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수필인가 정보인가.


실험 논문은 어떤 구조로 이루어지는가:

-제목

-저자와 소속

-초록

-키워드

-서론

-실험방법

-결과 및 고찰

-결론

-사사(감사의 글)

-참고문헌


제목이야 말할것도 없고, 저자와 소속은 곧 논문의 권위를 압축하며, 초록에서 이 논문 전체를 간략히 소개하고, 키워드는 일종의 색인이자 초록의 보다 압축된 것이다.

여기까지를 논문의 헤드라인이라 하자.

다름으로 서론이 있는데, 논문을 써본 사람 모두가 공감하는 한가지는, 논문 작성에 있어 가장 어려운것이 서론이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말해보자.

여기서 부터 조금 갈린다.

많은 경우, 실험방법이 먼저 나오지만, 경우에따라 실험방법이 결론 뒤로 밀리는 경우도 있다. MDPI소속 저널들이 대표적이다. 여하간, 실험방법이 가장 작성하기 쉽다. 왜냐하면 그냥 일기쓰듯 딱히 머리쓸 필요 없이 내가 했던걸 나열하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거지, 본격적으로 얘기하자면: 왜곡되거나 중의적 내용 없이 명료한가, 다른 사람이 이 논문 하나만 보고도 재연 가능할정도로 충분한 정보를 담았는가, 실험 과정상에 논리적 비약이 없는가, 대체 왜 이런 절차가 필요한가 등등등 신경쓸게 한도 없다. 자, 다시 강조하지만 실험과정이 논문작성에서 가장 쉬운 파트이다.

이 뒤에 오는 결과 및 고찰. 인문학 논문에서는 이 항목을 분할하기도 하는것 같지만, 이공계에서는 같이간다. 왜냐하면 분석하나 하고, 그 결과가 어떤 메커니즘인지 설명하고, 그것을 다시 다른 방법으로 분석한 결과로 검증하고 등등등 사실상 결과와 고찰은 불가분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의 어려움이야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이 경우는 손가락과 눈이 아픈 경우일테지만.

마지막 결론은 사실 별거 없다. 결과 및 고찰만 잘 적었다면 그 최종 결론이 안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우매우매우 중요한게 바로 결론이다. 밑줄쫙 별표 따다닥. 자, 말 하는데에는 목적이 있다. 이 정보를 전달하고 싶다. 하다못해 "그냥 한번 불러봤어"라고 대답할 정도로 인과관계는 우리를 그리도 강력하게 속박한다. 그렇다면, 머리를 쥐어짜내면서, 비싼 게재료를 내면서, 살벌한 리뷰어들의 디펜스를 견디고, 이후 쏟아질 살벌한 동료평가를 각오하면서까지 논문을 쓴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세상에 뭔가 말하고 싶은게 있기 때문이다. 자, 기껏 실험하고 분석하고 그 고찰까지 다 끝냈는데 그러면 그 결론이 있어야 얻는게 있을테지. 하다못해 기존 지식체계가 틀리지 않고 기존 이론에 아주 적합한 사례를 제공한다는 의미를 내는 한이 있더라도 결론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이 수많은 논리의 금자탑의 가치를 메기는것 그것이 바로 결론이다. 그것이 이 실험으로 내가 새롭게 만들어낸 것의 소개이든, 미래가치의 창출 기반이 예상되든, 과거의 모든 이론들을 엄격하게 검증해봤더니 그것에 오류가 없었음을 증명하든.

이쯤에서 대충 넘어갔던 서론에 대해 한번 말해보자. 서론이란 이 논문의 탄생 배경을 소개하는 것이다. 자기소개가 무엇인가, 영어로는 "Let me introduce myself." 즉, 이 논문을 읽기 전 독자에게 필요한 지식을 주입 또는 상기시켜주는 역할이며, 또한 참고문헌의 90% 분량을 차지하는 파트이다. 자, 당장 구글 학술검색 들어가서 아무 논문이나 붙잡고 참고문헌을 상징하는 숫자가 분포된 구조를 한번 살펴보자. 십중팔구 거의 대부분 서론에 배치되어있고, 다른 부분에 사용되는 문헌은 몇개 없을거다. 그나마도 한두개가 논문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반복사용될 수도 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나무위키의 논문 항목 서술에 따르면, 학문의 연속성 때문이라 한다. 연구란것은 절대 혼자 똑 떨어지는 경우가 없다. 반드시 선현의 가르침이 있을테고, 이 연구가 수행된 배경이 존재한다. 뉴턴의 운동 3원칙 이래, 모든 물리학은 결국 F=ma의 무한 반복이다. 아무 물리학 논문이나 붙잡고 참고문헌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결국 뉴턴의 프린키피아로 이어진다. 그것이 학문이라는 것이다. 즉, 서론과 레퍼런스의 탄탄함은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가 아니며, 재야학자라고 포장한 유사과학자도 아니고, 제도권 과학과 정설, 이성에 입각한 건전한 연구자이며 당신과 나는 말이 통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소개하는 자리인 것이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첫인상을 강조하는지 생각하면 된다. 즉, 서론이란 논문이라는 사람의 외모인 것이며, 외모지상주의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서론은 쓰기 매우 귀찮다. 사실 서론은 지식적으로 어렵진 않다. 걍 이 분야 대표논문(인용수 100회 이상), 다른 서론에서 많이 쓰인 논문 그런거 참고하면 쉽다. 근데, 달리 말하자면, 이 논문을 쓰기 위해서 내가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을 사람들에게 낯낯이 까발리는 격이다. 대학원 레포트를 광장 게시판에 이름공개해서 붙인다는거다. 즉, 공부를 한만큼 티가나는게 바로 서론이란말이다. 이러니 어렵지 않을리가 있나.

이 뒤로오는 사사(감사의 글)은 어려울거 없다. 이 부분만큼은 걍 선배의, 연구 책임자의 그 문구를 긁어오면 된다. 왜냐하면 나한테 돈준사람에게 공을 돌리는 그저 형식적인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식적이지만 없어서는 안된다. 만일 감사의 글을 빼먹는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방금 회사돈을 횡령하여 당신의 개인적인 목적에 사용한 것이다. 사사란 그런것이다.

참고문헌, 이쯤돼면 자연스럽게 쌓인것이니 어려울건 없다. 그러나 서론보다 더 귀찮은게 바로 참고문헌 형식 맞추기다. 빌어먹을 그놈의 유니크한 형식들. 대체 왜 이름과 성을 뒤집는가, 약자를 쓸거면 통일을 해라. 아니, 미들네임을 넣기도하고 빼기도하고, 저널 약어는 왜 제멋대로 만들었으면서, 현대 인터넷의 치트키와도 같은 DOI를 왜 빼먹는단 말인가! 그리고, 숫자 순서맞추기 작업은 그야말로 #@#$$#@%!2#!.

그렇다 논문이란 그런것이다.

아, 만약 당신이 아인슈타인이나, 존 폰 노이만같은 사람이라면 지금까지 이것들 싹 다 무시하고 맘대로 써서 제출해도 된다. 그러면 그쪽 사람들이 알아서 형식 다 맞춰줄거다.


누가 내 논문좀 대신좀 써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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