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고찰임.


산업화 이후의 도시발달은 필연적으로 지방간의 특색이 있는 방향이 아닌, 당대에 효율적으로 여겨지는 개발 방향이 밀어부쳐지게 되어있음.


물론 이 일본글 (https://arca.live/b/city/100647430?mode=best&p=1)에 대한 반박에 나온 오키나와, 홋카이도 예시처럼 지리적으로 동떨어져있는 지역들에 그 지리적인 거리의 결과로 인한 특색은 생겨나는게 당연하지만 도시의 특색을 이루는 요인이 기후 뿐인건 아니잖아?


결과적으로 도시의 풍경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건축물'이고 그 건축물들의 건설 양상이 특색을 결정한다, 그게 내 의견임.


산업화 이전에는 도시간 교통도 부족했고 통신도 부족했지. 그래서 건축재료들과 같은 경우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들로 이뤄졌고 이는 고스란히 지역 특색으로 이어졌지. 영국에 잉글랜드는 벽돌 건축이 많이 보이는 한편 스코틀랜드는 석조 건축이 많이 보이는거가 이 요인의 대표적인 예시임.


그것 외에도 지역간 통신이 부족한 만큼 한 지역에서 나타난 유행은 주로 그 지역에서만 남으면서 지역 특색으로 발전할 수가 있었음. 예시로, 인도의 조드푸르는 도시가 전체적으로 파랗게 칠해져 있어서 '파란 도시' (Blue City)로 알려져 있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지만 (파란 칠이 도시가 시원하게 유지되는데 도움을 준다거니 흰개미를 쫓아낸다는 미신 등등) 이렇게 지역 유행이 지역만의 특색으로 이어지는건 통신이 발달된 오늘날에는 힘든 일이지.


저런 미신 기반 유행같은건 정보가 빠르게 전파되는 사회에서 일어나기 힘들뿐더러 반응 좋은 지역 유행이 나오더라도 금세 다른지역들로 퍼져나가는게 자연스러우니까. 북극권 등지에 우울증 대책으로 공동주택들을 화사한 색으로 칠한 '레고마을'들이 주변으로 금세 퍼져나갔고 한국에서는 한옥마을, 케이블카, X리단길 등이 금세 다른 지자체들로 퍼져나갔잖아?


산업화 이후의 건축물들에 '지역별 특색'이란 규모의 경제를 방해하는 비효율이며 당대 트렌드를 역행하는 물건일 수밖에 없으니 산업화 이후 지역적 특색이 발전되는건 요원할수밖에 없음. 그러니까 오늘날 도시 건축물들의 특색이란 산업화 이전 건물들이 얼마나 남아있느냐에서 온다 라는게 내 논리.


이거는 국가주도이건 개인주도이건 상관없음.

구 소련권에 성냥갑 아파트들이나 한국의 아파트 중심의 개발은 국가주도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유럽과 미국의 스프롤 지역들의 양식이 일원화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특별한 외부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닌, 단순히 당대에는 이러한 양식의 도시개발이 가장 효율적으로 당대의 수요나 트렌드를 반영하는 물건이었기 때문.


예시로 소련이나 한국의 성냥갑은 폭증하는 도시인구와 만성적인 도시 내 주거부족을 가장 효율적이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채택되어 계속된 거고 미국의 스프롤 도시들과 같은 경우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면서 전후세대들의 '도시에서 벗어난, 정원 있고 넓은 단독주택' 수요를 충족시킬수 있는 도시계획의 반영이었잖아.


위는 미국 뉴저지 주 유니언, 아래는 미국 오리건 주 킹 시티. 구분이 갈 리가...


위는 에스토니아 탈린, 아래는 키르기즈스탄 비슈케크


그 대신 미국이나 유럽도 산업화와 그와 동반된 규격화된 도시개발 이전의 유산들이 많이 남아있는 곳들을 보면 얘기가 다름.


