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눈을 뜨자 상쾌한 아침이다.

옷을 입고 밖에 나오자 봄이 왔음을 알리는 상쾌한 바람이 뺨을 어루만진다.

하지만 내 마음이 그것에 홀리는 일은 없다

언제나의 길을 걷고 언제나의 역에서 전철을 탄다. 매일 변함없는 일상이다.

도중의 역에서 카호가 탄다. 그 날은 좌석이 모두 차 있어서, 나는 일어나 카호가 대신 앉으라고 권했다.

하지만 카호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조신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아니. 괜찮아.”

분명 나는 서 있고 자신만 앉아 있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다. 카호는 정말 상냥한 여자다.

그래서 우리는 손잡이를 잡고 나란히 섰다.

둘 다 말수가 적은 편이라, 대화는 띄엄띄엄 이어졌다. 그런 시간은 우리에게 평온함을 가져다 준다.

올해 우리는 20살이 되었고, 카호와 함께 한지도 10년 정도 지났다.

초등학교 때 만나, 중학교 때부터 사귀기 시작했고 쭉 화목하게 지내고 있다.

그 10여 년간은 지극히 평온했고, 남들 같은 치정 싸움도 한 적 없었다. 우리는 어느쪽이든 다소 내향적이고 얌전한 부류의 사람이다.

전철이 대학 근처 역에 도착하면 우리는 조용히 내리고, 주말 일정 등을 간단히 이야기하며 대학으로 향한다.

역에서 대학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이고 쭉 완만한 비탈길을 올라야 했다.

그 도중에는 오래된 카페와 평범한 주택가가 있다. 어떻게 보아도 지방도시의 교외라는 풍경이다

인도에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대학으로 향하는 젊은이들이 몇 명인가 보인다.

그 중에는 우리처럼 함께 등교하는 커플도 있고, 손을 잡고 걷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것을 볼 때마다 나는 잘도 저러네 같은 생각이 든다.

카호와 손을 잡고 걷고 싶은 생각은 나에게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부끄러워서 할 수 없었다.

하물며 카호 쪽에서 손을 내미는 일도 있을 리 없다. 그녀는 나 이상으로 부끄러움을 타는 사람인 것이다.

여러가지로 우리의 일상은 매우 건전하고, 그리고 어딘가 지루함이 느껴지게 했다.

카호에게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에 대해서는 사랑의 고백을 한 이후 줄곧 변함없이 연모의 마음을 품고 있다. 그것은 지금도 변함없다.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는 일 같은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카호라는 이름이 나타내는 것처럼 화려한 존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길가에 핀 들꽃처럼 조신한 사랑스러움을 겸비하고 있었다. 나는 가슴을 펴고 그 내면을 포함해서 그녀가 아름답다고 자랑할 수 있다.

그러는 한편 나는 어떨까. 그녀에게 있어 나는 계속 좋은 파트너였을까?

스스로 말하기도 그렇지만, 외모도 평범하고, 특별히 뛰어난 분야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도 그녀는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주었고, 이렇게 매일같이 전철 안에서 만나 함께 등하교 하고 있다.

그녀는 도대체 나의 어떤 점을 마음에 들어하는 것일까? 벌써 10년이나 된 사이인데 새삼스럽게 그런 생각을 하며 주말 데이트에 대해 이야기 했다.


“뭐야, 뭐야. 이상하게 굳은 얼굴 하고서는 결국 여자친구 자랑하는거야?”

눈앞의 덩치 큰 남자는 내 이야기를 웃어넘기며 우동을 호쾌하게 들이켰다. 점심시간의 학생식당은 저렴함에 맞물려 북적거렸다. 그런 떠들석한 가운데에서도 그의 웃음소리는 잘 울려 퍼진다.

그의 이름은 아토우. 두 살 위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점심을 같이 먹을 정도로 친하다.

고등학교까지 럭비를 했었다는데, 근육질의 탄탄한 체격과 호방한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대형 곰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결코 난폭한 성격은 아니고 후배들을 잘 챙겨주는 든든한 형님 같은 존재다.

