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채널

아 너무 웃겨서 자려고 누웠다가 글 남겨봅니다

글이 길어질것 같으니 미리 양해말씀 드립니다


이번 학기 수업이 100명이상 대형강의라 석사생 수업조교를 한명 배정받았습니다

학부생때 제 수업을 몇개 들었던 학생이었는데, 그때는 그냥 성실한 학생인줄로만 알았지요

역시 사람은 겪어봐야 아는 것이더군요


일단 학기초에는 별 문제 없었는데 첫사건은 중간고사를 일주일 남기고 발생했습니다

시험을 월요일 낮 수업시간에 보기로 하였고, 그다음 수업이 목요일인지라

조교에게 월, 화, 수 중에 언제 시간이 되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항상 시험을 보면 그 다음 수업시간 전날 저녁에는 성적을 올려주었거든요

그러니까 늦어도 수요일 오후에는 채점과 성적 입력이 완료되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조교도 학부생때 제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알고 있을거였습니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이 

화요일에 중요한 시험이 있어서 월요일 오후에는 시험공부하느라 시간이 안되고,

화요일에는 시험을 본 후 과외를 하려 가야해서 시간이 안되며,

수요일에도 무슨 일이 있어서 저녁 8시 이후에나 겨우 시간을 낼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어이가 없어서, 그럼 어쩌자는 거냐고 따져물으니

답안지를 자기가 가지고 가서 혼자 알아서 채점을 하겠다 하더군요

그건 안된다고 화를 좀 내고 돌려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잠시 후 아래와 같은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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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일단 오해를 하신 것 같아서 안타깝고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저 무슨 일이든 해야 할 일은 빨리, 그리고 시키는 사람이 걱정 안 하게 자주 보고드리려고 늘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 가능하면 빨리 처리해드리려고, 강의실 예약도 바로바로 잡고, 

수업 끝나면 바로 출결처리해서 매일매일 쪽지보내드리고 있었는데,

아까 그렇게 말씀하셔서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시험있다는 건 일방적으로 통보드린 게 아니라, 그냥 시험이 있다고 말씀드린 건데, 그렇게 생각하셨을지 몰랐습니다.

(아마 시험에 대한 걱정이 너무 커서 안 된다는 식으로 느껴지셨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럴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밤을 새워서라도 맡은 일은 끝까지 잘 처리하려고 하는데,

보통 제 주위에 조교들이 채점할 때 가지고 와서 하기에, 선생님 시험 채점도 그렇게 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너무 당연하게 제 위주에서 일어나는 걸 기준으로 생각하고 미리 여쭤보지 않은 점 죄송합니다.

그리고 시험이 겹칠 경우, 교수님께서 채점하는 데 일주일 이상 시간을 주셨어서, 목요일까지 해야 하는지 몰랐었습니다.

절대 선생님 조교 업무를 제일 아래에 둔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제가 맡은 업무이기 때문에 학교 업무 시간까지는(오전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선생님 조교 업무가 제일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녁 시간에는 제가 경제적으로 꼭 과외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서, 한달전에 말씀해주시면 시간 조정을 해놓겠습니다.)


다음 기말고사(6/13)에는 미리 시간 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기분이 상하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제가 깜짝 놀랐던 만큼, 제가 선생님께 기본을 안 지키고 있다고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던 것 같이, 개선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시면, 바로바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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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셨으면 눈에 딱 들어오셨겠지만 핵심 포인트는 

"오전9시부터 오후 5시까지"와 "한달전에 말씀해주시면 시간 조정을 해놓겠습니다"가 되겠습니다

아래는 제 답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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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선생님도 제 수업 들었으니 잘 알텐데 제가 언제 채점하는데 일주일씩 걸린적이 있었나요?

그리고 자꾸 다른 교수님이나 조교 이야기를 하는데, 나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또 출결처리나 강의실예약은 당연히 해야하는 조교 업무인데 특별히 이야기할게 있나요?

