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이거 본편을 계속 쓸지 말지 고민된다. 항상 단편만 쓰던 내가 이야기를 길게 연재할 수 있을까? 


[마녀와 개]


우리가 처음 만난 건 작년 겨울이었다. 어느날 저녁, 여느때처럼 술을 잔뜩 마시고 온 아버지는 나를 애비를 닮아 못난 자식이라며 개 패듯이 팼다. 언젠가는 결국 아버지가 날 때려 죽이거나 그 반대의 상황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집을 나왔다. 하지만 가출은 시기 상으로 아주 잘못된 선택이었다. 12월이던 그날 저녁에 가출을 한 나는 밤이 되자 바로 얼어 죽을 뻔했다. 우리 집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을 헤매던 나는 그녀의 집 앞에 주저앉았다. 가로등에 등을 기댄 채 얼음덩어리가 되어가는 나를 보고 그녀가 처음으로 한 말이 기억난다.


...


"와 귀여워. 이렇게 귀여운 멍멍이를 누가 버리고 간 걸까."


멍멍이? 아무래도 이상한 사람과 만난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찬바람이 불었다. 급속도로 떨어지는 체온을 어떻게든 유지하기 위해 내 몸은 미친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추위의 고통을 견디지 못한 나는 제대로 말도 할 수 없었다. 바람이 얼굴과 목을 스칠 때마다 힘에 겨운 소리를 낼 뿐이었다. 그녀는 그런 내 모습이 어지간히 불쌍해 보였나 보다.


'으으...으으으 시발'


"불쌍해라. 내가 도와줄게."


반응할 틈도 없이 그녀는 내게로 성큼성큼 다가와서 내 몸을 번쩍 들어 안았다. 그 아담한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올 수 있는걸까. 지금 생각해봐도 의문이다. 그렇게 그녀에 의해 번쩍 들어올려진 나는 곧바로 따뜻한 거실로 옮겨졌다.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아늑함이 낯선 그녀의 집에서 느껴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무거운 무언가가 몸을 짓누르고 있는 기분이었다. 옆으로 누운 채 고개를 돌려 등쪽을 보니 그녀가 나를 안은 채 자고 있었다. 나는 그 상태로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청순하고 단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작고 갸름한 얼굴, 앵두같은 입, 핏기가 적당히 도는 눈처럼 하얀 피부. 내 볼에 와서 닿은 그녀의 머리카락은 검고 부드러웠다. 이국적인 외모로 봐서 나는 그녀가 일본 출신이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이제까지 그녀가 직접 나에게 말해준 것은 없으니 출신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다만 이곳에서 태어나서 자란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앗. 일어났구나 강아지."


그녀는 내가 일어나서 뒤척이자 금방 잠에서 깼다. 그녀는 전날부터 줄곧 나를 '멍멍이'라던가 '강아지'라고 부르고 있었다. 아버지라는 사람이 자주 '개새끼'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나를 강아지라고 부른 건 그녀가 처음이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거실 바닥에 앉은 채 머리를 묶었다. 나도 일어나 앉으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그녀가 팔을 치운 후에도 온몸을 짓누르는 무거운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몸이 안움직였기 때문에 끙 하고 다시 눕는 수 밖에 없었다.


"무리하지 말고 누워있어. 너 감기에 걸렸으니까."


밖에서 몇시간 동안 눈을 맞으며 돌아다녔던 나는 결국 심한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처음 이틀 간은 누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도 쉽지 않을 정도였다. 내가 꼼짝도 못하게 되자 그녀는 자신의 '강아지'를 며칠 동안 정성으로 간호했다. 그 덕분에 나는 나흘 만에 몸을 회복할 수 있었다. 몸이 완전히 낫고 나서야 나는 그녀와 제대로 대화를 나눴다.


"얼어 죽을 뻔했는데 도와줘서 고마워요."


"멍멍이는 이름이 뭐야?"


"알릭. 알릭이요."


"너 우리 집에 살지 않을래?"


갈 곳 없는 나는 그날로 그 집에 사는 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