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되짚어보면 크리스마스에는 좋은 기억밖에 없던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한결같이 말이다.

 

어린 시절에는 산타에게 선물을 받는다는 생각에 늘 들떠있었다. 1년 중 가장 행복한 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금 머리가 커져 철이 들 무렵부터는 선물을 받는 일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기본적으로 특별한 날이었으니, 즐거운 일이 많았던 까닭이다.

 

이는 어른이 된 지금, 모항에도 해당하는 사항이었다. 함선 소녀들은 특별한 날을 기념하여 여러 행사를 벌였고, 그것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고생이었다.

 

…….”

 

왜 그래 허니? 피곤해?”

 

의자에 몸을 기대 늘어지게 기지개 켜는 사이, 뉴저지의 명랑한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히히, 웃고 있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텐션에 살짝 당황하기도 했다. 분명 같이 자서 같이 일어났는데, 하고 의문이 따라왔지만, 이거야말로 그녀의 매력이었으니까. 되려 웃음만 나왔다.

 

당연히 아니지, 가장 중요한 시간인데.”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옷을 갈아입는다. 지금은 12월 25일 오전 0. 크리스마스의 새벽이었다.

 

선물은 많이 준비했어?”

 

어느새 루돌프 차림으로 갈아입은 뉴저지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단순한 코스튬이었지만, 특유의 육감적인 몸매는 도저히 감출 수 없어 잠시 시선을 빼앗기는 일이 있었다.

 

차고 넘쳐.”

 

마찬가지로, 산타 복장으로 환복한 내가 말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나는 산타, 그녀는 루돌프.

 

우리는 오늘,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줄 거다.

 

동기는 단순했다. 3일 전, 늘 상 그렇듯 뉴저지와 시답잖은, 정확히는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던 차에 크리스마스를 언급한 게 계기였다.

 

그녀는 내 과거에 유독 관심사를 기울였고, 딱히 숨길 이유도 없던 나는 전부 방출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크리스마스에 무언가를 했는가. 이것이 핵심 주제였다.

 

뉴저지는 내가 어린 시절 산타, 정확히는 산타라 믿던 부모님에게 선물을 받고 좋아했다는 사실에 유독 즐거워했다. 듣는 사람의 반응이 좋으니 나 역시 즐거웠다.

 

그러던 와중, 그녀가 제의한 것이다. ‘구축함 아이들도 산타에게 선물을 받으면 기뻐하지 않을까?’ 그녀의 하고 말이다.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 순간, 뉴저지는 이미 계획까지 세워놓은 지 오래였다. 특유의 진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나 역시 거부할 이유도, 마음도 없었으니 기꺼이 따르기로 했다. 산타 복장을 먼저 주문한 걸 보면 내가 더 신났을 수도 모른다.

 

! 그럼 허니아니 산타! 준비됐지?”

 

가자, 루돌프.”

 

당장 임하는 태도도 그러했다.

 

 

 

***

 

 

 

 

긴장과 설렘이 적절히 혼합된 마음을 품고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가까운 이글 유니온 숙소였다. 몇 함선 소녀들에게 미리 설명을 해둔 덕에 큰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동참하겠다는 경우가 많아 할 일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었다. 덕분에 선물을 나눠주는 과정은 썩 순탄했다.

 

물론 중간중간 본인은 선물 없냐면서 은근슬쩍 몸을 밀착하는 불상사가 있었으나, 뉴저지의 필사적인 마크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반복, 어느새 이글 유니온 소속 구축함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뉴저지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말했다.

 

이글 유니온은 이제 끝인가?”

 

아니, 앵커리지 남았어.”

 

앵커리지의 경우 신체는 이미 어지간한 성인 여성보다 성숙한 편이었으나, 정신연령은 그러지 못했다. 선물 받을 사람의 범주에는 들어가기 차고 넘쳤다.

