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에 찍힌 사람은 무척이나 의외였다.


“이시현 씨입니다. 박사님”


“그러네, 동선과 시간 순서에 따라 비춰줘”


영상은 병실 앞에서 시작해서 샤워실 앞 그리고 마지막으로 클린룸 내부 순으로 진행되었다.


강화유리에 주먹질하던 시현이 복도에서 가져온 소화기를 들었다 내려놓는 모습까지, 화면으론 그의 표정이 보이진 않았지만…어떨지 알 것 같았다.


“…거기서 유리를 내리쳤으면 좀 더 남자 다웠을거야”


“소화기 정도로 깨질 강도가 아닙니다. 만약 깨졌을 경우엔 클린룸과 EFA-07이 오염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알고 있어, 이시현은 아마 후자 쪽 이유에 집중했겠지, 애초에 깨지지 않을 거란 생각했다면 바보처럼 주먹질부터 하진 않았을 거야”


이건 내 개인적인 바람이기도 했지만…제 몸의 안위보다 내 딸을 더 소중히 여겨준 거라고 믿고 싶었다. 내 딸이 선택한 남자니까 말이다.


“하아…이시현 당신은 내 딸에게 어떤 이름을 지어줄까?”


“이름…EFA-07이 조금 부러워질 것 같습니다”


“네게도 이름을 지어줄 사람이 생기면 좋겠구나…내가 너희들에게 이름조차 지어주질 못하니까”


자신이 만든 안드로이드와 사랑에 빠진 과학자, 그를 사랑한 동료가 안드로이드를 파괴하려 하자 살인까지 일으킨 현대 피그말리온의 비극이라 불리는 사건, 이후로 법은 안드로이드 연구자들이 그들의 창조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었다.


“정말 중요한 걸 놓치고 이상한 것에 집착하는 걸 보면 인간이란 과거부터 지금까지 수백 수천년이 흘러도 항상 똑같다니까? 그렇지?”


“…”


“아 참 빨리 EFA-07에게 돌아가자”



*****


“식사는 마음에 드셨나요?”


“아주요, 그럼 이제 김리아 박사님을 언제 뵐 수 있는지 알려주시겠어요?”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리고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지금 바꾸기도 이상하니까 그냥 이대로 할게요”


바깥에서 안드로이드들을 대하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 이곳의 안드로이드들은 왠지 약간 어려운 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녀에겐 이렇지 않았는데…이런 생각을 하던 중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EFA-03이 말을 꺼냈다.


“김리아 박사님은 보안 구역으로 가신 것 같습니다.”


“뭔가 큰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지만, 긴급사항은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 기다리시는 동안 연구소 견학을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혹시 안드로이드를 연구하는 클린룸 같은 곳도 볼 수 있나요?”


“이시현 님께 배정되어있는 보안등급으로는 열람이 불가합니다.”


잠시의 고민도 없이 나오는 안된다는 답변에 현장에 떨어져 있을 해킹툴이 생각났지만, 고개를 휘휘 저어 잊어버린 후 그녀를 따라 견학하기로 했다.


로비에서부터 설명을 들으며 이동하던 중 어제 그녀를 봤던 그 문이 보였다.


“EFA-03, 혹시 제 방에서 제 스마트 폰좀 가져다주실 수 있을까요? 다리가 너무 아파서, 여기서 잠깐 쉬고 있을게요”


“여기에만 계셔야 합니다”


아무런 의심 없이, 내 방으로 향하는 모습에 미안함이 들었지만,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그녀가 코너를 지나 사라지자마자 나는 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클린룸과 이 방을 가르는 유리 벽이 마법처럼 사라져있는 기적이 일어나진 않겠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본다면 어쩌면…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벽이 사라지는 마법 대신 다른 마법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새벽녘 완전히 분해되어 있던 그녀는 하얀 가운을 하반신에 덮은 채 양손으로 제 얼굴을 가리고 앉아있었고, 살짝 숙인 고개를 따라 달빛을 닮은 긴 은발이 흘러내려 그녀의 상체를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었다.


가운이 가리지 못한 그녀의 발이 삐져나와 그녀가 온전한 모습인걸. 내게 알리는 것 같았다.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유리창을 똑똑 두들겼지만, 생각보다 두터운 유리인지 그녀가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깁스했던 쪽의 손을 보고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


처음으로 느껴보는 찌릿찌릿하고 욱신거리는 감각에 휩싸여 어머니가 오셔서 미세 조정을 해주시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전신의 감각 센서가 새로 장착한 파츠에 몰려있는 느낌이 들고 인공 애액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어서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쾅, 갑자기 클린룸 내부를 울리는 커다란 소음이 나고 원인을 찾아 바라보자, 이시현 그가 있었다.


