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cents 채널

「…무슨 의미입니까. 이 반지는」


그녀는 반지를 만지작거리면서, 어쩌면 그녀 스스로 이미 아는 답을 입에 담지 않았다.


답을 말하게되는 순간,


자신이 이미 아는 어떤 세계가 끝날 것을 알기 때문인걸까.


평소에는 선물을 받으면 항상 어린애같던 미소로,


…좋아하는 표정을 지어주었는데


-그녀의 표정이 무겁다.


「…저는 지옥에 다녀온 적도 있고, 시비곡직청의 염마님을 뵌 적도 있습니다. 당신의 죄의 무게는-

…아닙니다. 이제 그만 죄를 지어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그녀는 반지를 빼더니 땅에 던졌다.


귀에 들려오는 반지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심장을 거쳐 마음에 닿을 때 쯔음에는


너무나도 울림이 큰 소리가 되어서 자신을 때리는 듯했다.


「…」


-가슴의 피가 모두 빨려나가는 것처럼 먹먹하고 아프다.


그녀 또한 괴로운 표정을 짓는다.


「인간은 반인과 맺어져서는 안 됩니다. 천도(天道)를 어그러뜨리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반인반령 자체가 하나의 죄. 천도를 교묘하게 속인 것. -세속에 속하지 않는 자입니다.

그렇기에 저희는 죽어서도 염마님을 뵐 일이 없습니다.

당신은 인간. 하늘의 이치에 따라 구르는 홍진(紅塵)-즉 세속 속에서 사는 자.

무한의 영겁 세월동안 환생을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저희는 사라질 뿐입니다.

-헌데 당신이 저랑 맺어지게 된다면

그 천도를 어긴 죄가 당신에게도 미치게 됩니다.

그 영겁의 세월 동안 그 죄를 씻어야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당신이 이 이상의 죄를 지으시겠다면.」


그녀는


언젠가 자신이 돌려주었던 누관검을 칼집에서 꺼냈다.


누관검


가장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는


가장 우아한 궤적을 그리는


-모든 것을 베는 검


「-당신을 베겠습니다.」



자신의 영혼이 더 더러워 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자신의 죄가 더 무거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 검에는 사랑하는 이의 죄마저도 베고싶은 소망마저 담긴 것일까


그러나 그녀를 사랑하는만큼,

그녀를 더욱 가까운 곳에서 끌어 안아줄 수 없는 것은 확실히 고통이었다.


-이전의 자신은 고통을 모르고 살아 왔었다.


피가 흐르지않는 냉혈한 인간의 심장에 온기를 나누어준 것은 그녀였다.

무의미하고 잔인해보이는 세상의 풍경을 바꾸어준 것 역시 그녀였다.


난생 처음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희생

존중

신뢰


자신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그런 오래된 감정과 마음들을 일깨워 준 것은

그녀의 강한 영혼이었다.


「도로 가져가십시오.」


반지를 주웠다.

-다시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간신히 울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누르는 표정이 역력한 그녀가 칼을 꽉쥐는 모습이 보인다.


한 걸음

「다가오지 마십시오.」


두 걸음

「다가오지 마십시오!!!」


-세 걸음

검이 자신의 바로 앞을 스쳐지나가면서 왼쪽 눈꺼플 위를 크게 찢는다.


그러나 그런 고통에 개의치 않고,


이제는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부들부들 떠는 그녀의 왼 손을 다시 잡는다.


『-무엇가를 위해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예전의 자신이라면 그런 글을 보면 되먹지 못 한 온실속의 도련님이 지껄이는 헛소리라며

비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 구절은

자신의 심장에서 나와 정맥을 흐르며 온 몸에 퍼져나간다.

실제보다 더한 어떤 실감을 주는 삶의 단어가 자신을 따뜻하게 덥혀나간다.

산다는 것이 주는 무게감은

자신이 걸어가는 길만큼 무거워지는 법이다.


가볍고 경박하게 살아온 이전의 삶에서 그런 무게감은 사치라고 생각했었다.

누군가를 조교해서 하나의 망가진 정신들을 만들던 자신은

그런 무게감을 가지는 감정과 마음을 담을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누군가가 울부짖는 소리가 웃는 소리보다 즐거웠던 자신이었다.


누군가가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이 하나의 밝은 미소보다 익숙했던 자신이었다.

-강한 그녀가 모든 것을 바꾸었다.


손에 다시 끼어진 반지


칼이 땅바닥에 떨어진다.


「…당신은… 정말…정말이지 이렇게 하셔야겠습니까…」


그녀가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면서 땅바닥에 주저 앉아버린다.

조용히 그녀를 끌어 안아주었다.



―――단독 엔딩 조건 달성―――


…………


………


……


백루검


자신의 심장과 가장 가까운 검


가장 강하고


가장 아름다우며


-모든 것을 지키는 검


「적이 개봉전 안으로 들어가 못하도록 막아라!!!!」


자신에게 있어서 검은 모든 것을 베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았었다.


「크흑…!!무리입니다…!!! 추가 원군을!!!」


자신에게 있어서 검은 그런 의미였다.


백옥루에서 지냈던 나날도 그런 베는 것의 일상


침입자에게는 죽음을


이변을 일으키는 자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베는 것에 어떤 감정은 담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감정은 방해만 될 뿐이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어떤 생각을 하면서 벤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벤다는 것은 행위 이후에 생각이 되어지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탕!!


문을 박차고 들어가면서


칼을 들고 자신을 내려치려던 무사 둘을 베어넘겼다.


비명과 함께 그어지는 피의 궤적


「-오셨군요.」


칼에 잘려나간 자신의 검은 머리끈이 흐드러지면서 자신의 옆에 떨어진다.


거친 호흡


몸에는 수백의 칼붙이들과 화살들이 남긴 스물 하나의 경상


…그리고 두 개의 치명상


입에 머금은 피를 뱉는다.


너무 흘린 피 탓인지 앞이 흐리게 보이나


자신이 있는 곳은,


자신이 목표로하고 달려온 이 곳만큼은,


너무나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당신이 올 줄 알았습니다 콘파쿠 요우무. …당신은 정말이지 제 말을 듣지 않으시는군요…」


염마


모든 것을 꿰뚫는 눈빛을 가진


모든 죄의 흑백을 가르는


-낙원의 재판관


「그 남자때문이겠지요? 이미 알고 있습니다. 허나 당신, 생로병사는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염마가 자신의 옆에 있던 회오의 봉을 들더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이는 자신이 채워야할 나이를 다 채우고 죽었습니다. 설마 늙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신 것은 아니겠지요?」


「…알고 있습니다 염마님.」


「인간은 언젠가 죽습니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죽어서 재판을 받고, 그 죄의 무게만큼의 벌을


받는 것. 그것이 이 곳, 시비곡직청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


「하아…어차피 듣지 않을걸 빤히 알고 있습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하고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셔도 좋습니다.


-칠흑보다 검어진 당신의 죄는 충분히 보았으니.」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안 됩니다.」


「…」






용량한계때문에 다음글에서 이어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