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됐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냥 자고 일어나보니 그렇게 됐다.


 소설에서야 대충이라도 설명이 나오는 걸 선호했지만… 뭐, 좋다. 이유 없는 빙의여도. 일상이 지루했으니까 이 정도로 뜬금없는 빙의도 용납할 수 있다.


 「이세계 삼촌」에 빙의했다. 더욱 좋다. 답답한 삼촌을 두들겨패서라도 설득해서 엘프와 이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근데, 왜 하필 내가 츤데레 엘프가 된 거냐고. 이왕이면 삼촌한테 빙의시켜주든가…."



 허공에 대고 하소연을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 세계엔 전이 특전은 있어도 빙의 특전 따위는 없는 모양이었다. 성의 없이 딱 빙의만 시켜준 신을 욕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러고 있는다고 현재 상황이 변하는 것도 아니니, 일단 상황을 정리하며 마음을 가다듬기로 했다. 앞으로의 계획도 세워보고.



 츤데레 엘프, 연령 미상.


 각지에 흩어진 고대 마도구를 찾기 위해 인간 사회에서 모험가로 활동하는 중.


 삼촌을 좋아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독설을 퍼붓는 탓에 좀처럼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외모는….


 거울을 보며 내, 아니. 엘프의 몸을 살폈다. 적당하게 부푼 가슴, 잘 뻗은 팔다리. 시선을 올리면 윤기가 흐르는 금발이 찰랑거렸고, 햇빛을 받은 눈동자가 녹색으로 반짝였다.


 더 따질 것도 없다. 안 그래도 평균 외모가 미쳐날뛰는 세계다. 메인 히로인인 츤데레 엘프의 외모는 그 이상의 설명이 불필요했다.



 흠… 그리고 뭐 또 없나. 아, 맞아. 스자이루기라제가르네르브제기루레아그란제르가 엘가라는 외우기도 어려운 이름을… 아니, 잠깐. 벌써 외워져버렸다. 정확히는 머릿속에 이미 존재하던 거라고 해야 하나.



 음…? 이미 존재하던 거라고… 그럼 설마…?


 잠시 눈을 감고 삼촌을 떠올려봤다. 그 오크 얼굴을 떠올리면 어쩐지, 가슴이 간질간질하고… 아니, 안 돼. 이건 아니야. 황급히 그 얼굴을 머리에서 지웠다.


 가능하면 기억소거 마법이라도 쓰고 싶은 심정인데… 그건 삼촌만 쓸 수 있는 마법이니까.


 그럼 삼촌에게 기억을 지워달라고 부탁한다면 가능하려나… 아냐, 이 엘프는 삼촌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고, 아마 기억을 지우더라도 다시 만날 때마다 기억이 돌아올 것 같다.


 그때마다 코피를 흘릴 걸 생각하면… 하. 무의미한 일이다.



 작품으로 볼 때는 둘이 이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그 입장이 되니까 절대 그러고 싶지 않다.


 삼촌이 싫어진 건 아니다. 다만, 나는 남자니까. 삼촌이라는 인물에 대해 호감은 있는 것과 별개로 연애 감정을 가질 일은 절대로 없었다.



 하. 그럼 어째야 하지. 곰곰히 생각해보자.


 음… 그래, 이왕 빙의한 김에 삼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면 좋겠다. 근데 삼촌에게 엘프는 못 준다. 내가 엘프가 돼버렸으니까.


 하지만 엘프 말고도 히로인들이 있으니까, 그 중에서 한 명만 이어주면 되는 것 아닐까?



 메이벨 레이베르, 동신검의 수호자이자 사용자. 얼음 일족. 동신검을 통해 얼음의 힘을 다룬다.


 겉모습은 청발의 냉정한 미소녀지만, 사실은 니트 그 자체다. 니트답게 게으른 것 치고는 의외로 유능하고, 그 덕에 쉽게 우쭐대서 꽤 귀엽다. 가슴은 엘프랑 비슷하려나.



