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멍청하게 디스코드 화면이나 보고 있었다. 이유가 뭘까 그냥 할 것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기엔 변명이 되지 않았다. 난 손만 뻗으면 내 인생에 도움이 될 수많은 책들이 있었다. 그 중 일부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와 무기여 잘 있어라 그리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같은 문학이었고, 또 어떤 것은 따기로 하고 1년째 고민 중인 운전면허 자격증 시험 책이었다. 그리고 10년 전에 읽고 봉해둔 빨간색 색깔에 아기자기한 외형의 ABC 영어 사전이 있었고 왜 있는지 모를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100가지를 적어둔 두꺼운 책이 하나 있었다.


난 그냥 내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새하얀 화면을 7시간 가까이 쳐다보며 의미 없이 손가락을 까닥이고 중독성 있지만 들으면 멍청해지는 노래를 들으며 수분기 가득하던 또렷한 눈동자를 매 말려버린 다음 그 뒤에 숨은 뇌를 콜라를 홀짝임으로써 카페인으로 절이고 있었다. 


그 모든 행동에 이유는 없었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걸까 궁금했다. 예전에 휴대폰으로 자기 계발을 위한 질타를 녹음한 7분짜리 영상 7개를 본 적이 있었다. 수염을 기른 유명인과 젊고 키가 크며 이상하게 생긴 유명인들 그 많고 다양한 사람들과 한결같이 답답한 화면 속에 목소리를 낮게 깐 해설이 진중한 분위기로 우리를 일갈하고 가르쳐서 또 어떻게든 하려고 했다. 


동기부여는 확실했고 나는 그때 눈물을 흘렸다. 난 그들의 말처럼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바로 30초나 혹은 1분의 짧은 영상이 녹음된 재미나 교훈도 심지어는 어떤 유익한 내용도 없지만, 시간은 확실하게 증발하는 쓰레기를 수백 가지를 봤다. 그리고 같은 가수가 부른 노래 개수를 따지자면 겨우 10개 내외엔 다양하지 않은 노래를 들었다. 난 인생을 버리고 있었다. 그건 확실히 알았다. 하지만 그 이유는 몰랐다. 


나는 간단하게 살았다. 20년을 그렇게 살았다. 그 경험에서 내가 얻은 게 뭘까? 모든 게 충족된, 안정적이고 과거라면 꿈도 못 꿀 정말 이상적인 환경에서 내가 한 것이라곤 짐승처럼 내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 뿐이었다. 20년은 결코 작은 시간이 아니며, 누군가는 그 시간에 죽었고 인간을 제외한 대부분 짐승은 10년도 살지 못했다. 난 몇개의 생명을 낭비하고 있던걸까?


난 나 자신을 위해 한 것이 없었다. 또 인류와 문명을 위하여 그리고 그들이 만든 가장 위대한 존재들인 위인들의 반열에 들기 위하여 가식적인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심지어 난 오늘의 날씨조차 몰랐다. 밖으로 나가지 않았기에 당연했다. 내 하루는 새벽에 튼 공용방송의 테스트 화면과 같았다. 심하게 지지직거리고 변하는 건 없으며 소름 돋게 짜증 나는 소리만 냈다. 나에 대한 혐오는 지극히 당연하였다.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다. 난 정말 죽으면 천국이 혹은 지옥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걸 시험해보고 싶었지만, 난 죽음을 극복할 용기조차 없었다.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내가 늙고 또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미 되었을지도 몰랐다. 나이를 먹으면서 내 행동에 다양성은 거세되고 머리는 멍청해졌다. 유년기의 나는 밝았고 또 풍부했으며 무겁고 무서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놀고 또 먹는 걸 즐겼으며 내가 생각한 그대로를 표현할 줄 알았다. 그리고 의욕이 있었다. 싫어도 무언가를 했다.


난 지금 책상에 앉아서 반쯤은 기울어지고 반쯤은 앉아있다. 또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절대 멈추지 않았다. 지금은 10시 42분 22시 42분이었다. 곧 있으면 내일이었다. 또 하루가 찾아오고 있다. 헤밍웨이는 다른 날들에 벌어지는걸 결정하는 건 오늘의 나라고 했다. 아무래도 내 삶은 변하지 않을 모양이었다. 어째서인지 난 그렇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