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조노 오타에 아니 하나조노 타에는 다음 달의 12월 4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은 내가 태어난... 생일이란 날.

 “오타에 짱은 생일 선물로 뭘 원해?”

 “리미, 그런 거 물어봤자잖아. 보나 마나 ‘하나조노 랜드에 가고 싶어’나 그와 다를 바 없는 말을 하겠지.”

 “역시 아리사. 응. 난 생일 때 하나조노 랜드에 가고 싶어. 모두와 함께.”

 “그럼 가자! 하나조노 랜드!”

 “하하, 카스미. 어딘지는 알고 제안하는 거야?”

 하나사키가와 여학원의 점심시간에 교외에서 포피파 멤버가 모여 내 생일을 주제로 이야기꽃이 펼쳐졌다. 11월이라 날씨가 쌀쌀하긴 하지만 아직 버틸 만하다.

 “애초에 하나조노 랜드가 뭔데. 제대로 정의해봐.”

 “토끼가 잔뜩 있는 꿈의 세상이야.”

 “...토끼만 잔뜩 있으면 되는 거야?”

 응? 별일이네. 아리사가 이렇게 하나조노 랜드에 대해 물어보다니.

 “음... 토끼에게 줄 먹이도 가득해. 당근, 샐러리, 배추 등...”

 “응. 그래그래 당근, 샐러리 같은 거...”

 “즉시 따서 줄 수 있게 항상 나무에 매달려 있어.”

 “당근도 샐러리도 배추도 나무에서 열리지 않거든?!”

 생각해보니 그러네. 역시 아리사.

 “토끼 모양 빵 같은 거 어떨까?”

 “리미, 좋은 생각이야. 토끼 모양 빵... 생각만 해도 귀여울 거 같아.”

 나는 상상했다. 푹신한 구운 반죽으로 만들어진 토끼의 모양을. 사아야네 손맛까지 더해진 최상의 토끼 빵을.

 “아니, 토끼로 빵을 만들든 쿠키를 굽든 오타에 너 보나마나 토끼가 불쌍하다고 안 먹을 거잖아.”

 “응.”

 “만드는 의미가 없잖아! 사아야네 밀가루 사정은 안 불쌍하냐!”

 내 대답에 아리사가 빠른 츳코미를 넣었다.

 

 며칠 후, 2학년 E반의 체육 수업. 나는 이브와 등을 맞댄 채 서로를 번갈아 가며 들어 올리고 있었다.

 “타에 씨는 갖고 싶은 생일 선물은 없나요?”

 “음... 토끼에게 갑옷 같은 걸 입히고 싶어.”

 “토끼에게 갑옷... 무사도스럽군요!”

 무사도스러운 게 뭔지 모르겠지만, 대충 그런 거겠지.

 “하구미도, 하구미도! 오타에는 하구미에게 바라는 선물 같은 거 있어?”

 하구미가 나와 이브의 대화를 엿들었는지 활발하게 다가와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음... 토끼 인형탈 입고 안아주는 거?”

 “그거라면 마리를! 아... 근데 마리는 개인적으로 쓸 순 없으려나... 마리는 상점가의 것이니까.”

 “미사키는 미셸인 채 헬로해피 소속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잖아.”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아, 하구미는 아직도 미사키와 미셸이 동일인물인 걸 모르는구나. 내년에는 미사키가 미셸인 걸 알아주려나.

 

 며칠 후, 하나사키가와 여학원에서 난 이동 수업 때문에 다른 교실로 향하고 있었다.

 “어라, 타에 짱 아니니.”

 “...”

 “치사토 선배, 아야 선배.”

 나는 다른 교실로 가는 도중 우연히 치사토 선배와 아야 선배를 만났다.

 “후훗, 이동 수업인 모양이구나. 그러고 보니 다음 달 초에 타에 짱 생일이지? 특별히 선물로 원하는 게 있니?”

 “음... 치사토 선배는 다과에 대해 박식하시죠?”

 “응. 차나 과자라면 선물로 딱...”

 “토끼가 먹어도 괜찮은 다과는 없을까요? 저도 옷짱이랑 다과회를 하고 싶어요.”

 “아...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황당한 말을 꺼내는구나... 애완토끼랑 다과회...”

 치사토 선배는 당황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역시 프로.

 “잘은 모르겠지만 토끼에겐 과자도 차도 먹었다간 몸에 탈이 나지 않을까?”

