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속보

미 해군 구축함(DD)의 기본적인 설계는 1920년 7월 17일의 제 541호 명령 후 많은 다른 함급들을 만들어냈다. 이는 해군의 전장 컨셉트의 변화를 보여주는 최적의 예시다. DD 분류는 하나의 계통만 가졌으나 40년대와 50년대를 지나며 수많은 파생형들이 나타났고, 이는 60년대 초에 다시 일어났다. 구축함은 한가지 임무를 위해 설계되었는데, 다양한 임무에 특화되었으며, 다시 한가지 임무에 특화되었다. 


구축함의 첫 분류는 DL로 1920년 7월 1일부터 1945년 9월 15일까지 처음 해군에 있었고, 두번째는 1951년 2월 9일부터 1975년 1월 6일까지 있었다. 첫 복무동안 이 분류는 선도구축함을 의미했다. 이 분류는 1954년 11월 23일까지 두번째 복무에서도 사용되었고, 그후 DL이라는 분류는 선도구축함에서 프리깃이 되었다.


첫 복무동안 DL 분류는 사용되지 않았다. 대형 구축함인 1934년의 포터(DD-356~363)급과 소머스(DD381, 383, 394~396)급은 DL로 복무하는것을 염두해 두었으나, 그들의 지휘장비를 위한 추가공간은 공격능력을 키우는데에 전용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결코 재분류되지 않았다.


1948년 1월 9일 헌터킬러함 노포크(CLK-1)의 함급과 분류가 생겨났다. 그녀와 다른 네척의 미처급 대형구축함(DD-927~930)은 1951년 2월 9일 DL-1~5가 되었다. 개선형 미처급인 헐넘버 DL-6~8까지의 함들도 1956년 예산안의 함 건조 프로그램으로서 승인되었다. 1950년대 중반의 해군의 첫 유도미사일 시리즈가 초도운용능력을 갖추며 그들은 1956년 11월 14일자로 DLG-6~8로 재분류되었고, 완공되었을땐 새로운 코네츠(DLG-9)급 설계로서 완공되었다. 이는 드문 상황을 만들었는데, 함급 설계의 프로토타입이 초도함이 아닌 4번함이 된 것 이였다. 그 결과 이 급은 함급의 초도함과 헐넘버 순으로 잘못 이름붙여졌는데, 패러것(DLG-6)급이라 불렸다.


코네츠급이 1956년 예산안에 통과되었을때, 함들은 DLG-1~3으로 분류되었다. 그 시점에(1950년대 중반) DL/DLG의 헐 넘버 붙이는 순서를 분리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유도미사일 시대가 다가옴에 따라 모든 후속 DL 분류의 필요성이 사라졌다. 1956년 11월 14일, DLG-1~3은 DLG-9~12로 재분류되었고,이는 DL/DLG 분류를 한 순서로 합친 것 이였다.


전 해군부 장관 및 국방부 장관이였던 제임스 포레스탈이 1949년 5월 22일 자살하고서 하루 뒤, 국방부 내에서 대형구축함의 이름을 그의 이름에서 따오려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1949년 7월 15일, 미처(DD-927)은 포레스탈(DD-927)로 재명명되었다. 이 이름들은 DD-927부터 930까지의 이름들, 미쳐, 존 S. 메케인, 윌스 A.리는 모두 헐넘버 하나씩이 밀렸고, 윌킨슨이란 이름은 취소되었다(그때엔 DD-931이 없었다). 그러나 당시 국방부 장관과 해군부 장관간의 구두 협의가 이뤄져 1949년 8월 25일자로 프로젝트는 취소되었고, DD-927~930은 원래 이름을 되찾았다.


DL 분류가 프리깃이란 용어로 사용된 것은 미 해군의 엄격한 분류에 따른 것이였다. 나토/전세계의 분류는 훨씬 작은 배를 의미했다. DLG 재분류 시기 해군의 프리깃은 2차대전기 경순양함 크기에 육박했으며 점점 더 커졌다. 1975년 6월 30일, 미 해군은 마침내 다른 나토/비나토 동맹국의 분류와 정의에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다른 이유에 더해 이는 해군간의 교신을 매우 쉽게 만들었다. 그 시점엔 단 하나의 DL형 분류/함급이 있었는데, 유도미사일프리깃(DLG)이였다. 모든 DLG/DLGN류는 코네츠급을 제외하고선 CG로 재분류되었고 유도미사일 순양함으로 재정의되었다. 코네츠급의 함들은 그들의 크기, 함령, 그리고 CG-16과 CG-26급들보다 현격히 떨어지는 능력 덕에 DLG-6~15는 DDG-37~46으로 재분류되었고, 유도미사일구축함으로 재정의 되었다.


