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시험용 달 궤도선(KPLO, Korea Pathfinder Lunar Orbiter)은 이름처럼 우리나라가 개발하고 있는 달 궤도선입니다. 시험용 궤도선 개발은 국제협력을 기반으로 추진되며, 우주 탐사 핵심기술 확보, 심우주 통신 네트워크 구축, 과학·기술 탑재체 개발을 목표로 합니다. 심우주 통신 등 일부는 NASA의 도움을 받지만, 전체적인 설계는 대한민국 독자 개발입니다. 궤도선은 당초 550kg급으로, 4개의 고도 70-130km, 궤도경사각 89-91도의 달 극궤도를 돌며 1년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NASA는 달 극지에 인간을 착륙시키는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극지를 탐사할수 있는 우리 궤도선에서의 표면 탐사가 필요했기 때문에 2016년 12월에 항공우주연구원과 '달 탐사 협력약정'을 체결하였습니다. 이로써 우주탐사에 앞선 기술을 갖고 있는 NASA와의 협력을 통해 달 탐사 성공 가능성이 크게 증대되었습니다.


시험용 달 궤도선에는 6개의 탑재체가 실리는데, 국내 개발의 탑재체 5종과 미국 NASA 개발예정인 탑재체 1종입니다. 여기에는 우선 5m 급의 고해상도 카메라와 함께 국내 연구진이 개발예정인 광시야 편광 카메라, 달 자기장 측정기, 감마선 분광기, 우주인터넷시험장비가 포함됩니다. NASA는 달의 영구 그림자 지역을 정밀 촬영할 수 있는 탑재체(위 그림의 Shadow Cam)를 탑재하게 됩니다. 그러나 처음 설계와는 달리 탑재체가 4개에서 6개로 늘어나자 연구진은 탐사선의 경량화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올해 초 궤도선 계획을 자체점검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지난 8월 궤도선의 무게는 678kg으로 수정되었습니다. 기존 550kg급 설계일 때는 4개의 탑재체와 3개월의 미션 기간이 계획되었으나, 탑재체 개수가 6개로 늘어나고 미션 기간도 1년으로 늘어나며 550kg의 목표를 이루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또한 소재 경량화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2020년으로 예정되었던 시한에 맞춰 제작하기 위해서는 목표 중량을 유지하기가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중량을 증가시킨다면 궤도 변화로 인해 미션 기간을 줄일 수 밖에 없습니다. 최초의 우주 탐사를 수행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새로운 기술의 실증과 경험을 통한 기술 습득이 중요하고, 궤도선에 탑재체를 싣게 되는 NASA에게 있어서도 미션 기간의 유지는 중요합니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임무 기간과 탑재체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678kg급으로 중량을 늘림과 동시에 궤도 수정을 통한 미션 기간 유지도 연구하게 됩니다.


 8월 발표에 따르면 시험용 달 궤도선의 변경된 궤도에 따르면 달 타원궤도(근월점 100km, 원월점 300km)로 초기진입시키고, 이후 원궤도에서 탐사선을 운용하게 됩니다. 미션의 처음부터 끝까지 원 궤도에서 운용한다면 그 궤도를 유지하기 위한 추력기 분사가 필수적인데, 이는 연료의 소모를 야기합니다. 그러나 중량 증가로 인해 기존 설계로는 연료가 부족해지자, 연료 탑재량을 변경하지 않기 위해 타원궤도를 병행하는 형태가 된 것입니다.


 수정된 궤도는 달에 타원궤도로 진입한 후 9개월 뒤 원궤도에서 3개월 운용하는 방식인데, 이렇게 하면 자연적인 궤도 하락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인공위성이 궤도를 돌다보면 대기가 없어도 다양한 요인(달의 비대칭 중력 등)에 의해 궤도가 낮아지는데, 추락을 막기 위해서는 궤도를 유지하기 위한 추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타원궤도에 진입하게 되면, 9개월간의 궤도 하락을 통해 거의 정확한 원궤도에 진입하기 때문에 이런 방식을 채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탑재체를 제공한 NASA 측에서는 최대한 극지의 지형을 가까이서 관측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100km~300km의 타원궤도를 돌게 된다면 더 먼 거리에서 관측해야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원하는 임무를 효율적이게 수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궤도에 진입하기 위한 새로운 해법으로 L1(제1라그랑주점)을 이용하여 사용되는 연료를 줄이는 'WSB'(또는 LOT : 저에너지 전이) 방식을 제안했습니다.


 WSB를 자세히 설명하자면, 우선 지구에서 곧바로 L1(제1 라그랑주 점)으로 향합니다. 그 후 L1 에서 추력기를 분사해 궤도를 보정하면, 달의 중력권에 포획되어 원 궤도로 진입하게 됩니다. 전통적인 호만 전이궤도를 이용하면 달 궤도에 진입할 때 추진이 필요하기 때문에 WSB를 채용하면 달에 포획되는 과정에서 약 25%의 연료 소모량을 아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 방식이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새 경로는 기존에 추진하던 경로에 비해 더 먼 데까지 움직이고 달 궤도에 진입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더 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항우연이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궤도선의 설계는 유지하면서 100km 궤도에서의 원활한 임무 수행이 가능하므로 일단 성공한다면 우리나라 기술이 크게 진보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난이도도 크게 올라가게 됩니다. 


 NASA는 궤도의 설계와 해석을 비롯한 계획 전반을 "항우연이 주도해야 한다" 라고 밝혔습니다. 이런 입장은 "한국 사업에 NASA가 참여하는 것이고, 따라서 NASA는 궤적을 제안한것 뿐이다"라는 반응이니 '사업의 백지화'나 '좌초 위기' 등의 자극적인 용어의 언론보도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물론 우리 주도의 사업인만큼 우리측의 기술적 어려움 극복이 중요하긴 하지만 NASA 측도 아르테미스 계획을 위한 극지 탐사가 급하기 때문에 WSB를 채택한다면 심우주 통신이나 궤도 보정에 있어 적극적인 지원을 해줄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구체적인 궤적 분석은 우리 연구진이 미국에서 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고, 가장 큰 문제가 될 통신을 지원하기 위해 심우주 통신망의 70m 망원경을 통해 데이터를 제공하는 방안 등이 검토중입니다. 항우연에서도 NASA가 관련 기술 제공을 적극 제안한 만큼 ‘해 볼만 하다’는 기류가 형성됐다고 합니다.


 항우연은 19~21일 대면회의 결과를 밝히면서 "기존에도 여러 검토 결과를 통해 (새 경로를 따르는 데) 큰 무리가 없다는 결론은 나와 있었는데, 이번에 대면회의는 이를 보다 구체적인 해석을 포함해 다시 한번 신중히 검토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과기정통부 당국자도 협의 내용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히면서 "NASA 측이 기술 지원도 하니 제안을 따르는 쪽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한 것을 보니 이번 협의를 통해 문제는 봉합된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측이 다양한 각도로 의견을 내고 있지만 한국과 사업을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히거나 공동 탐사사업을 중단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미국과 사업이 깨질 것이란 일련의 보도는 사업 성격을 잘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