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대축일의 뿌리가 어디까지인지를 정확히 밝히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틀이 갖춰진 것은 분명 3세기이다. 동방 교회에서는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이, 서방 교회에서는 12월 25일 성탄 대축일이 성립된 것이 대략 비슷한 시기였다. 다만 축일 성립 과정의 바탕이 되는 종교/문화적 맥락이 달라 축일의 의미에 부여되는 강조점도 달랐다. 그러나 궁극적인 의미는 동일했다.

즉 새로운 빛이요 역사상 진정한 태양인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이다. 두 축일이 틀을 잡는 과정에서의 복잡다단한 세부 사항들을 이 책에 모두 담을 수는 없다. 다만 두 축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을 간략히 짚어 보고자 한다. 먼저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결정할 때 출발점은 놀랍게도 3월 25일이다. 이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아프리카의 교부 테르툴리아노(150?-207?)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는 널리 알려진 사실, 곧 그리스도께서 3월 25일에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전제로 삼았다. 갈리아에서는 6세기까지 이날이 부활대축일로 지켜졌다. 아프리카 역시 243년에 작성된 부활 대축일의 날짜 계산에 관한 다른 문헌에서 3월 25일을 천지 창조의 날로 해석해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정하는 독특한 계산법을 볼 수 있다. 창세기에 의하면 태양이 만들어진 것은 창조 나흘째 되는 날이다. 곧 3월 28일이다. 따라서 이날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역사의 진정한 태양이 떠오른 날이라는 의미로서 말이다. 이러한 견해가 3세기에도 계속해서 다듬어지고 변화되는 가운데 마침내 그리스도의 수난일과 수태일을 같은 날로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3월 25일에 천사가 주님의 탄생을 예고하고 주님이 성령에 의해 동정 마리아의 태내에 잉태된 것을 찬양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12월 25일(3월 25일에서 9개월 뒤)을 성탄 대축일로 정하는 것이 서방 교회에서는 3세기에 진행되며 자리를 잡았다. 반면 동방 교회에서는 1월 6일을(아마도 두 교회에서 사용하던 달력이 달랐기 때문인 듯하다)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기렸다. 이와 함께 알렉산드리아에서 거행되던 신비로운 신들의 탄생 기념 축제에 대한 해답도 이루어졌다고 본다. 

그러므로 로마에서 페르시아의 태양신에 대한 반발이나 불멸의 태양 숭배에 대한 기독교적 대응으로 12월 25일을 택했으리라는 설과 3세기 로마 황제들에 의해 새 제국의 국교로 시험하기 위해 장려되었다는 옛 이론은 오늘날 유지되지 못한다.


- 《전례의 정신》, 교황 베네딕토 16세, 정종휴 옮김, 성바오로 출판사,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