 

때문에 따로 앵커리지를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 본인이 마음에 들어 할지는 모르겠지만, 볼티모어와 브레머튼에게 언질을 받았으니 아마 괜찮을 거다. 그렇게 생각했다.

 

불안한데…….”

 

뭐가?”

 

갑작스레 평소보다 진중한 목소리를 뱉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표정 역시 썩 좋지는 않았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일 뿐, 조심스레 뺨을 두드린 뉴저지는 어느새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즉시 발걸음을 옮겼다.

 

브레머튼, 있어?”

 

톡톡, 가볍게 노크하며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대답이 돌아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휘관! 왔구나.”

 

벌컥 문이 열리며 게슴츠레 미소를 지은 여성이 내 시선을 가득 채운다. 브레머튼이었다.

 

다만, 내가 자주 보던 그녀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정말 사소한 수준이었다. 머리를 풀었다든지, 선글라스를 벗었다든지, 혹은 전투복 대신 편한 일상복을 입었다든지.

 

앵커리지는, ?”

 

말도 마, 지금 누가 업어가도 모를걸?”

 

질문에 대답해 준 건 브레머튼이 아닌 제 3, 볼티모어였다. 마찬가지로 평소 해역에 나갈 때 입는 옷 대신 편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매끈한 허벅지 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 돌핀 팬츠와 속옷과 다를 바 없는 면 나시, 의복의 기능을 하는지 의문이 따라올 정도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 바라보고 있었다.

 

…….”

 

……!”

 

그런 내 정신을 되돌려 놓은 건 다름 아닌 뉴저지, 옆구리가 시큰했다. 보지 않아도 확신할 수 있었다. 꼬집었구나.

 

일단 들어와, 온 김에 잠깐 말이라도 나누고 가야지.”

 

어느새 브레머튼은 내 팔을 잡아 당기고 있었다. 팔은 나보다 가늘고 여렸지만, 나는 인간, 그녀는 함선 소녀, 힘에서 밀리는 건 당연했다.

 

이어서 뭉클, 부드러운 느낌이 내 팔을 감싸 안는다. 나는 그것의 정체를 인식하지 않으려 애썼다. 인지하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절절히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좋은 생각이긴 한데.”

 

말하며 슬쩍, 고개를 돌린다. 들어오는 건 이상할 정도로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루돌프……아니, 뉴저지, 솔직히 말해 저런 모습도 썩 귀여웠다.

 

오늘은 좀 바빠서 말이야. 나중에는 꼭 올게.”

 

브레머튼의 손에 선물상자 넘겨줬다. 이는 두 가지 뜻을 수반한 행동이었다. 앵커리지에게 선물을 놓아달라는 것, 그리고 아쉽지만 우리의 대화는 여기까지라는 것.

 

후후, 약속한 거다.”

 

섭섭해할 법도 했지만, 의외로 순순히 놓아주는 모습에 살짝 놀랐다. 의미심장한 말투는 덤, 아무래도 그녀의 목적은 오늘이 아닌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었나보다. 한 방 먹은 순간이었다.

 

선물은 잘 전해줄게, 산타 할아버지.”

 

너희들도 착한 일 많이 하면 선물 받을 수 있을 거야.”

 

그래. 다음 크리스마스 때는 꼭 좋은 선물 받길 기도해야지.”

 

볼티모어가 위아래로 시선을 훑었다. 대상은 당연히 나였다. 약간이지만 등이 축축해졌다.

 

그래. 그럼 다음에 보자. 얼마 안 남은 올해 잘 보내고.”

 

대답은 목소리 대신 행동으로 나타났다. 볼티모어와 브레머튼은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나 역시 그에 맞춰 손을 흔들며 걸음을 옮겼다. 뉴저지만 그러지 않았다.

 

잘 보면 볼에 바람도 한가득이었다. 단 둘만 남게 된 즉시 손가락으로 그녀의 볼을 찔렀다. 바람 빠지는 소리가 참 인상적이었다.

