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2편




터프로 가는 지하 터널의 스산한 공기가 터널의 벽을 따라 불어온다. 터널 끝의 빛과의 거리가 가까워질 수록 차가움은 서서히 따뜻함으로, 따뜻함에서 뜨거움으로 바뀌어 간다. 동시에 터널과 바깥 사이의 경계선을 넘는 순간 시야가 확 밝아지고 온갖 고조되는 감정이 깃든 함성이 이곳의 분위기를 잡아먹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걸어가 시멘트, 흙, 잔디 순으로 바닥을 밟는다. 또각또각 걷는 발소리가 사박사박 걷는 발소리로 바뀐다.


마침내 온전히 경기장 위의 터프에 들어섰을 때, 관중석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그 함성은 한 명을 향해서 쏟아졌다.




골드 쉽을 마지막으로 모든 선수가 경기장에 들어섰고, 팡파레가 울렸다. 한 명, 한 명씩 자신이 배정받은 번호의 게이트로 들어가고 준비는 끝났다.


“후우… 집중해.”


그때의 기억. 그것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겠다. 아무리 신경이 쓰여도 반응하지 말라. 오직 나의 달리기에 집중하리.


골드 쉽의 회색빛 털로 뒤덮인 귀가 쫑긋거렸다. 한숨을 내뱉고 눈을 감았다. 그녀의 분위기가 한층 진정되었을 때, 눈꺼풀이 살며시 열려 눈동자를 드러냈다. 자색빛으로 빛나는, 소리 없이 타오르는, 차분하지만 열렬한 그런 불꽃이 동공에 깃들었다.


그런 그녀의 분위기는 마치 맹수와 같았다. 앞서 도망가는 피식자를 추격하는 포식자와도 같았다.


경기장 안의 모든 소리가 서서히 침묵에 먹혔을 때, 눈앞의 게이트가 열렸고 모든 선수들이 일제히 게이트에서 박차고 나갔다. 이번엔 그녀의 스타트는 안정되어 있었다.


직선에서 서서히 마군을 이루기 시작하는 우마무스메들의 신경은 후방의 골드 쉽을 향해 몰려있었고, 자연스레 근처 우마무스메들은 그녀를 마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골드 쉽은 자신의 상황을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이전엔 너무 늦게 스타트 하는 바람에 4코너로 접어들 즈음에야 마군과 합류를 했어. 초반은 너무 변수가 많아.’


첫 번째 코너로 들어서면서 골드 쉽을 둘러싼 마군이 살짝 흐트러졌고 골드 쉽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노련한 솜씨로 틈을 파고 들었다.


매서운 기세로 달리는 골드 쉽의 모습과 마군을 뚫고 올라온 상황이 선행 집단을 압박했는지 점점 각자의 페이스를 잃고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그녀만이 페이스를 유지했다.




스탠드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트레이너는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골드 쉽은 타카라즈카 기념을 2년 연속 우승했다. 그 말인 즉, 이 경기를 이기게 되면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위업을 이루는 것이다.


기대는 곧 불안으로 바뀌고, 불안은 다시 또 초조로 바뀌었다.


한 경기 3연패, 그것도 G1 등급의 중상 경기다. 지금까지 갈고 닦은 그녀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G1 3연패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는 것? 매우 대단하다. 그러나 그 끝에 부상이라는 꼬리표가 따라오게 된다면 크든 작든 그녀의 커리어에 흠집이 생긴다.


‘게다가 지금 페이스는 꽤 빠른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여기서 사고가 발생하기라도 한다면 큰 부상이 될 수도 있어.’


원체 골드 쉽은 건장하고 잔부상 같은 것도 없는 그야말로 건강이란 단어를 나타낸 우마무스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상의 위험성은 트레이너로서 간과할 수 없다.


전광판 너머의 골드 쉽이 조금씩 앞을 나아갈 때마다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이곳에서는 그저 별 일 없이 경기가 진행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어느덧 직선 구간이 끝자락. 한 차례의 흥분이 지나가고 각자의 페이스를 다시 되찾은 터프 위는 점점 분위기가 고열되고 있었다.


골드 쉽은 중간 즈음에 위치하고 있었다. 한 번 흐트려 놓은 판은 다시 흐트러지지 않았고 그녀는 의도적으로 형성된 마군 안쪽에 완벽히 갇혔다. 이대로라면 스퍼트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마군에 갇혀 뒤에 머무르리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든 나간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언제라도 마군을 부술 수 있도록, 그리고 빠져나갈 수 있도록 전신을 긴장시켰다.


모두가 자신을 마크하면 스퍼트를 하지 못하는 건 마킹하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끝까지 스퍼트를 내지 않을 수는 없다. 레이스는 엄연히 승패가 나뉘는 것이었으니까.


곧이어 하나 둘, 스퍼트를 거는 우마무스메들이 앞질러가기 시작했지만 마군을 이루는 이들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하, 그렇게 나온다는 건가.”


힘으로 부셔주겠다. 그리 내뱉은 골드 쉽이 전신에 힘을 주어, 마군 안에서 스퍼트를 걸었다.


스퍼트와 함께 골드 쉽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백에 밀린 이들이 차츰 마군을 이탈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틈라고 할만한 공간은 생기지 않았다. 정말로 끈질기고, 귀찮다.


그나마 작은 틈이 외곽 쪽에서 보였다. 골드 쉽은 그곳을 파고 들었다.


“진심으로 간다아———!!!”