 “그럴 거예요. 토끼는 배탈이 나기 쉬운 동물이거든요.”

 “그럼 안 되겠지. 아쉽지만 선물은 다른 게 좋겠네.”

 “그러네요. 그럼... 치사토 선배가 추천하는 다과를 준비해주세요.”

 나는 어쩔 수 없이 옷짱을 비롯한 내 토끼들과의 다과회를 연다는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흠...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았는데.

 “...”

 “아야 선배에게 바라는 선물이요? 흠... 아, 종 쳤다. 죄송해요. 이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해요.”

 아야 선배에게도 원하는 선물이 뭔지 질문을 받았지만, 아쉽게도 종이 치는 바람에 대화를 더 이어나갈 수 없었다. 나는 두 선배에게 손을 흔들며 가야 할 교실로 뛰어갔다.

 

 며칠 후, 나는 ○○ 라이브 하우스에 아르바이트하러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는데...

 “오... 오타에구려~”

 그곳에는 천재 미소녀 모카짱이 있었다. 모카 주위엔 편의점 빵이 산더미처럼 놓여 있었다.

 “모카, 여기서 아르바이트하는 거야?”

 “그렇소~ 오타에는 여기까지 어쩐 일이오~”

 “나는 ○○ 라이브 하우스에 아르바이트하러 가는 길이오.”

 나는 모카의 말투를 따라 하며 서로 장난을 주고받았다.

 “살짝 출출해서 편의점에 들린 건데, 추천하는 거 있어?”

 “양상추(레타스)가 잘 팔림(우레탓스)~”

 “오오, 그럼 양상추 하나.”

 “알겠습니다~”

 양상추라 이 편의점에 그런 것도 파는구나. 토끼 먹이로 몇 개 더 사갈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창고에서 리사 씨가 나오더니 한숨을 쉬었다.

 “하하, 이 편의점엔 양상추 같은 거 없어. 모카, 손님에게 장난치지 마.”

 “힝~”

 양상추는 농담이었구나. 리사 씨에게 혼난 모카는 장난 가득한 울상을 지었다.

 “오타에, 미안해~ 생일 때는 반드시 양상추 들고 갈게~”

 “응. 고마워.”

 “풉, 생일 선물로 양상추라니 모카도 참! 그걸 진지하게 받아주는 타에도 타에대로 너무 웃기잖아.”

 나와 모카의 대화에 리사 씨가 빵 터지듯이 웃었다.

 “그나저나 모카 주위엔 빵이 많네.”

 “응. 오늘 빵 할당량을 채워야 하거든~ 이거 먹고 나중에 사아야 네 빵집에서 빵을 사서 먹을 거야.”

 “그렇게 먹고도 살 같은 건 안 쪄?”

 모카 주위에 놓인 빵들의 양은 범상치 않았다. 그런데도 나중에 더 먹을 거라니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 칼로리는 히~짱에게 보내고 있으니까~”

 “와, 나도 히마리에게 칼로리 보내보고 싶어!”

 “후훗~ 이 기술은 꽤 어렵다고? 오타에가 익힐 수 있으려나?”

 “노력할 거야. 그리고 익혀서 포피파의 모두에게도 알려줘야지.”

 “너희 둘 다 히마리 그만 놀리도록 해. 히마리가 불쌍하잖아.”

 나와 모카가 히마리를 놀리는 대화를 하자 리사 씨가 우리 둘을 혼냈다.

 

 며칠 후, 저녁. 겨울인 만큼 빠르게 찾아오는 어두운 하늘 아래, 나는 길거리에서 기타를 들고 길거리 라이브,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버스킹(Busking)을 펼쳤다. 레이와 함께 말이다.

 날씨가 매섭게 추웠기에 나와 레이는 손에 장갑을 끼고 악기를 연주했다. 장갑 없이는 손이 얼어붙어서 제대로 치기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장갑 낀 채론 평소와 치는 느낌이 달라 완전히 전력을 낼 수 없긴 하지만.

 ““~♪””

 나의 기타 소리와 레이의 베이스 소리가 합쳐져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과 마음을 하나둘 빼앗아갔다.

 “하나 짱, 훌륭한 연주였어.”

 “레이도 훌륭했어. Great! Excellent!”

 나는 츄츄의 말투를 따라하며 레이의 연주를 칭찬했다.

