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채널
밤하늘에 내리는 별. 별이 내리는 것은 실제로 본 적이 없다. 우리가 밤하늘을 보면 어두운 검은 화면만이 휴대폰 화면처럼 하늘에 있을 뿐이었다. 뿌연 구름들은 액정에 묻어있는 지문같았다.

환풍기 소리만이 들리고 그 외에는 고요하다. 무언가 죽기 딱 좋다. 죽음으로서 모든것을 끝내겠다는 자세. 아주 진실하지 못합니다. 마치 다프트 펑크를 연상시키네요. 모든 것을 내려놓으세요. 90년대를 당신들이 알겠습니까? 80년대는 달콤합니까? 확실히 좋았던 시절이 있었죠. 지금 시대에는 스마트폰이 반으로 접힌다죠? 아주 좋아요.

알수 없는 것들이 가득하다. 알수 없는 것 앞에서 나는 괴로워한다. 우주를 여행하면 사방이 별뿐이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길거리를 걸어다니면 길거리에 일루미네이션이 많다. 그것들도 걸어감에 따라서 계속 모습을 바꾼다. 고속도로를 질주할 때에도 노란 가로등이 탄막이 되어서 날아온다. 그 강력한 불빛의 군집에 대해서 나는 어찌할 방도를 못느낀다. 그저 밤일 뿐이니까.

헐떡인다. 그런 표현을 나는 잘 쓰지 않는 편이었지. 그러니까. 이렇게 몽룡한 와중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 스스로에 대한 의문 타령! 이제는 좀 집어치울 때가 된 것 아닌가? 그렇게 스스로 언쟁한다. 

나도 언제나 무책임해질 수 있다. 그러니 제정신을 차리는게 낫다. 커피로 나는 시간을 샀다. 커피가 고맙다. 이상하고 철없는 에너지에 대해서, 그 앙상한 나뭇가지에 부착된 일루미네이션 만큼이나 야릇한 그것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렇다. 나는 80년대가 아니다. 그 어떤 것도 아니다. 계속 바닥에 깔린다. 기울어져 있다. 이상하게. 텔레비전에서 빛이 나지 않는다. 더이상 메세지도 내보내지 않는다. 새로운 텔레비전이 계속 나온다. 그만! 그만! 모든 공장을 멈추고싶다. 다다익선이라고 하지만 너무 심하잖아! 시간이 계속 흐른다면 예술은 무슨 의미야. 의미를 깊게 두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지잖아. 현실을 살지 않는 사람들은 전부 지능을 이상한데 낭비하고 있는 파탄자일까. 산소를 뇌에서 쓸데없이 낭비하니까.

그러니까 모든 것은 조속하게 빨리 끝내버리는게 좋다. 내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세상은 계속 돌아가잖아. 내가 엄청난 독재자나 권력자가 아니고서야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건 정말 어렵게 됬으니까. 하지만 생각해보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순수한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 얼마나 이상하고 야릇한 생각인지. 그렇게 해서 나는 또 바닥을 기어간다. 올라간다. 하늘로. 하늘은 높다. 엄청 높지 않을까.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도 대단하다.  

모든게 파탄이라고 할까.

많이 어렵고 짜증나고 이해할 수 없는 투성이의 세상이다. 그런 것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다 죽고말지. 이렇게 비참할 수가. 하지만 행복을 생각해야만 해. 담장은 어떤지. 세상은 쉽게 보면 쉬워진다고. 그리고 긍정적으로 보면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본인이 할 수 있다면 말이지. 그런식으로 높은 곳을 향해보는 건 확실히 즐겁겠지. 세상이라는 거대한 흐름 안에서 개개인은 작은 찻잔과도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거짓된 말로 세워진 아름다움을 망치로 깨부수는게 그런 의미였지. 하지만 텔레비전들은 진실된 아름다움도 품고 있었다. 그렇기에 부서지는 것이 옳았다고 할까. 노랫소리가 방안을 채운다. 세계를 조망한다. 세계를 아래에서 내려다본다. 세상에서 가장 아래에 있는 골방 아래에서 내려다본다. 내려다보면 우주가 있다. 벽에 있는 나이테를 세는 것이 그렇게 무의미한 행동은 아니다. 선인장의 가시 숫자를 세는 것과 동급의 행동이지. 정장을 입은 남자와 드레스를 입은 여자. 세상이 점점 복잡해지고 싶어하는 것은 알겠지만 나 스스로까지 복잡해질 필요는 없다. 찻잔안에 커피와 홍차를 같이 타서 그 두 액체의 대류를 확인하고 싶은 것은 절대 하기 싫다. 초침이 움직인다. 시침은 정지한 것 마냥 가만히 있다. 웅장한 관현악 소리가 들린다. 텔레비전은 밖으로 탈출하고 싶어한다. 화면 밖으로 탈출하고 싶어하는 강렬한 욕망이 있다. 그리고 화면은 규칙적으로 분할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 그것 참 근사하네. 정육면체가 부유하는 3차원의 세계 말이야.  거대한 화면 영사기가 우주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세계. 정사각형 플레이트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세계. 한 에너지가 다른 에너지로 변화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 그런 것을 한정된 공간에 담아보는 것. 내 처지에 상관없고, 그 누구의 처지와도 상관없고. 그런데, 이상한 소리 들리지 않니?

서버실에서 천천히 기어나오는 그녀는 자신의 몸을 천천히 이끌고 근처의 집으로 간다. 5년만의 복귀다.

여학생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밖에서 바람을 쐴 때는 머리가 텅 비고 대신 감각으로 가득 찼었다. 따뜻한 바람이랑, 오묘한 공기의 냄새랑. 그리고 다시 돌아오자 그녀는 자신에게 온 시련에 대해서 이상하게 작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틀린 생각일 확률도 있지만.
"과거를 바꾸는 거야. 사고 이전으로. 너는 다시 잠잠한 일상로 가는거지.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잠재우면 되는거야."
'펑!'
 생각보다 큰 소음이었다. 렌코는 장치의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행인걸까? 그 여학생은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그곳에 가 있던 것은 우연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 세상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니까. 미래를 알 수 없어서 우리가 이렇게나 허둥지둥하고 있기는 하지만 모든 것이 우연이라는 법도 역시 없는 법이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마도 다시 그 여학생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는 그 소녀를 이따금 찾아뵈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말로 실천했다. 그 이후에 그 소녀를 몇번이고 만났고 그녀가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했으며 그 만남은 정말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 여학생은 그 대학원생과 한이라는 친구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피아노 소리. "다행이 잘 해냈다." 그리고 이따금 상기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미래의 모습이라는 주제를 연상하곤 했다.


그렇게 그 교실에 앉아있는 남학생은 학교가 끝나고 집에갔다. 졸면서 국어수업을 듣던 학생은 학교를 졸업했다. 하지만 그 시간속에서는 영원하다. 그 시간속에서는 얼음도 절대 녹지 않는다. 여전히. 영원히. 푹 젖을 수 있잖아. 그 꽃잎의 추억에. 기대감에 흥얼거리면서 사라질 수 있잖아. 빗속에서. 안갯속에서. 푹신푹신한 소파에 몸을 누이는 것 처럼 일상이 그럴 수 있었던 것 같다. 진한 카스테라 같기도 하고. 소리가 멎는다.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