만나게 된 경위는 내가 선택한 동아리 활동에서 였다.

카호는 예전부터 했던 테니스를 선택했고, 나는 뭘 할지 고민했다. 모처럼의 캠퍼스 라이프. 뭐든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치-군도……. 같이 테니스 할래?’

갓 입학했을 무렵, 카호가 쭈뼛쭈뼛 그렇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카호는 나와 함께 상쾌하게 땀을 흘리고 싶다고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평소 자기주장을 잘 하지 않는 카호가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했다.

‘치-군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그녀의 마음은 솔직히 기뻤지만, 이제와서 경험 없는 운동을 처음부터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덧붙여 ‘치-군’은 나에 대한 것으로, 그 호칭은 그만두었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부탁했지만, 이미 어릴 적부터의 버릇이라 이제와서 고치기는 어렵다고 한다. 나도 반쯤 포기한 상태다.

그리하여 내가 선택한 동아리는 아토우 선배가 소속된 ‘UMA연구회’ 였다.

특별히 오컬트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러 동아리를 둘러보다 보니 가장 의욕이 없어 보였고, 가장 편안해 보였기 때문이다.

부원은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다. 주말에 미확인 생물을 찾으러 가는 등의 활동도 하지 않는다.

한가한 사람들이 작은 동아리방에서 모여서 별 잡담을 늘어놓거나, 여름에는 바비큐 파티 같은 것을 하는 마음 편한 동아리였다

그리고 아토우 선배는 부장이라고 할까 간사나 정리역 같은 것을 스스로 솔선해서 하고 있다. 번거로운게 싫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모두를 이끄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치구사여.”

그 아토우 선배가 내 이름을 부른다.

“여자친구가 자신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니, 그렇게 진지한 얼굴로 말할 것이 아니야. 나 같이 여자가 없는 사람들의 미움을 산다고.”

그런 것일까.

나는 적당히 비위를 맞춰 웃음으로 답하고 정식의 고로케에 젓가락을 꽂았다.

“그래서? 이번 주말에도 둘이서 데이트야?”

아토우 선배가 그렇게 묻는다.

나는 들어올린 고로케를 일단 접시에 내려놓고 말했다.

“아직 정하지 않았어요.”

“그건 그렇고 너희들 정말 사이가 좋구나. 벌써 사귄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매주 데이트라니. 자주 가는 곳도 있잖아.”

“그렇게 거창한 곳에 가는 것도 아니에요. 돈도 없고.”

실제 우리의 데이트는 소박할 때가 많다. 카호가 도시락을 싸오고 해변 공원을 산책하거나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시내로 나가는 일은 별로 없다.

“그렇다고 해도 10년이면 부부라도 권태기가 올텐데.”

“……권태기.”

나는 그 말을 중얼거리듯 반복했다.

그 후 오후 강의에 출석하고, 강의가 끝나면 UMA연구회 동아리방에서 시간을 보낸다. 한시간 정도 지나면 카호도 동아리도 끝나기 때문에 함께 하교한다.

마치 아침 등교와는 역재생 같은 생활양식이었다.

특별히 불만은 없다.

하지만 왠지 온몸에 얇은 막이 씌워진 것 같은 나날이었다.

똑같은 날의 반복.

헤어질 때 카호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조금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저기, 오늘 밤 치-군네 집에 놀러가도 될까?”

“괜찮아. 그럴거면 이대로 가도 되잖아?”

“여러가지 준비할 게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전철에서 내려 나를 향해 살짝 손을 흔들었다. 그 뺨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녀가 먼저 숙박 데이트 하자고 한 것은 드믄 일이다. 분명 나름대로의 용기를 낸 것이겠지.

나는 멀어져 가는 그녀를 바라보며 창밖으로 흘러가는 변함없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카호는 대학 입학을 하면서 각각 자취하는 것을 부모님께 허락 받았다. 집의 구조는 어느 쪽도 큰 차이는 없다. 여느 대학생들이 살 만한 자취방이다.

