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에 찬 쇠스랑 소리가 찰랑거린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거대한 남자의 모습. 그는, 용사다.


  용사의 모습은 고전적인 옛 영웅의 모습 그대로이다.  호탕하고 또 소탈하지만, 부와 명예 앞에선 누구보다 잔혹하고 경우에 

따라선 무모하리만큼 무식하게 행동하는 전사의 모습. 길게 늘어뜨린 노란 수염이나, 시퍼렇게 떠 있는 벽안, 고대의 문자들을 

세겨넣은 문신, 거대한 칼...... 벽화 속에서 갖 튀어나온듯한 모습의 남자였다.


 영웅이 아닌 또 다른 남자, 궤변론자. 키가 큰 것을 뺴곤 딱히 외모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는 이 소피스트는 세치의 혀로서 위대하고 고메한 영웅을 사슬에 옭아 메는것에 성공한다. 영웅은 끝끝내 독사같은 혀를 내미는 악랄한 악당에게 끌려가는 것이었다. 최소한, 뒷 이야기를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모습을 그리 보았다.  


 쇠사슬에 끌려 나가면서도, 영웅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소피스트에게 말했다. 감당 할 수 있겠나?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손가락질할테고 곧 있으면 만신전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군사를 보내 올 것인데. 


 소피스트는 여유롭게 웃어보이며 말했다. 그것은 나의 일. 당신은 당신의 일을 마저 하시지요. 호색한인 당신이 여인 없이 몇일 밤

을 새우는거 쉬운 일 아닐테니 밤새도록 벽이나 보며 수음이나 할텐데, 이 네거리에 있는 여인내들 향취나 많이 담아두고 가시죠?


 영웅은 그의 뼈 있는 농담에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 마음껏 즐겨 두어라. 명운은 어짜피 나를 향한 것. 어짜피 나의 것으로 올 것인데 지금이라도 즐겨두어라. 그런다고 그 계집이 살아돌아 오는 것은 아니네만.


 웃음기가 싹 사라진 두 사람. 서로의 얼굴을 맹렬히 노려보며 시선을 교차한다. 어찌되었건, 용사는 소피스트가 보낸 군사들에 의해

감옥에 투옥된다. 소피스트, 혼자 말 한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보고 있지? 제시. 


 과거의 이야기. 제시는 본디 이 땅 위에 있던 도시국가의 첫번째 공주였다. 어질고 총명하였으며, 수려한 외모를 지닌 아이였다. 


 소피스트는, 저잣거리에서 흔히 돌아 다니던 아이였다. 운좋게도 저잣거리의 철학자로 유명한 스승의 질문에 재치있는 대답을 한 것  덕택에 그의 제자로 들어가 명문가의 논리학 스승으로서 한 자리씩 해먹고 있엇다. 워낙에 말을 잘 하고 워낙에 명성이 높은 스승을 가졌기에 그는 운 좋게도 이 도시 국가의 왕가에도 자신의 논리, 수사학을 가르치는 스승으로 들어 오게 된다.  거기서 소피스트는 제시를 처음으로 만난다. 


 나이차이는 서너살이지만 엄연히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만난 두 사람. 두 사람은 많은 대화와 많은 논리를 주고 받고 많은 수사학들을 겨루고 나면서 서로에게 긴밀한 관계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서로의 사이가 가까워 질 수록 제시의 표정은 점점 어두어져갔다. 


 도시국가에는 미신이 있다.  미신이라 말 하기도 하지만, 전통이라고도 하는 그 것. 성인식이 될 때면 여인은 운명의 여신에게 자신의 남편을 점궤로 받는다. 제시는 첫번쨰 공주로서 이미 점궤를 받은 상황. 수염이 덮수룩하게 난 빼어난 용력의 용사가 곧 이 도시에 도착 할 것이고 벌때처럼 일어나는 남쪽의 괴물들을 몰아낸 후 그의 남편이되어 이 도시국가를 다스리게 될 것이다 라는 예언.


 제시는 소피스트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운명의 점궤에 따라 이미 임자가 정해진 몸이었다. 운명을 거스르기 위해 이 도시를

뛰쳐나아가면 되지 않나, 함께 떠나자 이야기하지만 많은 사람을 보살펴야 할 공주로서 그런 일은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결국 두 사람의 만남과 즐거운 순간은 한 여름밤의 꿈처럼 그 해 가을의 시작에서 끝이 났다.


 대충 시놉으로 생각한건 여기까지고 이야기의 전개는 결국 운명에 순응 했지만, 야만적이고 욕심 많은 용사가 나라를 자기의 것으로 하기 위해 도시국가를 의도적으로 몰락시키고 공주를 자신의 것으로 한다. 소유물 처럼 다루어지는 공주.  그나마 남은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굴종하는 자세로서 그의 밑에서 갖은 노력을 이어나가지만, 지독한 사디스트에 가까운 이 놈이 가만히 놓아두지 않음. 


 결국, 공주를 고대의 마법으로 정신 지배하여 도시국가의 신민들을 스스로의 손으로 죽이게 유도함. 공주는 죄책감에 정신을 놓아 유아 퇴행하게 됨. 용사는 나라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함. 


 여기까지만 보면 진짜 천하의 쌍놈 같지만, 여기서 도시국가를 함락시킨 후 일어난 문명 쟁탈전서 이교도들의 거대한 제국과의 싸움이 일어난다. 거기서, 밀려 들어오는 이교도들을 밀어내는 최전방에 서서 이 문명을 수호한 구세주로서 이름을 날리게 되어 그가 벌인 모든 악행들이 대중들 속에서 전부 잊혀졌다. 


 그는 대영웅으로 만신전에 이름을 전하게 되었고 그제서야 공주를 잊기 위해 먼 곳까지 떠돌던 소피스트의 귀에 들어간다.  공주의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도시국가를 찾은 소피스트. 그 곳에서, 총기를 잃고  어린 아이가 되어버린 공주를  목격한다. 


 유폐되듯, 저 먼 섬에서 홀로 살아가는 공주. 소피스트는 그를 극진히 보살핀다. 천천히, 정신이 되돌아 오는 듯 싶었던 공주.  보름달이 뜨는 밤. 바다의 절벽 위에서, 완전히 돌아 온 정신으로 그에게 말한다.  미안해. 그때, 그냥 도망쳤어야 했는데....


 아무리 자신의 의도가 아니었다 할 지라도, 온전한 정신이 아니라고 할 지라도 자신의 손으로 학살한 시민들에 대한 죄책감에 

절벽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소피스트는 그 날 부터, 복수를 다짐한다. 


 세상의 명운은 모두 용사를 향한것 같은 수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 이야기가 저 사람을중심으로 쓰여지는듯 벗어 날 수 없었다. 

그는 그런 용사의 반동인물로서 오로지 세치 혓바닥만으로 존엄한 영웅을 악당으로서 해치우고자 한다.




 뭐 이런 식의 이야기.  결과적으론 영성과 힘을 가진 대영웅에게 패배하지만, 끝내 대영웅의 비참한 최후에 일조하는 이유있는 악당으로서 마무리되는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써 봤음.  뭐 이아손, 메데이아를 모티브로 삼아서. 신박했으면 누가 좀 '써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