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야, 돼김볶, 떡만두죽. 


 군대를 다녀온 대한민국 남성들이라면 이게 뭘 말하는 건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으면서도 기본적인 맛은 보장해서, 결식을 밥 먹듯이 하는 말년병장들도 밥숟갈 들고 내려오게 만든다는 마성의 메뉴들이었다.


 반대로 똥국, 명순조, 조기튀김.


 이것들은 뭐 어떻게 사람 입에 들어갈 수 있게 온갖 잔재주를 부려봐도 만든 양의 절반 이상이 그대로 짬통으로 들어가는, 어찌 보면 참 다른 의미에서 대단한 메뉴들이었다.


 한가지 예로, 아침 메뉴로 밥과 김치에 더해 대충 감자채볶음이나 진미채무침이 나오고 나머지 반찬도 똥국에 맛김인 날이라면 상황은 항상 같았다.


 본부에서 따로 떨어져 나와 생활하는 영외중대 특성상 구시대의 부조리가 살아 숨 쉬던 우리 부대에선, 억지로 밥과 반찬을 꾸역꾸역 떠넘기는 일이등병과 보급라면부터 시작해서 빅팜, 맛다시 같은 걸 챙겨와 끼니를 해결하는 상병장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군대에 들어오기 전에는 어떤 집안에서 어떤 신분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왔든 간에, 병사로 들어온 이들 대부분은 당장 밥 먹을 때 식판으로 떨어지는 고기 한두 조각과 소시지 한두 개 차이에 입꼬리가 오르내리는 곳이 군대였던 것이었다.


 하물며 내가 조리삽을 잡고 있을 때에는 휴대폰 사용은커녕 활동복의 복식마저 짬에 따라 나누어지던 시절이었으니, 먹는 즐거움이 가지는 의의는 더 설명해봐야 입만 아팠다.


 나는 군생활을 하는 동안 각각 500인분, 200인분, 30인분에 해당하는 음식을 조리한 경험이 있었는데, 이것이 운이 좋았는지 나빴는지에 대한 여부는 일단 제쳐두고 얘기해 보자면, 소위 말하는 맛없는 짬밥에 대해선 우리 취사병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어차피 다 같이 끌려온 입장에서 우리라고 같은 병사들에게 맛없는 밥 먹이고 싶겠는가.


 일단 왜 짬밥이 맛없는가 하면, 취사병 개개인의 숙련도야 진짜 병신이 아닌 이상 반년 정도 돌리면 어떻게든 사람이 목구멍으로 넘길 정도의 음식은 만들 수 있게 됐다.

 문제는 한정된 조리 시간과 음식의 양.


 특히 음식의 양은 식수 인원이 늘어날수록 그것에 정비례하여 같이 늘어나므로, 간 맞추기나 조리법 면에서 어느 정도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다.


 김치볶음밥인데 김치덮밥이 되어 나오고, 대부분의 볶음요리는 재료를 끝까지 볶는 것이 아닌 물을 채워 끓이는 바람에 맛이나 식감이 엉망이 되고, 튀김은 급하게 던져 넣다 보니 내용물끼리 뭉치고 덜 익는 상황이 속출했다.


 반대로 식수 인원이 줄어들수록 병사들 입에 들어가는 짬밥의 질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볶음이나 튀김요리의 조리법이 일신되는 것은 물론 음식의 간을 맞추는 것도 상대적으로 수월했고, 욕심만 좀 낸다면 계란후라이나 볶음밥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식수인원이 1개 소대 수준으로 줄어드는 방공진지나 GP 취사가 되면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빵식을 이용한 프렌치토스트, 기름에 지진 불고기 패티, 양념에 재워둔 불고기나 제육볶음이 식탁에 올라갔다.


 물론 보급되는 원자재나 조미료의 수준이 군납품을 벗어나지 못하는 만큼 짬밥 신세를 면하긴 어려웠지만, 우리들 취사병도 여건만 된다면 장병들의 사기 증진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매뉴얼에도 적혀있지 않은 취사병 개개인의 노력이 배신당했을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돌아오는지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 보고자 한다.


 내가 방공진지에서 취사를 하던 무렵, 우리 진지에선 같은 재료를 사용한다는 전제하에 취사병 재량으로 짬밥 메뉴를 변경하는 것을 용인해 주던 관습이 있었다.


 당연히 나는 그날 중식 메뉴였던 찜닭보다 장병들의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양념치킨을 만들어 반찬으로 냈고, 병사와 간부 가릴 것 없이 맛있게 잘 먹었다는 소리를 듣고 기분 좋게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였다.


 “OOO병장님, 진지장님이 찾으십니다.”


 중대 후임인 김일병이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찾았고, 그 말대로 진지장 개인실을 찾아가니, 당시 진지장이었던 최중위님께선 짐짓 근엄한 목소리로 나를 꾸짖었다.


 “너, 누가 멋대로 중식 메뉴 바꾸라고 했어.”
“죄송합니다.”


 느닷없이 FM을 들고 온 최중위를 두고, 내가 취할 태도는 무조건적인 사과였다.


  아무리 관습이란 이름 하에 묵인된 행위였다 해도, 간부가 각 잡고 털기 시작하면 병사입장에선 할 말이 없는 게 사실이었다.


 하물며 당시 상말이었던 나는 중대 간부 누구가 어디 출신에 어떤 성향인지 정도는 다 꿰고 있는 상태였고, 최중위는 평소 나와 동향 출신이라고 친한 척하며 남는 간식 삥땅치고 라면 심부름이나 시키는 주제에, 자기 기분 나쁘면 FM부터 들고 오는 싸이코였다.


 “됐고, 네가 잘못한 거 알고 있으면 오늘 저녁점호 전까지 진술서 써와.”
“네, 알겠습니다.”


 그러니 나는 최중위의 말에 토를 달지 않고 얌전히 자필로 진술서를 써서 갖다 바쳤었다.


 근데 그 인간은 그걸 알고 있을까.


 그때 그 일이 있고 다음 주에 당직설 때 끓여다 준 라면에 아주 특별한 조미료가 들어간 사실을.
 
갓 싸제낀 따끈따끈한 내 오줌이 들어간 라면은 맛있게 잘 드셨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