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채널

 영화에서 그런 장면을 본 적은 있었다. 천재적인 물리학 교수가 안식년에 정말로 푹 쉬려고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호텔에 묵었었다. 날씨도 따뜻하고 하늘은 푸르렀다. 해변에서는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타국에 발을 들인지 3일째가 되자 하늘에 구름이 끼고 비가 내렸다. 그렇다고 해도 그 교수는 기분을 크게 망친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여행의 즐거움은 어느정도 맛봤으니까 숙소에서 좀 쉬고, 지하 테마파크에서 놀이기구나 좀 타보려는 생각을 했다. 그는 혼자라서 전혀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워보였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핑곗거리가 외로움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소시지라도 좀 사려고 나왔을 때였다. 바로 옆방에서 아버지와 딸로 보이는 아이가 나왔다. 아이가 교수를 바라보고서 곧장 말을 걸었다.

 "왼쪽 옷깃이 위로 올라와있어요!"

 "아 그렇군. 고맙다."

 셋은 복도를 걸어가 같은 엘리베이터 앞에 섰고 같이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가 있게 되었다. 소녀의 아버지가 교수에게 말을 건냈다.

 "놀러온 게 아니신가봐요."

 "그러니? 왜 그렇게 생각했니?"

 "슈트를 입고 계시잖아요?"

 "사실은 슈트가 좀 더 편해서. 이해하기 힘들겠지."

 소녀의 아버지와 교수도 서로 인사를 했다. 어쨌든 엘리베이터가 로비에 멈춰섰다. 일행은 교수에게 인사하고서 다른 곳으로 간다.

 

 아니 사실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 같다. 사건이 일어난 것은 어느날 저녁이었다. 교수의 집의 문을 두드리는 누군가가 있었다. 교수가 나와보니 같은 건물에 사는 딸을 가진 그 남자였다. 그는 다급하게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딸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 이가 사라진 것을 왜 나에게서 물어보세요?"

 "그 방에 이상한 구멍이 있어요. 전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구멍이에요. 당신 물리학자 아니요?"

 교수는 그의 집에 있는 딸의 방으로 들어가보았다. 집 안에서 그의 아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상한 빛이 나고있는 복잡한 통로가 있었다.

 "내가 들어가보려고 했으나 왠지 다시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더이다."

 교수는 그 통로가 고차원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종이와 연필로만 사고하던 그 공간이 자신의 눈 앞에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처음 보는 것이었고 그가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었지만.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군. 하지만 확신을 할 수는 없어."

 그는 그 통로로 들어갔다. 그 공간은 움직이고 있었다. 위험천만했다. 조금만 잘못된 길로만 가거나, 혹은 주변과 잘못 상호작용하기로 한다면 벽에 같혀버리거나 신체가 절단날 수도 있었으니까. 그는 이 공간의 특성을 물리학자만이 가지고 있는 감각으로 알아내었다. 계속 안으로 들어가자 안에서 고개를 웅크리고 있는 그 소녀가 보였다. 도대체 얼마나 있었던 걸까.

 "안심해라. 나가자."

 그는 소녀를 등에 업었다. 이제 나가야 한다. 공간이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왔던 길을 기억하는 것으로는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 대신 그는 어떻게 이 공간이 변형되는지를 고려해서 다시 밖으로 나가는 경로를 머릿속으로 구했다. 그는 위험한 벽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밖으로 나왔다.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빛으로 가득찬 공간이었지만 그런 감상에 빠지거나 할 겨를은 없었다.

 그렇게 교수는 무사히 딸을 구했다. 그 미스테리한 공간은 잠시 후에 사라졌다. 알고보니 딸은 그 구멍에 매혹되어서 들어갔던 것이었고, 곧 공간이 변형되자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없게 되어 고립된 것이었다고 했다. 만약에 교수가 딸을 끝내 찾지 못했다면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위 이야기는 표절이다. 그냥 적어본 것. 나쁜 일을 꾸미는 마법사가 이 근처에 있다고 한다나. 내 앞에 있는 민희가 그렇게 말한다만서도.

 

민희는 그렇게 이쁜 편은 아니다. 어떻게 말하자면 내가 지금 처한 상황은 마치 이세계물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민희는 이세계에서 왔다. 웃긴 건 그 이세계가 지구 안에 있다는 것이었다. 지구 어딘가의 대기권에 숨겨져 있다고 한다. 그것도 거대한 스케일로 숨겨져 있는게 그곳에 마법사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마법사들의 종족인 것이다. 우리나라 민간 설화에 나오는 도깨비들, 요괴들이나 중세에서 마녀사냥으로 몰려서 설 자리를 잃은 마법사들이 이세계로 도피해갔다고 한다. 그 결과로 지구에는 마법사가 한명도 없어졌다고 한다. 오히려 이세계에서는 마법사 종족들이 상대적으로 더 평화롭고 조화로운 세계를 이룩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민희는 자기 자신이 구미호의 마력을 이어받은 마법사라고 했는데, 고등학교 수석 졸업생이었고 마법 정부의 새로운 정책에 의해서 지상 세계로 파견을 나온 일종의 첩자라고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구미호와의 연관성이 있으니까 외모도 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다시 말하지만 그렇게 이쁜 편은 아니었다. 그냥 평범했다. 그러니 이것을 이세계물이라고 오해하지는 말자. 이세계물에서 도내 S랭크급 외모를 지니지 않은 여자 마법사가 주연 혹은 조연으로 등장하는 라이트노벨이나 애니메이션은 요 근래에 없었다. 그건 지브리시절에도 없었다.

