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아, 뭐가 궁금해서 병실에 온 거야?"


 병실의 문이 닫히고, 침대위에 앉으니 양태식이 의자를 끌고 와 내 옆에 앉으며 내게 물어온다.

 이 자식이 뭐 이리 가깝게 앉냐고 쏘아붙이려 했지만, 지금 아쉬운 건 내쪽이기에 꾹 참고 조심히 놈에게 물었다.


 "내가 왜 병원에 있는거지?"

 "너? 으음......"

 "사실대로. 그 사실이 충격적이건 뭐건 상관 없어."

 "이런 얘기 해 줘도 괜찮을 진 모르겠는데, 너 손목 그으면서 약을 먹었거든. 진짜 큰일 날 뻔했어."


 그러자 나도 모르게 손목에 눈이 간다.

 통증하나 없었기에 관심 없던 부위였는데, 꽤나 깊게 그었는지 하얀 실밥이 아직도 손목에 남아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한 가지만 해도 고통이 엄청났을 텐데 두 가지를 동시에 한 건, 확실히 죽으려 했던 모양인데.


 "내가 죽으려 했던 이유는?"

 "으음, 글쎄? 거기까진 나도 잘 모르겠어. 네가 내게 해 준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으니까."


 연기일까, 아니면 진심일까.

 고모라는 여자는 눈에 대충 무슨 감정을 가졌는지 보였는데, 양태식의 눈엔 그것 마저도 보이지 않는다.

 한 달이라는 입원 기간을 생각하면 저 말이 거짓인 것 같아보이진 않는데.


 "조금 떨어져주지 않을래?"

 "아, 조금 불편했어? 미안. 우리 되게 가까운 사이였어서 말야."


 양태식에게서 알아낼만한 건 별로 없나?

 참고 있던 거북함을 드러내니 그제야 놈은 내게 기억이 없다는 말을 떠올렸는지 뒤로 살짝 물러섰다.


 "내가 실수했네."

 "ㅈ, 너랑 나랑 가까운 사이였다고?"

 "맞아. 아주 가까운 사이였지. 아, 우리 엄마는 너 마음에 안 들어하시는데 난 네가 마음에 제법 들었었거든."


 순간 녀석이 제대로 말한 건가 싶었다.

 그 여자가 고모라면 이 녀석은 사촌인데, 놈의 말엔 어딘지 모를 성애적인 의미가 담긴 것 같아서였다.

 사촌관계는 내가 죽기 전 까진 이 지역에선 가족취급일텐데, 그런 관계 사이에서도 이런말을 했던가.


 물론 내가 오해한 걸수도 있다.

 내게 사촌 사이의 형제자매란 없었으니까.

 애초에 부모 외에 가족 관계를 가져 본 적이 없는 나라서다.


 "그래서 깨어나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해."


 순간 병실에 술냄새를 풍기며 들어왔던 놈의 모습이, 지금 웃고있는 모습 위에 오버랩된다.

 허면 그 때 술냄새는 왜 풍기며 들어왔던걸까.

 물어 볼 수야 있다.

 다만 지금은 그 뒷감당을 할 여력이 없을 게 분명하기에 물을 수 없었지만.


 "어디 아픈 덴 없는거지?"

 "......."


 말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 놈이랑은 말을 섞어봤자 내겐 손해밖에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웃는 저 가면 뒤엔 어쩐지 또 다른 모습이 숨어 있을 것 같단 말이지.


 그리고 놈의 말을 신뢰 할 수 없는 이유가 지금 내게 있다.

 사람이 의지 할 곳이 하나라도 있으면 자살기도 같은 극단적인 짓은 절대 안 벌이는데, 정이진은 자살기도를 했고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게 그것이다.

 만약 눈앞의 이 놈 말대로 양태식이 정이진의 버팀목이었다면, 과연 정이진이란 이 여자는 과연 그런 선택을 했을까.

 이 생각 때문에 난 양태식의 말을 들으면서도, 그의 말을 전혀 신뢰 할 수 없었다.


 "아, 너 주려고 사왔어. 아무래도 손목에 상처가 눈에 띄면 그렇잖아."


 양태식이 내민 작은 종아봉투를 받아 드니, 그 안엔 손목에 차는 아대가 깔끔히 포장되어 있었다.

 상처를 가릴 용도로 준 선물이라.


 "그럼 난 가볼게. 지금 5교시 째고 온 거라서 말야."


 양태식은 그 말을 끝으로 병실을 나섰고, 그런 놈의 뒷모습을 보다 아대의 포장을 까 손목에 끼웠다.

 하지만 아대는 하나가 아니었다.

 내가 찬 흰색 밑엔, 의미를 알 수 없을 붉은 아대가 놓여져 있었다.


 *     *      *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고모에게서 휴대폰을 받아 들었던 난 더 이상 병실에 있고 싶지 않아 그녀에게 퇴원을 요구했다.

 그녀 입장에선 어차피 병실에 계속 처박혀 있어 봤자 병원비만 나갈테고, 나 역시도 활동 반경을 넖히고 싶었으니 윈윈이 되는 거래.


 사실 휴대폰엔 아무런 정보가 없어서였다.

 내가 휴대폰을 요구했던 이유는 단 하나, 정이진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서였는데 정작 받아 든 건 아무런 정보 같은 건 없는 완전한 새물건이었으니.

 그것도 내게 최대한 돈을 안 쓰고 싶어하던 욕망이 반영 된, 최하급 기종으로 말이다.


 물론 최하급 기종이라 한들, 윗부분을 잡아당겨 빼내 화면을 늘리는 정도의 기능은 들어가 있다.

 문제는 그게 전부라는 것이지만.

