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에서 최약체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잡일뿐이었고, 그조차도 제대로 사람 취급 받지도 못해서 벌이는 형편없었다. 이 도시에도 일단 엄연히 법이 존재하기는 하나, 사람 사는 곳이 그렇듯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법이니까.


게다가 나는 이제 도시에 입성한지 며칠, 몇달밖에 되지 않은 이주민. 어디 가서 하소연 할 곳도 없었다.


그때 도와준 사람이 바로 지금 내가 일하는 ‘플라워’의 주인인 셀레나. 지인들에게는 통칭 마담으로 통한다.


그녀의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에는 아무리 나 역시 며칠을 굶었다고는 해도 꺼릴 수밖에 없었지만, 이전에 잡일하며 받았던 푼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보수에 결국 받아들이고 말았다.


솔직히 말해서, 대놓고 몸 팔라며 창녀가 되기를 제안하는데 누가 넙죽 받아들이겠는가.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일단 설명을 들어보니 ‘플라워’는 일반적인 창관이 아니었다. 1층에는 바를, 2층에서는 ‘손님’을 받는 형식인데, 기본적으로 남자는 출입금지다. 즉 여성들을 위한 레즈바인 셈.


1. 여성들을 위한, 2. 동성애자를 위한 레즈바.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본래 여자도 아니었고, 동성애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일단 신이라는 놈에게 받은 특전때문에 여성, 그것도 경국지색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무척 아름다운 여성이 되었다.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매력적으로 보일 만큼.


그리고 나는 본래 이성애자, 즉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였다. 몸이 바뀌었다 한들 취향까지 바뀔 리는 없고, 여전히 나는 여자를 좋아한다.


어라…? 이거 완전 개꿀 아니야?


사실 고려할 부분은 많았지만, 당시 여러모로 멘탈이 나가있던 나로서는 그정도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결국 나는 마담의 손을 잡았고, 그 뒤로 ‘플라워’에서 계속 일해왔다.


그동안 만나온 손님 중에는 괜찮은 손님도 많았고, 진짜 지랄맞은 진상 손님도 많았다. 이미 블랙리스트에 올린 손님 명단만 해도 한가득.


그나마 다행인 점은 죄다 외관만큼은 멀쩡했다는 점이다. 손님들 중에서 나보다 어린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만, 초월자들에게 나이따윈 정말로 숫자에 불과했다.


무인의 경우 반로환동을 하며 젊음을 유지했고, 마법을 다룰 줄 아는 이들은 연금술로 묘약을 만드는 등 제각기 다양한 방법으로 젊음을 유지했다.


남성 초월자들의 경우 노년간지라며 중년이나 노인의 모습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여자들은 백이면 백 젊음을 추구했다.


그렇게 꾸역꾸역 궂은 일도 참아가며 어떻게든 몇 달 일하다 보니 어느샌가 나는 ‘플라워’의 에이스가 되었다. 결국 경국지색이라는 특전이 도움이 된 셈이다.


뭐… 덕분에 의식주 면에서는 구질구질하게 살 필요가 없어졌다. 어쨌든 보수는 넉넉했고, 나를 지목해주는 단골도 제법 됐다.


쭈뼛쭈뼛 어색한 얼굴로 들어오는 이 여인도 내 단골 중 하나.


“와~ 안녕하세요! 이게 얼마만에 보는 거에요?”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이제는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냈다. 마냥 연기인 것도 아니다. 실제로 나는 그녀가 제법 반가웠다.


“아, 안녕… 지난 주에 돈을 너무 많이 써서… 돈 좀 벌어오느라…”


검은색 머리에 검은색 옷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통일한 그녀는 말을 더듬으며 방에 들어왔다.


하지만 정작 방에 들어와서도 그녀는 어찌할 줄 모르고 문앞에 그냥 우두커니 서서 손가락만 꼼지락대고 있었다. 어수룩한 모습이 누가 보면 처음 와본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저래 봬도 우리 가게에 드나드는 손님들 중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큰손이시다. 