“…시현 님”


그는 다쳤는지 깁스한 손을 부여잡고 아파하면서도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은 내게 괜찮냐고 물어오고 있었다.


“시현 님 손…아으으으읏”


그를 향해 걸어가기 위해 다리를 조립대 밖으로 움직이자 새 파츠에 자극이 가해졌는지 욱신거림이 더 심해졌다.


첫걸음을 딛는 순간 그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주저앉은 자리는 다리 사이에서 흘러내리는 물로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아으으읏 나 시현 님께 가야 하는데…으으읏”


그가 내게 말을 하고 있었다.


[움직이지 마, 그대로 있어]


어머니의 가운이 땅에 떨어진 걸 봤지만 그걸 집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에게 내가 괜찮은 걸 가까이서 보여주고 싶었고 그의 얼굴을 좀 더 자세히 메모리에 담고 싶었다.


조심스럽게 양팔로 땅을 짚고 두 다리를 넓게 벌리고서 간신히 일어날 수 있었다. 조립대에 기대어 다리를 모으고 그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겨나갔다. 다리는 갓 태어난 새끼 양처럼 후들후들 떨려왔고 인공 애액이 다리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걱정스레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가 거기 있었다.


“시현 님 조금만…아으윽 기다려주세요”


몇번인가를 주저앉았다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결국 그에게 닿았다. 우리는 두꺼운 우리벽을 두고 서로의 손을 맞대고 눈을 마주쳤다.


그의 눈 안 가득 내가 담겨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아래쪽은 엉망으로 젖어있는 모습이…그 자리에 주저 앉을수밖에 없었다.


“꺄아아아아악 보지 마세요”


그에겐 들리지 않을 소리를 질러대며 흘긋 본 그는 얼굴이 새빨간 토마토가 된 채 애써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벌컥,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고갤 돌리자 거기엔 어머니가 계셨고 난 고개를 숙인 채 또각또각 내게 가까워지는 어머니의 발소리를 듣고 있었다.


바로 앞까지 온 어머니의 손길이 내게 닿았고 혼날 거라고 생각했다 내 어깨에 멀리 떨어트리고 온 어머니의 가운이 덮어졌다.


“괜찮니? 다치진 않았고?”


“네…괜찮아요…죄송해요”


“제대로 조정해주지 않고 나갔다 온 탓인 걸 미안해 우리 딸”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어머니는 내게 자상한 말을 건네며,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이미 몇번은 죽였을 것 같은 시선으로 시현 님을 노려보고 계셨다.


“아아아읏…시현 님은 잘못 없어요 움직이지 말라고 하셨는데 제가 움직인 거에요…”


“네가 여기까지 와서 그런 게 아냐, 여긴 그에게 허락되지 않은 공간이란다 그걸 무시하고 두 번이나 들어온 거고 말이야”


“아으응 두 번이요?”


“새벽에 웅큼하게 몰래 들어와서…어머”


내 분해되어 있던 모습이 내 안의 모든게 시현 님에게 보여졌다는 말을 듣자 부끄러움에 오버히트 해버릴 것 같았다.


“온도 급상승 셧다운합니다”


*****


“우리 딸 어쩜 좋을까? 얘 좀 눕혀줄래? 아 그리고 시현 씨 보고 당장 만나자고 해줘 한번은 몰랐겠지만…두번은…”


 “네 박사님”


“아 그리고 방진 가운도 더 주문해야겠어! 바닥에 구르며 먼지에 오염됐으니까”


곧장 밖으로 향했다 옷을 갈아입고 몇중의 보안 문을 통과해서 나간 복도엔 EFA-03 옆에 이시현이 도게자 하고 있었다.


“…뭘 잘못했는진 알아요?”


“죄송합니다. 그녀가…정말 무사한지 알고 싶어서…죄송합니다”


엄청나게 화내려고 했는데…내 딸이 무사한지 알고 싶었다고 하면 용서해줄 거라고 생각했나 보지? 하 웃기지 말라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입꼬리가 계속 움직였다.


“박사님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시끄러워 너도 잘못했어, 넌 왜 시현 씨를 막지 않은 거야?”


“제가 방에 물건을 두고 왔다고 가져다 달라고 그녀에게 부탁했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하아…됐어요 그만 일어나요. 복도에서 그러고 있는 걸 다른 사람들이 보면 날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어제는 그렇게 깐죽거리더니 오늘은 빌빌거리고 말이야 03이 그를 일으켜 세운 다음에야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나머지 이야기는 제 랩실에 가서 하도록 하죠”


그에 대한 인상이 조금씩 바뀌는걸 느끼며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