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너무 웹소만 읽어서 두뇌가 청아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오랜만에 장미의 이름을 다시 읽었음.

뭐 장미의 이름은 워낙 유명한 소설이라 다들 한 번씩은 읽어보거나, 읽진 않아도 들어는 봤을 거임.

스토리는 간단히 설명하면 이단심문관인 윌리엄이 살인 사건이 일어난 수도원에 들어가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일종의 추리 소설임.

사실 역사 소설을 제외하고 추리 소설로만 봐도 재밌다고 생각함.


암튼 이 소설이 쩌는 이유야 수백 가지도 넘게 있지만, 다 생략하고 중세 역사 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성에 맞춰서 보자면 이 책의 특징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수준의 고증임.

나무위키를 보니까 뭐 발걸음 속도까지 맞췄다고 할 정도니 말 다했지.

솔직히 말해 고증 면에서만 보면 이 소설이 그냥 넘버원에 든다고 생각함.


하지만 고증이 쩌는 작품은 많지 않나?

킹덤 오브 헤븐이라던가, 늑향이라던가 이런 거 다 고증 쩌는 거 아님?

물론 맞긴 함.

하지만 이 소설은 다른 역사 소설과는 차원이 다른 고증을 보여줌.

그게 뭐냐? 바로 중세인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에 대한 고증임.


사실 소품이나 물건에 대한 고증은 생각만큼 어려운 게 아님.

예전에야 고증으로 참고할 수 있는 작품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 지금은 뭐 BBC나 HBO, 넷플에서 만든 고증으로 유명한 작품들만 슬쩍 보고, 나무위키만 읽어도 역스퍼거들 제외하곤 고증으로 시비걸릴 일 없음.


문제는 당대인들의 생각이나 사고방식을 고증하는 거임.

이 부분은 역사를 좋아하지만 전문적으로 역사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도 쉽게 범하는 실수인데, 예를 들어 nation이라는 개념을 단순히 현대의 민족 개념으로 치환해서 본다거나, 현대의 주권 국가라는 개념을 과거에도 그대로 적용한다거나, 인권이나 명예 같은 개념을 현대와 같은 의미로 쓴다거나 같은 것들이 있음.


사실 이건 어떻게 보면 너무 가혹한 조건일 수 있음.

이러한 당대인들의 생각이나 사고방식을 연구하는 심성사는 그냥 과거의 사실을 연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난이도를 자랑하니까.

하지만 뭐 내가 다른 소설 비판하는 것도 아니고 걍 이런 거 다뤄줬으면 좋겠다 정돈 말해도 되잖아?


암튼 그런 의미에서 장미의 이름은 내가 말한 "고증"에 정확히 부합하는 책임.

움베르트 에코는 단순히 수도원의 건축, 식사와 같은 물질적인 고증만 엄청나게 한 게 아니라, 이러한 사고방식에 대한 고증도 완벽한 수준임.


대표적인 예시 중에 하나가 바로 과거 문헌에 대한 엄청난 믿음임.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도 지적한 바 있듯이, 과거 지식은 생성되는 게 아니라 발굴되는 거였음.

이게 무슨 말이냐? 모든 지식은 이미 완벽하게 설명되어 있고, 지식을 아는 방식은 새롭게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의 서적과 전통을 깊게 연구해서 "발견"해내는 거라는 의미임.

뉴턴이 만들어낸 과학적 방법론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우리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고대인들은 모든 위대한 지식은 이미 "서술"되어있고, 진리를 알고 싶으면 그 서술된 책을 계속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했음.

그게 바로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이었음.


하지만 윌리엄은 반대로 기존에 있는 정보를 종합해서 결론을 내는, 일종의 귀납적 방법론을 사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걸 보여줌. 이건 단순히 윌리엄의 영리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폐쇄적인 수도원이 아닌 바깥에서 온 외부의 존재로서 훨씬 더 진보된 생각을 받아드린 근대의 모습을 가지고 왔다고 볼 수도 있음.


두 번째는 바로 그리스 철학이 중세에 미치는 영향임.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기독교의 논리적 기반을 깔고 있는 건 성경이 아니라 그리스 철학이었음. 

특히 중세의 끝인 14세기는 아랍에서 번역되어 온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까지 풀린 상태라 사실상 기독교 신학과 그리스 철학이 거의 동일시될 정도로 둘의 관계가 가까워짐.

그리고 그리스 철학하면 떠오르는 그 압도적인 논리성과 치밀한 방법적 회의는 스콜라 철학에 그대로 남아있음. 그 유명한 안셀무스의 신존재증명이라던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보면 이게 시발 논리학 문제인지 신학 책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임.


그리고 이러한 측면은 장미의 이름 내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남.

그렇다보니 현대인이 보기엔 수도원의 수도자들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어보이는 이상한 논변이나 계속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임.

하지만 그 시대엔 이게 당연한 거임.

그리스 철학이 기본 가치관 중 하나였고, 그리스 철학에서 이런 문제는 어마무시하게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과거 문헌에 대한 맹신과, 그리스 철학의 영향이라는 중세인의 사고방식을 에코는 정확히 포착해내고, 이를 굉장히 유려한 방식으로 책에 담아냈음.

마치 과거인이 썼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이게 내가 이 책의 고증이 다른 수 많은 고증으로 칭찬받는 작품들보다도 고증이 좋다고 감히 말하는 근거임.


물론 웹소에서 움베르트 에코 옹의 고증을 기대하는 건 말이 안됨. 이 사람은 거의 사학자라고 봐도 될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자기 전문 분야를 서술하고 있는 거니까.

그리고 시발 에코 옹처럼 글 쓰면 아무도 안 볼 꺼잖아. 솔직히 나도 이거 보다가 몇 번 접었어.


하지만 고증이라는 면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점을 보여줌.

과연 현대인과는 완전히 다른, 그 시대의 가치관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장미의 이름은 매우 교과서적인 예시를 보여줬다고 생각함.

특히 조선 전기를 다루면서 무슨 민주주의자로 정도전을 묘사한다거나, 조조를 무슨 유교적 가치를 초월한 마키아밸리적 군주로 묘사하는 거 같은 자꾸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관을 특정 인물에게 이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나쁘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난 정도전 인생 사극으로 꼽고 창천항로 존나 재밌게 봄) 고증을 중시하는 작품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볼 면이 있다고 생각함.


사실 이 책은 고증 이외에도 대교황을 배출해낸 베네딕토회나 제국이라 불릴 정도로 거대해진 클리뉘 수도원, 청빈을 강조한 탁발수도회 같은 수도회와 관련된 교회의 권력 투쟁이라던가, 청빈 논쟁과 얽혀있는 교황과 황제 사이의 권력 다툼 같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가 가득한 책이지만 이건 너무 길기도 하고 딱히 궁금해할 사람도 없을 거 같아서 생략하도록 함.


세줄 요약


1. 물질적인 것들을 고증하는 건 쉽지만, 가치관이나 제도를 고증하는 건 어마무시하게 어렵다.

2. 하지만 에코 옹은 그걸 해냅니다.

3. 물론 웹소에서는 그딴 식으로 고증하면 5700자 박히겠지만, 고증에 충실한 작품이 무엇인지 한 번 쯤은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