 편의기능따위 아무것도 안 들어간, 기사 정이수라 해도 상상할 수 없는 물건이었으니까.


 - 이진이 네가 쓰던 건 고장나서, 일단 급한대로 이거라도 사 왔으니 잠시만 쓰고 있으련?


 괜히 하루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게 아니었다.

 쓰던 걸 가져다 주려면 진작 가져 왔었겠지.


 그럼 고장난 거라도 달라 했더니, 자기도 어디에 뒀는지 기억나지 않아 줄 수 없다고 한다.

 허나 그에 반발할 순 없었다.

 지금의 난 자살을 기도했지만, 병원에서 겨우 살아나 집에 돌아온 몸 약한 여인이었으니까.

 무언가 내게 숨기고 싶은 게 있다는 듯한 행동이었지만, 일단은 모르는 척 하고 넘어가주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가만히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몸이 약한 건 어디까지나 지금의 이야기지, 어쨌든 지금 정이진은 에고 각성자이기 때문이다.

 이 말인 즉슨, 좋든 싫든 기사로 끌려 갈 운명이라는 건데.


 나야 다시 기사가 될 수 있다면 그만이니 상관없긴 하다.

 내 인생의 목표는 오직 괴수를 찢는데에만 있었으니까.

 정이수는 그런 관점에서 보면 더 이상 괴수를 찢을 수 없게 되었으니 실패한 인생이고.


 하지만 채 아카데미에도 가지 못한 지금 상황에선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아무리 에고 각성자라 한들, 그 힘을 사용하고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방법은 따로 배워야 한다.

 그렇기에 아카데미가 존재하는 것이고, 기사라는 특수요원은 양성되는 존재인것이다.


 물론 이 역시도 아카데미의 모든 과정을 마치고 현역 기사가 되어 활동했던 모든 기억을 온전히 가진 내겐 해당되지 않겠지만.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전까지 최대한 힘을 키워놓아야 그 이후의 생활에서 상당히 유리해질테니, 외려 힘을 키워 둘 생각으로 그득했다.


 물론 지금은 현재의 상황에 적응부터 하는 게 우선이다.

 양태식의 아버지, 양정환이 꽤나 높은 사람이랬던가.

 이 쪽 자치구의 자치위원 중 한 명으로써 정이진이 사는 집은 꽤나 호화스런 넓은 아파트였다.


 거의 기억 속 대부분의 시간을 기사로 살았던 내겐 살짝 충격이 올 정도였다.

개인이 이런 집을 가져도 되나 싶을 정도인가 싶을 감정이 들 정도였으니.


 "이진이 네 방은 여기였단다. 그럼 좀 쉬도록 하렴."

 "네, 감사합니다."


 뭔가 하러 가는지 빠르게 멀어져가는 그녀를 뒤로 한 채, 방문을 열어 방에 들어선다.

 문 너머의 풍경을 보자마자 바로 느껴지는 삭막함에, 숨이 살짝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타인인 내가 보아도 이정돈데, 정작 당사자인 정이진은 얼마나 힘들었을지.


 '고생하는 군.'


 방 안의 풍경을 보니 더욱 궁금해졌고, 왜 휴대폰을 주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휴대전화는 사생활의 보고인 만큼, 기억을 잃은 당사자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분도 그대로 담겨있었을 터.

 고모라는 여자가 보여주었던 태도로 미루어보면, 그 안에 든 내용이 유출되면 큰일 날 게 분명해 버리진 않았을터인데.


 일단 은폐장치를 구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들어올때만 해도 보았던 CCTV만 2개.

 그리고 지금 방 안에 동작되지 않는 듯한 CCTV가 하나.

 뭘 하든 그게 없이는 도저히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것만 같은 족쇄가 발목에 채워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궁금했다.

 정이진의 휴대폰의 과연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지.

 어째서 그녀가 자살했는지 등등.


 하지만 바로 움직이기 보단, 가방을 내려놓은 채 사복차림 그대로 침대위에 눕는다.

 괜히 이상한 행동 한다고 의심도 피할 겸, 그리고 이 방에 뭐가 있는지도 알아 볼 겸.

 그리고 시간이 지나길 기다릴 겸도 해서.


 다만 눕기전에 한 가지.

 내가 없는 사이 CCTV를 켜놓는 걸 깜빡한 듯한 호재를 그냥 놓칠 순 없으니까 카메라에 약간의 조치를 취한다.

 연결은 정상적으로 되대, 카메라 부분이 고장나 영상에 심한 노이즈가 끼게끔.

 

 일종의 시간을 벌기 위한 작전이다.

 적어도 카메라가 돌 때 까지, 이 집에 대해 파악 할 정도는 되겠지.


 "이제 조금만 쉬자......."


 정이진의 몸에는 손목의 흉터 외에 별 다른 외상이 없는 걸로 보아 고모라는 여자는 적어도 몸은 건드린 적이 없는 게 분명했다.

 물론 정신적인 부분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았겠지만.


 그렇게 생각을 반복하니, 점점 의식이 흐려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약한 몸으로 병실에서 깨어있는내내 긴장 한 상태로 있었으니, 몸이 이젠 버티지 못하겠다며 무너지는거지만.


 하지만 잠에 빠져드려는 순간, 스윽하고 문이 열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 다시 눈이 살짝 떠진다.

 작게 열린 눈꺼풀 사이론, 어느새 돌아 온 고모라는 여자가 방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 희미하게 속삭이듯 울려퍼졌다.

 죽여라-.

 같은 사람을 상대론 쉽게 할 수 없을 그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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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은 나중에

어쩌면 노란 사이트에 연재 들어갈지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