뫄 직접 플레이하고 스토리 글들 몇개 봤으면 알겠지만 아르투리아는 라테라노의 방식을 부정하는 반란분자는 아님. 다만 '이거밖에 못해?'라는 입장이지.


스토리 바깥의 우리가 보기에도, 지옥같은 헬테라에서 그나마 낫다는 라테라노의 감정공유에는 빈틈이 많지. 가장 명백한 게 산크타 종족만 받는다는 거고, 그 다음 문제는 감정을 주고 받는 각자가 이성적이나 감정적으로 성숙한 사람일거란 보장이 없단 거임.


심심하면 건물이나 조각상 터뜨리고 새로 짓는다는 텍스트만 봐도 그럼. 다들 하하호호하면서 넘어가니까 별로 안 심각해 보이지만, 여기가 여고생쟝만 존재하는 키보토스도 아니고, 수염성성하고 뱃살 불룩한 아재들도 엄연히 존재하는 법치사회에서 할법한 행동이냐?


그래서 아르투리아가 꿈꾼 건 모두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공유하면서도, 동시에 모두가 성숙하고 강인한 사회였음. 아르투리아의 연주로 인해 누군가가 '솔직해져서' 발생한 모든 문제는 그 당사자가 성숙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 문제인거임.


그 미래 속에서는 모두가 가장 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똑같은 건 아닙니다. 어쩌면 당신처럼, 속세에는 당신의 의지를 흔들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으며, 심지어 죽음마저도 당신의 저항이나, 탐구, 정복을 지울 수 없어요.

아니면 코라 씨, 율리아 씨, 그리고 이 궁전에 떠도는 영혼처럼…… 그들은 위대한 업적과는 무관하고 그저 자신의 삶을 사랑할 뿐이지만, 자신을 삼키려는 거친 파도에도 용감히 맞서죠.

물론 우리도 행복 추구에 집착하겠지만, 더 중요한 건 고통을 피하지 않고 고통을 수치로 여기지 않는다는 겁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고통을 받고, 고통을 마주해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허무, 의혹, 곤혹, 후회, 굴욕, 슬픔…… 이런 복잡한 감정이 더는 우리 마음속 깊은 곳의 상처나 말하기 어려운 혼돈이 아니에요.

우리는 더 이상 표현하는 것에 부끄러워하거나, 표현하는 방법을 찾느라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자신을 마주해야 하는지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 강해지는 것이고요.

ZT-10 텍스트 중 아르투리아의 대사 일부임. 이러한 '가장 강한 마음'을 형용하는 개념이 있는데, 바로 니체가 제창한 '위버멘쉬'임.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심지어 고통조차 자신의 성장할 기회로 삼는 궁극의 인간상.


저 대사에서 언급되는 '고통을 마주해야 할 수 밖에 없다'는 건 비비아나를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줌. 


비비아나가 어린 시절 겪은 불행은 최고위 귀족(선제후)인 아버지의 신분에 비해 평민인 어머니의 신분이 너무 낮아 정실로 인정받을 수도 없고 본인 또한 없는 사람 취급당해서 탑 안의 골방에서 나올 수도 없었다는 건데, 


그렇기 때문에 맨 처음 비비아나는 아버지가 약속 장소에서 조금 더 기다려 어머니를 맞이했다면 자신과 가족이 불행하지 않았을 거라 믿었음.


하지만 기원의 뿔 속에서 여러 평행세계?를 엿본 결과, 그렇게 해서 아버지가 땡깡부려 어머니를 정실로 맞은 if 루트에서는 비록 어린 비비아나가 어두운 방이 아니라 크고 예쁜 방에 살 수 있었지만 아버지는 정쟁 속에서 암살당하고 그 다음 가주가 된 친척한테 쪼인 나머지 마침내 아이 방에서 카페트나 뺏어다 팔아야 하는 처지가 됐지.


그 다음으로 부모가 귀족 신분을 버리고 숨어서 평민의 삶을 살기로 택한 if 루트에서는, 아버지는 교사를 하고 어머니는 잡지 편집자를 하는 소박하지만 행복한 삶을 누렸지만, 결국은 이웃의 고발로 인해 가정이 무력하게 파탄당했지.


