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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앞으로만 간다. 앞으로만. 앞으로 계속. 이제 익숙하다. 앞으로 가는것이. 

  이렇게 되면 진짜로 지구를 한바퀴 돌아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옆으로 가는 것은 괜찮기 때문에 옆으로 천천히 돌면 뒷방향으로 갈 수도 있지. 그러니 일상생활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제약이 있다. 급하게 뒤로 돌아서 한발짝이라도 걸었다간 내 몸에 설치된 폭탄이 폭발해 나는 죽을 것이다. 아. 나에게 '죽음'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상기시키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것은 '뒤'라는 단어만큼이나 두려운 것이다. 물론 좋은 것만 생각하는게 인생에 이롭다지만 나는 그래도 죽음을 계속 몸에 차고 다니는 기분이니까. 차라리 몸에 설치된 폭탄이 사실은 폭탄이 아니였다~ 라는 식의 결말이면 좋겠다. 정말 행복할 것 같기 때문에. 영화 더 테러 라이브나 퀵 같은 것을 보면 폭탄이 가짜였다는 설정이 등장하니까. 아 그런데 퀵은.... 아니다.

 나는 여러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다. 버스정류장에서 탱고를 배워보라는 광고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내가 탱고를 만약 배운다고 하자. 스텝을 밟다가 뒤로 가는 동작이 나오기라도 한다면 나는 폭발하고 만다. 자칫하면 나에게 춤을 가르쳐주는 파트너한테도 위험이 될 수 있다.

 나는 사실 '뒤'라는 개념 자체를 생각할 수가 없다.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단지 뒤로 걷지 않는것만 주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예를들면, 사람들은 눈 앞에서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것을 모면하기 위해 뒷걸음질 친다. 나는? 절대 그럴 수 없다. 꿋꿋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것이다. 차라리 옆으로 회피하는 것이 낫다. 이런 점에서 나는 게와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정말 쫄았다면 나는 재빠르게 몸을 회전해야 한다. 회전해서 뒤를 바라보고 뛰어간다. 당연히 뒤로 걸어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죽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새로운 방식에 익숙해져야했다.

 얼핏 뒤로가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과거의 것에 미련을 두지 않는것처럼 보인다. 실로 내 뒤에 있는것으로부터 나는 멀어진다. 하지만 적어도 옆으로 이동하거나 회전할 수 있다는 자유는 있기 때문에 나는 옆으로 돎으로서 내 뒤에 있던 것을 다시 볼 수 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무언가를 다시 보기 위해서 내 수중에 모든 것을 들고다닐 필요는 없다. 그리고 뒤로가면 죽는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구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니 지구가 자전하고 공전하는 것은 나에게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타고 있는 무언가가 내가 서있는 방향과 반대로 움직인다면 나는 꼼짝없이 죽게된다. 지진이 일어나서 지면이 내 서있는 방향을 기준으로 앞뒤로 흔들린다면? 사실 아주 조금의 이동은 허용이 되는 듯한 느낌이지만 그것이 어디까지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나는 남이 운전하는 차를 타지 않는다. 차가 후진이라도 하면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뒤로 돌지 못했다? 폭발한다. 내가 낙하산을 탔다고 하자. 앞에서 바람이 불어와서 나를 뒤로 날려보낸다? 공중에서 폭발하는 것이다. 나는 사실 엘리베이터를 탈때도 두려움을 느낀다. 만약 건물이 한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다면? 재수없게 내가 건물이 기울어진 방향의 반대방향으로 서서 엘리베이터를 탄 채로 엘리베이터가 위로 올라간다면? 나는 꼼짝없이 죽고 말 것이다. 같이 타고 있는 사람들만 불상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다. 심지어 63빌딩 꼭대기에 올라갔을 때도 말이다. 그건 다행이다.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한번은 약속에 늦게되어 택시를 타게 되었던 때가 있었는데 나는 절대로 후진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마음을 졸였다. 그런데 좁은 골목에서 앞차가 주댕이를 들이밀었고 택시기사가 기어고 기어를 바꾸셨다. 몸을 제빨리 돌려서 등받이가 앞으로 오도록 누웠다. 기사님이 놀라서 도대체 왜이러냐고 해서 "나는 뒤로가게 되면 죽어요!"라고 말했더니 기사님이 "아... 네... 네..." 이러면서 후진하시고는 "이제 다시 전진해요~" 라고 하셨다. 나는 다시 정상적으로 좌석에 앉았다.

 내 친구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게임캐릭터를 연상하고는 하는 것 같다. 그의 말대로 게임캐릭터는 결코 후진하는 법이 없다. 스타크래프트의 마린이 뒷걸음질 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리그 오브 레전드의 캐릭터가 뒤로가는 법도 없다. 그들은 마우스가 집어주는 대로 앞으로만 간다. 뒤로 클릭해도 고개를 휙 돌려서 앞으로 간다. 물론 몇몇 MMORPG게임은 뒤로 후퇴하는 이동 모션이나 기술이 존재하기도 한다. 내가 만약 그렇게 움직인다면 나는 곧바로 폭발한다. 마치 요즘 유튜브에서 인기있는 심영처럼 말이다.

  만약 당신이 당연스럽게 생각하는 일을 하는데에 거리낌이 없다면 그건 행복한 것이다. 나는 당연한 일이라도 해도 한번 더 생각하고 의도적으로 제어해야 한다. 정말로 불편한 제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