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 무라카미 라디오 中 발췌


그렇게 특별하다 믿었던 자신이 평범은 커녕 

아예 무능력하다 느끼는 순간이 있고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설렜던 이성으로부터

지루함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분신인 듯 잘 맞던 친구로부터

정이 뚝 떨어지는 순간이 있고


소름 돋던 노래가 지겨워지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자기가 사랑하던 모든 것들이 그저 짝사랑에 불과했음을

느끼는 순간도 있다.


삶에 대한 욕망이나 야망 따위가

시들어버리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삶이 치명적일 정도로 무의미한 순간도 있다.


우리는 이제까지 느꼈던, 혹은 평생 간직하고 싶던

그 감정을 무시한 채, 감정이 다 타버려 날아가는 순간에만 

매달려 절망에 빠지곤 한다.


어차피 잊혀질 모든 만사를 얹고

왜 굳이 이렇게 힘들어 하면서

사느냐고 묻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잊혀질 것이니, 절망하지 말라는 거다.


겁내지 마라, 끝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걱정하지 마라, 아직 아무에게도 뒤처지지 않았다.

기죽지 마라, 아직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았다.

슬퍼하지 마라, 이제부터 시작이다.

조급해 하지 마라, 멈추기엔 너무 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