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또 알쓸정 시리즈로 찾아옴.

이미 념글에 이벤트 스토리에 대해 적은 글들이 있으니

중복되는 내용은 최대한 생략하고 스토리 이해에 조금이나마 도움 될 내용들을 가져와 봤다.



 1장 초반에 나오는 강연 장면의 칠판 

인도에는 리그1베다 Rigveda 라고 하는 성전이 있다. (리그1베다 왜 금지어임? 힌두교 싫어하나?)

왼쪽 구석에 영어로 4줄 적혀 있는 문장들이 이 리그1베다의 열 번째 만다라(대충 10권이라고 이해하면 됨)

129번 째 찬가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러 번역본이 존재하고 게임에서 나온 문장은 그 번역본 중 하나에서 일부 문장을 생략하고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내용은 우주론, 우주의 기원에 대한 것이다.

게임에서도 갈라보나와 쿠마르의 입을 빌려 내용을 말해주는데 좀 더 긴 문장으로 살펴보자.


그때(우주의 초기, 혹은 창세가 시작된 시점)에는 무(無)도 유(有)도 없었고 하늘도, 그 위의 천계도 없었다.

그럼 그곳은 무엇으로 덮여 있었던 건가? 어디에서 누구의 보호 아래에 있었던가?

그때에는 죽음도 없었고, 불멸도 없었으며 밤과 낮의 징후도 없었다.

- 여기까지가 대사로 나왔던 내용. 게임과는 조금 다르게 적어보았다.


스스로의 충동으로, 저 유일자*가 호흡 없이 호흡하였나니, 그 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어둠이 있었으니, 태초에 이 모든 것은 어둠에 싸인 물이었다.

그때 껍질에 싸여 누웠던 저 유일자가 열의 힘으로 생겨났다.

* 유일자라고 번역되어 있긴 하지만 이것이 신을 의미한다기 보단 우주의 의인화라고 보는 해석이 있다.


실로 누가 이것을 알겠는가? 누가 이를 선포하겠는가? 언제부터 만들어졌는가? 언제부터 창조한 것인가?

이 우주가 창조되고 신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렇다면 이 창조가 언제 발생했는지 누가 알겠는가?


신의 의지로 만들어졌거나, 신은 그저 침묵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우주는 스스로 생겨났거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숭고한 브라흐만(힌두교에서 말하는 우주의 근본, 우주의 원리)은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누구도 모르리라.


보통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신화에서는 무슨무슨 신이 얍! 하고 하늘을 만들고 땅을 만들고...

다시 하늘의 신과 땅의 신이 파티 타임을 벌이니 초목이 생기고 생명이 태어났다더라...

하는 식으로 말그대로 신화적인 존재들이 신화적인 일을 한 결과로 이 우주와 생명이 태어났다고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위의 구절에 나타나는 우주론은 다른 신화나 종교 문헌에서 나오는 것과는 달리

구체적인 창세 신화를 제시한다기 보다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읽는 사람 스스로 우주의 기원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 특징이다.


스토리를 쭉 따라가면 쿠마르와 갈라보나가 마도학자라는 이유로 

인간 천문학자들에게 연구의 진정성을 의심받는 대목이 나온다. 마도학은 과학적이 않다는 것이 이유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위 경전 구절은 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신이 이 우주를 만들었고 그게 진리이니 너희는 이것을 믿고 의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의심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 나름 과학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위 구절의 내용은 다른 번역본+내 의역이 섞여 있어서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어쨌든 위의 경전 구절은 마도학자(비과학, 종교)이면서 과학자인 갈라보나와 쿠마르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문구라고 생각한다.



 모르판크 

이미 념글에 설명되어 있긴한데 조금만 더 설명해보겠다.

모르-판크 (Mor-pa.nkh, मोर-पंख ) 는 Mor मोर 가 공작, Pa.nkh पंख 가 깃털, 날개라는 뜻으로 

둘을 합쳐 공작새의 깃털이란 뜻을 가진다.


또 다른 뜻으로는 공작의 깃털을 닮은 나무를 뜻한다.

나무 Morpankh는 측백나무과 눈측백속에 있는 다섯 종의 나무 중 하나다. 학명은 Thuja.

이런 나무를 한 번쯤 본 적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인도의 정원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조경용 나무는 크기가 작다.


