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는 지인의 죽음에 슬퍼한다.

중수는 지인의 죽음에 무덤덤해한다.

고수는 지인의 죽음에 이득을 취한다.


자신을 합리적이라 말하는 미쳐버린 인간들의 나라.

차라리 전부 뒤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아 아 여러분. 이 세계는 아포칼립스 시티라는 게임의 배경이 될 예정입니다."


그래도 진짜로 멸망하는 건


"그러니까 다들 살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주세요."


원하지 않았어.


=====


"라일라."


내 귀에 들려오는 아카샤의 소리.

하늘 높이 뻗은 오른손바닥을 내리고서,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면은.

내 오른손을 꽉 잡아오는 그녀.


"아카샤, 왜?"

"무슨 생각 하고 있어?"

"그냥 저 별하늘 어딘가에 아름다운 세상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꽈악.

내 오른손을 붙잡은 그녀의 힘이 살짝 강해진다.


"이제는 떠나면 안 돼. 2성과는 다르게 3성부터는 플레이어가 없으면 의식을 오래 유지할 수 없거든."

"알고 있어."


또 다시 불안 증세가 도졌는지,

불안해하는 그녀를 꼬옥 끌어안는다.

살짝, 떨고 있었구나.


"프리지아한테 말하지 않고, 아무데도 떠나지 않을게. 그때처럼 돌아왔는데 갑자기 없어져 있는 일 같은 건 없을 테니까."

"응."


내 포옹과 위로가 도움이 되었는지,

그녀의 떨림이 살짝 사그라드는 느낌이 든다.

아니면 그저 단순한 내 착각일까.


"있지. 지금의 너는 낯설게 느껴져."

"내가?"

"응. 우리가 함께했던 시절의 너는 아직도 기억나는데.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가. 정말 낯설어. 네가 정말 내가 함께 싸운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해.

분명 몇 백 년도 더 전의 너는 이렇게 무른 성격이 아니었을 텐데.

어떤 위기에도 두려움을 표현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섰던 것 같은데.


하지만 기쁜 재회에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없다.

그저 기쁜 만큼, 더더욱 강하게 그녀를 끌어안을 뿐.


"거기! 둘이서 뭐하는 겁니까! ts백합물이라도 찍습니까?"


갑작스럽게 귀에 울리는 프리지아의 외침.

그쪽을 째려보는 아카샤를 잠깐 쓰다듬어주고,


"프리지아. 왜 왔어?"

"마스터께서 여러분을 찾습니다! 약탈꾼들이 기지를 침범했어요! 이대로 가다간 기반 시설을 전부 털릴 겁니다!"


또 전투인가.

내 품에서 떨어져서는 무기를 꺼내는 아카샤.

나 역시도 내 무기를 꺼낸다.


"좋아 가자고."


아무래도 몇 백 년도 더 전 이야기에 추억을 팔 시간은 더 없는 모양이네.

향수를 느끼는 건 모든 것을 정리한 다음으로 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