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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아 반갑소, 축제날에 감히 돌아온 링 눈나 애호 소설임미다. 


1. 박사가 휴가를 간 사이, 로도스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런 상상에서 가볍게 한 번 써본 번외편이지만, 스토리랑 연계가 아예 안 되는 건 아니니 스토리 이해를 원하는 명붕이들은 꼭 읽어 주길 바래. 


2. 여러모로 행복한 주말이네. 오늘은 공방, 내일은 온리전...예쁜 짤도 많이 올라오고, 드립치는 명붕이들 폼도 한껏 올라와서 챈질이 정말 재밌었어. 내일 온리전 가는 명붕이들 재밌게 보내길 바라고, 그러지 못한 명붕이들도 즐거운 주말 됐으면 좋겠다. 


3. 추천을 누르고 댓글을 써 주면 29포인트가 공짜로 생김미다. 글 소재 추천, 피드백, 칭찬, 아카콘 뭐든 환영. 불쌍한 글쟁이에게 많관부. 


4. 늘 읽어 주는 명붕이들, 정말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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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도스 함내. 



“...켈시 선생님, 저 죽을 것 같아요.” 

“...아미야….” 


갈색 귀를 축 늘어뜨리는 카우투스 소녀. 


로도스 아일랜드의 사장, 아미야였다. 


중학생에 불과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약한 소리를 하는 일이 없는 그녀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건….


그만큼 지난 사흘 간의 격무가 고통스러웠다는 거겠지. 


켈시는 한숨을 푹 내쉬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박사가 휴가를 떠난 지 이제 겨우 나흘째다. 앞으로 10일 동안, 우리는 그 없이 버텨내야 해. 힘든 건 이해하지만, 여기서 꺾여서는 안 된다.” 


“으으….” 



그래, 켈시와 아미야는 수뇌부의 권한으로 박사에게 휴가를 주었더랬지. 


그리고 박사는 오퍼레이터 링과 함께 염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평소 박사가 처리하던 업무를 켈시와 아미야가 떠안아야 했던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피곤하다면 클로저에게 응급 이성회복제를 구입해서 사용해 보도록. 잠깐이나마 졸음을 이겨내게 해 줄 거다.”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고개를 푹 숙이는 아미야. 


뭐, 문제가 늘어난 업무량뿐이었다면 아미야와 켈시도 기쁜 마음으로 감당했을 것이다. 


늘 수고해 주는 박사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어제 밤에 그라벨 씨가 제 방문 부수고 들어와서 뭐라고 했는지 들으셨어요?” 


“...아니.” 


“아미야, 박사는? 박사는 어디 있어? 설마 나를 버린 거야? 그럴 리가 없어. 어딜 갈 거면 하다못해 나한테 얘기라도 했을 텐데. 나랑 박사 사이인걸. 이런 건 말도 안 돼. 아미야, 당장 그를 데려와.” 


“......” 

“달래 드리느라 애먹었어요, 저.” 


“사실 나도 비슷한 문제를 몇 건 겪기는 했다.” 



진짜 문제는 이거였다. 


박사에게 깊이 감화되어 있던 오퍼레이터들이, 그가 모습을 감추자마자 단체로 공황발작을 일으킨 것. 



“맹우…없다? 왜? 어째서?” 


박사의 사무실이 잠겨 있는 것을 눈치채자마자, 들고 있던 체스판을 떨구고 손을 벌벌 떨기 시작한 실버애쉬부터. 



“후후, 그래…박사가 마침내 나 같은 껌젖한테 질린 거구나. 당연하지. 지금까지 날 유기하지 않은 것만 해도 칭찬해줄 만한 일인걸. 아하하, 박사가 없는 난 어떻게 되려나  아머레스유니온에게처형당하려나아니면니어씨에게끌려가서사지분쇄당하고혼비스트먹이가되려나정말기대되는걸우후후아하하” 



초점 잃은 눈빛으로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플래티넘. 



“...나, 쓰레기.” 



평소보다 두 배는 투명해진 몸으로 복도 한구석에 쭈그려 훌쩍이기 시작한 맨티코어.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 




혈색이 다 빠진 새하얀 얼굴로, 퍼퓨머의 온실에 앉아 꽃잎을 다 뜯어내며 우울하게 중얼거리는 안젤리나까지. 


