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체험이라고 하면 다들 천국을 보고, 하느님을 직접 만나고 하는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내 경험은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별 볼일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일단 나의 하느님 체험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음.


나는 원래 무신론자였고, 개종하기 직전에는 절에 다녔음.


난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한 병적인 공포를 갖고 있었음. 신도 사후세계도 안 믿었기에 죽음 이후에 펼쳐질 끝없는 '무'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힌 것임. 주변 친척들이 돌아가시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도 오늘 눈을 감으면 영원히 못 뜨게 될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그런 공포감이 불쑥 찾아오면 숨이 턱 막히기도 했음. 절에 찾아가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음. 부처의 가르침을 배우고 깨달으면 그 공포를 떨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런데 배우면 배울수록 기대와는 다르게 기성 불교계에 대한 환멸감만 커졌음.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 역시 크게 줄어들지 않았음. 오히려 불경에서 말하는 그 초월적인 단위들과 방대한 세계가 나를 압도하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 공포 역시 더 극심해지는 듯한 느낌이었음. 크툴루 신화를 보면 그 신족들을 마주치는 사람은 전부 미쳐버린다고 하는데, 그런 기분이었음. 그때 불현듯 가톨릭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임. 


어느 날 유튜브에서 '나는 천주교인이오'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보게 됐음. 평화방송에서 만든 영상이었는데, 천주교인이 아니었던 내게도 참으로 감동적이고 인상깊게 다가왔음. 내가 그 노래를 듣고 아마 울었을 것임. 그 순교자들이 그렇게 죽음까지 불사하고 천주교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졌음. 그래서 천주교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고 성경도 처음 읽었음. 나는 세례도 안 받았고 교인도 아니었지만, 하느님께 내게 답을 주시라고 밤마다 엎드려서 기도를 했음.


고민 끝에 하느님을 받아들이기로 한 날, 나는 꿈을 꿨음. 성당처럼 보이는 곳에서 인민군에게 잡혀 십자가형을 당하는 꿈이었음. 그러나 그 꿈을 꾸면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음. 오히려 의연하게 십자가에 매달려서 죽음을 맞이했음.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내 꿈에는 십자가가 등장했고, 이 꿈을 계기로 나는 믿음을 굳혔음. 누군가가 꿈은 우리 무의식의 발현일 뿐이라고 할 텐데, 그건 아무래도 좋음. 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꿈을 꿨고, 그 꿈이 나를 확실하게 가톨릭 신자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이 하느님께서 직접 계시하신 것인지, 아니면 예수의 수난과 성인들의 순교록을 접한 내 뇌가 꾸며낸 이야기인지는 중요하지 않음.


그때가 2020년, 내 중학교 3학년 때였고,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라 성당 문은 잠겨 있었고, 나는 성당이 다시 열리는 현충일까지 기다려야 했음. 오후 한 시쯤 미사가 다 끝나고 성당에 찾아가니 수녀님들이 산책을 하고 계셨는데, 혼자 개종하러 왔다고 하니 기특하다고 칭찬을 해주시며 성당을 안내해주셨음. 그렇게 나는 예비신자 교육을 받게 되었음. 코로나 때문에 중지됐다가, 다시 재개됐다가 하느라 거의 1년 반에 가까운 기간을 예비신자로 지냈고, 2021년 8월이 되어서야 세례를 받을 수 있었음.


2020년은 내게 있어서 정말 힘든 해였음. 교우관계는 파탄이 나고, 바이러스 때문에 집에서만 지내느라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져가는 와중에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아주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음. 나는 정말 시간이 날 때마다 기도를 하며 성경을 읽으면서 마음을 달랬고, 금이 가서 부숴지기 직전이었던 내 마음을 신앙이 다시 이어붙여줬음. 정말 하느님을 방패 삼아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음. 그래서 하느님께 감사함. 절망과 불안에 떨고 있던 내게 평화를 주신 것에 감사하고, 다른 어떤 교회도 아닌 참된 어머니이신 가톨릭교회로 내 영혼을 이끌어주신 것에 두 번 감사함. 


우리는 살면서 남모를 고민과 불안 속에 외롭게 떨곤 함. 우리가 처한 상황을 저주하면서 절망에 빠지기도 함. 때론 하느님께서 어디에 계시냐고,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함.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의 절망에서 조금만 옆으로 눈을 돌리면, 거기에 하느님께서 두 팔을 벌리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심. 우리가 눈을 들어 십자가를 바라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심. "그렇단다, 아들아. 내가 너와 함께 고통을 받고 있었단다." 그런 하느님을, 우리와 함께 고통을 받으시는 예수님을 발견할 때, 우리가 할 일은 온 힘을 다해 무한하신 하느님께로 달려나가는 것임. 그리고 그분께 우리의 모든 불안과 고통을 털어놓는 것임.


이 글을 읽는, 나와 비슷한 불안과 고민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형제들도 하느님을 믿고 그것을 극복해내기를, 절망과 저주 대신 희망과 사랑, 믿음이 자라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축복함.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