 

 "그 악당이 무엇을 요구하는데?"

 "그 마법사는 허가받지 않은 자야. 놀랍게도 우리의 세계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허용된 자는 나를 포함해서 2명밖에 없다고? 아무튼 그는 이 동네 천천아파트 2동 211호에 있어. 내가 그곳에 가봤거든? 그렇지만 나는 거기에 갈 수 없어."

 카페의 옆면에는 거대한 유리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채광 하나는 끝내주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겨울에는 좀 춥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카페는 아무래도 봄이나 가을에 가는게 좋을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밖으로 동내 풍경이 보인다. 학교 끝나고 집에가고 있는 학생들도 보였고 지나다니는 자동차들도 보였다. 저 멀리에 있는 호수의 표면이 빛나는 것도 보였다. 호수 위를 가로지르는 고가도로 위에 아주 작게 보이는 차들이 꼬물꼬물 움직이는 것도 보이고. 자전거를 타고 저 고가도로 위를 달리고 싶다는 잡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그 주소에 있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얻었어. 정부로부터."

 "그래? 근데 지구에 있는 정보는 너가 만드는 거 아니야?"

 "그게 중요한 건 아니야. 아무튼 그는 어떤 버튼을 수십개씩 만들어서 방에다가 쌓아놓고 있었어. 그 버튼은 컸어. 정확히 말하면 버튼이 달려있는 장치였는데, 사실상 그 장치에는 큼지막한 버튼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버튼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지. 거기에는 수많은 방어체계가 있다는 것도 나는 알 수 있었어."

 "그래?"

 "그런데 너의 도움이 필요해."

 "왜 나의 도움이 필요하지? 그리고 버튼을 만드는게 뭔가 잘못된건가?"

 "나는 그 버튼에 적혀있는 글씨의 내용까지 접수했다고. 거기에는 그렇게 적혀있었어. '이 버튼을 누르면 통장에 1000만원이 들어옵니다. 단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제외한 한명이 죽습니다. 누르시겠습니까' 이렇게."

 "그런 유치한 버튼을 왜 만드는거지? 그리고 그 버튼을 누르면 정말 사람이 죽지는 않을거잖아."

 민희는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버튼에는 높은 수준의 마법이 걸려 있는 것은 분명했어. 그는 보통이 아닌 마법사인 듯 해. 그 버튼이 진짜든 아니든 간에 정말 의심스럽다고. 그리고 그는 그 버튼을 전세계 이곳저곳의 침실에 퍼트리고 있었어. 텔레포트 시키는 거지. 그 정도의 마법 능력이라면 꽤 높은 수준의 마법사라고. 그를 막아야해"

 "너 이래뵈도 사회 정의를 실천하려는거구나."

 "너가 재수없는 확률로 죽으면 곤란하니까."

 "너 나 좋아해?"

 "딱히 그런건 아니지만 알던 사람이 죽어버리면 섬뜩하잖아?"

 "너 히어로 영화에 최근에 감명받았지?"

 "몰라."

 "아무튼 그래. 같이 가달라는 거지?"

 "맞아."

 

 천천아파트 221호 앞에 우리 둘은 섰다. 민희는 미소를 지었다. 약간 긴장이 되는 눈치인 듯했다. 현관문에 손을 대고서 해제 마법을 시행한다. 그렇게 하면 문이 자연스럽게 열린다. 문 안은 하얀 벽으로 가득차 있다. 통로는 말도 안되게 깊고 좁다.

 "너는 내 뒤에서 따라와."

 갑자기 튀어나온 레이저가 민희의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깜짝 놀라서 주저앉았다. 민희는 공격마법으로 트랩과 오토건들을 제압했다. 내가 추측해보건데 그녀는 단순한 대학생은 아닌 듯 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특수부대원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지금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자하니.

 나와 그녀 앞에 어떤 검은 구멍이 보였다.

 "자 여기로 들어가."

 "뭐?"

 "나는 따라갈 수 가 없어. 결계가 있어."

 "응?"

 "이제부터는 원격 통신이야. 내 말대로만 따라."

 맙소사. 나는 이제 죽을지도 모르는 곳에 들어가는 것이다. 어째서?

 "싫어."

 "이제부터 싫은 건 없어."

 나는 해서는 안될 짓을 했다. 그것은 바로 민희의 눈을 바라본 것이었다. 그의 눈이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말이다.

 "너 이제 나한테까지!"