게임에서는 마을 이름으로 나오는데 이게 실재하는 지명인지, 옛 지명이었다가 지금은 사라진 것인지 찾으려 했지만

아쉽게도 관련 내용은 찾을 수 없었다. 아마 게임 내 가상의 지역인듯 싶다.


그럼 왜 이 모르판크가 이번 이벤트의 주요 무대의 이름이 되었을까. 그냥 한 번 추측을 해보자면...

공작은 크리슈나의 상징이다. 크리슈나를 묘사할 때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공작 깃털로 머리 장식을 하고 있다.

크리슈나는 힌두교 3대신 중 하나인 비슈누 신의 화신(Avatar) 중 하나다. 비슈누는 화신을 통해 인류를 구원한다고 한다.

운석(?)이 떨어질 정도의 재난을 막으려면 비슈누의 화신 중 가장 강력하다는 크리슈나 쯤은 동원되어야 할 것 같다.

다만 비슈누의 의지를 행하는 화신의 역할은 주연들에게 넘기고, 그 상징성은 마을의 이름으로 남겨 놓았다고 생각해본다.



 르노르망을 봐서라도! 

이벤트 스토리 2챕터에서, 마틸다는 모르판크역에 도착해 붐비는 인파를 헤치며

"좀, 지나갑시다. 좀... 르노르망을 봐서라도!" 라고 말한다.

상황을 보나 문맥으로 보나 좀 이상한 문장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일단 르노르망에 대해 먼저 알아보자.


마리 안느 르노르망 Marie Anne Lenormand (1772-1843) 은 프랑스에서 강령술사, 점쟁이, 카드 점술사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르노르망의 카드점이 꽤나 용했는지 여러 귀족과 왕족, 유명인사들이 그녀를 찾았다고 한다.

프랑스 혁명의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 조제핀 황후 (나폴레옹과 결혼 전),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1세 등이 있었다.

프랑스 혁명 시기에 투옥되기도 했으나 풀려났고, 그녀 스스로는 100세 이상 산다고 예지 했으나 71세의 나이에 숨을 거뒀다.


자, 그럼 마틸다의 대사는 뭐가 문제일까? 마틸다는 알다시피 수정구를 통해 점을 보는 점술가 마도학자이다.

그녀에게 르노르망은 조국에서 유명세를 떨친 대선배, 어쩌면 도달하고 싶은 목표일지도 모른다.

근데 그거야 마틸다에게 해당하는 사항이고, 기차역에 있는 그 수많은 사람들이 전부 프랑스인인것도 아니고 

같은 점술사 계통의 마도학자만 있는 것도 아닐텐데, 르노르망의 이름을 들먹이며 길 좀 터달라고 말하는건 좀 이상하다.


내 생각에 이 부분은 번역을 잘못한 것 같다. 이는 한국어 번역만 그런게 아니고 영어 번역도 잘못된 것 같다.

영어로 같은 대사를 보면 For the sake of Marie Anne Lenormand! 이라고 나오는데 

만약 한국어 번역을 영문 기준으로 했으면 틀린 번역은 아니다.

그런데 상황상, 문맥상 이 대사는 For Marie Anne Lenormand's sake! 가 맞는 것 같고 

이를 우리말로 옮기면 대충 "좀 지나갈게요! (맙소사) 르노르망이시여!" 라고 감탄사처럼 했어야

상황에 맞는 자연스러운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마틸다에겐 르노르망이 존경의 대상일테고,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신이시여! 하는 느낌으로 찾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중국어 문장 구글 번역기 돌려도 잘 나오는데 왜...)



 별빛 축제 

마틸다가 보던 홍보물에서 처음 언급 됐고, 이후에 모르판크 마을의 한 남성이

이제는 혼자서 축제에 쓸 초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초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 이는 디왈리 Diwali 를 뜻하는 것 같다. 

디왈리는 힌두교에서 큰 축제 중의 하나로, 빛의 축제라고도 알려져 있다.

축제 기간에 촛불을 켜고 락슈미 신을 맞이해 영적인 어둠으로부터 가정을 보호하고 내면의 빛을 밝혀 안녕을 기원한다.

락슈미는 쉽게 말해 온갖 좋은 것들을 관장하는 신인데, 그 중에서 빛, 부(富), 행운을 관장해서 축제 기간에 찾는 듯 하다.


빛의 축제라 불리는 만큼 5일간 열리는 축제의 셋째 날에는 화려한 불꽃놀이를 한다고 한다.

게임에서는 스토리에 맞게 별빛 축제로 적절히 변형해 가져온 것 같다.

