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트판에 이직 고민 글이 올라왔길래 궁금해서 클릭해보았다. (회사는 아직 네이트온을 메신져로 쓴다.)

자신은 40대이고, 지금은 연봉 4천만원짜리 직장을 가지고 있는데 연봉 5천짜리 회사에 자리가 나서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직장은 워라벨도 없고 집에 와서 계속 잔업을 해야하고 휴일에도 나가야 할 때가 많은데 이직할까 고민하는 회사는 개인시간도 보장되고 대기업 계열사라 환경이 좋고 어쩌고 저쩌고...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보였다. 솔직히 조금 질투도 났다. 물론 글쓴이는 40대니까 그만큼 노력해서 올라간 거 겠지만...

그 게시물을 보고 무슨 이유에선지 잡코리아를 들어가게 되었다. 갑자기 더 좋은 회사로 가고싶어진건지도 모르겠다. 

몇 개의 모집공고를 뒤져보았다. 큰 회사로 가면 갈수록 조건은 좋아졌고 자신은 없어졌다.

 

타인들의 목소리가 연기처럼 허파로 들어온다. 귓전에서 맴돌던 좋은 직장, 좋은 집, 좋은 차 같은 단어들이 잘게 씹혀서 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도대체 왜 그렇게 대기업 대기업 하는지 모르겠다고, 죽어도 공무원은 안될거라고 말했던 나는 어느새 그 모든 것들의 앞에 왜 '좋은' 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는지 알게 되었다.

거대한 벽 앞에 서있는 기분이다. 처음엔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저 벽. 하지만 누군가는 그 벽을 올라가고 있다. 그중에는 내 친구도 있다. 저 너머에는 뭐가 있지? 누군가는 보물이 있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저 벽 너머로 가지 않으면 곧 파도에 휩슬려 죽을거라고 말한다. 나는 친구에게 물어본다. 야 너는 왜 올라가냐? 친구가 대답한다. 글쎄, 다들 올라가는 걸 보니 좋은 게 있지 않을까?

벽은 계속 성장한다. 누가 물이라도 주는지 무럭무럭 자란다. 더 커지기 전에 나도 올라가야하는거 아닌가? 하지만 확신이 없기에 나는 딴청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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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그러니까 스물여덟살 내가 스무살 코찔찔이였던 시절, 대학 신입생환영회에서 처음만난 k교수는 우리를 보자마자 대뜸 이런 말을 했다.

"산에 깃발이 하나 꽃혀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누군가가 준비 땅 하고 저 깃발을 향해 달리라고 소리칩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무살 코찔찔이들은 당연히 침묵했다.

교수는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아마 체대학생들은 뒤도 안돌아보고 달리기 시작할겁니다. 한편 공대학생들은 저기로 어떻게 하면 빨리 갈 수 있을까 계산하기 시작하겠죠. 또 경영대 학생들은 모여서 전략회의를 시작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여러분은 어떡할래요? 아마 여러분은 곧장 달리지도, 계산하지도, 회의하지도 않을 겁니다."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

"여러분은 '내가 왜 저 깃발을 향해 달려야하지? 저 깃발은 좋은걸까?' 라고 생각할거에요. 당신들은 그런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여기 앉아있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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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뒤에 교수가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곧이어 왁자지껄한 선배들의 질문공세가 시작되었기에 까먹었는지도.

하지만 k교수의 말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이유는 실제로 내가 그런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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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벽에 대해 생각하느라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그래서 벽에 대해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누구보다 그 벽을 자세하게 묘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벽을 넘으려다 떨어진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사실 저 벽 너머로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 타고 올라가본 적이 있긴 하지만 그동안은 밑을 봐서도 옆을 봐서도 안되므로 나는 저 벽의 재질만 눈앞에서 확인했을 뿐이다. 확인해본 바로는 저벽의 재질은 '재미없는' 재질이다. 그것말고는 설명할 수 없다.

재미없는 벽. 재미없는 삶. 재미없는 하루. 이것들이 못견디게 힘들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캠핑가고싶다. 일본가서 야외온천에서 머리에 수건 올려놓고 푹지지고 싶다. 동생이랑 집에서 티비보고싶다. 옛날처럼 게스트하우스 거실에 앉아서 온갖나라에서 온 온갖사람들과 술게임하고 싶다. 앰티가고 싶다. 앰티가서 처음보는 애들 사귀고 싶다. 걔들이랑 밤바다 걷다가 마음에 드는 애 있으면 아이스크림 사주고 싶다. 재민이랑 동일이랑 을숙도 해수피아 가고 싶다. 갔다와서 문어야에서 육회먹고 싶다. 얼굴 벌게져서 셋이서 셀카찍고 싶다. 오후 4시에 만두먹고 낡은 의자에 앉아서 담배피우고 싶다. 

또 

재밌는 일을 하고싶다. 서점주인이 되고 싶다. 그림을 배워서 만화를 그리고 싶다. 재밌는 사람들 많은 회사로 가고 싶다. 시를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노인들의 패션잡지를 만들고 싶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처럼 내 에세이 묶어서 책으로 만들고 싶다. 돈받으면서 글쓰고 싶다. 글써서 유명해지고 싶다. 스탠딩코메디를 하고 싶다. 사람들을 웃기고 싶다. 처음보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깔깔 웃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가 그런 것들을 욕망하는 사이 아! 벽은 계속 높아져만 간다. 사실 앞의 모든 문장은 단순하게 요약가능하다. 

"하고싶은 걸 하면서 살고싶다."

이 단순하고 어려운 욕망. 데미안의 첫구절에서 싱클레어는 이렇게 말한다.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

나는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 했을 뿐이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그러게, 그게 왜 그렇게 어려운걸까. 

내 허파 밑바닥에는 그런 욕망들이 드글드글한데 다른 한편으론 '돈을 더 벌고 싶다. 좋은 집으로 이사가고 싶다. 차사고 싶다.' 따위의 생각이 서서히 차오른다.   

이것들은 어디로부터 온걸까.

 

어제 집에 가는데 밤 11시에 어학원 로비에 앉아 혼자 공부하고 있는 남자애를 봤다.

저애는 무엇을 위해 저렇게 공부할까 생각하다가 몇년 전에 엄마와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어쩌다가 그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는 대학나와서 청소부해도 상관없어. 대학이 지식을 배우러 가는 곳이지 좋은 직업가지려고 가는 곳은 아니잖아?"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서 니가 아직 세상물정을 모른다는거야."

 

아 그런데 어떡하나. 나는 이제 알아버렸다. 늦게까지 공부하는 남자애를 보고 '쟤는 좋은데 가겠지.'라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그 아이가 회색 벽을 타고 오르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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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저는 이제 깃발을 향해 가보고 싶어졌어요.

그리고 글 같은 거 안써도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도 해요.

사실 안써도 살만한게 제일 좋은거 아닌가요

써봤자 힘들기만하고 사람들 봐주지도 않아요

근데 여기에는 나보다 한참 한심한 인간들도

돈 잘벌고 잘입고 잘먹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잘살아요

그 인간들하고 이야기해보면 아무것도 없는데

나는 그것들이 계속 부러워지곤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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