 알리시아 이델시아, 초짜 용사. 신성 마법을 다루고, 어… 가슴이 크다.


 물론, 크다곤 해도 머리보다 살짝 작은 수준이다. 서브컬처계에 젖플레이션이 발생한 현재 기준으로는 작은 편이겠지만… 그래도 충분히 크다.


 가슴은 그렇다 치고. 같이 다니는 소꿉친구들이 있긴 한데, 서로 연애감정은 없었지. 그럼 삼촌과 이어줘도 딱히 문제는 없을 거 같고….



 문제라면… 둘 다 솔직히 삼촌과는 잘 안 어울린다는 점. 둘의 매력이 떨어져서 그런 게 아니라, 단순히 처음부터 서사를 쌓아나간 엘프가 삼촌에겐 너무 완벽한 상대이기 때문에 비교할 가치가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그럴 순 없다. 이어준다고 하면 반드시 둘 중에서 골라야 한다. 누가 더 좋은가? 그 결론은 쉽게 내릴 수 있었다. 메이벨은 내 최애였다.



 좋아. 결심했다.


 알리시아를 삼촌과 이어주고, 나는 메이벨을 자빠뜨린다. 좆이 사라진 것도 억울하니 보비기라도 하지 않으면 못 참을 것 같아.




 ---




 그렇게 결심한 것도 벌써 한 달. 삼촌은 오늘도 엉뚱하지만 재밌고, 꽤나 믿음직스러운 데다가 그 얼굴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음…!"



 가볍게 명치를 두들겨 통증으로 신경을 분산시켰다. 암타라니, 그건 절대 안 될 말이다.



 "저, 저… 엘프 씨? 왜 자꾸 가슴을 치시는 거에요…?"


 "아, 용사님… 그냥, 속이 좀 답답해서. 별 거 아니니까 괜찮아."



 걱정하는 알리시아를 안심시키고 시선을 돌렸다. 메이벨이 삼촌에게 달라붙어 멍청한 표정으로 실실거리고 있었다.


 그래, 그렇겠지. 이미 전개가 충분히 진행된 시점이다 보니, 메이벨이 삼촌에게 이성적 호감을 가지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물론 메이벨이 삼촌에게 가진 호감은 크지 않고, 현재로서는 그저 인간관계가 좁다 보니 나름대로 신뢰할 수 있는 삼촌과 시시덕대며 대화를 즐기는 것일 뿐이다. 삼촌도 연애 감정이 괴멸적인 수준이니 당분간 둘이 이어질 리 없다는 건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그래도 화가 났다.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시선이 싸늘해지는 건 이 몸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일단, 생각을 돌리자. 게으른 메이벨은 큰 문제가 안 된다. 진짜 문제는 옆에서 날 걱정하고 있었다.


 알리시아를 돌아봤다. 상냥하고, 가슴도 크고, 얼굴도 예쁘다. 메이벨보다도 삼촌에게 품은 감정이 크기도 했지. 하지만 그래봤자 삼촌에게 어울리지는 않아. 젖탱이만 크면 뭐 하냐고. 오크 얼굴 옆에 있어야 하는 건 저런 창녀가 아니라 나….



 "윽…!"


 "아, 읏… 또, 또…! 제발, 몸을 소중히 여겨 주세요…."



 가슴을 두들겨 정신을 다잡을 때마다 내 안에 남아있는 엘프의 잔재가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다. 원작에선 그저 질투하기만 했을 뿐인데, 내가 빙의한 뒤로는 위기감을 느끼고 더 독해졌는지 알리시아에 대한 비난의 수위도 점차 높아져만 갔다.


 제발 좀 사라져라. 어차피 진짜 엘프는 사라졌고, 지금 남은 건 찌꺼기일 뿐이다. 이미 이렇게 된 거 빨리 치워버리고 싶은데… 아. 치울 방법, 알 것 같다.