 “이제 곧 하나 짱의 생일이네. 축하할 날이 기대돼.”

 “나도 레이의 선물이 기대돼.”

 “나뿐만 아니라 라스 모두도 하나 짱의 생일을 멋진 준비와 함께 기다리고 있어. 이번 생일은 특히 기대할 만해.”

 “응.”

 라스의 모두라... 레이야가 말하니 문뜩 내가 RAS의 서포트 기타로서 뛰어다니던 시절이 떠올랐다. 보다 높은 경지에 이르고 싶어서 잠깐 RAS에 있었던 그 시기... 나의 안일한 판단 때문에 포피파에게 큰 상처를 주게 되는,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했지만... 그래도 RAS와의 추억이 즐거웠던 건 변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그때 카스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니, 그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역시 다행이다.

 “다행이야... 그때 카스미에게 변태라고 해서...”

 “응? 하나 짱,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카스미가 변태라서 지금의 내가 있는 거거든.”

 “...??”

 레이가 전혀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며칠 후 아침. 나는 아침 러닝을 하고 있었다. 가시밭 같은 추위 속에서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은 시원해서 기분이 좋았다. 그러던 중 나는 묘한 것을 목격했다. 길 위의 복슬복슬한 털뭉치... 응? 옷짱? 내가 꿈을 꾸는 걸까? 검은 조끼를 입은 옷짱이 조끼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다.

 “바쁘다! 바빠!”

 말까지 하네?

 내가 옷을 차려입고,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고, 말까지 하는 옷짱을 보고 신기하게 여기고 있는 동안 옷짱은 어디론가 뛰어갔다.

 “거기 서! 옷짱! 어디 가는 거야!”

 나는 멀어지는 옷짱을 쫓아 전력질주했고, 어느 새 난 커다란 한 나무 앞에 섰다. 그 나무의 밑에는 커다란 구멍이 있었고, 구멍 너머의 공간은 온통 새까매서 안이 보이지 않았다. 옷짱은 그 구멍으로 들어갔고 나는 생각 없이 옷짱을 쫓아 그 구멍으로 들어갔다.

 “어어어? 아아아아아!”

 나무 구멍 너머로 들어가자 나는 아래로 떨어졌다. 주변이 새까매서 차마 바닥이 없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워터 슬라이드를 타듯 미끄러지고 미끄러져 아래의 아래를 향했고, 머릿속은 공포와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몇 초 뒤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느 새 슬라이드 구간은 끝나 나는 어떤 장소에 도착했다.

 “여긴... 어디?”

 나는 분명 나무 안으로 들어왔을 텐데, 그곳에는 하나의 세상이 따로 존재했다. 도저히 나무 밑에 있는 공간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척 넓은 세상이 있었다.

 바닥은 푹신한 풀밭. 드러눕기 딱 좋은 풀밭이 있었다. 그리고 그 풀밭 위로 수많은 토끼가 뛰어놀고 있었다. 데굴데굴 구르는 토끼도 있었고, 땅굴을 파느라 엉덩이만 보이는 토끼도 있었다. 이곳은 마치 천국... 아니, 하나조노 랜드!

 내가 발을 한 발 내밀자 풀밭 위의 토끼들이 내 존재를 눈치채곤 우르르 나에게 달려왔다. 아아, 마치 파도와 같은 토끼떼... 이렇게나 행복할 수가...

 “어.”

 나는 그 토끼떼의 장면을 마지막으로 꿈에서 깼다. 하나조노 랜드하고 이별하고 말았다.

 “음...”

 나는 눈앞에서 사라진 하나조노 랜드가 아쉬워서 계속 천장을 바라봤다. 그래, 다시 자면 하나조노 랜드에 갈 수 있을 거야. 그런 결론을 내린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잠이 내 의식을 잡아가길 기다렸다.

 창문의 커튼 너머로 느껴진 빛의 강도를 보면 지금은 분명 정오를 넘겼을 것이다... 오늘은 일요일이니 학교도 안 가니까 별 신경 안 써도 되겠지. 일정 따위... 일정 따위... 아.

 나는 뭔가를 떠올려내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오늘은 12월 4일... 내 생일이다.

