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리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

2세기경의 교부 테르툴리아노가 한 이 말은, 오늘날까지도 종파를 막론하고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는 말입니다. 신앙을 가진 우리들은 이해할 수 없는 성경 속 사건들과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교리들을 놓고 갈등하는데, 이 말은 그렇게 이성적인 설명에 집착하지 말고 그냥, 시쳇말로 '알잘딱깔센하게' 믿고 받아들이라는 말로 들리기도 합니다. 반기독교주의자들은 이 말을 놓고 "이러니까 기독교인들은 무식하고 반지성주의적일 수밖에 없다."라고 비아냥거립니다.


물론 이성이 신앙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그냥 받아들이고 믿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를 테면 삼위일체의 신비에 대해서도 교회는 설명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설명하지만 그 끝은 결국 '하느님의 신비'로 귀결됩니다. 그러나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라는 말이 "합리적인 설명도 이성적인 시도도 필요가 없다."라고 받아들여지는 것은 테르툴리아누스에게 있어서 조금 억울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그 말이 나온 배경에 대해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는 여러 이단들이 존재했고, 그 중에는 마르치온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흔히 알기로 마르치온은 구약의 신이 잔인하고 폭력적이라며 신약의 신과는 다른 존재라고 주장했고, 그래서 구약을 배척했다고 하는데, 사실 이 사람은 여기서 더 나간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 눈에 터무니없어 보이는 신약의 내용들도 과감히 삭제해버리려고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세상을 창조한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완전한 존재이고, 또 지극히 존귀한 존재여야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신의 아들인 동시에 육신을 입고 내려온 신이고, 심지어 그가 인간을 위해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을 맞이했다고 믿습니다. 아니, 지극히 귀하고 완전한 존재인 신이 어떻게 비천한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내려온단 말입니까? 이거 신성모독 아닙니까? 완전하신 하느님을 더러운 인간의 육신 안에 가둔다니요. 그래서 마르치온주의자들은 예수는 사람으로 태어난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진짜로 보였겠지만, 실은 그런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을 '가현설(假現說)'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테르툴리아노는 이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실은 사람으로 태어나신 적이 없다고 칩시다. 그럼 예수를 만지고 병이 나은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예수의 그 많은 기적들은요?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걸으며 베푼 그 가르침들은요? 그리고 예수의 수난과 죽음, 부활은요? 예수가 사람으로 태어나 이 모든 일들을 행한 적이 없다면, 선하신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연극이라도 보여주셨다는 말입니까? 테르툴리아노의 눈에는 이것이야말로 지극히 신성모독적인 주장이었던 겁니다. 그리스도의 강생 자체가 거짓이었다면 이 모든 것이 거짓이고, 기독교 신앙 자체가 의미없는 것이 됩니다. 더구나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꼴이 됩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마르치온이 불합리하다고 말하는 예수의 강생이, 실은, 적어도 기독교 신앙 내에서는, 더 합리적이고, 더 믿을 만하다고. 그래서 당신이 불합리하다고 말하는 그것을 나는 믿겠노라고. 이 맥락에서 앞선 말이 나온 것입니다.


전능하시고 완전하신 하느님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애완동물을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그 애완동물과 같은 동물의 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그 애완동물을 살리기 위해 나 스스로가 죽는다는 것은 정말 상상도 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그 상상할 수 없고 납득도 안 되는 일을 하느님께서는 하셨다는 것입니다. 단지 우리들과 다시 함께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의 그 엄청난 사랑과 능력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에게는 이것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마태 19,26)' 이것은 불합리해 보일 수도 있고, 하느님을 격하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겐 하느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두려움을 이기고 죽음을 겪은 뒤 그것을 이기셨다는, 그 복음의 말씀이 오히려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와 그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을 드높이고 경외하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마르치온이 '불합리하다'라고 말했던 그것이 오히려 하느님의 섭리를 더 '합리적으로' 우리에게 드러내보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를 그리스도교로 만드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그리스도의 죽음이,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교 신앙에는 가치가 없습니다. 우리는 성자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일인지를 종종 잊습니다. 마르치온도 그런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 희생의 가치를 깨닫는 것이, 그리고 그 희생의 은총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고, 그것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