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 2063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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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3일, 거리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피어올랐다. 번화가마다 홀로그램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짝이고, 상점가는 진짜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공짜로 줘도 안가지는) 상품을 싸게 팔고 있었다. 그리고, 서울동물원으로 향하던 지원은 준용에게 일렀다.


“이런 식으로 외출하는 건 처음이지? 신나게 즐겨. 앞으로는 그러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네, 그럴게요.”


무뚝뚝한 얼굴로 창 밖을 바라보던 준용이었지만, 지원은 그가 사실은 매우 기대하고 있음을 진작 눈치채고 있었다.


“기대하는 건 좋지만, 너무 기대하진 마. 그러다 실망할지도 몰라.”


준용은 깜짝 놀랐는지 움찔하더니 이내 투덜거렸다.


“누, 누가 기대했다는 거예요? 그냥 이렇게 밖에 나온 게 오랜만이라 신기했을 뿐이라고요.”


지원은 운전에 집중하면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


‘거짓말을 못하는구나~ 이렇게만 보면 재벌가 아이라고는 상상도 못하겠단 말이지.’

“다 도착했어. 준비해.”


차에서 내리자, 먼저 조 씨의 차를 타고 온 레나가 손을 흔들었다.


“언니~! 여기예요!”


지원이 그쪽으로 가자 알리사와 조 씨, 파트마까지 같이 있었다. 조 씨가 말했다.


“왔어? 애도 데려왔네?”


준용이 고개를 숙이자, 파트마는 그걸 보며 말했다.


“어머~ 귀여워라. 이 애가 지난번에 당신이 말한 그 애야?”


“그래, 도련님이지. 그래도 밖에선 이 이야기는 하지 마.”


지원이 물었다.


“인호는?”


“여자친구랑 같이 있어. 우릴 보여주긴 좀 그렇겠지.”


“그렇겠지. 그보다 말이야… 이렇게 넷이 모여 있으니까 뭐랄까… 동호회 모임 같지 않아?”


순간적으로 정적이 흘렀다. 레나는 무슨 소리 하냐는 듯한 표정이었고, 알리사는 아예 이해를 못한 얼굴이었으며 준용은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조 씨와 파트마가 배를 잡고 깔깔거렸다. 지원은 그제야 두 사람의 나이를 실감했다.


“미세스 리 생각보다 웃긴 사람이었네? 우리 먼저 들어갈 게, 애도 나한테 맡겨.”


“고맙기는 한데, 어째서?”


“그 남자랑 돌아다닐 때 애까지 신경쓰면 힘들어. 오늘만 맡겨.”


“이야기 들었지? 오늘은 저 사람들이랑 같이 돌아다녀. 보고 싶다고 울면 안 된다?”


준용은 지원의 장난이 싫다는 듯 표정을 구기며 투덜거렸다.


“애도 아니고 뭘 울어요.”


그러면서 조 씨에게 붙었다. 조 씨가 모두를 데리고 메표소를 지난 직후, 차 한 대가 주차장에 서더니 익숙한 남자와 익숙한 소년, 그리고 소년과 남자를 모두 닮은 여자가 내렸다. 가장 먼저 남자가 지원을 알아보고 다가왔다.


“먼저 와 있었구나? 잘 지냈어?”


“당연하지. 저 여자가… 동생?”


여자는 지원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혁이 엄마예요. 저희 혁이를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요, 구해준 건 당신 오빠죠. 저는 도와줬을 뿐이니까요.”


그리고 소년이 다가와 감사를 표했다.


“구해주셔서 고마워요.”


“건강해 보이니까 다행이네. 몸은 좀 괜찮니?”


“네, 괜찮아요.”


수화가 말했다.


“이제 가자. 구경해야지.”


소년이 물었다.


“근데요, 삼촌이랑 어떤 사이예요? 여자친구?”


천진난만한 발언에 수화는 깜짝 놀랐고, 지원은 옅게 미소만 지었다.


“글쎄? 어떤 사이일까? 마음대로 생각하렴.”


