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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이고대마왕신367대후계화석반물질인것에대한 구미호 찬가.
 
 
 
 
 
 *구미호 두 꼬리
 
제로가 정신을 차림과 동시에 알람처럼 온몸이 떨려왔다. 등과 맞닿은 것은 두리뭉실한 부피감의 눈더미는 아니었다. 워있는 건 확실한 질감이 있는 딱딱한 바닥이었다. 눈을 뜨며 마주한 천장이 그를 증명했다.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올린 제로는 주변을 살폈다.
탁트인 순백의 풍경이 아니었다. 주홍빛으로 칠해진 방 안이었다. 벽난로에서 퍼져나오는 색이었다. 그 불빛을 이불처럼 덮고있던 제로는, 오두막 목제 바닥 위에 누워있었다. 제로 옷에 붙은 서리는 꽤나 지워져있었고 제로가 누워있던 자리는 축축히 젖어있었다. 난로를 꽤나 쬔 듯 했지만, 아직도 제로 몸 속 깊이 베인 한기는 가시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몸이 풀려 움직일 순 있게된 제로는 벽난로로 기어가 그 옆에 바짝 붙어 누웠다. 아직도 몸이 떨려와 정신없는 와중에도, 약간의 여유를 가질수 있게된 제로는, 이제서야 여긴 어딜까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아마 눈에 완전히 파뭍히기 전, 운좋게도 지나가던 누군가에게 구해진 것이리.
그런 생각들로 추위를 잊느라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도 모를 때. 방문이 열렸다.
 
 
 
 
 
 
 
*구미호 세 꼬리
 
하얀 머리칼을 어깨 밑까지 늘어트린 젊은 여자가 들어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제로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 붉은 눈동자에, 순간 제로는 섬찟 놀란 얼굴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그녀는 제로에게 다가와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곤 잠시 제로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괜찮니? 제로는 입을 열지않았다. 멍하니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방 안에서 처음 떠오른 그 한마디가 적막 속에 흐리고 흐려지다, 결국 말을 잇는 건 그녀였다. "침대도 없어서 미안해. 춥지? 차라도 내올테니 불 좀 쬐고 있으렴."
그리고 그녀는 나가버렸다. 다시 제로 혼자 남았다. 제로 혼자.
 
 
 
 
 
*구미호 네 꼬리
 
그녀는 접시 위에 찻주전자와 찻잔을 싣고 다시 나타났다. 아까와 같이 난로 옆에 바짝 붙어 누워있던 제로는 고개를 들었다. 자, 어서 마시렴. 그녀는 제로 옆에 앉아 접시를 내려놓고 말했다. 제로는 몸을 일으키고 그녀가 가져온 것을 보았다. 밀크티였다. 제로는 고갤 들어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살며시 미소지은 채 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로는 다시 고개를 떨구고 찻잔을 집었다. 두 손으로 찻잔을 움켜쥔 채 잠시 가만히 있었다. 많이 추웠나 보구나, 그녀가 말했다. 제로는 차를 입으로 가져다댔고, 금새 잔을 비웠다. 그녀는 다시 제로의 잔을 채워줬고, 제로는 곧바로 잔을 입에 붙였다. 그런 제로를 그녀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정말 큰일 날뻔 했어. 도대체 어딜 가고있던 거니?
 
 
 
 
 
 
 
 
* 구미호, 아홉번째 꼬리
 
제발, 제발. 내게 널 조금만 나누어주렴. 그녀, 백발 적안의 구미호는 그렇게 제로를 붙잡고 울먹였다. 잔뜩 눈물 맺힌 붉은 눈동자. 눈을 마주쳐버린 제로는 잠시 주춤했지만, 제로는 그런 그녀를 뿌리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제로를 붙잡던 손이 허공으로 붕 떴다. 바들바들 떨리는 그 손은 한동안 내려오질 않았다. 문을 열고 나선 제로는 광활한 순백의 풍경을 맞닥드렸다. 제로는 묵묵히 앞만 바라보며 발을 땠다. 옷깃을 붙드는 날카로운,처절한서글픈,애절한 소리들에 제로의 발걸음이 무거워졌으나, 제로는 그 내용을 다 파악하진 못했다. 어렴풋이 헤아릴 뿐이었다. 이제 제로의 발이 눈에 푹푹 빠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도 희미해져갔다.
멈춘 것은 차가워진다. 식은 것은 시체다. 제로는 또다시 눈밭 속으로 하염없이 발자국을 찍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