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 선 그 아이를 발견하고, 그녀는 숨도 못 쉬게 놀랐다.


 사 년 전에 연락이 끊기고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믿은 얼굴이 거기 있었다.

 고등학생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꿈만 같은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 아이의 눈을 본 순간, 그녀는 기적 같은 꿈에서 억지로 깨어나야만 했다.


 저 눈은 그녀의 친구가 아니었다.

 친구의 딸이었다.

 

 “안녕하세요. 이모. 잠시만 대화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어? 어. 그래.”

 

 잠시나마 기적을 꾼 황홀함과 그것이 깨지자 느낀 아쉬움.

 그녀는 그런 감정과 함께 아이를 맞았다. 아이는 곧 그녀의 안내에 따라 거실 소파에 앉았다.


 그녀가 차를 내오는 사이 아이는 여기저기 주위를 살폈다.

 넓디넓은 거실의 곳곳에 고급이 아닌 것이 없었다.


 천장에 달린 정교하고 복잡한 샹들리에부터, 투명하고 화려한 무늬가 새겨진 이 탁자까지.


 여전히 돈 많은 집안이구나.


 아이의 무표정한 얼굴 아래에서, 잔잔한 바다가 속으론 들끓듯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얽혔다.

 

 “자.”

 

 그때 그녀가 쟁반에 찻잔과 주전자를 담아 가져왔다.

 얼그레이 티의 시트러스와 꽃이 섞인 은은한 향기가 공기 중에 퍼졌다.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네.”

 

 달그락. 그녀는 탁자에 쟁반을 올려놓고 아이 맞은편에 앉았다.

 

 “오랜만이구나. 요새 어머니는 어떠시니?”

 “돌아가셨어요. 장례도 다 끝났고요.”

 

 그녀가 차를 한 모금 하고서 의례적인 미소와 함께 물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아이의 폭탄 같은 답변에 무참히 깨져버리고 말았다.

 

 “뭐?”

 

 이, 일단 진정해….

 흥분하지 말아야….


 그러나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당혹감과 참담함이 합쳐져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아니, 아니, 아니, 도대체 왜? 왜 날 부르지 않고…?”

 “마지막까지 알리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래도…!”

 “실은, 죽은 후에도 그러라고 하셨죠.”

 

 그녀는 눈에서 터져 나오는 그리움과 후회와 슬픔을 손수건으로 슥슥 문질렀다.

 아이는 아무 말 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속에서 들끓는 자기혐오를 억눌렀다.

 

 “미안, 아줌마가 꼴불견이었지? 이렇게 늦게라도 알려줘서 고마워.”

 

 한참을 울던 그녀가 겨우 진정하고 아이에게 웃어 보였다.

 유난히 지쳐 보이는, 힘겨운 웃음이었다.

 

 “고마워하지 마세요.”

 “그게, 무슨 말이니?”

 “좋은 뜻으로 알려드린 게 아니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아이는 무언가를 단단히 각오한 기색이었다. 그녀의 몸이 뻣뻣이 굳었다.

 

 “전 협상을 하러 온 거에요. 앞으로 살려면 돈이 필요한데, 물려받은 게 하나도 없어서요. 사 년 전만 해도 이모께 돈을 많이 받아서 뭐라도 남을 줄 알았는데 말이죠.”

 “그건 내가 빌려준 거야. 친구니까 급할 때는 도와야지.”

 “이모만 도우시고, 어머니는 보답도 안 하시면서요?”

 

 사실, 아이의 어머니는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상태였다.

 물론 아이는 이 쓸데없는 정보를 굳이 꺼내서 대화의 흐름을 망칠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어머니께서 돈 빌릴 때 하신 말, 전부 변명이에요.”

 

 아이의 어머니는 말만 아버지인 그 쓰레기에게 돈을 상납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가 아이는 건드리지 않도록.

 

 “그 돈을 다 어디다 쓰셨는지, 병원 입원하신 후에는 한 푼도 안 남았더라고요.”

 

 아이는 일부러 사실을 피했다.

 그녀가 ‘쓰레기’에 대해 물으면 길고 복잡하고 미칠 것 같은 가정사를 털어놓든가, 그럴싸한 거짓말을 해야 했다.


 전자는 아이의 지금 정신 상태로는 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녀 앞에서 정신이 나간 모습을 보이길 원치 않는다면.

 그러니 후자를 택한 것이었다. 어차피 할 거짓말이라면 간단하게 하는 게 나았으니.

 

 “그때부터 전 생각했어요. 혼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이는 그녀의 시선을 피해 덜덜 떨리는 두 손을 맞잡았다가 폈다.

 이제 본론이었다. 아이는 이 도박 수가 먹힐지 아닐지 고민하느라 머리가 터질듯했다.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났어요. 우리 어머니를 사랑하시는 분을 이용하자고.”

 

 그녀는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나, 난 네 엄마를 친구로서만-”

 “이모 감정은 초등학생 때부터 알았어요. 저한텐 그나마 다행이죠. 전 내후년 대학까지 등록금 걱정 안 하고 싶거든요.”

 

 아이가 천천히 교복을 탈의하기 시작했다.

 토독토독. 재킷을 벗어 곁에 내려놓고, 블라우스의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풍만한 가슴과 우유 같은 피부색, 향기로운 바디 워시 냄새.


 그녀는 공기가 후끈해짐을 느꼈다. 아니, 어쩌면 그녀의 얼굴이.


 말려야 하는데…!


 한 줄기 이성의 외침. 하지만 쿵쾅대는 그녀의 심장 소리에 그 외침은 무참히 묻혀버리고 말았다.

 

 “싫으시면 말씀하세요. 옷 다시 입을게요.”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치마를 풀었다.


 새하얀 허벅지, 그 사이의 탐스러운 둔덕.


 그녀는 참지 못했다. 더는 아이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혼자서 위로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위로받고 싶었다. 추악한 방법일지라도.

 

 “…반말.”

 “네?”

 “존댓말 쓰지 마. 반말로 해줘.”

 “그래.”

 

 아이가 다가와 그녀의 위로 올라탔다. 그녀는 아이를 올려다봤다.

 수십 년 만에 얻은 사랑이 거기 있었다.

 

 “사랑한다고 말해줘.”

 “사랑해.”

 

 두 사람의 뒤틀린 관계가 막을 올린 날이었다.


---------------------------------------------------------------------------


https://arca.live/b/lily/89404210


이거 보고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