기세에 눌린 바깥쪽의 우마무스메가 뒤로 쳐지면서 길이 열렸다. 그대로 마군을 빠져나오려는 찰나에, 안쪽에서 다른 우마무스메가 들어왔다.


외곽쪽으로 이동하면서 선두와의 거리가 벌어진 상태에서 안쪽에 있는 우마무스메가 그녀 쪽으로 들어오면 진로가 막히게 된다.


이대로 치고 나갈 것인가, 뒤로 물러서서 기회를 다시 볼 것인가. 골드 쉽에게 선택지를 줄 만큼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트레이너는 골드 쉽의 상황을 보았다. 마군을 부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안쪽의 우마무스메와 경합을 하고 있는 상황. 그러나 이것은 사행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태였다.


‘제발, 골드 쉽…!’


그녀라면 이것이 사행이 될지 알아 챌 수 있었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었다. 그만큼의 긴장감 속에서도 자신의 담당을 눈에서 떼질 않은 채로 바라보고, 우려하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랐다.




최종코너에 들어선 선두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난전에 가까운 상황, 골드 쉽과 안쪽의 우마무스메가 부딪쳤다.


그 순간, 골드 쉽의 몸이 흔들렸다.


얼핏 보면 중심을 잃은 것처럼 보이나 아직 중심은 잘 잡혀 있다. 충격으로 골드 쉽의 위치가 뒤로 밀려나며 속도가 줄었다.


“크. 윽…!”


약간의 변화. 그것은 레이스에서는 치명적이다. 골드 쉽은 점점 속도가 줄면서 뒤로 처지기 시작했다.


남은 거리는 3펄롱 남짓.


이대로 진다면, 그때와 같은 상황은 아닐 지라도 트레이너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 혹여나 같은 상황이 발생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녀의 집중력을 흐렸다.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뜬 골드 쉽은 그들이 잘 처리해주었기를 바라며 경기에 다시 집중했다. 사고를 다른 곳으로 돌릴 시간조차 없다.


한 번의 심호흡을 한 뒤, 다시 스퍼트를 걸었다.


땅을 박찰 때 튀는 흙을 느낄 정도로, 자신의 심장 소리가 들릴 정도로, 머리칼과 꼬리털이 어떻게 바람에 흩날리는 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해진 감각 속에서 사고가 가속한다.


자신의 근육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듯했다. 매우 과격한 움직임에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거기서 떠오른 생각.


여태껏 진심으로 달리지 않은 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항상 진심으로 달렸다. 그러나 온몸이 한계에 달할 정도로 달린 적이 있었던가? 지금껏 달리면서 레이스의 여파로 인한 영향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레이스 후에 바이탈체크를 받았을 때 건강하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건 몸이 튼튼하다는 소리이기도 했고,


“여기서 질까 보냐!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달리 말하면 이 이상으로 쥐어짜낼 수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불꽃이 타오른다. 지금껏 트레이닝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보여라. 근력을 한계까지 쥐어짜내 가속한다. 눈앞의 파랑을 지나쳐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선두를 향해 달려간다.


최종 직선, 2펄롱, 400m. 아직 앞으로 가야 한다. 거칠게 넘실대는 파랑을 정복할 때까지, 그것이 뱃사람의 목표다. 파랑을 아래에 두는 것이 그녀의 목표.


1펄롱, 200m. 이윽고 선두의 우마무스메와 골드 쉽이 1착을 향해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턱 끝까지 숨이 차올라 몸의 힘이 절로 빠져나가기 시작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녀의 모든 신경을 눈앞의 결승선으로 모았다.


마지막 파랑을 뚫고 넘어서, 잔잔한 바다에 도달한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달려간다. 골드 쉽의 다리 끝에서 피어오른 금빛의 불꽃이 궤적을 남긴다. 그녀의 항해는 결승선을 넘어설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골드 쉽!!”


순간 들려온 목소리에 시선이 이끌려간다. 스탠드 맨 앞에 서있는 자신의 트레이너가 자신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가라. 그의 입모양이 이어진 말은 그저 한마디였다.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자신을 믿어 의심치 않는 트레이너의 말에 따라주지 않으면 섭섭하겠지. 그래, 이번만큼은 그 부탁을 들어줘보도록 할까.


마지막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마지막 뒷심을 모두 끌어모아서, 영광을 실은 한 척의 선박이 되어 질주한다. 


어느 순간이었다.


커다란 함성이 이 잔디 위를 가득 채운 것은.


천천히 속도를 내려 멈춰 선 뒤, 전광판을 향해 돌아섰다.


3착, 데님 엔드 루비.


2착, 러블리 데이.


모든 사람들이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3연패다. 당연히 이토록 열광할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자신의 트레이너가 겪게 될 끔찍한 사건을 다시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안도하며 한 방울의 눈물을 흘렸다.


“나, 꽤나 중증이구나.”


그리 말하면서도 웃음을 숨길 수 없었다. 그녀는 무릎을 짚고 몸을 숙여 숨을 골랐다.


그리고 헤드기어를 착용하던 평소였다면 볼에 달라붙지 않았을 머리카락을 떼어내고 몸을 스탠드 쪽으로 돌아서서 손가락 3개를 핀 채로 손을 들어올렸다.


1착,


세 번의 제패가 타카라즈카 기념에서, 그 한 명의 우마무스메에 의해 이루어졌다.


골드 쉽.


그녀가 들어올린 손가락 3개의 의미란 그런 것이다.


“고마워, 트레이너.”




원래 2편으로 끝내려고 했는데 쓰다보니까 왜 3편이 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