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속보



 갈등 해결법 차이에도 있다고 생각함


 비슷한 장르인 판타지물을 봐도 웹소설과 라노벨은 갈등 해결법이 상당히 다름


 예를 들어 여기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암울한 상황에 놓인 국가가 있다고 해보자
 
고전적인 라노벨의 경우에는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 빌런이 누군지 찾고 그 배후의 음모를 분쇄하려고 함.

 이 과정에서 전쟁이라는 국가vs국가의 공적인 사건은, 주인공vs빌런이라는 사적인 사건으로 축소됨. 집단vs집단이 개인vs개인이라는 사적인 사건이 되고 이 사건의 밑바닥에는 결국 과거의 트라우마, 개인적인 상처, 사랑, 질투 이러한 것들이 깔려있음. 관계를 중시하는 이야기가 여성향이라고 정의한다면 라노벨의 플롯 구축방식은 꽤나 여성스러운 스타일인거지.


 반면에 웹소설계 라노벨의 경우에는 굳이 빌런을 끌어내려하지 않음.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국가가 있다고 해보자. 웹소설계 라노벨은 집단vs집단 구도를 유지한 상태로 공적 자원을 활용하여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 집단을 그대로 짓뭉개버림. 이 과정에서 주인공과 독자가 빌런 개개인의 사적인 원한이나 의도를 알 필요는 없지. 악역 집단을 처부수는게 중요한거지 빌런 개인을 박살내는건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라노벨에는 체급이 딸려도 2차전 3차전까지 가는 강력한 빌런이 있음. 하지만 웹소설에서는 수장급이 아닌 빌런은 1차전으로 정리되는 자코에 불과하고, 어지간하면 수장급도 1차전에서 정리됨.


 아이러니한건 이로 인해 라노벨보다 웹소설이 빌런 생존율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생김. 끝까지 사적으로 추적해서 잡아 죽이는게 아니니까 악당이 잘 빠져나갔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요소를 남김. 하지만 이런건 독자가 납득하지 않지. 그래서 압도적인 파워로 학살함. 도시 하나를 광범위하게 날려버리면 빠져나갈 빌런 따위 없을테니까.




 고전적인 라노벨은 그 어떤 스케일 큰 설정이 있더라도 결국은 개인 대 개인 사적 갈등으로 환원되기 때문에, 히로인이 흑막이거나, 히로인이 악역이거나, 아니면  타락하여 악역이 될 가능성도 상당히 높음. 만약 지금 웹소설로 토라도라 나오면 히로인들이 다 빌런이라고 욕처먹었을걸. 극단적인 케이스로는 니시오 이신처럼 히로인=빌런 이 대전제 위에서 소설을 쓰는 작가도 있고. 라노벨은 빌런 = 히로인 공식이 허용되는 장르기 때문에 싸이코 히로인이라 해도 크게 문제는 안되는 편임. 오히려 이 싸이코년이 이렇게 행동한 이유가 결국은 사랑때문이었다니! 사랑받지 못해서 이랬다니 너무 안타깝자나! 이러면서 뽕차는 독자도 있다.


 하지만 웹소설계 라노벨에서 히로인과 빌런은 구분되어있다. 히로인은 주인공의 사적인 행복을 보장해주는 존재고, 빌런은 주인공이 쓰러트리고 얻어내야 할 공적인 성취를 알려주는 존재임. 사적 성취에 비중을 크게 두냐, 공적 성취에 비중을 크게 두냐에 따라 웹소설계 라노벨은 장르가 달라져버림. 사적 성취에 비중을 크게 두면 파티에서 추방당해 시골에 틀어박혀 슬로우 라이프하면서 히로인들과 꽁냥대는거고. 공적인 성취를 중요하게 여기면 전쟁나가서 치트 한방으로 전황역전시키고 영웅되고 그러는거고.




이런 특징 때문에 고전적인 라노벨과 웹소설계 라노벨은 전개속도에서도 상당히 차이를 보이는거같음.


고전적인 라노벨은 사적인 갈등을 반드시 묘사해야 하기 때문에, 이야기 전개속도가 느릴 수 밖에 없음. 200~300페이지에 달하는 이능배틀 라노벨에서 전개된 내용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어떨까. '이 세계에 나쁜 놈들이 존재한다느걸 알았고 내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걸 깨달았다' 이거 밖에 전개된게 없음. 어마금, 비탄의 아리아, 작안의 샤나, 데이트 어 라이브, 스트라이크 더 블러드, 모든 이능배틀계 라노벨은 1권에서 이 내용 밖에 전개가 안됨. 


 반면에 웹소설계 라노벨은 '주인공이 자신의 힘을 깨닫고 그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단걸 깨닫는다' 여기까지 걸리는 페이지수가 30페이지 내외임.  설령 주인공의 시작지점이 던전 최심부이고 주인공에게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도 그냥 던전에서 치트한방 써보고 바로 자기 힘을 깨달아버림. 좀 길어봐야 70페이지. 오버로드는 설정설명이 워낙 많아서 100페이지를 넘어서야 시점에서 그 전개에 도달하지만 그럼에도 200페이지 돌파 전에 주인공이 그런 각성에 도달함(모몬가가 하늘을 날아올라 이 세계를 손에 넣겠다고 결심하는 장면. 애니 기준 1화 마지막 장면). 라노벨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주인공의 정신적 성장이 빠르지.


 이건 웹소설계 라노벨의 주인공들이 고전 라노벨의 주인공들보다 정신적으로 훨씬 더 성장해있는 인물들이라는걸 의미함. 미성숙한 고민을 굳이 할 필요가 없어서 바로 정답제시하고 칼스킵하는거지. 그래서 웹소설계 라노벨은 읽기가 너무 편안함. 주인공이 바로바로 정답제시를 해주니까. 하지만 이게 양날의 검이기도 한게, 주인공의 사상이랑 독자의 사상이 안맞으면 읽기 굉장히 괴로워지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작가가 고민을 더 많이 해야 하는 장르는 웹소설인거같음. 라노벨처럼 시간을 들여 독자를 설득하는게 아니라 바로 이게 이런 갈등에 대한 정답입니다 하고 알려줘야 하는거니까.


 고전적인 라노벨과 웹소설계 라노벨의 서술은 이런식으로 차이가 난다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