 나는 아까까지 망설이던 것과는 다르게 곧장 그녀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흐흐흐. 들어가. 거기에는 너가 가장 무서워하는게 있어. 당연한 거야. 하지만 나는 너를 믿어. 그리고 이 세뇌도 거기에 들어가면 끝이야. 아주 미약한 통신마법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그리고 내가 여기에서 더이상 준비할 것도 없고 말이지. 모든 상황이 예측 불가능한 지점이었으니까 말이야. 너한테는 아무 말도 안하는게 나았지. 오히려 더 많이 알았으면 더 걱정만 심했을 거고 좋을 것도 하나도 없었을 테니."

 "잠깐 물좀 줘."

 나는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물을 다 마시고서 나는 그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활주로에 도달했다. 비행기가 한대 있었다.

 날씨가 맑네.

 정적이 흘렀다. 비행기는 미래의 전투기처럼 생겼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딱히 현실이 아닌 것 같아. 그렇지?"
 "그 비행기를 타."

 "뭐라고?"

 "시간이 없어. 너는 그 비행기를 운전할 수 있어."

  비행기에 올라탔을 때 나는 알수 없는 공포감에 잠시 휩싸였다. 하지만 그 공포감의 근원은 내 머리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었기에 나는 잠시 이상한 감각을 느꼈던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비행기에 올라타고 시동을 걸었다. 비행기가 놀랍도록 쉽게 내 생각대로 이륙을 했다. 너무나 쉬웠다. 마치 게임처럼.

 '아......'

 곧 이어 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민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건 게임이야. 너는 그 남자를 찾아야해. 하지만 조무래기들이 너의 갈길을 막고 있는 것 같네."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공포가 엄습했다. 적이 쏘는 탄에 하나라도 맞으면 죽는다. 하나라도 맞으면 죽는다. 하나라도하나라도하나라도. 맞으면 맞으면 맞으면. 죽는다. 나는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너무 무서웠다. 그런데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았는데 어떻게든 피해졌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죽을 똥 살똥 피하고 있는게 사실이었지만. 

 당장이라도 내가 죽을 위기에 있었지만 배경은 너무 평온했다. 하지만 나에 대한 살의가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지하철역 상가같이 길게 늘어져 있는 이 통로가 어디까지 이어질 지는 알 수가 없었다. 

 곧이어 나는 야외로 나갔다. 야외라니? 이곳은 아파트 안이 아니였던가? 하지만 활주로가 나왔던 것 부터 애초에 이상하긴 했다. 아파트 안에 어떻게 활주로가 있을 수 있는가? 말도 안돼지. 하지만 야외는 잠깐이었다. 다시 실내로 들어갔다. 비행기가 실내를 날고있다는 설정이 더 이상한 것 아닌가? 나는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 뒤에는 뭔가 더 알수없는 것들이 등장했다. 나를 격추시키려는 포탑들이 수십대 등장했다. 나는 그 포탑들을 모두 격추했다. 포탑들이 내뿜는 느릿느릿한 미사일들도 보였다. 나는 그것을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갑자기 생각하니까 화가 난다. 나는 민희에게 따졌다.

 "그 구멍앞에서 결계는 무슨! 너도 강한 마법사니까 그거 무시하고 뚫고 들어가면 되잖아!"

 "그 결계는 마법사는 들어갈 수 없는 결계였단 말이지. 너가 그렇게 화내도 나는 애초에 들어갈 수 없던 거였으니까 소용없는 일이었어."

 날이 점점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우리는 사실 저녁에 천천아파트에 모였다. 그러니 원래부터 저녁이었다. 지금은 밤이 되었겠지. 민희가 묻는다.

 "잘 하고있어?"

 "아직까지는"

 나는 정리해봤다. 적들이 계속 나를 다양한 패턴으로 압박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깊은 곳으로 가고있었다. 아마도 거기에 그 마법사가 있는 것이겠지. 그가 이곳을 전부 통제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건 뭐니?"

 "왜?"

 "낯익은 풍경이야."

 "어떤 풍경인데?"

 "우리 동네인데?"

 "야! 그런거에 현혹되지 마. 중요한 건 그놈이야. 그 놈을 찾아."

 "이 비행기로?"

 "우리 동네면 거기 천천아파트가 있을 거 아니야? 그곳으로 전투기를 몰고가서 폭격을 하란 말이야."

 나도 그러고 싶었다. 그런데 전투기가 작아진 것 같다. 나는 천천아파트 2동 현관으로 날아서 들어가고 있었다. 문이 열려있는 것이 다행이였다. 나는 계단을 날아서 올라가서 211호로 날아갔다. 현관앞에서 폭탄을 투하하자 문이 나가떨어졌다. 옆집에서 뭔일인가 싶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는 이미 211호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적들이 나를 반기고 있었고 나는 그동안 숙련된 기술로 적들을 하나하나 때려부셔놓았다. 처음과 통로가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길은 제멋대로 나 있을 뿐이었고 나는 그 길을 따라서 안으로 들어갈 뿐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