“자, 자. 서있지 말고 이쪽으로 와서 좀 앉아요.”


내가 말해주지 않으면 계속 서 있을 것 같았기에 나는 앉아있는 침대 옆자리를 손으로 툭툭 치며 앉을 것을 권유했다.


그제서야 그녀는 내가 말 꺼내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바보같이 해맑은 미소를 헤실헤실 지으며 얼른 내 옆으로 와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농담이 아니라 눈 깜짝할 사이에 앉아있었다.


내 단골 명단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분류해둔 등급이 있는데, 이 여인은 그중에서도 특별 관리할 필요가 있는 VVIP중 한명이었다.


일단 앞서 말한 것처럼 돈 씀씀이부터가 다르다. 나야 먹고 살 길이 이것밖에 없어서 이 짓이나 하고 있지만, 그녀는 초월자들 중에서도 유별난 편인지 벌이가 심상치 않았다.


올때마다 그녀가 내게 쓰는 돈이 다른 손님들의 몇 배는 되니, 그녀의 능력이 어느정도인지 가늠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대충 짐작하건데,  그녀정도면 안그래도 괴물들 뿐인 초월자들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VVIP에 올려둔 것은 고작 씀씀이 때문만이 아니다. 물론 가장 직접적인 매출을 올려주는 만큼 아예 관계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진짜로 그녀를 VVIP로 관리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제가 얼마나 기다렸다구요! 저번주에 분명… 더러운 정파 놈들이 쳐들어왔다는 얘기 해주시다가 끊겼었죠?”


평소에는 결코 짓지 않을 표정을 지으며, 호들갑까지 떨어가며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대화를 걸었고, 그녀의 반응은 내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응! 맨날 겉으로는 정정당당 공명정대 해야된다면서 떠들더니, 암살자까지 보내왔다니깐? 물론 그래봤자 암살자따위가 내 기감을 피할 수 없어서 순식간에 샥샥! 이렇게 이렇게 목을…!”


그녀는 내 말에 환하게 웃더니 조금 전까지 쭈뼛거리며 말을 더듬었다는 게 거짓말인 것처럼 아주 유창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재잘재잘 신나서 떠드는 그녀의 이름은 사마희린.


흔히 무협지에서 많이 본 사마 성을 가진 그녀는 현대 지구에서 유튜브를 했다면 외모만으로도 백만단위 구독자는 기본이요, 연예인을 했으면 발연기라 할지라도 탑배우가 되었을 정도로 내가 봐 온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단순히 얼굴 뿐만 아니라 스타일조차 동양인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으니, 굳이 더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하지만 외모면 외모, 능력이면 능력 모두 출중한 그녀임에도 불구하고, 신은 공평한 법인지 그녀또한 마냥 완벽한 인간은 아니었다.


검은 흑발을 휘날리며 항상 검은 무복만 고집하는 그녀는 자신이 천마라 주장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녀의 주장일 뿐이고, 나 역시 전혀 믿지 않는다.


자고로 천마라 하면 모두를 내려다보며, 천하를 오시하며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존재. 눈 앞의 아싸…가 아니라, 찐따…가 아니라, 말 좀 더듬을 뿐인 소심한 여인이 그런 포스넘치는 천마일 리가 없었다.


휴… 소중한 고객님한테 아싸 찐따라고 할 뻔했네. 조심해야지.


뭐, 그래도 초월자들 중에서 정신병 달고 다니지 않는 녀석 하나 없다는 걸 감안하면, 고작 망상, 허언증같이 귀여운? 정신병 뿐인 그녀는 나름 초월자들 중에서 양반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정파놈들을 싹 무릎꿇리고, 마도천하를 달성했단 말씀!”


