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채널
공간에 수백개의 방이 있다. 그 방들 중에서 하나를 택하자. 나는 외롭지 않다.





아무렴. 이해하지 못하겠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천지지. 나도 나의 강박증대로 행동하는 것 뿐이니까. 그러니까 나한테 욕을 해도 된다니까. 바보들에게 둘러쌓이면 정말 바보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드니까. 나는 나 자신을 홀로 고립시키려고 해보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에는 바보가 아닌 사람들이 더 많다. 스스로 고립되는 것은 나다. 그 어떤 독창성을 바라고 있다면 일단 포기하는 것이 좋다.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 어쩌면 이런 말까지 핑계일지도.






공간에 수백개의 방이 있다. 그 방들이 변형된다. 큰 방 안에 작은 방이 들어있다. 방들이 새로 만들어진다. 





예능인은 괴로운 직업이다. 그들은 매번 새로운 소재를 가져와서 웃겨야한다. 소재가 바닥이 나면 그들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앞으로 개그맨들은 어디에 서야 할까? 연구자는 괴로운 직업이다. 그들은 항상 새로운 학문, 기술적 발견을 해야한다. 발전의 여지가 없어지면 그들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예술가는 괴로운 직업이다. 그들은 매번 기존에 없는 새로운 예술적 영감을 갈구해야 한다. 세상에 모든 종류의 예술이 등장한다면 그들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한가지 작업이란 자신이 알고있는 바를 후세에 잘 전해지도록 전달해주는 것 밖에 없는것이다. 이에 따라서, 예술로 성공하고 싶은 자라면 세상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파괴하도록 하자.  성공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다.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이란 존재할까?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네'이다. 세상이 3차원 좌표계로 프로그래밍 되어있다고 하자. 그 스파게티 코드를 이해할만한 사람이 세상에 몇명이나 될까. 이를테면 나무가 저기 앞에 10그루가 있는데 그것들이 각각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과 같은 문제이다. 그리고 그 나무의 나뭇가지들이 어떤 모양을 하고있는지, 어떻게 뻗어있는지, 총 몇개의 끝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방들이 어떻게 공명하는지에 대해서 나는 관심이 약간 있다. 티슈를 뽑아서 쓴다. 여행용 티슈는 장롱속에 있다. 나는 벽돌을 들어서 세운다. 벽돌로 땅을 네모나게 가둔다. 그건 확실히 재미없는 일이다. 나는 나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생각해본다. 커피잔에 담긴 커피가 진동으로 인해 동심원들을 만들어내면서 흔들린다. 영어성경을 외우는 것 만큼 재미있는 일이 없다. 일이 제대로 진행되도록 해야할텐데. 이따금 부유하는 먼지에 말을 걸어본다. 집에 있는 책은 읽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나는 나를 확실히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잔인한 일이다. 나를 또렷하게 보도록 하여라. 어머님이 주신 라디오는 왜인지 CD를 재생하지 못한다. 애석한 일이다. 팬이 돌아간다. 방에서 환기를 담당하는 기구이다. 창문 너머로 하늘이 보인다. 확실하게 그려진 다이아그램이 좋다. 나 자신이 짓는 표정에 다른 사람들은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한다. 그들은 웃는다. 분명 완벽한 것은 아니다. 나는 애써 웃어본다. 그래. 그렇게. 나를 또렷하게 보도록 해. 당신의 눈 앞에 보이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수백개의 공간은 하늘에 그렇게 부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