저도 선생님 일과외시간까지 뺐어가면서 부담을 주고싶지는 않지만

중간고사와 학기말 성적처리때만큼은 저녁5시 이후나 주말에도 얼마든지 일이 있을수 있습니다

그런식으로 일방적으로 시간정해놓고 할거라면 그냥 저혼자 하는게 낫겠습니다

수요일도 저녁 5시 이후이니 올 필요 없습니다

앞으로는 수업시간에 출결처리만 하도록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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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중간고사 채점과 성적 입력은 그냥 제가 다 했습니다

계속 데리고 억지로 일시켜봤자 저만 더 고생할 거 뻔했으니까요 

이 이후부터는 정말 출결처리만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 목요일에 과제 제출, 이번 월요일에 기말고사를 보았고

역시나 조교는 채점과 성적입력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수요일에 학생들에게 최종 성적을 공지하고

목요일에 강의실에서 성적 확인할 거니까

수요일 5시까지 출석처리 완료해서 메일로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다 되도록 메일이 오지 않았고, 저는 혹시나 싶어서 5시 경에 문자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은 이랬습니다


"학교에 랩탑을 두고와서 내일 바로 출력해서 드리려고 했는데, 

오늘까지 필요하신가요? 그렇다면 밤늦게라도 학교가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그래서 오늘 밤 10시에는 성적 공지를 해야하니 9시까지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의외로 6시 15분에 메일을 보내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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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께


출결 최종본 보내드립니다

택시타고 뛰어와서 말씀해주신 시간보다 더 빨리 보낼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는데도, 실수를 할 뻔 했는데, 먼저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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ㅏㄴ어갸ㅐㅂㅈ 먀래ㅑ마?yㅑ9ㅡㅛㅕ랴ㅐ;ㅁ러;ㅗㄹ아?튄? ㄷ?Г만玭「蜚?09ㅡ[


전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저렇게 기분 나쁠 수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았습니다

어쨌든 성적 입력에는 문제가 없게 된 것이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대망의 오늘, 성적 확인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아침에 학교갈 준비를 하면서 

그래, 오늘이 마지막이고 이제 더이상 볼일 없으니까 암말도 하지 말자

내가 머라고 해봤자 아무 도움도 안되고 내입만 아플거다

오히려 좋게 인사하고 끝내자 다짐했답니다


그런데 수업시간 직전, 저는 또다시 조교로부터 메일을 하나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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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께


여러번 검토했는데, 다시 보다가 ***학생 카운팅이 잘못 되어 있는걸 발견하고

수정해서 보내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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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감사합니다를 보는 순간, 그나마 남아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져버린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침착하게 학생들 성적 확인은 잘 해주었습니다

다행히 아무 학생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고, 분위기는 심지어 화기애애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조교선생님께서 등장하셨습니다

그런데 웬걸, 웃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이러이러한 상황에서는 감사합니다 보다는 죄송합니다가 더 맞는 표현 같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은

아, 교수님께서 죄송해야 하는 거라고 말씀해주지 않으셔서 죄송해야하는 건지 몰랐습니다

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한번 물었습니다

선생님이 다른 수업조교들에 비해서 훨씬 더 적은 업무만 한걸 알고 있느냐고,

그나마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계속 실수하면서

다른 조교들과 똑같은 조교비 받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렇지 않냐고,

한번 선생님 동기나 다른 조교들한테 물어보라고,


그랬더니 또다시 돌아온 대답은

(더욱더 환하게 웃으면서)

아, 저희 전공 교수님께서는 원래 출석체크만 시키시는데요


......


더이상 물을게 없었습니다

할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싸웠습니다

혼낸게 아니라, 싸웠습니다

정말 유치하게, 학생들 보는 앞에서요 



그동안 나름 많은 학생들, 후배들, 조교들 겪으면서 어느정도 단련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갈길이 먼것 같습니다

사실 이제는 그냥 제가 이상한 것 같습니다



써놓고 나니 별거 아닌것 가지고 괜히 쓸데 없는 시간낭비 노력낭비 한것 같기도 합니다만

이렇게라도 풀어버리니 마음은 한결 나아집니다

어쨌거나 종강하였으니 담학기 밥벌이는 또 어찌할지 걱정이나 해야겠지요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댓글창에 글쓴이 꼰대같다고 키배 벌어짐.
근데 이 글 쓴 사람이 교수가 아니라  대학강사거든? 글쓴이가 쓴 댓글보면 이사람도 정규 교수들한테 당한 게 있는지 피해의식이 많은 것 같다. 본인 학과장 맡고 있다고 밝히는 반박댓글에 눈까뒤집고 달려드는 거 보면..
그러면서도 본인 밑의 대학원생 조교한테는 막 대하는 것 같은데 갑질하는 놈이라고 절대적 갑은 아니란걸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