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배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요?"

"이 강 건너로 가지요."

"이 강 건너에는 무엇이 있는 거요?"

"알고 타신 게 아니오?"

"그야, 쫓겨서 도망치다 엉겁결에 올라탔으니 잘은 모르지요."

"사실, 나도 잘 몰라요. 나는 이 나룻배에서 내려본 것이 벌써…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 일이군. 십년? 이십년? 아니, 아무래도 난 평생 이 배에서 지냈던 것 같은데..."

"그렇습니까? 그럼 제가 내릴 때 한번 같이 내리시지요. 사람은 땅을 밟고 살아야지. 우린 물고기는 아니고, 물귀신은 더더욱 아니잖소. 허허."

"난 갈 곳도 없소. 그저… 흐르는 대로… 바람 부는 곳으로…"

"아니, 나라고 어디 갈 곳이야 딱히 정해졌나. 제 말은, 일단 내려서 술이라도 한잔씩 걸치자는 거지요."

"말씀은 고맙지만, 물이 그곳으로 흐른다면 몰라도, 나는 사양하겠소."

"왜, 당신은 고향도 없는거요? 어째서 땅이 그립지 않소?"

"그립지 않다면야,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도무지 이곳에서 내릴 수 없소."

"그럼, 그게 당신이 나를 태운 이유로군. 누군가 당신을 억지로라도 끌고 내려주길 남몰래 바라고 있었던 게야. 틀렸소? 사람 보는 눈은 있으시구만. 이게 운명이란 게지. 자, 이번에 강둑에 배가 닿으면 당신은 나와 내리는 거요. 알겠소? 크게 한 턱 내지요. 왜 말이 없소?"

“고맙지만, 그러지 않으셔도 이 생활에 아주 만족하고 있소. 늙은이는 내버려 두시지요.”

“이건 권유하는 게 아니오.”

“아, 그럼 당신이 날 잡으러 온 게로군. 아니, 아까는 뭐에 쫓기고 있었던 거요?”

“알 거 없소.”

“그렇구만.”

“그건 그렇고… 이런 곳에서 뱃사공이나 하고 있자면 아무도 못 찾겠군. 이런 첩첩산중이라니. 찾는데 정말 애먹었소, 영감. 이런 곳은 어떻게 찾아 들어온 거요?”

“허허, 그러게나 말이오. 정말 용케도 잘 찾아오셨소... 정말 용해! 허허... “

“그러게, 친구는 가려서 사귀었어야지, 쯧쯧.”

“그놈이 결국 나를 팔아 먹었구만 그래. 그럴 줄 알았소. 차라리 잘 된 일이오. 그럼 이걸로 빚은 다 갚은 거겠지요.”

“그래, 내가 관상을 조금 보는데, 그놈 눈 찢어진 것이 영 믿을 만한 것은 못 되었소... 어쨌건 영감, 돌아가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스스로가 잘 알고 있겠군. 허튼 짓은 안하는 게 좋을 듯 하겠소. 아무렴 내가 두번을 놓칠까...”

“허허…”

“그러니 죄 짓고 살면 안된다는 거요. 이제 그게 무슨 말인지 감이 좀 잡히겠소?”

“그래, 그래. 아주 잘 알겠소! 모두가 내 죽길 바라는 것을 내 모르는 바가 아니오. 나 역시 간절히 나의 죽음을 바라는 이들 중 하나란 말이오. 그러나… 그러나, 내가 이 나의 죽음을 미뤄둔 이유는… 그래, 내가 나의 죽음을 바라고 있다는 것이 바로 내가 집행일을 미루고 있는 까닭이요. 나는 나의 죄와 그 추악함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소. 따라서 내가 나의 사형을 집행하게 될 때에는, 내가 떠올릴 수 있는 한, 나 스스로에게 가장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오. 나는 비참한 모습으로는 죽고 싶지 않소. 해서, 나는 나 스스로의 사형 집행일을 하루하루 미루어두고만 있었던 거요. 당신은 잘 모르겠네만, 자신의 죽음을 곧잘 떠올리곤 하는 인간의 기저에는 바로 이런 심리가 깔려 있는 거요. 추악한 자신을 단죄하려는, 내면 깊은 곳에서 살아남은, 찢어발겨진 선한 본성의 검붉은 흔적이지. 자신을 발가벗기고는 사지를 떼어내고 조각내고 보잘것 없는 못난 몸뚱아리만을 남겨선 머리를 박박 깎아내고 온 몸의 털을 밀고 눈썹까지 밀어내어 더욱더 발가벗겨진 그것을 시궁창 돼지우리에 던져 구더기가 파먹게 하려는 강렬한 염원이기도 하고. 그런 열망이 우리로 하여금 새빨갛게 불타오르는 까마득한 지옥 속으로 걸어들어가도록 하는 것이오…”

“훌륭한 연설이로군! 박수라도 쳐 드리면 만족하시겠소? 하지만 나 말고는 다른 이도 없으니, 이거야 원, 박수 받을 맛이 나겠소?“

“이담에 혹 내 친구놈 보게 될 일 있으면 꼭 좀 전해주시오. 더러운 놈, 잘 먹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라고.”

“영감, 뭐하는 거요? 허튼 짓은 하지 말라… 이런, 뛰어 내리셨군. 그것도 돌덩이를 매달고선… 노인네 사형 집행일은 아직 멀었는데 뭣하러 저리 서두르시나… 그나저나, 도대체 저을 노 하나 없이 우리는 이 강을 어떻게 건너고 있었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