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27 - 2024.02.25

두 대양의 진주 [1]: 두 대양 사이로 가는 길

두 대양의 진주 [2]: NUS 맛보기

두 대양의 진주 [M1]: 쿠알라룸푸르로의 북진

두 대양의 진주 [M2]: 쿠알라룸푸르에서의 하차

두 대양의 진주 [M3]: 페낭으로 가는 길

두 대양의 진주 [M4]: 동방의 진주(진)에서의 설날

두 대양의 진주 [M5]: 말레이 미식의 수도, 페낭

두 대양의 진주 [M6]: 험난한 귀'싱'길

두 대양의 진주 [3]: 차이나타운

두 대양의 진주 [4]: 에드 시런


찬호박입니다. 계속 미루고 미루던 싱가포르 답사기도 이어갈 때가 왔습니다. 답사기라는 것은 원래 각 잡고 오래 써야 연계도 되고 효율이 가장 잘 나오지만, 현생이 꽤나 바쁜 편이라 이제서야 답사기를 간간히 이어갑니다. 현생만 조금 정리되면 답사기도 계속 쓰고 할 텐데 말이죠. 


각설하고, 4주 내내 NUS가 있는 켄트 리지 역 (싱가포르 도심 서쪽)과 숙소가 있던 싱가포르 도심 동쪽 끝을 오가면서 짜증날 정도로 자주 이름을 들어야 했던 지명이 있습니다. 



"래브라도 공원." 거의 모든 노선이 출퇴근 시간이면 배차간격이 2-3분 정도로 줄어드는 쾌적한 MRT에서, 그것도 (서클 라인이 아닌) 서클 라인에서 부득이하게 평면환승과 최대 10분의 기다림이 강제되는 그런 상황을 유발한 곳이죠. 5월이면 톰슨-이스트코스트 선 연장이 어느 정도 완료되어 저게 해소된다고는 합니다만, 싱가포르에 있던 시절에는 매일같이 불필요하게 오래 기다렸던 기억이 나는군요. 



래브라도 공원 역 근처는 새로운 사무실들이 여기저기 들어서고 있는, 위치로 보면 약간 마곡 쪽이 생각나는 곳이었습니다. 



래브라도 공원 MRT 역을 나오자마자 보인 것은 공사장이었습니다. 위의 분위기를 이어가듯, 여기도 큰 오피스가 하나 들어선다 하더군요. 



녹지에서 볼 수 있듯 실은 래브라도 공원은 일종의 '자연보호구역'인데, 문제는 이 '자연보호구역'의 위치가...



센토사 섬과 항싱가포르 최대 항구인 파시르 판장 항 사이, 굉장히 애매한 지대라는 것이었습니다. 말이 자연보호구역이지 사실상 해변공원이었던 것이죠. 



차를 끌고 왔다면 분명 여기 주차를 하는 등 많은 게 편했겠지만 그런 사치는 평범한 학식에게 있을 수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바로 앞에 바다가 보이는군요. 



걸어 나가면 싱가포르가 부자가 된 여러 요인 중 하나인 항구와 컨테이너항이 눈에 들어옵니다. 



싱가포르에는 주요 컨테이너항이 크게 다섯 군데 있는데,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순서대로 탄종 파가르 터미널, 센토사 섬 바로 위에 있는 케펠-브래니 터미널 (다른 항이긴 한데 편의상 붙였습니다), 지금 눈앞에 있던, 그리고 아직까지는 가장 큰 파시르 판장 터미널, 주롱 섬과 본토 사이에 있는 주롱 항, 그리고 아직 간척조차 완료되지 않은 서쪽 끝 투아스 터미널입니다. 이 중에서 도심에서 가까운 탄종 파가르, 케펠-브래니 터미널, 그리고 꽤 장기적으로는 파시르 판장 터미널을 투아스 쪽으로 옮긴다고 하더군요. 부산에서 북항 부지를 엑스포 부지로 재개발하고 가덕도 방면에 신항을 짓는 것과 되게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다시 아직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크다는 파시르 판장 항을 돌아보고 남동쪽으로 향합니다. 



원래 래브라도 공원 위치에는 용아문이라는 바위가 있었는데, 명나라 영락제 시절 정화의 대원정 중 정화의 대함대가 싱가포르에 상륙하는 일은 없었지만 여기 바로 앞을 지나 태평양에서 인도양으로 나아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쉽게도 용아문이라는 바위 자체는 케펠 항으로 들어가는 항로를 만들기 위해서 1848년 영국인들이 폭파했다 하더군요. 



대신 그 자리 근처 케펠에는 뭔가 용아문을 닮은, Reflections at Keppel Bay라는 누가 봐도 비싸게 생긴 주상복합이 있어 여기가 케펠 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치가 위치인지라 당연히 해협 건너편에는 싱가포르 바로 남쪽에 있는 센토사 섬의 북서쪽 부분이 보입니다. 답사기 몇 편쯤 뒤면 아마 딱 저기 있을 것 같군요.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래브라도 파크 MRT 역세권은 여기가 아무튼 자연보호구역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합니다. 



아까 봤던 Reflections at Keppel Bay를 좀 더 가까이서 보려고 이동했습니다. 딱 봐도 부티가 흐르는 건물들이군요. 궁금해서 현장에서 월세를 찾아봤는데 propertyguru.sg 기준 이 단지 최저가가 월 6000불에서 시작...



바로 옆에는 이렇게 요트를 정박시킨 마리나가 있는데, 여기 러시아의 올리가르히/실로비키들이 러시아 국방예산 바꿔먹어가며 산 요트도 있으려나 모르겠군요. 저런 큰 요트 중 하나쯤은 러시아인 소유일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멀리서 봐도 부티가 좔좔 흐르는 케펠 만이었습니다. 해가 좀 더 지겠다, 여기 온 목적이었던 일몰을 잡으러 다시 래브라도 공원으로 돌아갑니다. 




여기가 (적어도 2차 세계대전 때는) 싱가포르 항구로 들어가는 출입구였을 테니, 이 기관총 토치카처럼 기본적인 방어 시설들이 남아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당시 일본군은 말레이 반도에서 내려왔으니 효과는 제한적이었겠지요. 



시간이 조금 더 지나 항구 쪽을 돌아보면 해가 지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싱가포르에서 탁 트인 바다를 기대하셨다면 포기하시는 게 좋은 것이, 싱가포르 앞바다 어디를 가든 싱가포르 항구에 정박하려고 온 수많은 화물선들이 시야를 가리고 있기 때문이죠. 열대지방이라고 깨끗하게 탁 트인 바다를 기대하셨다면 일단 싱가포르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열대지방 느낌을 아주 포기하는 것은 아닌 게, 적당한 각도와 위치를 찾으면 뭔가 느낌 있는 뷰가 나옵니다. 


싱가포르의 해안가 어디든지 항만뷰 아니면 선박뷰(?)가 고작이지만, 통근길 중간에서 필수적으로 환승해야 하는 곳을 재발견한 순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실은 환승은 센토사 섬으로 가는 관문인 하버프런트 역에서 한 번 더 하기 때문에, 다음 편은 바로 다음날 여기를 재발견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