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기획에 관련한 글

초고로 써놨지만 그냥 1화로 정해버린 글

머리말.

 이전 화엔 2화의 주제가 '이름 없는 공주' 였지만 전개상 이름에 관련한 내용이 3화에 나와서 바꿨어.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2. 아는거 많은 바보와 교활한 소녀

 

중간계로 이사가기 전날, 바알은 새 집에 가져갈 짐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세면도구는 있고, 목욕용품, 옷가지랑, 책, 필기도구.. 나머진 가서 생각나면 집사님 불러야지.”


그때, 마심이 드레스 룸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바알 나좀 봐봐.”

“왜요?”

“너 임마, 거기 가서 마법 함부로 쓰지 마라.”

200년 전, 바깥세계에선 극히 일부의 예외를 제외한 마법 사용이 제한되도록 협정을 맺었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 정도는 아는게 기본..”

“바보야 그 얘기가 아니야.”

바알은 무언가 더 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성 밖으로 나간적이 거의 없는지라 세상 물정 모르는 바알은 도저히 예상이 가지 않았다.


“네가 그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던건 우리 입김이 있어서야. 너 혼자로는 지식 훔쳐먹으려고 들어온 오랑캐에 불과하다고.”

“제가 현재 마계의 입지를 전부 책임지게 되는 거군요.”

 천계는 종교로라도 관계를 유지했었지, 마계는 전쟁 이후로 중간계에 아무런 교류가 발생하지 않았다. 심지어 마계는 5만년간 기록된 역사중에서 가장 거대한 침략활동을 벌인 국가다. 지금  바알이 중간계에 들어온 것 자체로도 대륙 각국 수뇌부는 경계할 것이 분명했다.


“조심해라.”

“마왕님은요?”

마심은 기껏 걱정해서 와줬는데 마왕 얘기나 하고 자빠지니 되려 역정을 냈다.

“몰라! 그 괴짜가 뭔 생각을 하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생전 안해보던 업무 보느라 바쁘댄다!”

삐진 마심은 실컷 짜증을 내며 방에서 나가기 직전에 멈춰서더니,

“..데려다 주랴?”

“네.”

마심은 정이 많은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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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릴 공국, 마법과 기계가 어우러진 마법공학으로 빛나는 문명을 이뤄낸 중립국.


무공해 열차, 양력이 필요없는 비행체, 밸브만 돌리면 원하는 크기의 불이 나오는 조리기구는 물론, 사람이 마나를 운용하는 방식을 모방한 메타기관이 있다면 못할 게 없었다.

그 기술의 중심엔 페릴의 수도인 머스터에 위치한 마법인재 양성을 위한 국립국제학교, 모노리스가 있었다. 


모노리스는 수도 변방의 작은 산 하나를 독차지 하는 면적 70.32제곱킬로미터의 넓은 부지를 갖고 있었다. 산 정상에 지어진 성처럼 생긴 구관, 구관을 동그랗게 둘러싼 모던스러운 디자인의 신관이 돋보이는 학교였다.


“이건 볼 때마다 짜증난다니까.”

 모노리스가 자랑하는 시설중 제일은 다름아닌 원격보도망. 보도망에 가입한 언론사의 모든 기사를 교내 공원의 거대한 벽보에 빛으로 띄워준다. 얼마 전 가정용으로도 개량된 단말기가 출시되었다. 어디서든 전국의 소식을 접할 수 있다는 장점만으로도 인기는 하늘을 뚫었다.


“하나같이 믿을만한 글이 없어.”

 한 소녀가 이른 아침 교내 공원 벤치에 앉아 기사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녀는 딱히 존재감이 있지는 않지만, 눈에 띄는게 싫어 인파속에 녹아들어있었다.

숨는게 능숙했다.


 “쟤 누구야? 처음보는 얼굴이네?”

 

 “신입생같은데, 양 수인인가?”


 “아니, 얼굴은 사람인데?”


“엄청 예쁘게 생겼다. 이 주변에 저런 귀족이 있었나?”


 주변에서 들려오는 한 학생에 대한 이야기에 소녀는 귀가 쫑긋거렸다. 뭐든 듣고 기억해놓는 특이한 습관 때문이었다.

 

그 학생은 너무 많은 사람에게 주목받자 긴장되어 속이 뒤집어질 듯 했다.

‘뭐야..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아님 마족이라서 싫어하는건가?’


바알이었다.


