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실례를 들어보자면『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수정과정에서 우리가 미국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확인해보면 됨. 점마 주장처럼 일방적으

 

로 고쳐라. 해서 고친 것이라기 보다는 당시 계획 입안자들이 여러 그룹이 있었고, 그것을 최종 조율하는 과정에서 기업이나 이익단체의 여론을

 

종합해서 판단을 내린거지. 어떤 분들은 프레이저가지고 미국의 의중이 대다수 반영이 된게 맞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우리측 현실에 맞도록

 

조정과정을 거쳤어.

 

걔네들과 다르게 우리가 독자적으로 추진했다고 항상 실패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우리의 뚝심으로 밀어부친 것들이 나중에 성공을 가져와서

 

1968년 이후에는 미국의 개입과 간섭을 현저하게 줄이는 결과를 가져왔어.

 

그 실례가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포철 등 국가 기간산업 완성이지. 미국이 얼마나 반대한 줄 알아? 니네 주제에 무슨 고속도로며, 제철공장이냐

 

이거지. 그런 돈있으면 기존 공장들이나 수리하라고. 미국은 소비재 중심의 경공업을 발전시켜 비교우위의 상품을 많이 만들어 수출하라고 틈만

 

나면 개입을 했지. 그 양반들 조언대로 했으면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겠어?

 

미국은 해방직후 우리나라에 자본주의 체제를 이식하면서 엄청난 삽질을 많이 했고, 특히나 PL480이라는 잉여농산물 원조 따위의 정책을 추진

 

해서 우리나라 농산물 가격의 폭락과 농업의 피폐를 가져오는 실책을 저질렀어. 이것은 강만길이나 박현채 같은 양반들도 인정하고 있지 않어?

 

박정희는 쿠데타 직후 이러한 농촌을 그냥 두고서는 국가발전이 없다는 걸 알았어. 농업 위기로 인하여 국내시장이 위축되고 따라서 자본형성을

 

위한 자금의 국내 조달이 곤란하다고 판단하여 제1차경제개발계획 원안에는 농촌소득의 증대를 포함한 농촌경제의 회복을 집어넣은 거야.

 

프레이저 보고서를 보면 조사의 결론에는 이런 말이 나와

 

"수많은 요인들이 이런 현저한 업적들에 기여를 했다. 무엇보다 가장 주요한 요인은 교육받은 근면하고 훈련된 한국 사람들 자신이었다. 한국 사람들이야 말로 한국의 가장 중요한 천연자원이었다. 한국정부는 경제성장에 주안점을 두고 확고한 신념으로 경제를 주도했기 때문에 신뢰를 얻었다." 

 

정책이라는 것은 아무리 신중하게 추진한다 해도, 성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음. 미국은 당시 박정희에게 이자율을 높여 저축률을 재고

 

하면, 국내의 내자가 확충되어 산업투자가 증가할 것이라며 금융개혁을 촉구했어. 프레이저 보고서를 인용하자면, 

 

"1965년 9월, 미국의 충고로 한국정부는 저축수준을 제고하기 위해 은행이자율을 30%로 인상시켰다. 그 정책은 명백히 성공적이었다. 1년 이내에 저축액은 3배가 되었다. 동시에 생산부문과 여러 산업체처럼 각 부서에 수출목표를 할당시키면서 이러한 개혁들은 병행되었다. 특혜금융, 수출특혜, 관세특혜, 수출증대 보상제들도 자발적인 수출상품 생산을 고무시켰다. 이 정책 도한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1964년부터 1966년에 걸쳐 수출액은 2배 이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자화자찬과는 별도로 몇페이지를 건너 이런 얘기도 나온다.

 

"이자율 또한 문제가 되었다. 1965년 이자율을 16%에서 30%로 인상하였지만그것은 문제를 파생시켰다. 즉 국외자본을 빌려오는 것이 더 싸게 먹히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결국 미국의 고금리 정책은 실패로 귀결된 것임을 자인한 셈이지.

 

이 부분에 대해 좀더 첨언하자면, 미국의 이런 고금리 정책은 결과적으로 자본시장의 왜곡을 가져왔고, 사채시장과 암시장의 횡행으로 8.3조치

 

가 있을 때까지 국민들과 일반 힘없는 중소기업들은 살인적 고금리로 비명을 지른 반면에, 각종 수출지원책으로 현금이 풍족했던 대기업들은 이

 

들을 상대로 사채놀이를 하면서 벼룩의 간을 빼먹느라 영일이 없었지. 즉, 엄청난 금리의 인상은 미국의 의도대로 저축률의 급격한 신장은 가져

 

왔지만, 조달비용의 증가로 저축이 투자로 이어지지 못하는 악순환을 거듭한 셈이지. 

 

 

프레이저 보고서를 보면 "1963년도에 킬렌은 한국정부가 예산결손의 규모를 줄이기 위한 세제계혁을 단행할 때까지 9개월 간의 원조금 방출을

 

거부하였다. 그 결과 세수는 엄청나게 증가하였다"고 되어 있어.

 

그런데, 박정희는 킬렌이 AID 사무처장으로 부임하기 이전인 1961년 쿠데타 직후에 대대적인 세제개혁에 이미 착수를 한 상태이고, 1967년에

 

제2차 세제개혁을 단행하지. 세제개혁은 미국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킬렌이 원조자금방출을 거부한 것은 미국의 원조자금 지원정책

 

이 의사일정 지연으로 처리가 안되서였고, 경제개발 계획에 비현실적이라거나 문제가 있어 지원을 안한 것은 별개의 사안이라고 봐야함. 이 부

 

분은 프레이저 보고서의 오류임.



1963년 12월 24일자 경향신문

 

 

환율문제만 해도 그래. 고정환율 제도는 사실 미국이 해방직후 우리나라에 도입한 것이거든? 박정희 쿠데타 당시 수입대체산업 위주였고, 대충

 

자금이라고 해서, 한국은행에다 예치하는 자금이 있어. 이 돈은 환율이 변동하면 갚아야 할 돈도 같이 쌓아야 하는데, 환율이 급격히 인상되면

 

대충자금 적립도 같이 늘겠지?

 

생각해봐. 박정희가 왜 환율을 가지고 고민했을 거 같니? 니들 대가리로 짱구 좀 굴려보라고. 단순히 물가인상의 압력을 식량원조라는 당근책으

 

로 넘어갔다는 식으로 염.병삽질하지 말고. 


웃기는 거 아냐? 미국식 종속경제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프레이저 보고서를 써먹을 때는 언제고, 이제와 경제발전은 천조국 미국느님의 덕분이

 

라는 결론으로 포장을 하냐 이거지. 프레이저 보고서에도 나오지 않냐? AID를 위시한 미국식 개입은 1970년 들어서 현저히 약화되었다고.3차

 

와 4차 경제개발 계획 입안시에는 미국의 조언없이 독자적으로 추진하고 실행했다고 나와있어. 그런데 한국경제발전의 전부가 다 미국덕분이라

 

는 건 그야말로 역알못 새끼 인증임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