나의 집이 청결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카호 덕분이다. 그녀는 바지런하게도 매번 집을 청소해준다. 카호가 없었다면 식생활도 인스턴트나 냉동식품으로만 해왔을 것이다. 고마운 일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나는 카호에게 매우 감사하고 있다. 답례까지는 아니지만, 집안일을 마친 그녀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카호는 간지럽다는 듯이 웃는다. 이런 것이 우리의 행복이었다.

여차저차 해가 지면 우리는 연인다운 일을 한다.

TV를 보면서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손을 잡거나 몸을 기대기도 한다. 처음은 장난처럼. 하지만 조금씩 성적인 의미로.

이윽고 입술과 입술이 맞닿는다.

문득 눈이 마주치자 나는 말없이 그녀를 일으켜 침대로 이끌었다.

전등을 끄고 그녀의 옷을 벗긴다.

카호는 얌전한 내면과 달리 상당히 자기 주장이 강한 바디 라인을 가지고 있다. 테니스 덕분인지 전체적으로 탄탄한 편이고, 가슴은 브래지어 밖으로 배어 나올 정도로 풍만하다.

그녀는 그런 자신의 가슴을 부끄럽게 여기는지 가슴이 강조될 만한 옷은 절대 입지 않는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 수수한 인상인 그녀가 이렇게 글래머러스한 일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남자는 분명 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점에 대해선 적잖게 우월감을 품고 있다.

전등을 꺼도 피부가 하얗다는 것과, 유두나 음순이 색소가 옅고 아름답다는 것은 이미 충분할 정도로 알고 있다.

그녀와 처음으로 몸을 섞은 것이 언제였을까.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1년째 되는 여름방학이었던 것 같다. 꽤나 오래전 일처럼 떠오른다.

그때는 당연히 서로가 처음이라 손이 떨릴 정도로 긴장했었지.

카호도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혀 있었다.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데…….’

‘아니……. 괜찮아.’

카호의 기특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나는 위로하듯이 그녀를 사랑했다

지금은 조금 달라진 느낌이 든다.

나는 지금 카호를 뒤에서 찌르고 있다. 그것도 조금 난폭하게.

“으응, 으응, 으응, 으응…….”

그래도 그녀에겐 이제 고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카호는 충분하고 차분하게 애무해주면 그에 따라 젖어서 나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 온다.

지금도 콘돔을 한 음경은 찌걱찌걱 소리를 울리며, 카호의 사랑스러운 질구에 하얗게 거품을 일게 하고 있다.

“으응……응응……하아……응……….”

카호의 교성은 어디까지나 조신하다.

아무리 허리를 거칠게 움직여도 고막을 간지럽히는 것 같은 옅은 신음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나는 그런 그녀를 사랑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째서 일까.

문득 이런 하루하루가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허무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녀의 자그마한 엉덩이 살을 세게 움켜쥐고 땀범벅이 되고 그녀의 안에서 마치며 느끼는 허무함.

그것은 사정할 때 특유의 나른함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카호에 대한 애정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무언가 결정적으로 퇴색되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성행위의 뒷정리를 마치고 둘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침대에 쓰러졌다. 서로 아직 숨이 조금 가쁜 상태였다.

“오늘 치-군……. 엄청 열심이었어.”

카호는 수줍어하면서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거칠었어, 라고는 부끄러워서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를 나는 역시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결락된 것 같은 위화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이어 내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작게 중얼거렸다.

“이런 하루하루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

“……그렇네.”

나는 그저 건성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처음에 챈에 누가 프롤로그만 했다가 유기한거

어찌어찌 건들여봤었는데

너무 날림으로 해서 언젠가 싹 손봐야겠다 생각만 하다가

얼마전에 멜론북스 특전 구하게 되면서 전체적으로 손 봤음

일러도  pdf 버젼으로 구매해서 더 화질도 좋아짐

정발 이북처럼 최대한 문법이나 띄어쓰기 같은 것도 신경써서 했는데 아직도 개선의 여지가 있어보임


pdf로 출력하면 이렇게 나오도록 작성중임

폰트도 가독성 좋고 이쁜 걸로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