 신체의 고통과 정신에서 올라오는 비명을 꾹 참아내고, 알리시아에게 말을 걸었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그보다 너, 이러고 있어도 괜찮겠어? 이러다 메이벨이 오크 얼굴을 채가면 어쩌려고?"


 "그러는 엘프 씨는 괜찮으신가요…? 저희보다 먼저, 좋아하셨던 거 아닌가요."



 눈치챘나? 온천에서의 일 때문인가. 그 뒤로도 티를 좀 내긴 했었을 테니까. 내가 빙의한 뒤로도 시선을 제대로 처리하진 못했었고.


 하긴, 눈치채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하긴 해.


 떨리는 입을 열어 대답했다.



 "괜찮아. 마음은 전부 정리했어…."


 "지금 그렇게 괴로워하시는 걸 보면, 전혀 아닌 것 같아요. 정말, 괜찮으신 건지…."



 하. 알리시아의 등을 떠밀었다.



 "자, 가 봐. 난 괜찮으니까, 빨리 저 파란머리 바보를 치워버려. 오크 얼굴에겐 저 녀석이나 나보다 네가 훨씬 더 잘 어울리니까."



 아니, 삼촌과 엘프가 훨씬 더 잘 어울리지. 나도 안다.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이다.




 ---




 많은 시간이 흘렀다.


 알리시아와 삼촌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물론 괴로웠다.


 하지만 수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내 안에 남아있던 엘프의 잔재가 침묵했다. 이제는 완전히 정신 깊은 곳으로 가라앉은 모양이다. 삼촌의 결혼식을 보여주면 충격을 받고 일종의 정신적 사망에 이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는데 예상대로 됐다.



 "으으, 피곤해요오…."



 메이벨은 여관으로 돌아오자마자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게으른 성격인 메이벨은 사랑을 깨닫고도 쉽게도 그 감정을 포기했다. 사랑을 쟁취하는 것조차 귀찮았겠지, 아마. 아니면 그 정도로 깊은 감정이 아니어서 쉽게 포기한 거거나.



 "후…."



 길었다. 정말, 길었다.


 드디어 나는 자유의지를 되찾았다. 아니, 내가 쳐들어온 입장이니 엘프에게서 자유의지를 강탈했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메이벨을 봐도 더이상 화가 나지 않는다. 점점 저항이 심해져 몇 번이고 올라왔던 살의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마땅히 느껴야 할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벌써 잠들어버린 메이벨을 내려다봤다. 무방비하게 말려올라간 잠옷자락 아래로 새하얀 허벅지가 저들끼리 비벼지고 있었다. 적당한 크기의 가슴은 숨을 내쉴 때마다 위아래로 움직이며 유혹했다.


 더는 못 참아.


 나는, 정신적으로 발기했다.


 신체적으로도 꼭지가 발딱 선 것 같긴 하지만, 역시 없어진 꼬추가 아쉽다.


 없는 건 어쩔 수 없지. 없으면 없는대로… 메이벨의 양허벅지 사이에 손을 넣어 벌렸다.


 잠옷이 말려올라가며, 시원하게 메이벨의 보지를 드러냈다. 그래, 속옷을 입는 것조차 귀찮아했었지. 벗길 수고가 줄어서 좋다.



 나도 옷을 벗었다.


 애무 따위 필요없다. 어차피 그런 거 제대로 할 줄도 모른다. 그냥, 메이벨의 한 다리를 들어올리고, 다리 사이로 파고들어가 조개를 조개에 붙였다.



 "흐으…."



 은밀한 곳의 살점을 맞댄 것만으로도 정신이 날아가버릴 것만 같다.



 "으, 우으… 음?"



 잠깐 움찔대던 메이벨의 눈이 흐리멍덩하게 아래를 쳐다봤다. 그 눈에 빛이 돌아오기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에, 엘프…? 왜, 왜에…?"


 "네가, 흐으…! 네가 자꾸 꼴리게 하잖아!"



