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채널

 요새 일터에 사람들이 많이 충원되어 시간이 많이 남게 되었다. 그래서 망중한을 활용해서 미뤄 두었던 독서를 다시 시작했다. 아무래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만큼 내 마음대로 흐름을 조절할 수 없는 부분이 조금 신경 쓰이긴 했다. 가장 중요한 단락을 읽다가 흐름이 끊기는 것만큼이나 짜증나는 일은 없는 것이다(지금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업무전화가 수도 없이 키보드를 누지르는 손가락을 잡아챘다). 여하튼,

 어떤 문학상 모음집을 다 읽고 나서 다음에 읽을 책을 골랐다. 제목을 보자 당시에 어떤 느낌으로 책을 선택했는지가 떠올랐다. 제목에 유난히 문장을 강조한 한 작가의 단편소설집. 한 문장 한 문장에 무게를 주어 쓰는 법을 궁리하고 있던 나에게 그 책의 표지는 괜찮은 느낌으로 다가왔었다. 문장에 관한 다른 견해를 이 책에서 훔쳐낼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 막연한 기대감과 함께 명함으로 만든 책갈피를 끼워 넣고 책장을 넘겼다.

. 달랐다. 정말 달랐다. ‘다른견해를 생각하고 있었건만 이건 받아들일 수 없는 이질감이었다. 한 줄을 읽는 것만으로도 먹먹함이 가슴을 가득 메웠다. 미리 말해 두지만, 이것은 수준의 높고 낮음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이미 책으로 출간된 글이다. 팔리고 있는 글에 되지도 않는 깜냥으로 문댄 비평을 들이댈 생각은 없다. 단지, 생리적으로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기했다. 글을 읽을 때 기분이 나빴던 적이야 많다. 무라카미 류의 원색적인 표현을 보았을 때는 혐오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의도된 장치였다. 요새 웹소설의 추세를 알기 위해 각 사이트를 쏘다니고 다닐 때 보았던 질 낮은 글들은 몇 줄 읽지 않고 웹페이지를 닫아 버렸다. 하지만 그건 실력의 문제였다. 그런데 이 책은 흠잡을 데 없이 정상적인 글들이었다. 사건의 전개도 좋았고 일상적인 부분에서 긴장감이 느껴지는 것도 좋았다. 문제는 책에서 제목으로까지 강조한 문장이었다.

 문장 하나가 백지 가운데를 절반 넘게 누비고 다녔다. 마치 긴 뱀이 똬리를 튼 것처럼. 짧은 문장들을 잡아먹고 잡아먹어 더 이상 늘어날 데가 없는 그 거대한 뱃가죽은 쉼표를 쉼 없이 싸질러 놓았다. 만연체도 이런 만연체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이전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문장을 읽다 지치고, 또 지치고. 페이지 끝단에 손가락이 차마 가지 않았다. 한 장을 넘겨야 하는 일이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첫 장을 넘겨 두 장째로 들어 갔을 때부터,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힘겹게 넘긴 다음 장에서, 무의식적으로 책갈피를 끼우고 책을 덮었다. 그리고 천장을 한 번 바라보았다. 다시 책을 폈다. 그렇게 꾸역꾸역 내용을 머릿속에 구겨 넣었다

 분명 이런 문장이 이 작가의 개성일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아도 처음부터 끓어오른 거부감을 어디로 치워둘 수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중, 내가 쓴 글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이와 같이 받아들여 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잠깐 소름이 돋았다.

 물론 이런 사치스러운 고민은 내 실력이 좋아지고 나서 해야 할 일이다. 내가 쓴 글을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감지덕지해야 할 판에 책 제목마냥 미움받을 용기를 먼저 키우는 것은, 아무래도 순서가 바뀐 일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모습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에서 작가의 존재가치가 있다 물론 지금도 이 마음은 변함이 없다. 아 할 때 다르고 어 할 때 다른 것처럼, 같은 말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도 읽는 사람의 마음은 천차만별로 갈린다. 모든 이들을 다 같이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것. 새삼 그 진리가 떠올랐다.  

글을 쓰는 모두는 자신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펜을 놀리고, 타자를 친다. 생업을 활자로 꾸려 보겠다고 작심한 사람들은 거기에서 자신의 글이 팔리는지, 안 팔리는지를 따지게 된다. 이 두 가지는 굳이 갈림길로 나눠지지 않는다. 자신의 취향이 시류에 영합할 수도 있고, 자신의 문체를 굳이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펜을 잡은 이상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필요에 의한 취사선택.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그 고민에 괜히 입맛이 쓰게 느껴진다.

다시 책을 들어 페이지를 넘겼다. 눈에 익은 탓인지 아까보다는 문장이 매끄럽게 넘어가는 듯했다. 나는 아직 걸음도 떼지 못한 단계이다.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배움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피곤은 저만치 밀어 두고 다시 문장에서 내용을 체로 걸러 나간다. 모두가 좋아할 문장. 이루지 못할 걸 알지만 언젠가는 도달할거라 믿는 그 목표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