또한 헌병대장이 죽기 직전까지 찾아 해맸던 율리아 실종 사건의 진실은, 누군가의 심오한 음모가 아니라 그저 위치킹 잔당을 불운하게 마주친 것일 뿐이었고. 그걸 은폐한 게 여황들의 의지기는 했지만 적어도 어떤 다른 귀족의 횡포는 아니었음.


나는 이런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들을 통해 명방 제작진이 평범한 불행, 고난, 역경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봤음. 이야기 전체의 짜임새만 두고 볼 때 '생략 가능한' 파트야말로 여러번 꼬아버리기로 유명한 명방 서사에서 제작진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라고 생각하거든. 



각설하고, 아르투리아가 추구했던 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이러한 크고작은 역경에 맞서 싸우는 태도였음. 그 결과가 패가망신이어도 상관없음. 어쨌든 그 사람은 자신의 삶을 사랑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전 테라 규모의 분탕충으로 낙인찍힌거고, 희생자는 진작에 고통을 마주하지 못해서 곪은 상처가 터졌을 뿐인 거지.


그 반대되는 아치에너미인 익게이는 이해하기 쉬울거임. 극한의 싸이코패스 현실주의자이고, 아르투리아가 활동한 결과로 희생자가 나왔으니 멈춰야 하는 거임. 어떤 고상한 의지가 그 뒤에 있었다고 해도 상관 없음.


아르투리아가 이상으로 삼는 사회는 모든 개인이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역경을 기꺼이 이겨내려는 곳임. 즉 역경에 도전한 결과 패배하고 죽을 수는 있을 지언정 자기 자신을 저버리고 회피하다가 뒤늦게 곪아버린 상처가 터져버리는 일은 생기지 않는 곳.


이런 이상의 또다른 대안인 '질서'에 대해서는 


하지만 질서는 완벽하진 않아요. 질서는 견고하고 차별적이며 냉담합니다. 질서는 우리를 분리시키고 있어요.

라테라노의 질서는 신도를 구원했지만, 정작 살카즈에게는 낙원의 문을 닫게 하여,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한 빵이나 비를 피하기 위한 지붕조차도 제공하지 않으려고 하죠.

에기르와 이베리아는 위기가 도사리는 같은 바다를 사이에 뒀지만, 서로의 질서로 인해 같은 등대의 빛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질서가 아무리 우리의 존재를 배척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더 나은 질서를 간절히 바라고 있죠.

라고 언급함. 위치킹이 '그럼 질서 말고 뭐가 있는데?' 라고 반문한 것에 대한 대답이 저 위쪽의 인용문이고.


우리는 한 개체에 모두를 가둬버린 감옥을 부숴달라고 요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강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감정의 연결을 바탕으로 지식과 경험, 능력과 통찰력을 공유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우리의 연결을 흔들 수 있는 위기는 없고, 우리의 결합을 닳게 할 수 있는 좌절은 없게 되겠죠……

밝혀지지 않는 진리는 없습니다. 이해받을 수 없는 고통도, 극복할 수 없는 장애도 없습니다. 우리는 자아가 강해짐으로써 모두가 강해질 것입니다.

각자가 선명하면서도 하나로 태어나는 거죠.

우리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을 때, 그 어떤 재난과 미지도 우리를 흔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을 찾아온 겁니다. 만약 정해진 소멸에도 대항할 수 있는 '강한 마음'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그런 미래를 저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또한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역경에 대한 해결책은 공감과 단결이라고 주장하고 있기도 함. 그것의 바탕이 되기 위한 모델케이스로써 위치킹을 찾아왔던 것인데...


산크타여. 네가 그리는 그 미래는, 분명 가치가 있다.

어쩌면, 정말 실현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는 오히려 그 답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사람이다.

만약 네가 그릇이고 거울이라면, 만약 네가 자신이 간과한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리 네가 올바른 길을 걷는다고 해도, 너는 종점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킹갓폐하에게 일축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