그렇게 그녀는 몇 시간동안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대다가, 기어코 무협지 스토리 하나를 다 쓰고 나서야 끝났다. 그동안 내가 옆에서 한 거라고는 ‘와아!’, ‘정말요?’,’ 헉…!’ 같은 추임새뿐. 사실상 대화도 아니고, 그녀 혼자서 몇시간동안 떠들어 댄 셈이다.


찐따 특, 아는 얘기 나오면 신나서 혼자 떠들음.


“와아! 역시 천마님! 사마희린님 정도 되니까 마도천하가 가능했던 거군요!”


물론 그렇다고 내가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추임새도 대충 넣는게 아니라 이야기 흐름에 맞춰서 넣어줘야만 효과가 있는 법이기에 몇 시간동안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만 했다.


“에헤헤…”


봐라. 이 실없이 헤실거리는 소녀가 어딜 봐서 천마란 말인가. 천마쯤 되면 주변에서 아부하는 사람이 한두명이 아닐진데, 그녀는 전혀 내성이 없는 모양인지 고작 내 칭찬 한마디에 아주 좋아 죽었다.


하지만 나는 실없이 웃는 그녀의 미소와는 다르게, 정말로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쉬움이 팍팍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앗…! 희린님… 정말 아쉽지만 벌써 시간이 다 됐네요… 사마희린님의 이야기를 계속 더 듣고 싶은데 규칙은 규칙이라…”


그녀가 VVIP인 이유 하나 더.


그녀는 조금만 맞장구 쳐주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혼자 신나서 떠들다가, 결국 서비스 시간이 다 끝나버린다. 안그래도 여러모로 피곤한 나로서는 이렇게 날로 먹을 수 있는 호구…가 아니라, 손님은 그야말로 귀하디귀한 존재이다.


“앗… 그, 그러면 연장을…”


그녀는 눈을 똥그랗게 뜨며 아차! 하는 얼굴로 시계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주머니에서 보석뭉치를 꺼내들며 다급히 말했다. 화폐도 아니고 보석을 주머니에 넣고 다닐 정도면 대체 돈이 얼마나 많은 거냐고…


“그치만 이미 풀로 연장하셔서… 이만 퇴근할 시간이라…”


하지만 그녀에게는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운이 좋게도 내 근무 타임이 다 끝나버렸다. 더 연장하고 싶어도 이미 그녀의 장황한 천마 스토리에 연장한 시간까지 전부 할애하는 바람에 더 연장할 시간도 없었다.


물론 이것도 전부 내가 유도한 결과지만.


이미 몇 번이고 들었던 그녀의 이야기 레파토리는 전부 파악하고 있으니, 적당히 옆에서 속도 조절하는 것쯤이야 이제 와서는 식은 죽 먹기였다. 템포가 빠르다 싶으면 중간중간 질문을 던짐으로써 이야기가 끝나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 그렇지! 쉴땐 쉬어야지…”


결국 그녀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도 푹 숙인 채, 축 처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안그래도 예쁜 얼굴로 저러고 있으니 양심의 가책… 까지는 아니고, 조금 안쓰럽기는 했다. 그렇기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녀의 손등에 내 손을 얹고,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나긋한 목소리로 달래주었다.


“다음에 또 와주실 거죠? 사마희린님의 이야기,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리고…”


그리고 뒷말은 하지 않고 얼버무리며, 그녀의 손등을 살짝 간지럽혀 주었다.


“으, 응! 당연하지! 다, 다음에는 꼭…!”


그러자 사마희린은 눈에 띄게 움찔, 거리더니 조금 전만 해도 세상 다 잃은 것만 같던 얼굴이 환해지며 베시시 웃었다. 그리고 용돈 하라며 팁으로 보석 하나를 더 얹어 주었다.


캬… 돈 벌기 쉽다, 쉬워!


나는 이세계 창녀(娼女)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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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주인공보단 아싸찐따천마가 쓰고싶었음...


1화와 마찬가지로 나중에 연재하게 되면 수정될 부분이 있을 듯합니다.


잠깐 사소한 찐빠가 있어서 재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