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으로 내려앉은 성층권




  나는 철저하게 개인이 되고 싶어했다. 하지만 세상은 녹록치 않고 나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우리는 애매한 지성인이다. 세상은 애매하게 터지는 활화산이다. 감정은 머릿속에 예속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에 의미를 두려고 하지 않고 나는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나는 운전을 한다. 밤하늘에는 별이 빛난다. 이런 글자는 빛나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현실의 밤하늘에서 별을 찾기란 정말 힘들기 때문에. 하지만 너무나 멀리있는 별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는 내 주변의 일들에 대해서 먼저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지구가 중력으로 잡아당기고 있기 때문일까. 명왕성에까지 미치는 그 중력. 도로의 가에 놓여있을 수많은 자갈부스러기들. 그리고 변함없이 가라앉는 밤공기. 세상은 바쁘게 흘러가고 희극과 비극이 이따금 상영된다. 매우 좁은 특정한 영역에서 간헐적으로.

  나는 CD를 갈아끼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실 나는 마우스를 잡고 클릭을 하고 있었다. 이게 인류생활의 새로운 방식이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항상 존재해 왔다. 내가 관심없어하는 것들은 사실은 중요한 것들이었고 나는 그럼에도 그것들을 외면한다. 어느정도 나에게 자유가 주어져 있고 그것을 활용하는 것이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딱히 부정적이라고 할 수 없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도 아니고. 중간지대에는 그러한 매력이 있지만 내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참이었다. 나는 숨을 들이킨다. 안개속을 가로지른다.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 명멸하는 세계. 가끔 부패하기도 하는 세계. 점점 정교한 것을 추구하다가는 더욱 피곤해질 것이니. 적당한 것이 좋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 적당함의 지점은? 내가 모든 것을 가졌다고 하자. 그럴 때에 나는 그것을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과연 체감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나도 잘 알고있다. 이 텁텁하고 압도당하는 공간에서 밤하늘의 바이올린을 떠올린다. 그리고 합성된 사운드는 공기중의 H2O를 가로지르고 에어컨의 소음을 이겨내려고 애쓴다. 이것은 나와 당신의 투쟁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 사람이 나쁘지 않다. 그것의 전제는 내가 그(이제 알잖아? 바로 당신)과 성격적으로 통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상으로 내려앉은 하늘을 거닐다보면 그 광활한 공간에 질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공간에 매력을 느낄지도 모른다. 마치 꿈속에서 본 아련한 것들처럼 말이다. 결국은 마음속의 메커니즘에 지나지 않겠지만. 하지만 이것은 단지 그런 것일 뿐이다. 그렇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것은 진짜 즐거움을 준다. 나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게 아니라면. 아무튼. 하. 이렇게 하늘이 가라앉아버렸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물러터진 세상이다. 너무 물러터졌다는 사실을 나는 알아버렸기에 나는 더이상 한숨을 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대할때 나는 보통 그것에 간섭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것에 간섭하는 순간 나는 평정심을 잃고 손해를 보기 마련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모든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내 자존심 같은 것을 손해본다면 나는 그것을 되도록 피하고 싶을 것이다. 본능이니까 말이다. 아 속박. 우연. 생존본능이 때때로 위선으로 자신을 두르는 것에 나는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나는 그것까지 생존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여론이 그것에 속아넘어가는 것을 보면 그것은 마치 인간다움이라는 것이 무의미하게 여겨지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도덕책을 공부하지만 그것의 상당부분을 무시하잖아? 분명 의미있는 것이라서 책으로 쓰여진 걸텐데 말이지. 나는 도덕이라는 학문의 존재 의의나 그 당위성에 대해서 설명할 생각은 없다. 나는 왜 하늘이 지상으로 내려와 있는지를 설명하고 싶을 뿐이니까. 하지만 인간다움의 상당부분이 그런식으로 부정된다 하더라도 진정한 인간다움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게 세상에 온전하게 존재하는 지점에 지구상에 몇 군데나 존재해 왔는지는 둘째 치더라도 말이지. 

  나는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혼자서 사고실험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인 것 처럼 보인다. 밖으로 나가서 사람과 소통하고 자신을 아껴보라고. 그럴바에 나는 다시 눈을 감겠다. 그것이 나 자신을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분명히 말하자면, 나는 무질서속으로 나가는 것을 산책을 하면서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는 것 만큼이나 좋아한다.

  나뭇잎을 주우면서 나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생각해보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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