 

 나는 서둘러 외출 준비를 마치고 CiRCLE을 향해 달려갔다. 점심은 먹고 오지 말라는 당부가 있었기에 아침, 점심 거른 채로 뛰어야만 했다. 그리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뒤, 나는 CiRCLE에 도착했다. 12월 1일 때 겨울 치장을 마쳤기에 겨울다운 멋이 여기저기에서 느껴지는 건물이 그곳에 있었다. 난 CiRCLE에 방문하고 라운지에 들어갔다.

 “““생일 축하해!”””

 내가 라운지에 발을 들이자마자 경쾌한 생일 폭죽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내 생일을 축하해주는 모두의 목소리가 들렸다.

 라운지 벽엔 풍선으로 만든 내 이름이 잘 보이게 붙어있었고, 라운지에 집결한 지인들은 모두 토끼 머리띠를 쓰고 있었다.

 “헤헤, 마리는 못 빌려서 대신 모두 토끼 머리띠를 쓰기로 했어!”

 하구미가 방방 뛸 기세로 나에게 다가와 자신의 토끼 머리띠를 자랑했다. 모두들... 귀여워.

 “커다란 케이크다.”

 “사아야와 내가 만든 케이크야.”

 “마스키...! 대단해. 엄청 맛있어 보여.”

 나는 라운지 테이블 위에 놓인 엄청 커다란 케이크에 감탄했다. 케이크 주위에는 기타 모양 쿠키들이 장식되어있었다.

 “타에, 이건 우리 헬로해피가 준비한 선물이야.”

 “와, 햄버그다. 큼직한 햄버그에 그 위에 당근이 통째로 꽂혀있어.”

 코코로가 말하자 토끼 머리띠를 쓴 미셸이 튀어나왔고, 나는 그 미셸이 가져온 햄버그 정식에 감탄했다. 검은색 고깃덩어리에 맛있어 보이는 소스... 그리고 평범함과 차별을 둔 당근 플레이팅, 보기만 해도 배가 든든해지는 듯한 밥과 햄버그 주위에 늘어선 브로콜리, 옥수수, 방울토마토 등의 각종 채소. 보기만 해도 군침이 입 속에서 솟아올랐다.

 “하나조노 씨, 점심 거르고 왔지? 이걸로 배를 채우고, 디저트로 저 케이크를 먹는 거야.”

 “응.”

 나는 라운지 소파에 앉아 테이블 위에서 햄버그를 시식하기 시작했다. 고기 특유의 질김 없이 부드럽게 씹히는 햄버그, 달콤한 소스...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햄버그 중 가장 맛있었다. 마치 1류의 재료와 1류의 셰프의 손을 만들어진 느낌이었다.

 “타에 짱, 저번에 이야기했던 내가 추천하는 차야. 카논과 함께 골랐어.”

 “치사토 선배, 고마워요.”

 “오타에, 저번에 이야기했던 양상추야~ 오타에의 토끼에게도 먹여봐. 칼로리는 히마리에게 갈 테니 살찔 부담은 갖지 마시길.”

 “모카, 고마워.”

 “...”

 “아야 선배, 고마워요. 토끼 털을 빗을 빗이라니, 마침 새 게 필요했거든요.”

 나는 모두로부터 하나둘 선물을 받았다. 하나하나 모두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속이 기쁨으로 가득 찼다.

 “타에 하나조노, 마지막으로 우리 RAS의 생일 선물이야.”

 그리고 마지막은 RAS의 선물. 라운지 한쪽 구석엔 천으로 뭔가 가려진 게 있었는데, RAS 멤버가 그 천을 들치자 그곳에 숨겨져 있던 RAS의 악기 장비들이 나타났다.

 “타에 하나조노 Happy birthday! 이것이 바로 RAS 방식의 생축이야!”

 이렇게 악기들이 모여 있다면 RAS의 선물은 예상이 갈 것이다. 그렇다. RAS는 라이브로 내 생일을 축하하고 선물하려고 했다.

 RAS는 Beautiful Birthday를 연주했다. 기존의 Beautiful Birthday와는 달리 나에게 맞춰 가사도 바뀌고, 노래도 더욱 가볍게 바뀐 곡이었다. 파레오가 츄츄를 위해 만든 소중한 곡이 나만을 위해 이렇게 바뀌다니 감동이 전신을 뒤흔들고 있었다.

 기대했던 대로 최고의 생일이 되었다. 이제 나는 RAS와 함께할 수 없지만, 인연은 여전히 이어져 있구나. 그 사실을 톡톡히 느낄 수 있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