해야 할 때가 올지도 몰라"라는 말까지 들었으니 말이죠.

1) 역주 : 2015년 가동된 아케이드 3v3 대전게임 '디시디아 파이널 판타지'. 2021년 4월에 아케이드 서비스 종료. 가정용인 NT는 아직 서버는 열려있으나 2020년 2월 이후 공식 지원 종료를 선언한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