DDG 분류는 1954년 11월 23일 만들어졌다. 함대구축함 가넷(DD-712)가 1950년대 중반 DD류가 성공적으로 미사일 무장이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 미해군의 세번째 유도미사일 무장 전투함으로 전환되었다. 초기 계획안은 DD/DDG 헐넘버 순서를 같게 하는 것 이였기에 DD-712는 DDG-712로 재분류되었다. 1957년 3월에 공통 헐넘버 정책이 폐기되면서 DDG 헐넘버 체계는 분리되어 가넷은 1957년 5월 23일 DDG-712에서 DDG-1으로 재분류되었다.


가넷의 첫 두해는 성공적이였고 이는 찰스 F. 애덤스급으로 이어졌다. 처음엔 함급의 첫 8척은 함급 순서를 따라가 DD-952~959로 계획되었다. 대신 그들은 찰스 F. 애덤스급의 첫 함선들로서 재설계 되었다. 찰스 F. 애덤스급 설계가 진행되는 중, 1956년 8월 16일자로 그들은 DDG-952~959로 재분류되었다, 헐넘버 정책이 취소됨에 따라 그들은 DDG-2~9로 재분류되었다. 이 함급의 함들 23척은 미 해군을 위해 주문되었다. 그들은 너무 인기 있었기에 오스트레일리아가 3척을(DDG-25~27) 구매해 1962~66년까지 건조했고, 독일이 다른 세척을(DDG-28~30)을 구매해 1965~69년까지 건조했다. 


찰스 F. 애덤스급은 모든 포레스트 셔먼급과 헐급 DD, 그리고 미처급 DL 4척, 총 22척의 함선을 전환하는 프로젝트로서도 성공했다(DDG-31~52). 사실 각 함급에서 오직 두척만이 DDG로 전환되었다(DDG-31~36). 다른 16척의 전환은 취소되었는데, 우선 각 함선의 전환에 대한 높은 비용이 이유였고, 각 함선의 기관부의 낮은 신뢰성과 함령 때문이였다. 


이란 제국 정부가 주문한 키드급 구축함은 원래 6척의 함정으로 구성되었다. 일반적인 전장에 맞춰, 그들은 DDG-993~998로 지정되었다. 회계 목적으로 그들은 스프루언스급(DD-963~992)을 즉시 이었다. 1976년 6월, 이란 정부가 함급 내 함 두척을 취소했다. 여기서부터 혼란이 생겼다, 이란은 마지막 두척(DD-997,998)이 아닌 세번째(DD-995)와 마지막에서 두번째(DD-997)을 취소했다. 1976년 4월 23일, 구축함 네척(DD-993~996)의 건조는 린턴 중공업으로 넘어갔다. 그 시점에 DD-996은 DD-995로, DD-998은 DD-996으로 재분류되었다. 1979년 2월과 3월에 새로 들어선 이란 정부는 네척의 함선을 모두 취소했고, 미해군이 7월 25일자로 이들을 인수했다. 이 함정들을 DDG로 분류하기로 결정했으나 해군은 가능한 다음 DDG 헐 넘버를 할당하기보단 이 함정들의 DD 헐넘버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공식적으로 DDG-48에서 51까지의 번호들은 DDG-51이 알레이버크급 초도함에 배정됐음에도 키드급의 최종할당을 위해 남아있다.


추가로 DD-997은 원래 이란의 7번째 스프루언스급에 할당될 예정이였다. 1978년 예산안에서 의회는 항공운용 능력이 있는 스프루언스급(LAMPS 3 헬리콥터들 혹은 두기의 해리어를 거대한 격납고와 후방 비행갑판을 갖춰 운용할 수 있게 한)을 해군 건함 프로그램에 추가했다. 비공식적으로 DDH-997로 지정된 이 것에 의회는 프로젝트에 3억 천만 달러와 추가 예산 금지라는 제한을 걸었다. 예산 초과로 해군은 취소된 키드급 함선을 정규 스프루언스급으로 DD-997이라는 헐넘버를 붙여 주문했다.