켈시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박사의 인품이 흠잡을 데 없다고는 하나, 그는 그렇게 외향적인 사람이 아닌 바. 


켈시와 아미야 등 몇몇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선을 긋고 대하던 사람이 박사였다. 


그런데 어째서 로도스의 사분지 일 가까운 인원이 박사의 부재에 이렇게나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까. 



“...그래도 걱정할 것 없다, 아미야. 내가 잘 해명해 볼 테니.” 



그래도 오늘이 지나면 좀 조용해지겠지. 


씁쓸하게 아미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켈시는 그녀의 사무실에 구름처럼 몰려든 오퍼레이터들을 바라보았다. 


이들 전원이 박사의 자리 비움에 대한 설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대체 이해가 안 가는군. 도대체 너희가 박사의 거취에 왜 그렇게 신경쓰는 거지?” 


“해명이나 해라, 켈시. 네 의문에 답해줄 이유는 없다.” 



힘줄이 다 튀어나올 정도로 지팡이를 꽉 움켜쥔 채 켈시의 말을 받아치는 실버애쉬.  


평소의 냉정하고 침착한 모습은 쉐라그 산골짜기에 내다버린 듯한 그의 모습에, 켈시는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나오는 한숨을 겨우 참아야 했다. 



“...박사는 휴가를 떠났다. 오퍼레이터 링과 함께. 이 주 동안, 염국으로.”  

   

“.......!” 


“참고로 휴가의 승인권자는 나와 아미야였다. 데려가고 싶은 오퍼레이터 한 명을 대동해도 좋다고 허락한 것도 우리지. 그가 행선지를 염국으로 정한 것, 그리고 오퍼레이터 링을 데려간 건 온전히 그의 선택이다.” 



순간, 소리 없는 아우성이 켈시의 사무실 내부에 휘몰아쳤다. 


오퍼레이터들의 반응이 극적으로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그런가, 역시 맹우는…하지만 왜 내게 말해주지 않은 거지. 나를 선택했더라면, 이 주 동안 그에게 쉐라그의 기상을 한껏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말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 속마음을 뇌까리며, 분을 삼키는 이부터. 



“하, 하…그래. 그럴 줄 알았어. 나 같은 노예 출신이, 박사의 곁에 선다는 건 말도 안 되지. 박사만 행복하다면…나는, 나는….” 



채 말을 잇지 못하고 굵은 눈물을 뚝뚝 떨구는 이.  



[박사박사어디있어물이정말얕아이리들어와깊은곳으로함께돌아가자혈족혈족이되어바다로가라앉자고향으로가는거야]



그리고 아예 정신줄을 놓고, 듣고만 있어도 이성이 삐걱거리는 위험한 속삭임을 토해내는 이까지. 


그 순간, 켈시는 오한을 느꼈다. 


자신이 잘못된 판단을 내렸음을 직감한 데서 발로한 오한이었다. 


솔직하게 상황을 설명한다면, 이들이 진정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진정되기는 커녕 더 미쳐 날뛰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여기서 실패를 공공연히 인정해 버리면, 스노우볼이 어떻게 굴러갈지 모른다. 


책상을 짚은 채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금 입을 여는 켈시. 



“궁금증이 풀렸다면, 각자 임무로 돌아가라. 더 자세한 설명을 해 줄 의무는 없다. 너희가 그만큼 박사를 생각한다면, 그의 부재 동안 최선을 다해 로도스를 유지해 보여라.” 


“...그래. 네 말이 맞다, 켈시. 다들,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박사가 돌아오면 그에게 물으면 되지 않나.” 



그제야 카란 무역 회사 사장으로서의 판단력을 되찾은 걸까. 


실버애쉬가 예상치 못한 지원사격을 날려 주었고.   



“...하, 할 수 없네….” 


“...흑, 박사….” 



끝내 다들 저마다의 감정이 담긴 한 마디를 남기며 몸을 일으켰다. 


어떻게든 마무리지었나, 다행이군.  


켈시는 속으로 안도하며 실버애쉬를 바라보았다. 



“고맙다, 실버애쉬. 신세를….” 



그때였다. 



