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광의 도시>

 

자비없이 타버린 열정은 재로 변한다.
또 다시 극악무도한 우울함이 된다.

 

우울함 위로 피어나는 한심함과 자괴감이 마구 요동치는 날에
나는 깊숙한 해저속을 유영하는 듯한 기분으로
도시의 손금을 따라 흘러가는 온갖것들을 내려다 보고 있다.

 

화려하고 밝은 빛은 유유히
군청색 마천루들 사이사이를 가득 매운 차가운 정서에 산란되어
희석된 불투명한 빛이 된다.

 

시간이 지나 샘물이 메말랐을 때, 비로소 고요함을 경청할 수 있다.
한산한 도로 위에 떠오른 은은한 달빛.
그리고 그 섬광을 수용하는 싸늘하고 음산한 공기들이 조화될 때
음미하고 있는 고독함의 풍미를 높인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지금
바라보고 있으면 우수에 찬 삶도 제법 위로받는 듯 하다.

 

허나 달이 지면 영원할 것 같은 이 순간도 이별이니
이 즐거움을 멈추고 싶지 않다면, 아니 날 난도질해대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곧 들이닥칠 혼잡함을 기다리는 두려움의 반복을 그만하고 싶다면
영원해지는 방법밖엔 없다.

 

내가 내린 결론이다.

 

 

그리고, 수천, 수만번도 더 지겹게 내린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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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당시 우울할때 끄적거려본 시입니다. 딱히 "시를 지어보자!" 하고 쓴것도 아니고 그냥 술술나오는대로 정말 진심을 다해 쓴거라 개인적으로 진정성이 느껴져서 애착이 가는 자작시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