1954년에서 60년까지 DDC라는 분류/지정이 존재했고 코르벳을 의미했다. 이는 DDE 분류의 후계자로 의도되었다. 그러나 DDC 분류는 결코 사용되지 않았다. 이는 도태되어 사용하지 않고 있는 밴슨(DD-421)/글레이브(DD-423)급 구축함들을 가장 잘 사용할 방법으로서 의도되었다. 전환 사양은 5인치 38구경장 포 한문, 20mm 연장 포좌 두기에 최고속도 26노트였다. 전환에서 전방 보일러 두기는 제거되어 장거리 작전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연료통으로 바뀔 예정이였다. 1956년 예산안의 함선 건조 및 전환 프로그램이 국방부장관실로 올라갔을때, 해군부는 첫 두척의 함선 전환을 요청했다. 프로젝트의 낮은 우선순위와 빽빽한 예산으로 인해 국방부장관실은 항모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새로운 대잠전 함선이나 유도미사일 무장 함선을 위해 요청을 거부했다. 프로젝트는 1956년에서 57년 사이에 취소되었으나 DDC 분류는 1960년까지 남아있었다.


다른 두개의 사용되지 않고서 단명한 분류/지정은 구축함, 이지스 미사일을 의미하는 DG와 구축함, 수상 타격을 의미하는 DS였다. 둘 모두 1974년 1월 3일 생겨나 1975년 1월 6일자로 사라졌다. DG 분류는 DDG 분류로 합쳐졌다.


마지막으로 해군의 전장 콘셉트에서의 중요선으로 인해 3개의 DD형 분류가 토론되었다. 2차대전기의 강력한 대잠전의 결과와 조기경보 레이더 피켓함의 필요성으로 인해 이러한 전장에 특화된 구축함류가 1948년 1월 12일에 생겨났다. 이들은 DDK, 헌터킬러 구축함과 DDE, 호위 구축함이였다.


결국 1948년 1월 28일자로 35척의 DD가 DDK/DDE로 재분류되었다. 첫번째 부류는 4척의 미완공된 기어링급 DD를 포함했는데 에퍼손과 바시비네는 DDE로, 카펜터와 로버츠 A. 오웬은 DDK(단 두척의 배만이 DDK로 분류되었다)로 분류되었다. 1950년 3월 4일, DDE의 정의는 호위 구축함에서 구축 호위함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이미 승인된 정의인 호위 구축함, DE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함이였다.


원래 생각했던데로라면, DDK는 고속 잠수함에 대응해 공격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었다. 다른 한편에선 DDE는 잠수함을 탐지하고 추적할 수 있었으나, 그 분류의 다른 함선들과 힘을 합쳐야만 효과적인 공격 단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 DDK의 개념은 완전히 작동불능이란게 증명되었고, 1950년 3월 4일, 두척의 DDK는 DDE로 재분류되었다. 


다른 특화된 분류는 50년전, 오키나와의 피켓 선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DDR이였다, DDR 분류는 레이더 피켓 구축함으로 정의되었고, 1949년 2월 28일에 만들어졌다. 첫 그룹은 특별히 구성된 기어링급 구축함 24척이였고, 1949년 3월 18일자로 DDR로 분류되었다. 결국 총 39척의 DD가 DDR로서 복무했다.


기어링급과 섬너급에 적용된 FRAM 1과 2 프로그램이 끝나감에 따라 각각의 FRAM 개수를 받은 함선들의 최고의 대잠 센서와 무장들을 갖추게 되었다. 이는 그들을 주력 대잠전 함선으로 만들어주었다. 따라서 DDE/DDR 분류는 필요없어졌고, 모든 DDE와 DDR들은 1969년에 DD로 재분류되었다. 


 첨부된 표(없음)에는 다른 구축함류의 분류에 대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으나 공간이 모자라 이곳에는 적지 않겠다. 이는 해군에 있어 그들의 중요성을 모욕하는 것이 아니다.


https://www.usni.org/magazines/naval-history-magazine/1995/april/part-iii-matter-c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