“켈시 선생님, 질문 하나만 더 해도 될까?” 



아직 자리에 앉아 있던 안젤리나가 죽은 눈빛을 한 채 천천히 손을 들었다. 



“...말해라.” 


“박사는 왜 링 씨를 선택했어? 왜 하필?” 



방을 빠져나가려던 오퍼레이터들이 그 질문에 멈칫하더니, 이쪽을 돌아보았다. 


후에, 켈시는 생각했다. 


안젤리나의 그 질문에 대답해서는 안 됐다고. 


아니, 애초에 그 질문을 하게 둬서는 안 됐다고. 


하지만 당시 그녀는 이미 오랜 야근으로 지쳐 있었고, 어떻게든 이 상황을 빨리 마무리지으려는 마음뿐이었다.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짜증스럽게 대답한 건 그 때문이었겠지. 



“방금 말하지 않았나. 그건 온전히 박사의 선택이었다고. 그런 건, 박사에게….” 


“푸하하하, 너네 설마 몰랐냐? 야, 내가 조용히 있으려고 했는데 이건 못 참지.” 



그리고 재앙이 시작되었다. 


총웨의 뒤에서 실실 웃고 있던 니엔이 아가리를 열더니. 



“박사랑 링이랑 떡쳤어. 그리고 서로한테 홀딱 반했다고. 촌극이 따로 없네, 이거.” 



그대로 폭탄을 투하했다. 


  

“......” 


"야, 야! 니엔! 너 지금 무슨 소리를!" 



옆에서 침묵하던 시가 뒤늦게 니엔의 멱살을 잡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사무실을 나가려던 그 자세 그대로 얼어붙은 오퍼레이터들. 


불길하기 그지없는 침묵이 감돌고, 그들 중 몇몇의 눈이 지극히 위험한 빛을 띄었다. 


그 침묵에 등골이 서늘해짐과 동시에. 


켈시의 뇌리를 단 한 단어가 스쳐지나갔다. 


좆됐다. 



“왜 링을 선택했냐고? 그런 질문을 왜 하냐? 박사가 언니를 보는 눈빛이 어떤지 한 번만 봤어도, 둘이 이미 볼장 다 보고 손자까지 생각하고 있는 걸 알-” 


“이 불경한 자가! 그런 천박한 말을 입에 담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건만!” 


“으겍.” 



총웨가 황급히 니엔의 대가리를 내리쳐 그녀의 입을 봉했지만, 때는 이미 한참이나마 늦어 있었다. 



“...켈시 씨, 나도 휴가를 신청할게. 지금 밀려 있는 연차가 꽤 되는 걸로 아는데.” 


“응, 나이스 보트.” 


“...나 퇴사할래. 마음이…마음이 너무 아파.” 


“아니 내 맹우가…그런 묵다 못해 삭아버린 도마뱀에게….” 



오퍼레이터들 사이로 번지기 시작한 절망. 


분노. 



[IA, IA, IA-Ph'nglui Mglw'nafh Ishar’Mla Ch’brnn Wgah'nagl Fhtagn] 



그리고 광기에, 켈시는 머리털이 쭈뼛 선다는 게 무슨 뜻인지 겨우 이해했다. 


어둠침침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품에서 서류를 꺼내는 오퍼레이터들.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일렁이는 깊은 바다의 그림자. 


오늘 이후로 좀 평화로워지긴 개뿔이나. 



“켈시 공, 아미야! 도망치게! 오라비 된 자로서, 동생의 만행은 내가 책임지겠네!”



황급히 태세를 갖추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심해의 괴물에 맞서는 총웨. 



“스카디, 괜찮습니까! 자, 잠깐…저건 설마….!” 



낌새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난입한 어비설 헌터들과. 



“야, 이 몹쓸 언니야! 어쩔 거야, 이제! 야단났잖아!” 



울상이 된 상태로 니엔의 목을 잡고 짤짤 흔드는 시. 


아비지옥과 규환지옥을 능가하는 이 혼란 속에서, 원인제공자인 니엔은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키득키득 웃고 있을 뿐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어떻게든 되겠지 뭐!” 


“그게 사람이 할 소리냐고!” 


“그보다, 시야. 우리 슬슬 움직여야 될 것 같은데.”   