 연신 보지를 비벼대면서, 한 손으로는 메이벨의 부드러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등골에 저릿한 쾌감이 타고올랐다. 머리에 불이 내달리는 것 같다. 이런 어설픈 행위로도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앞으로 충분히 숙달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읏, 동신검, 동신검을…!"



 용케도 몸을 비튼 메이벨이, 팔을 뻗어 벽에 기대져 있던 동신검을 낚아챘다. 그 즉시 날카로운 얼음송곳이 돋아나 내 목을 겨눴다. 그 모습이 퍽 우스웠다.



 "저, 저…! 엘프를, 흐읏…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데요…! 여기서, 읏, 여기서 멈추면…!"


 "하, 얼음 따위로 날 막을 수 있을 거 같아? 너 바보야?"


 "네, 네에…? 그게, 무슨… 흐꺄앗…!"


 "후으, 흐으…!"



 동신검의 얼음 따위는 보벼댈 때마다 물로 변해 흘러내렸다. 아니, 그 정도를 넘어서서 이미 벌써 증발하기 시작했다.


 불꽃 속성인 보빔열은 얼음에는 상성상 유리하다는 건 상식 중의 상식. 마침 얼음을 자주 다루던 메이벨도 얼음 속성인 모양이었다.


 메이벨의 차가운 보지는 순식간에 뜨끈해져서는 연신 물을 흘려댔다.



 "그란바하마르에도 지구온난화가 올 때까지 보벼어어어엇!!!!"


 "흐아아앗…!!!"










 아. 천천히 눈을 떴다. 하다가 기절했나….


 아래를 살펴보니 알몸으로 이불을 덮고 있었고, 옆에는 메이벨이 잠든 채로 훌쩍이고 있었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최애를 이렇게 무참하게 덮쳐버리다니….



 씁쓸한 마음에 괜히 메이벨의 보지에 손가락을 쑤셔넣었다.


 정신을 잃은 채로도 다리를 움찔거리며 조여드는 게, 조금… 음. 이거, 남자 몸이었으면 바로 풀발했을 텐데… 아쉽다.


 그래도 뭐, 해야지.


 이번엔 메이벨 위에 올라탔다. 아직 해보고 싶은 게 많았다.


 밤은 충분히 길었다….










 "우, 우으… 저 이제 시집 못 가요…."


 "잘 됐네, 메이벨. 나도 마찬가지거든. 그러니까 앞으로도 쭉, 나랑 같이 다니자."


 "아니, 대체… 대체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에요…."



 울먹이는 메이벨의 보지를 가볍게 토닥였다.



 "네가, 꼴리게 했잖아."


 "제가 대체 뭘요…?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오…?"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아니, 넌 잘못한 게 없어.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면 돼. 내가 먹여살려줄 거니까."


 "머, 먹여살려…?"


 "그래. 오늘부터 내가 네 주인이야."


 "우, 읏…."



 메이벨은 좋은 건지 싫은 건지 모를 표정을 지으며 부르르 떨었다.



 "주, 주인님…?"



 역시 메이벨이야. 원작에서도 엘프에게 길러달라고 했던 니트답다.


 기특한 마음으로 메이벨의 턱을 간질였다.



 최애 따먹기, 대성공.


 앞으로 할 일은… 엘프가 원래 하던대로 고대 마도구를 찾는 거다. 혹시라도 남성으로 변하게 하거나 이전의 몸을 되찾는 마도구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런 미래의 일을 따지기 이전에, 지금 당장은 배가 고팠다.



 "좋아, 밥이나 먹자."


 "네, 네에…."



 후들거리면서 일어서려는 메이벨의 손목을 붙잡았다.



 "뭐해. 어디 가."


 "아, 아니… 밥, 먹자면서, 요…?"


 "내 밥은 여기 있는데?"


 "앗."



 이전의 내가 틀렸다.


 이 세계엔 빙의 특전이 없었던 게 아니었다.


 빙의 자체가 특전이었던 거다.


 나는 일용할 양식을 내려준 그란바하마르의 신에게 감사기도를 올리며 메이벨의 헐벗은 몸을 덮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