 마심을 따라 페릴 입국심사를 마치고 새 집에서 짐 정리를 하고 나와봤더니 어딜 가든 눈길이 따랐다. 마심이 당부한 대로 입학식이란걸 보러 왔지만 길을 잃고 말았다.


바알은 길치였다.


“얘! 너 어디서 왔니?”

“어디 가문 영애야? 피부관리는 어디서 했어?”

“나랑 커피라도 마시러 갈래?”


“영애라뇨, 저 남자에요.. 어.. 마계에서 왔고.. 어.. 또,,”

몇가지 질문에 대답하자 학생들은 놀라 더욱 모여들었다.

수많은 학생에게 질문세례를 받는 바알을 뒤로, 줄곧 엿듣던 소녀가 주변을 지나갔다.

어릴 적부터 감이 좋았던 바알은 그녀에게 위화감을 느꼈다.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게 분명했지만, 우선 이 어지러운 곳에서 빠져나가야만 했다.


“으아! 저 급한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커다란 대강당엔 123여 명의 신입생들과 이들을 환영하기 위해 모인 전교생이 오와 열을 맞춰 앉아있었다. 

아까 봤던 그 소녀까지.


기대와 설렘, 두려움이 하나되어 담긴 목소리로 웅성거리는 사이, 단상에 학생 몇명과 많은 어른들이 줄지어 올라왔다.


“이제부터 국립국제학교 모노리스의 입학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신입생들은 모두 주목해주십시오.”

소설로만 읽던 학교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과거를 알아본다는 목적은 잊지 않았지만, 내심 바깥세상을 즐길 생각도 하고 있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한껏 부푼 기대를 안고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행동했다.


“집에 가고싶다…”

 그로부터 30분이 지났을까, 바알은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자신과 상관없는 국가를 부르게 하고, 늙은이들의 연설은 전부 똑같은 내용이 반복되었다. 김이 새버린 바알은 다른 곳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얘 루시펠! 학생회장 연설중인데 어딜 간다는거니?!”

 옆에 있던 교직원 한 명의 목소리에 바알이 돌아보자 그때를 노렸다는 듯이 그 소녀가 갑자기 자리를 벗어났다. 건물 밖을 향하던 그녀는 바알에게 몰래 눈빛을 보냈다.


‘이름이 루시펠인가? 마침 심심하던 차인데, 따라가 봐야지!’

선천적인 호기심이 몸을 지배한듯 저절로 몸이 움직였다. 

“제가 데려올게요!”


“야! 루시펠이라 했나? 거기 서봐!”

 무언가 인위적인 흐름, 자신이 끌려다니는 듯한 상황에 줄곧 위화감을 느끼던 바알은 그녀를 따라가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저 루시펠이란 소녀가 위화감의 원인인 것이 틀림 없었다.


“따라와봐! 데려가고 싶은 곳이 있어!”

 태양빛 때문인지 그녀의 얼굴이 빛에 가렸다. 수상한 미소만 희미하게 보이는 얼굴이 신비한 느낌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오늘은 구름이 꽤 낀 날이었다.


‘이럴리가 없어, 전부 설계일거야. 어디로 향하는거지? 하필 나? 목적이 뭘까?’

 바알이 그녀를 힘겹게 따라잡았다. 루시펠은 바알의 손을 덥석 잡고 그를 이끌었다.


루시펠의 갑작스런 손짓에 바알은 놀랐다.

“어? 어..?”


자신의 손을 잡고 인도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바알은 신비함을 넘어 단지 그녀를 따라가고 싶어졌다.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생전 처음 느끼는 감정에 사고가 멈출 것 같았다.

 

“저기, 우리 어디가?”

“곧 알게 될거야!”


루시펠은 바알을 높은 곳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모두가 입학식에 한눈이 팔린 틈을 타 출입이 금지된 모노리스 구관 꼭대기로 향했다.

 결국 제일 높은 전망대에 도착한 바알은 계속 달린 탓에 지친 목소리로 루시펠을 불렀다.


“여긴 왜 온거야?”


루시펠은 대답하지 않았다. 전망대 끝에 도달하자 마자 바알의 손을 놓더니 그대로 벽돌난간을 박차고 떨어졌다. 


“야! 뭐하는..!”

 루시펠은 해맑게 웃고 있었다. 뭔진 몰라도 이 또한 설계의 일부였다. 하지만 160미터에 달하는 높이에서 떨어진다면 분명 끔찍하게 죽고 말것이다. 