“그건 또 뭔 헛소리야!” 


“생각해 보렴, 시야. 지금 염국에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누구누구 있지?” 



전혀 뜬금없는 말에, 문득 손을 멈춘 시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둘째 왕 오빠, 일곱째 지 오빠…대황성의 슈 언니랑, 우리 막내도 있네. 아니 근데 지금 그게 왜 중요하냐고!” 



그래, 그게 뭐가 중요한가. 



“천초백식을, 한 호흡에!” 



총웨가 묵직한 정권으로 눈이 돌아간 스카디를 후려쳐 기절시키고.  



“14일. 나도 14일 휴가 쓸게. 그 왕도마뱀이 박사를 잡아먹으면 안 되잖아. 내가 확실히 옆에서 에스코트할 테니까.” 


“...우후후, 박사.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우르수스 욕설*” 



책상 위에 산처럼 증식하는 휴가 신청서에 넋이 나간 켈시가 멍하니 허공을 응시한다. 


니엔이 입만 다물고 있었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참극이었다. 


그런데 이 사태를 초래해 놓고, 이 언니 같지도 않은 여자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그런 시의 의문에, 니엔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우리도 슬슬 가족 상봉 한 번 할 때 됐지 싶어서.” 


“너 진짜…!” 


“슈 언니는 사세대에서 인정한, 가장 협조적인 쉐이야. 사세대 지촉인과 친하게 지낼 정도로.  링과 박사가 염국에 갔다는 걸 사세대가 모를 리가 없으니, 슈 언니도 그 소식을 어떻게든 접했겠지?”


“......”


“슈 언니 성격상 그걸 못 들은 체 할 리도 없고. 그럼 박사와 링을 초대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태평하게 머리카락을 꼬며, 추측인지 궤변인지 모를 이야기를 늘어놓던 니엔. 


늘 아무 생각 없던 그녀의 눈빛이, 한순간 진중해지고.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렴, 시. 대황성에는 뭐가 있지? 그리고, 또 누가 있지?”


그녀의 말에, 공포와 귀찮음으로 마비되어 있던 시의 뇌가 천천히 생각을 시작했다. 


대황성에 있는 건 슈 언니. 


니엔의 말이 맞다면, 박사와 링도 있을 거고. 


악귀.


그리고…. 


그 모든 요소를 이용해 판을 짜려는 누군가. 


한 순간, 니엔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눈치챈 시가 눈을 크게 뜨고. 



“...니엔, 너. 설마….” 


“당연히 링이랑 슈 언니라면 알아서 하겠지만…뭐, 또 모르잖아? 동생으로서, 언니랑 형부한테 한 번쯤 힘이 되어 줘야지.” 



니엔이 키득거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니까 시야, 우리도 휴가 가자. 너랑 나, 총웨 오빠까지 셋이서.” 


“...싫어, 슈 언니 무섭단 말야.” 


“에이, 그러지 말고. 슈 언니한테 네 그림 준 적 있지? 그 그림 통해서 빨리 갔다 오면 되잖아. 밥은 먹지 말고.” 

  

“......” 



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평소에는 그냥 멍청한 언니인데, 이럴 때 보면 둘째 왕 오빠랑 닮았다니까. 


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런 사람이니까 쉐이를 죽이겠다는 터무니없는 계획을 세운 거겠지. 


방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말에 귀찮음이 밀려드는 시였지만….


결국 가족을 위한 일이라는데 안 움직일 수야 있겠는가. 



“...언제 가는데?” 


“몰라? 내일쯤 출발할까? 상황 정리되려면 좀 기다려야 할 것 같으니까.” 



그녀의 말에, 시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너희들은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카즈델 욕설* 너희들이 한꺼번에 휴가 나가면 작전은 조상님이 돌아주나?” 


“내 알 바 아니고! 난 지금 당장 박사 옆으로 가야겠으니까 보내 달라고! 지금까지 열정페이로 부려먹은 거 폭로하기 전에, 당장!” 



확실히, 이 개판이 진정되려면 몇 시간으로는 부족하겠지. 



“...하아, 알겠어.” 



결국 그녀에게 남은 선택지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로도스에 남은 쉐이 삼 남매의 염국행이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