영문에서 Dīpa festival 이라고 한 것은 산스크리트어 Dīpāvalī 에서 가져왔거나

등불, 촛불을 뜻하는 힌디어 Diipaa 에서 가져왔을 가능성이 있다.


게임의 배경이 되는 1966년에는 11월 12일 토요일이 디왈리 축제가 시작되는 날이었다고 한다.



 삼라트 얀트라 

갈라보나가 환상 속으로 들어가며 도착한 장소가 잔타르 만타르 천문대라고 나온다. 념글 보고 궁금해져서 조금 더 찾아봤다.


잔타르 만타르는 '하늘의 조화를 측정하는 도구' 라는 뜻을 지녔고 다양한 천문 관측 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다.

델리, 바라나시, 마투라, 우자인, 자이푸르 이렇게 총 다섯 지역에 지어졌다.


그중 게임에서 배경으로 나오는 이 건축물은 삼라트 얀트라 Samrat Yantra 라고 하며 세계에서 가장 큰 해시계로 알려져 있다.



놀랍게도 이 건축물은 2초 단위로 시간을 측정하는게 가능하다고 한다.


영상에 나오는 것처럼 양 옆으로 U자 형태로 휘어진 건축면을 따라 그림자가 지며, 거기에 새겨진 눈금을 통해 시간을 측정한다.


가운데 계단의 기능은 해의 높이를 측정하는 용도다. 계단을 올라가며 양옆에 난간 부분에도 눈금이 새겨져 있어 그걸 통해 측정한다.


건물의 높이 때문인지 배경 일러스트처럼 실제로도 새들이 와서 앉다 간다고 한다.



 까마귀 

갈라보나가 환상 속에서 쿠마르와 마주쳤을 때, 쿠마르의 주위로 까마귀가 날아다닌다.

까마귀는 힌두교에서 물질 세계와 정신 세계를 오가는 전달자라고 믿어져 왔다.

힌두교도들은 까마귀에게 먹을 것을 주면, 까마귀가 음식에 담긴 정수를 자신의 선조에게 전달해준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진짜 쿠마르 

블루포치가 정말 이 사람한테서 이름을 따왔는지 확신은 없지만, 약간의 연관성은 있어서 소개한다.


시브 S. 쿠마르(Shiv S. Kumar)는 인도의 반누(현재는 파키스탄 영역)에서 태어난 천문학자이다.

그는 천문학계에서 처음 이론적으로 갈색왜성의 존재를 찾아낸 사람이다.

2015년 기준으로 확인된 갈색왜성의 수는 2,850개라고 한다.


왜성에 대한 건 다른 념글에 있으니 그쪽을 참고하고,

갈색왜성은 항성이 되지 못한 준항성으로 갈색왜성이라는 이름은 1975년에 질 타터라는 사람이 제시했다.


비록 성별이 다르긴 하지만 현실과 게임의 쿠마르 모두 천문학자라는 점, 

현실의 쿠마르 박사가 갈색왜성을 발견했고 게임 속의 쿠마르는 갈라보나=흑색왜성을 발견? 조우? 했다는 점이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샤르마 

쿠마르와 갈기 모래 남매의 집안, 즉 성씨가 샤르마라고 언급된다.


샤르마(Sharma)는 힌두교 브라만 계급의 성씨다. 즐거움, 편안함, 행복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카스트 제도에서 브라만은 가장 높은 계급인데

마틸다 일행이 사람들을 피난시켰던 대저택, 유사시 대피를 위한 지하 통로,

처음 마틸다가 칸지라의 안내를 받아 들어갔던 동굴이 가문과 연관 있는 듯한 모습, 

쿠마르가 보낸 편지에 찍힌 코끼리 문양의 봉인 밀랍 등등

게임 속에서 묘사되는 샤르마家는 확실히 그저 그런 평범한 집안은 아닌 것으로 추측된다.



[참고자료 출처]


그동안 다른 주제로 글 쓰려고 자료 조사 중이었는데 진척이 없어서 힘들어 했다가

다른 릾붕이들이 재밌는 정보글 써준 거 읽고 덕분에 리프레시 됐음ㄳㄳ

이번에 조사한 거 말고도 스토리랑 관련된 몇 가지 내용들이 더 있는데 자료를 못찾겠어서 일단 멈췄음...

나중에라도 찾게 되면 이 글에 추가하거나 새로 글쓰러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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