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 그런 생각을 해봤어. 내가 글에 얽매이지 않는 삶 말이야. 아니. 그러니까 글이 내게 얽매이지 않는 삶. 난 분명 글을 쓰는 게 좋아서 이 일을 시작했어. 누군가 봐주길 봐랬지. 단 1명.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1명. 그런데 그 사람은 내가 수백 번을 말해도 절대 내 글을 봐주지 않더라고. 내가 이 일에 관해서 단 1번도 그 사람에게 솔직한 적은 없었지만. 뭐. 그래. 옛날에는 나도 그게 최선인 줄 알았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학교 따위에 시간 낭비 안 했을텐데. 웃긴 게 뭔지 알아? 내가 중학교 때 과학 선생님이 내게 말씀하셨지. 넌 문과 체질이라고. 글 자체든 글과 관련된 다른 직종이든 난 돈과는 거리가 멀 거라고 생각하고 '네. 그럴지도요.' 하고 한 귀로 흘렸어. 내가 가장 후회하는 일 중 하나야. 하나는 내가 잃은 것들. 실은 내 후회 중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하지만 어쨋든 간에 그 말을 무시하지 말았어야 했어. 과학 선생님은 내 마음 속 가장 내밀한 욕망을 꿰뚫어봤던 거였는데. 난 그냥 시험 점수에 매달렸다고. 내가 뭘 잃어가는지도 모른 채. 


그게 가장 끔찍해. 내가 하는 일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판별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거. 게임에서는 선택지가 여러 개인 데다가 내가 시간만 들이면 각각의 결과를 모두 확인할 수 있지. 아주 선명하게. 현실은 아니야.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반드시 어느 부분에서는 후회하게 되고 끊임없이 다른 선택지가 제 꼬리를 쫓는 멍청한 개과 동물처럼 뇌리를 맴돌아.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인 걸 분명 알고 있는데도.


그래도 난 글이 좋아. 지금도 쓰고 있잖아. 심지어 꿈 속에서도 쓰지. 온갖 편집증적인 망상. 주위로부터 무관심과 경멸 섞인 혐오만을 받는 내 상상력의 산물. 내게는 해안가를 이루는 모래보다도 더 많은 글감이 있어. 아이디어. 여기서 그 모든 것을 빠짐없이 써보고자 했지. 프레스기처럼 나를 짓누르는 현실에서 이 잉여 학문이 내가 누운 차갑고 단단한 강철 바닥에 구멍을 뚫어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그런데 이걸 100번쯤 반복하다 보니 그냥 강철 바닥이 하나 더 생겼더라고. 이제 현실과 나 스스로가 만들어낸 상상력이 양쪽에서 날 압사시키려 들어. 그게 내가 글을 잠시 멈췄던 이유야. 내 사랑.


젠장. 난 숨쉴 곳이 필요하다고. 땅 속에서 흙 퍼먹고 사는 지렁이도 숨은 쉬고 사는데 나라고 못 할 건 없잖아? 내 방은 텅 비었지만 실은 '아무것도 없는 것' 으로 가득차 있고 또 내가 잃은 것들이 시체가 썩을 때 나는 지독한 암모니아 냄새처럼 방을 빈틈없이 메우고 있지. 그래서 내 방은 1차원의 선으로, 즉 연속체로 압축할 수 있어. 내가 잃은 것과 네가 양 끝을 받치고 있고 난 항상 그 연속체상의 어딘가에 존재해. 갈팡질팡. 있잖아. 난 그 냄새를 기억해. 방금 막 죽은 시체가 전문적이고 사무적인 손길로 하얀 매트리스에 싸여 병원 지하로 옮겨져 엄청난 양의 캐비닛이 벽에 줄지어 늘어서 있고 중앙에 암청색 침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 벽 1면이 통쨰로 투명 유리로 된 시체 처리실에 놓여져 불에 타기 전 마지막 보존 작업을 할 때 나는 냄새를. 장례는 1주일이 걸리지. 계속해서 조문객을 받는 지루한 나날. 조문객이 깡패라서 지루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나무로 된 관에 편안하게 누워서 그 단단한 뚜껑 너머로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꿈에도 알지 못할 거야. 왜냐면 시체 처리실에서 하는 일이란 바로 그런 거거든. 사라지는 이의 마지막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방부제로 보존 처리하는 거. 투명 유리로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거지. 시체 냄새는 당연히 안 났지만. 그래. 라벤더 향이 났어. 병원 앞 화장품 가게에서 일부러 제일 싼 화장품을 방금 전에 사서 뿌린 듯한 조롱 섞인 냄새. 그 다음에는 상한 우유를 문지른 비단 같은 향기가 났고. 마침내 시체를 목도하니 그 모든 냄새가 한데 뒤섞여 달콤한 폭력의 향기로 변했어.


영화로만 봐서 몰랐는대. 시체에 아직 피가 덜 말랐더라고. 이건 내 착각일까?


이 모든 과정이 이해할 수가 없었어.


지금까지도 그래. 내가 여기서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보통 사람. 정상적인 사람. 정신이 전형적인 형태를 취하고 신경 회로가 다분히 안정되어 있는 사람은 여기서 무엇을 어떻게 이해할까?


불가해.


내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 날의 침대에서 눈 깜짝할 새에 시체 처리실로 갔다가 다음 순간 갑자기 장례식장에서 주인 노릇을 하다가 어느 순간 화로에 도착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너는 알고 있니? 


난 너를 쭉 찾고 있어. 


도와줘.


고통스러워.


내게 아이디어를 줘. 글을 쓸 수 있게.


이제 잘 시간이야. 내 사랑. 사랑해.


좋은 꿈 꾸길 바라.


이해할 수 있는 꿈을 꾸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