 

그러지 말고, ? 좋은 날이잖아.”

 

한 번 안아주면 생각해 볼게.”

 

 망설임 없이 껴안아 줬지만, 당연히 안아주는 선에서 그치지 않았다. 머리도 쓰다듬고, 뽀뽀도 한 번 해줘야 했다.

 

 

 

 

 

***

 

 

 

 

그 뒤로는 마찬가지로 순탄했다. 뉴저지는 어느새 본래의 텐션을 되찾았고, 굳이 우리만 이런 계획을 세웠던 게 아니라 더더욱, 생각보다 빨리 끝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선물이 몇 개 남았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특히 이 모항에서 오래 있어 준 네 명에게 선물을 주기로 결정했다.

 

이미 산타를 믿을 나이는 지난 거 같다만, 반대로 그렇기에 더 궁금했다. 과연 무슨 반응을 보여줄까. 바로 이동했다.

 

라피는 빅 사이즈 베개, 재블린은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조각 케이크 모음, 아야나미는 게임팩 합본 액션 52, 각자 취향에 맞춰 머리맡에 놓았다.

 

그리고 Z23은 미대에서 떨어지고 군인이 된 사람의 자서전을 준비했다. 부디 만족하기를 기원하며.

 

허니~수고했어~”

 

그렇게 모든 일이 끝나고 방에 돌아온 시점, 뉴저지가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몇 시간이나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어째 그녀의 텐션은 여전하다 못해 더 튀어 오른 것 같았다.

 

, 너도 고생했어, 뉴저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모습이었다. 때문에 나 역시 웃으며 말할 수 있었다.

 

뿌듯하기 그지없었다. 당장 내일 아침에 놀랄 아이들의 얼굴을 생각하니 벌써 기분이 좋아졌다. 큭큭, 웃음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어 허리를 두드리며 주섬주섬, 산타 복장을 정리했다. 뉴저지는 아직 루돌프 복장 그대로였다.

 

그런데 허니, 아쉽지 않아? 다들 산타의 선물을 받았는데, 허니만 못 받은 거잖아.”

 

그녀에게 떠오른 갑작스러운 의문은 곧 질문의 형태로 나타났다. 답변은 즉각 튀어나왔다. 깊이 생각할 만한 문제는 아니었다.

 

, 난 이제 어른도 아니고, 됐어.”

 

흐음……그래?”

 

바로 그때, 뉴저지의 눈매가 호선을 그렸다. 무언가 심상찮음을 깨달았지만, 그보다는 뉴저지의 행동이 더 빨랐다.

 

슬쩍, 뉴저지가 손을 뒤로 뻗어 입고 있던 루돌프 복장을 벗는다. 표정은 게슴츠레하다 못해 야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수준이었다.

 

, 투둑, 지퍼가 내려가며 복장이 벗겨진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의 육감적 몸매가 차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설마.”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옷을 벗는 행위를 지속할 뿐, 보이는 건 밝은 살색, 또 가슴과 고간만 겨우겨우 가리고 있는 붉은 끈.

 

경악해 고개를 들고, 그녀와 시선을 교차한다. 특유의 푸른 눈에는 유달리 색기가 가득했다.

 

허니, 정말로 선물 필요 없어?”

 

가슴과 고간을 가린 끈에는 리본 매듭이 지어져 있었다. 흔히 선물을 포장할 때나 쓰는 그런 방식,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내가 아니었다.

 

? 정말로 필요 없어? 허니?”

 

…….”

 

나는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다. 여기서 입을 여는 건 멋없는 행위라는 걸 알고 있던 까닭이다.

 

꺄아~♥

 

다만, 행동은 그 무엇보다 솔직했다.

 

 

 

 

 

 

 





내 글 모 음


 

작년부터 머리에 담아둔 소재였는데 드디어 해방함 천장만 안쳤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나쁜 년



그리고 대회 뭔데 5월까지임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