소년은 그의 어머니가 데려가고, 지원은 수화와 함께 동물원에 들어왔다. 쌀쌀한 바깥과 달리 따스한 동물원 내부로 들어오기가 무섭게 두 사람 앞에 홍학들이 나타났다. 지원이 말했다.


“저게 홍학이구나. 뭔가 실제로 보니 신기한 걸? 어차피 기계겠지만.”


“아무리 동물원이라 해도 멸종한 동물을 전시할 수는 없잖아. 애초에 새는 조류독감 때문에 거의 전멸이고.”


지원은 홍학 무리 뒤편을 가리켰다.


“뒤편에 저거 기린이지? 저쪽으로 가보자.”


기린도, 얼룩말도, 모두 살아있는 생명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원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대충은 알고 왔지만… 실망이 크단 말이야. 이럴거면 동물원이라고 이름 붙이지 말던가.”


난간 옆의 홀로그램 표지를 읽던 수화는 사육장 한쪽을 가리켰다.


“그래도 저 녀석은 진짜야. 저기 달려오는 저거.”


모래밭을 도도도 달려오는 자그마한 형체에 관람객들 모두가 탄성을 내뱉었다. 한쪽에서 단체관람객들을 이끌던 이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이 귀여운 아이가 아프리카 1관 동물사의 유일한 ‘진짜 동물’인 사막여우랍니다.”


자신이 주목받고 있다는 걸 아는지 요염하게 걸으며 귀여운 짓을 하는 사막여우에 많은 관람객들이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중에 지원도 있었다.


“저렇게 귀여운 생물이 있을 줄이야… 역시 실물로 보는 게 최고라니까.”


수화는 사막여우에 푹 빠진 지원이 더 귀엽다는 듯 바라보더니 슬쩍 가까이 붙어서 손을 살짝 뻗었다. 손과 손이 맞닿았지만 지원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잠시 후, 사막여우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자 그제야 지원은 몸을 일으켰다. 이미 엄청 행복한 표정이었다.


“너무 귀여워서 정신없이 보느라 사진을 찍었는지도 생각이 안나~ 이제 어디로 가볼까?”


“대동물관으로 가자. 기억이 맞으면 들소는 진짜일 거야.”


“좋아. 가보자.”


드넓은 대동물관에는 평원을 거닐던 대형 짐승들이 돌아다녔다. 하지만 코뿔소도, 코끼리도, 물소도 모두 살아서 숨을 쉬지는 않았다. 지원은 살아있는 전차와도 같은 전기 코뿔소를 바라보았다.


“유니콘이 따로 있을 까? 저게 유니콘이지. 말목에, 뿔이 있잖아?”


“그렇다면 유니콘은 멸종된거지. 코뿔소가 멸종된지 20년이 지났으니까.”


뒤이어 코끼리가 특유의 울음소리를 냈다.


“어렸을 때 여기 왔다면 기계가 아니라 살아있는 홍학, 코뿔소, 코끼리를 볼 수 있었을 까?”


“와본 적 없어?”


“아버지는 전쟁 PTSD 때문에 이런 곳에 못 오시거든. 운전도 못하고. 이해는 하지만… 어릴 적 추억이 많이 없는 건 아쉽지.”


수화는 착잡한 얼굴로 지원을 바라보더니 이내 자연스럽게 손목을 잡았다.


“진짜 동물 보러 가자! 동물원의 자랑거리야!”


수화의 손에 이끌려 들어간 곳은 가축관이었다. 입구에서부터 ‘살아있는 실제 가축’이라는 표지가 둥둥 떠 있었고 많은 사람들, 특히 중년 부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들락날락거리고 있었다. 문턱을 넘는 순간, 무어라 형용하기 힘든 냄새가 풀풀 풍겼다. 눈 앞의 안내문은 이것이 소똥 냄새라고 설명했지만, 그것이 냄새를 막아주지는 못했다. 지원은 코를 부여잡고 유리벽 너머에서 입을 끊임없이 우물거리는 황소를 바라보았다.


“저게 진짜 살아있는 소라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걸 봐선 맞는 모양이네.”