미국의 예시로, 보자면

보스턴은 나름 미국에서 오래되었다 자부하는 도시고 그에 따라 시 중심은 굽어지고 좁은 골목들이 많고 건물들의 건축 양식도 갓 따끈따끈하게 영국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세운거라 짙은 색조며 해서 영국과 비슷한 부분들이 많음.

샌프란시스코는 보스턴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나름 서부에서 오래된 도시. 하지만 두 도시들의 사진을 비교해보자. 


건축 양식에서 비슷한 점은 보일지언정 도로 폭, 색상, 그리고 건축 자재에서 오는 분위기가 다르지?


도시 발전 시기가 다르니 당대에 유행하던 도시계획 양식도 다르고 (사실 보스턴 말고 미국 도시들 대다수는 샌프란시스코처럼 격자형 도시계획을 좋아하기는 했다만) 도시를 세운 사람들의 인구구조도 다르니까 건축 양상도 달라졌잖아.


아마 이런 부분들에서 오는 느낌이 '특색'이라고 부를만한 물건인 것 같은데 이거는 현대에 와서 발버둥친다고 만들어지는 물건이라고 보다는 전술한듯 유산에서 오는 물건임. 오늘날 새로 짓는 도시의 도로망을 보스턴과 비슷하게 판다고 하면 좋은 소리를 들을 리가 없지. 아니면 건축 자재들과 양식, 색상들을 특이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반응이 좋으면 금방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하게 따라해서 더이상 특색이 아니게 될거고. (이 부분은 위에서도 언급했지?)


그렇다고 이전 유산 많이 남은 유럽국가들이면 도시들에 특색이 마냥 다 있냐 하면 이것도 복잡함.


영국에서 여행한 곳들이 꽤 되고 도시/지역들의 특색이라 할만한 물건들을 몇개 집을 수는 있었음. 예시로, 스코틀랜드 건축물들은 대체로 석재건축들이 많아서 도시 색이 전체적으로 짙게 느껴졌다면 영국 북부는 빨간벽돌 건물들이 많았고 런던과 같은 경우 벽돌건물도, 신고전주의 양식의 석조 건물도 (스코틀랜드와는 다른), 60년대 느낌의 브루탈리즘 건물도 꽤 많았음. 아래 사진 3개 첨부.


왼쪽은 에든버러, 중간이 리즈, 오른쪽이 런던. 런던 사진에서는 알아볼 수도 있는 랜드마크를 (대영박물관) 지웠지만 분위기의 다름은 여전히 느껴질거라 믿음.


하지만 그와 동시에 특색없다고 느껴질만한 공통점도 있었음. 도시마다 중심에 차없는 거리로 이뤄진 상업구역을 리즈, 플리머스, 글라스고 모두에서 찾아볼수 있었고 (각각 북잉글랜드, 남잉글랜드, 스코틀랜드에 위치) 도시 중심부에 솟아오른 마천루들도 지역간 특색이 있는 물건은 아녔지. 그리고 몇군데 시외지역들의 모습들도 붕어빵인게 에든버러건, 요크건 레딩이건 차이가 없음.


왼쪽에서부터 플리머스, 리즈, 스카버러


유럽도 외곽은 정말 특색이 없다. 왼쪽부터 에든버러, 요크, 스테인즈 (런던 남동쪽)


이렇게 돌아본 경험으로 내린 결론이, 어느 도시건 산업화 (및 규격화된 도시개발) 이전의 유산들이 다수인 곳에서는 지역의 특색이 드러날 수 있어도 그런 부분들이 헐리고 재개발이 된 지역은 특색이 없는게 자연스러운거라고.


그러니 전쟁으로 전국을 갈아엎고 규격화된 도시개발을 한 한국이나 일본이나 도시에 특색이 없게 느껴지는 것 또한 도시에 산업화 이전 유산의 부족이라는게 내 사견임.


그러니 한국의 지역특색 부족은 불가항력으로 인정하고 그 외의 부분들에서 살기 좋게 개선할 방법을 생각하는게 더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