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셋을 벗어서 옆에 두었다. 

이제 전투를 할 일도 없을 것 같으니 필요 없겠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하늘씨의 목소리를 그대로 느끼고 싶었다.



"하아..."



너무 출혈이 심해서 그런 걸까, 의식이 멀다. 

머리가 멍하고, 별 생각이 안 드는 상황에 하늘씨가 눈 앞에 보이니 그냥 기분이 좋았다.


"하하..."


웃어보았다. 웃지 못할 건 뭐냐. 

나는 어쨌든 목적을 모두 이루고, 살아서 하늘씨를 구하기까지 했다. 

남은 이야기는 유서로 다 했으니, 하늘씨가 알아서 보겠지.


"와줘서 고마워요. 우진씨. 

그래도 앞으로 저를 혼자 두지 말아요."


하늘씨의 목소리가 사정 없이 떨리고 있었다. 

아랫 입술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눈물이 내 얼굴로 떨어졌다.


"마지막에 와서야 좀 가치 있는 전장에서 목표를 달성해서 다행이네요."


그나마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한 번 더 볼 수 있었다. 

그것 만으로도 다시 총을 잡은 이유와 의미가 있어.


"당신을 마지막으로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었어요."


목 놓아 엉엉 우는 하늘씨의 모습을 보며 웃어보았다. 

정말, 이거면 충분하지. 

우는 모습이라 좀 미안하지만.


"행복하게 해주려고 했는데, 울리기만 하네."


내가 참 못났구나. 

아직 사귀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많이 울게 만들었으니.


"난, 그냥 당신만 있으면 돼요."


하늘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내 마음을 바라봐 준 당신이 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해요."


내 몸을 끌어안은 하늘씨의 원피스가 빨갛게 물들어갔다. 

덜렁거리는 왼팔이 움직일 때 마다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것도 곧 마비되어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하늘씨, 저는 힘들어 하는 당신에게 힘이 되고 싶었어요. 

그 식물원에 피어 있는, 이름 모를 들꽃처럼."


이게 어떤 관계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늘씨와 정식으로 연인이 되었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고... 

서로 마음은 있는 것 같은데, 지금 상황이 총알 날아다니는 전쟁터 한복판이니 확실하지 않은 게 당연하겠지만.


"내가 당신의 마음에... 돌아보았을 때 웃을 수 있는, 작은 꽃으로 남기를 바랐어요."


이 관계와 내가 어떤 의미로 하늘씨의 마음에 남을지는, 하늘씨가 결정할 문제다. 

나는 그저, 우리가 쌓아올린 시간의 무게를 두고 부탁하는 것 뿐이다.


'부디 나를 좋게 기억해 주세요.'


라고. 

퇴적된 시간들이, 어떤 이름으로 단단하게 굳어지지 않고 그저 모이기만 한 우리의 시간이라도, 부디 기억 속에 좋은 시간으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그 위에 다른 시간과 관계들이 쌓아 올려지더라도, 언젠가는 풍화되어 잊혀지더라도.


"..은 ..하지마요. ... 우진씨?"


의식이 슬슬 흐려지는 것 같다. 

저 진통제 상표 기억해둬야지. 성능 좋은 걸. 

지금 상황까지 와도 통증이 아주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대충 무시하려면 무시할 수 있을 정도?


하늘씨가 나를 위해 이것 저것 생각해서 말하는 것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하늘씨의 작은 어깨를 조심스럽게 손으로 잡았다.


이건 내 욕심이 맞다. 

뺨을 맞을지도 모르지만...


"에잇."


아주 잠깐만 몸을 들어올려, 나를 내려다보는 그녀의 얼굴에 입술을 잠깐 가져다대었다. 

첫키스는 이전에 하늘씨가 비몽사몽간에 했으니, 이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 이 정도면 미련도 없지 않을까.


"뭐에요, 이게..."


하늘씨가 실망한 기색으로 투덜댔다. 

나는 배 근육을 썼더니 죽을 것 같은데 말야. 

흉부부터 시작해 온 몸이 두들겨 맞은 것 처럼 아파. 

아무리 진통제가 좋아도 총 맞았는데 이런 짓은 할 게 아니구나.


미안하다는 뜻으로 쓰게 웃고 있었더니, 갑자기 하늘씨가 나를 바닥에 눕혔다. 

그리고 이번에는 반대로 하늘씨의 얼굴이 내 쪽으로 가까워졌다.


"웁?"


입 안에 뭐가 들어왔어. 

그리고 혀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나갔어. 

뭐지. 뭐냐. 갑자기.


"이 정도는 해야죠."


멍해져서 입을 벌린 채로 하늘씨를 바라보았다. 

날아가던 의식이 한 순간 돌아올 정도네. 

성능 죽여주는구만.


"멀쩡해지면 더한 것도 많이 해줄테니까... 

미련 없이 갈 것 처럼 그러지 마요. 

안 멋있어."


"어... 네."


부끄러운지, 하늘씨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고개를 돌렸다. 


"나 같이 귀여운 여자친구 두고 가지 말란 말야..."


잠깐 그친 것 같던 울음이 다시 터졌다. 




이 정도 고난이나 역경이면 어떤가요?


의견 부탁드립니다.


본편 : https://posty.pe/sbd9823

속편 : https://posty.pe/s84990c


p.s : 근데 이거 해피엔딩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