소는 그 특유의 똘망똘망한 눈으로 유리벽을 바라보더니 ‘음매~’하고 울었다. 그 모습에 지원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냄새가 나는것도 잊은 채 그것을 바라보았다.


“와… tv에서나 보던 광경인데, 진짜 저렇게 우는 구나.”


“나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야. 건초 씹어 먹는 것도 말이지.”


소에 이어 돼지, 닭, 염소를 지나 둘은 양들을 보게 되었다. 누런빛을 띄는 하얀 털을 가진 양들은 ‘메에에~’하고 울며 평화롭게 돌아다녔다.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던 지원은 대뜸 말했다.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을 꿈꿀까?”


“무슨 소리야?”


“그냥 소설 제목이야. 고등학생 때 읽었거든.”


“난 책이랑은 담 쌓고 지내서… 진급시험 때나 봤지.”


“순경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나 봐?”


수화가 당황하자, 지원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장난이야~ 그보다도 넌 어떻게 생각해? 안드로이드는 무언가 꿈을 꿀 수 있을까?”


“글쎄… 너무 어려운 질문 아니야? 굳이 내 생각을 말하자면 난 못 꾼다고 생각해. 안드로이드의 뇌는 아직도 일반 인공지능이잖아? 그건 스스로 생각을 못 한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 강인공지능을 두뇌화 시킬 수 있으면 모를까… 하지만 그러려면 아직 멀었겠지.”


“자, 어려운 이야기는 이쯤 하고 구경이나 더 하자!”


수화와 함께 다른 곳으로 향하던 지원은 인파 사이에서 얼핏 알리사를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내 동물원을 돌며 동물을 구경하는 동안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자, 수화는 지원을 어딘가로 데려갔다.


“동물원 닫을 시간 아냐? 어디로 데려가는 건데?”


“내가 아는 좋은 장소.”


마침내 탁 트인 공간에 도착하자, 지원은 눈 앞에 가까운 서울랜드의 전경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서울랜드는 80년에 달하는 세월동안 그 자리에 있었고, 앞으로도 쭉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았다.


“멋지네. 이런 곳이 있었단 말이야?”


“동생이 연애할 때 매부가 알려줬어. 이리로 와.”


둘은 난간에 기댄 채 서울랜드를 바라보았다. 서울랜드의 빛 너머로 서울의 화려한 홀로그램 광고판이 하늘을 뚫을 듯 솟아올라 있었다.


“여기서 이렇게 서울을 보면 정말 아름다운 도시란 게 실감나.”


“하지만 실상은 정 반대지. 어둡고 더러운, 시체로 가득 찬 도시니까.”


“하지만 그런 곳에서 경찰로 일했잖아. 그것도 형사로.”


“힘들었어. 조폭이건, 일반 범죄자건, 가끔 광인이라도 튀어나오면 내 부하들이 속수무책으로 죽는 걸 봐야 했지.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이 애꿎은 우리를 욕하는 것도, 끔찍한 몰골로 발견된 피해자를 수습하는 것도, 기껏 잡은 범죄자가 기업의 힘으로 아무 탈 없이 빠져나가는 것도 모두 봤어. 도시는 썩었지, 마치 시체처럼 말이야.”


“그래도 서울은 나은 편이야. 적어도 조폭들이랑 싸울 수는 있으니까. 너희가 놈들의 손 발을 자른다면 우린 그 놈들의 머리카락이나 정리하는 꼴이야. 여긴 높은 사람들이 전부 야쿠자랑 놀아나고 있다고. 난 말이지… 원래 연인이 있었어. 결혼까지 약속했었는데, 야쿠자가 쏜 총에 맞고 죽었지. 그 놈은 처벌은커녕 체포조차 되지 않았어. 그날부터 나는 멍하니 살아온 거야. 그저 시간이 흐르는 데로, 몸이 가는 데로 살아왔지. 그러다 어느 순간 또 야쿠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건드렸고, 네가 나타났어. 그리고, 난 알게 된거야.”


수화는 몸을 완전히 돌려 지원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서울랜드가 크리스마스를 알리듯 폭죽을 터뜨리는 순간, 수화는 두 손을 뻗어 지원의 손을 잡았다.