바알은 그녀를 구할 수 있었다. 순간 마심의 당부가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 정해진 곳에서만 쓰라고 했다? 마법을 쓴게 들켰다간 어떻게 될지 나도 몰라!

스쳐지나갔을 뿐이었다.


“알게 뭐야! 구하는 것 부터가 먼저지!”

바알은 특기인 바람 마법을 캐스팅했다. 회오리를 만들어 천천히 착지하게 만들 셈이었다.


“자.. 공기중의 마나를 모으고.. ”

바알 주변에 바람이 불더니 마나로 이루어진 빛이 손바닥 끝으로 희미하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자연의 마나와 마족의 체내에서 솟아나는 마기(魔氣)가 섞여 바알에게 익숙한 형태로 조합되어 손바닥에 응축됐다.

“방출한다!”


마력 방출의 반동으로 바알의 정면을 향해 강풍이 불기 시작했고, 낙하하는 루시펠의 밑에서부터 부드럽지만 위력적인 회오리바람이 루시펠을 받쳐주기 시작했다.


다 예상했다는 듯이 평온한 미소를 짓는 루시펠이 말했다.

“순진하긴.”


루시펠과 함께 회오리를 타고 착지한 바알이 소리쳤다.

“미쳤어?! 순진하고 자시고 그냥 죽게 놔두겠냐? 내가 악마야?!”

“아니야?”


무슨 얼토당토 않는 소리를 지껄이냐는듯 헛웃음이 나온 바알은 기가 찬 나머지 손을 휘저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허! 당연히 아니지! 마족은 예전에 고대인들이 멋대로 지은 이름이고 우린 그냥 서로 외계인..”

“어쨌든, 넌 협정을 어겼네?”


“ㅁ.. 뭐?”


“몰라? 정확히 200년 전에 자신의 세계가 아닌 곳에선 마법 못쓰도록 모두가 서약했잖아.”

바알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러다 반박할 거리가 생긴 바알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이건.. 사람을 구했으니 서약문에 기록된 대로 예외중 하나가 아닐까?”


“네가 언제 사람을 구했는데?”


어이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해가 되었다. 목격자는 둘 뿐인 사건에서 마법을 쓴 사람만 손해였다. 

“내가 일러바치기 만 하면 넌 어떻게 될까?”

“아 그건...”


 제대로 당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떨어져도 충격을 최소화하도록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 여자는 신비는 무슨, 순 사기꾼이었다. 바알은 성에서 책밖에 몰랐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쓴적이 없다고 우겨도 조사하면 다 나오니 허튼생각 하지 않는게 좋을거야.”


바알은 어떻게든 입학 첫날부터 범죄자로 찍힐 참사는 피하기 위해서 머리를 굴렸다.

“그냥 이런 일을 저지른 건 아닐테고, 원하는게 뭐야?”


“후후..”

 

바알은 묻는 말에 웃음으로 화답한 루시펠이 더욱 얄미웠다.

“웃지만 말고 빨리 말해! 원하는게 뭐냐고!”


“호호, 내일 첫 강의 끝나고 말해줄게. 입학식 끝났겠네, 들어가서 쉬어.”

모노리스는 입학식이 끝나고 나서는 온종일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몇시간동안 질문만 듣게 해주마.”


선전포고를 하듯이 언질을 한 바알은 그대로 뒤를 돌아 발걸음을 옮겼다.

“근데, 네 이름이 뭐야? 내일 내 이름도 제대로 알려줄게.”


“바알 베리트. 마계의 왕자다.”

딱히 스스로를 자랑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세게 나가야 했다.


“고마워. 근데, 돌아가는 길은 아니?”


바알은 소름이 돋았다. 자신조차 까먹고 있던 길치속성을 알아채다니. 잘못걸려도 정도가 있지, 최악의 혜안(慧眼)을 만나버렸다.


“...좀 도와줄래?”


바알은 순진한 남자였다.


       3. 공평한 계약

계속.



맺음말

 이전 글에서 계속 고민하다 그냥 무턱대고 진행하기로 했어. 쓰다 보면 괜찮아지겠지 뭐. 주인공 두 명의 만남은 최악이었지만 서로를 이용하고 사건을 해결하면서 자신에겐 이 사람이 가장 필요하단걸 알게 되는 그런 내용이야. 데우스 엑스 마키나격의 인물이 마왕, 마심 이렇게 두 명 있는데, 어떻게 하면 개연성 있게 묶어놓을까 고민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