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양의 진주 (예고편): 싱가포르

두 대양의 진주 (예고편): 도망가지 말레이

두 대양의 진주 (예고편): 동방의 진주 (진)

두 대양의 진주 [1]: 두 대양 사이로 가는 길

두 대양의 진주 [2]: NUS 맛보기

두 대양의 진주 [M1]: 쿠알라룸푸르로의 북진

두 대양의 진주 [M2]: 쿠알라룸푸르에서의 하차

두 대양의 진주 [M3]: 페낭으로 가는 길

두 대양의 진주 [M4]: 동방의 진주(진)에서의 설날

두 대양의 진주 [M5]: 말레이 미식의 수도, 페낭


찬호박입니다. 

뜻하지 않은 명소에서 이것저것 만끽하다 보니, 설연휴의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싱가포르로 돌아갈 시간이죠. 



꽤 상서로웠던 아침의 페낭 하늘로 시작합니다. 



싱가포르로 돌아가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고 당연히 페낭-싱가포르 직항이 가장 속 편하긴 하지만, 페낭 여행 계획 자체가 꽤 늦게 짜여진 탓에 항공편을 알아볼 때쯤이면 지나치게 비싸져 있었던지라 (저날 페낭-싱가포르 편도 직항이 20을 넘었던 것으로 기억) 그냥 주변 풍경도 경험하고 비용도 아낄 겸 여러 가지 이유로 쿠알라룸푸르를 경유하는 육로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대충 저 지도에서 Tasek Gelugor 역 - KL 센트럴 역까지 열차를 타고, 쿠알라룸푸르에서 싱가포르까지 다시 버스를 타는 일정이죠. 사실 저기서도 12시간이 넘는 일정이라고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교통체증을 감안했을 때 무조건 그보다는 더 걸릴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생각건데 KL까지는 열차를 타더라도 스쿠트를 타는 한이 있더라도 KL-싱가포르만큼이라도 항공편으로 우회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여행은 미리 계획을 짜는 습관을 들입시다 여러분... 



한국과 달리 통근열차, 일반열차 모두 개찰구에서 표 (QR코드)를 찍어야 승강장으로 갈 수 있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KL 센트럴까지 가는 ETS 열차는 두시간에 한 번 정도 오는군요. 



구름 하나 없는 맑은 하늘 아래 승강장은 비교적 깔끔해 보입니다. 




생각보다 Tasek Gelugor 역 자체는 우리로 치면 거의 신경주역 수준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열차가 굉장히 뜨문뜨문 다니는 편입니다. 



적당한 시간대에 나가서 기다리니, 꽤 유선형의 디자인을 갖춘 ETS 열차가 들어옵니다. 저 열차가 미터궤간을 쓰는 말레이시아에서는 가장 빠르다고 하더군요. 물론 그래도 속력은 140km/h 정도니까 잘쳐줘야 새마을 정도이긴 하지만, 고속철이 없는 나라에서는 꽤 탈 만했다고 여겼습니다. 




예산 절감의 일환으로 일반석을 탔는데, 생각보다 열차 구성이 깔끔했습니다. 



쿠알라룸푸르까지 여정의 대부분은 이런 스프롤 현상이 생각나는 주택단지를 드물게 지나거나



삼림, 조금 더 있으면 플랜테이션 농장을 지나는 게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약간의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다 보면, 무려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열차 중 하나라는 이스턴 & 오리엔탈 특급 열차들이 주박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방콕부터 싱가포르까지 개인적으로 저걸 한 번 타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만, 가격이 인당 6천 달러부터 시작한다는 걸 듣고 접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나중에 성공하면 철덕으로서 꼭 타기로 마음먹으며, 눈물을 머금고 지나갑니다. 



조금 선로가 넓어진다 싶으면




페낭과 KL의 중간쯤에 있는 이포를 지나갑니다. 이포도 꽤 음식이 맛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생각보다 그 외에는 특색이 있는 동네는 아닌지라 빠르게 지나갑니다. 사실 시간이 없는게 더 커서... 



조금 더 열차를 타고 가다보면 갑자기 없던 스카이라인이 생깁니다. 그렇습니다, KL에 거의 다 왔다는 의미죠. 



이윽고 옛 쿠알라룸푸르 역과 저 멀리 세인트레지스 건물이 보인다면, KL 센트럴에 거의 다 왔다는 의미입니다. 



설마 KL 센트럴에 다시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싱가포르까지 가는 버스를 타려면 시간이 없다보니 서두릅니다. 



모노레일 창문 너머로 보이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마천루인 메르데카 118도 지나갑니다. 



베르자야 타임스 스퀘어라는 몰 앞에 정류장이 있긴 해서 거기로 잡았는데, 제대로 교통정리가 안 되어 있다 보니까 혼란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버스를 기다리다, 시간이 되었는데도 안 오는 걸 보고 설마 놓쳤나 싶었는데 그러면 그렇지, 버스가 원래 시간보다 30분 정도 늦게 도착했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버스 자리에 착석합니다.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간 고속버스를 탈 때 다들 진짜 최저가는 피하라는 이야기를 하던데, 개인적으로 타 본 후기로는 다들 상향평준화가 되어있긴 해서 어지간히 평이 나쁜 회사만 아니라면 대부분은 꽤 탈 만하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래서 며칠간 정시성, 평 등등을 조합해서 그나마 덜 지연될 것 같은 버스를 타긴 했는데, 지연을 먹는 건 사실 버스회사와 관계없이 모두들 평등한지라 ㅋㅋ



쿠알라룸푸르의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뒤로 하며, 언제 다시 말레이시아에 올 수 있을까, 과연 내가 KL에 다시 올까 등의 생각 속에서 KL을 벗어나나 싶었더니...