“널 정말 사랑하게 됐어. 진지하게, 나와 진지하게 사귀자. 별거 아닌 나지만 평생 온 힘을 다해 행복하게 해줄게.”


지원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가슴이 두근두근을 넘어 쿵쾅쿵쾅 뛰고 있었고, 호흡을 가다듬으려 해도 그럴 수 없었다. 이런 강한 감정을, 지원은 근 10년 만에 다시 느끼고 있었기에 몹시 부끄러워하면서도 결단에 찬 수화의 눈만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길 수십여 초, 지원은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흘리다 이내 훌쩍이더니 급기야 엉엉 울기 시작했다. 당황한 수화는 그 자리에 쪼그려 앉은 지원에게 시선을 맞췄다.


“왜, 왜 그래? 싫었어?”


지원은 눈을 비비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야… 정말 기뻤어. 고마웠다고…! 그런데, 그런데…! 미안해. 난… 난 네 고백을 받아줄 수가 없어. 그게 너무 미안해서 나도 모르게 그만…!”


“대체 어째서?! 내 비전이 없어서 그래? 아니면 네 직업 때문이야? 대체 뭐 때문에…”


“난… 난 결혼한 몸이야. 남편이 있는 사람이니까! 네 고백에 가슴이 두근거려도… 널 사랑할 수는 없어.”


수화는 그제야 수긍한 듯 풀썩 주저 앉았다.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이 유부녀라… 선구안이 나쁜 사람이네, 나는.”


지원도 마음을 추스리고는 그 옆에 앉았다.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도… 네 고백을 받기는 힘들었을 지도 몰라. 난 용병이니까. 그리고 곧 위험한 의뢰를 수행해야 하니까. 너에게 또 다시 아픔을 줄 수는 없어.”


수화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 안타깝네.”


지원은 조용히 수화를 안아주었다.


“정말 미안해. 이건… 내가 다른 남자한테 해줄 수 있는 최선이야. 또 문제가 생긴다면… 망설이지 말고 연락해 줘. 바로 달려갈 테니까.”


지원은 먼저 일어나 왔던 길로 내려갔다. 수화는 가만히 앉아 지원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며 마지막 온기를 느끼면서 흐느꼈고, 지원 역시 일행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어느덧 주차장으로 내려왔을 땐, 모두 그곳에 있었다. 조 씨가 물었다.


“그 경찰은?”


지원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먼저 갔어. 우리도 이제 돌아가자. 꼬마는?”


“여기 있어요.”


준용은 다시 지원에게 돌아갔다.


“재밌게 놀았어?”


“네. 진짜와 가짜가 섞여 있긴 해도 살아 움직이는 동물을 본 건 처음이니까요.”


지원은 미소를 지었다.


“즐겁게 놀았으면 됐어. 우리 먼저 갈 게, 내일 15시까지 LAD, 맞지?”


“그래. 늦지 말고 그 애까지 데려와.”


지원이 떠나자, 파트마가 말했다.


“당신이 그때 진작 결혼했으면 저 만한 애가 있었을 건데.”


조 씨는 괜히 웃다가 말했다.


“그나저나 저 애 말이야, 미세스 리랑 경찰이랑 있는 거 봤을 때 표정 기억 나? 애가 무슨 막장 드라마에서 주인공 질투하는 악역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니까?”


“기억나고 말고. 지원 씨도 보기보다 참 마성의 여자라니까. 남편에, 그 경찰에, 애까지. 자기 좋다는 남자가 셋이나 있잖아.”


“미세스 리는 일편단심 미스터 최만 보고 있긴 하지만. 애가 같은 집의 미세스 리를 좋아한다… 뭐, 그건 그쪽에서 알아서 하겠지. 레나랑 알리사는?”


“이미 차에서 자고 있잖아.”


“아, 그렇지? 우리도 집에 가자. 일이 바쁘잖아.”


조 씨의 자동차도 도로를 따라 여전히 밝게 빛나는 서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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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부터 다시 메인 스토리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