갑자기 다른 버스 터미널에 들어서는데, KL의 고속터미널 같은 곳인 TBS (Terminal Bersepadu Selatan), 직역하면 '남부버스터미널'이라는 곳에 잠시 정차하며 승객들을 더 태우고 갑니다. 알고보니 제가 탄 곳은 서울로 치면 명동 같은 곳이었고 여기가 메인 터미널 같더군요. 



오후 5시경, 지난주 KL로 올라가는 버스에서도 잠시 정차했던 곳과 비슷한 휴게소에 정차하는 걸 보고, 반쯤 왔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안정적으로 싱가포르 숙소까지 MRT를 탈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조호르 주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심해진 교통체증 속에서 무참히 깨지고 말았죠. 



그나마 다행인 점은 더 미어터질 것이 확실시되던 조호르바루를 통하는 길은 아닌, 서쪽 투아스를 통해서 갈 것 같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설연휴 끝에 말레이시아에서 싱가포르로 돌아가는 '귀싱길' 교통체증 한복판에 휘말린 것이더군요. 



도착 예정 시각은 분명 19시쯤이었는데 23시가 되어서야 겨우 말레이시아 체크포인트를 통과하며, 한편으로는 과연 말레이시아에 다시 오려나 하는 생각, 또 한편으로는 지금 아니면 언제 이렇게 설연휴 때 국경을 육로로 넘겠나 하는 생각이 들며 한동안 마지막으로 말레이시아 국경을 빠져나왔습니다. 



설연휴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Gong Xi Fa Cai가 인상적입니다. 



여기 정체 때문에 실제로 국경을 완전히 통과하기까지는 또 한 시간이 더 걸렸고 거의 자정이 되어서야 국경사무소에 당도했지만, 싱가포르 쪽 국경사무소가 이만큼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싱가포르에 온 첫날보다 이날이 더 반갑더군요. 



국경을 통과해도 투아스 쪽은 걸어서 국경사무소를 나갈 수 없는지라, 버스 내 모든 사람들이 통과했는지를 꼭 봤습니다. 덕분에 실제 버스 하차지에 도착하니 새벽 1시가 넘었는데, 다행히도 숙소까지는 도보 30분 정도 거리라 걸어가니 설연휴가 끝나고 새벽 2시가 되어서, 장장 4일에 걸친 말레이시아 2차 답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계산해 보니 버스에서만 장장 11시간 가까이 있었더군요. 


마지막에 싱가포르로 돌아오는 길이 꽤 고생길이라 그렇지, 개인적으로 한국인들에게 생소한 동네인 페낭을 이번 기회에, 그것도 설 연휴에 갈 수 있게 되어 꽤 즐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페낭까지 직항이 없기도 하고 말레이시아도 전혀 가까운 동네는 아닌지라 이번이 아니면 갈 수 없다고 본 면도 있지만, 실제로 페낭을 오기 전까지는 친구가 페낭에 사는 게 아니었으면 페낭에 오진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본 나라 개수 늘리기' 차원에서도 브루나이나 보르네오 섬 쪽, 아니면 인도네시아 적당한 곳에서 휴양(?)을 하다 오지... 특히 냉방병 때문에 조호르바루에서 죽을 것 같을 때 살짝 후회된 순간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페낭 힐을 올라가서 본 '언럭키 빅토리아 피크' 뷰, 조지타운 구시가지에서만 느낄 수 있던, 싱가포르에는 없던 그 현지의 페라나칸 느낌, 그리고 '말레이시아 음식의 수도'라는 이름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 만큼 완벽했던 음식과 함께, 페낭 여행에서 가치를 찾았던 것 같습니다. 싱가포르에서 말레이시아로 갔을 때 느끼는 약간의 혼란(?) 역체감을 무시한다면, 페낭은 진정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던 진흙 속 동방의 진주 그 자체였습니다. 쿠알라룸푸르의 화려한 혼돈 속에서 싱가포르의 질서의 소중함을 느꼈다면, 페낭에서 말레이시아에 대해 갖고 있던 인지부조화 위에 진흙 속 진주의 모습을 덧칠하고 왔습니다. 

말레이시아에 다시 간다면 물론 코타키나발루나 랑카위도 좋지만 이렇게 두 번이나 가면서도 누락했던 믈라카를 가 보거나, 페낭에서 아예 조금 더 오래 있으면서 조지타운에서 잠시 과거로 돌아간 느낌을 만끽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쿠알라룸푸르를 다시 방문할 것 같진 않지만, 페낭은 확실히 여력만 된다면 재방문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상 여섯 장에 걸친 두 번의 말레이시아 답사기를 봐 주신 도지챈러 여러분들께 감사드리고, 말레이시아편도 끝났겠다 다음 편부터는 다시 싱가포르 곳곳 답사기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